"가슴으로 연기하라고 손으로 툭 친 걸 가슴을 만졌다고 진술을 한 애들이 있더라고요."
"노래방 끝난 다음에 얘들아 수고했다, 안아주고 저는 격려였거든요."

20일 방송된 JTBC <뉴스룸>으로 전파를 탄 배우 조민기의 음성은 당당했다. 최근 그가 재직했던 청주대학교 학생들 사이에서 그가 '제자들에게 성폭력을 행사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학교측이 그를 징계위에 회부했고 이 과정에 조민기는 부인하면서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학교측은 오는 28일 조민기를 면직처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날 오전 이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조민기는 비난의 중심에 서게 됐다.

자, 그러니까 그의 해명의 일부를 뜯어 보면 이러하다. 본인은 '가슴을 툭 쳤을 뿐'인데 그걸 '가슴을 만졌다'고 진술한 학생들이 있다는 해명되겠다. 심지어 '격려' 차원에서 안아준 것을 '성추행'이라고 '오해'했다는 취지일 것이다.

어렵지 않다. 이런 '스탠스'다. 일단, 무조건 부인하라. 학교에서의 지위도 있다. 배우로서의 명예, 유명인으로서의 이미지를 생각해야 한다. 무엇보다, 아직 검경의 조사를 받은 적이 없다. 무조건 '사건'을 부인하고 축소하면 그만이다. 학생이었고, 제자였을 피해자들은 힘이 없다. 청주대 출신 학생들의 주장에 따르면, 예술대학 안에서 '왕'으로 군림했다고 한다.

 배우 조민기

배우 조민기ⓒ 윌 엔터테인먼트


필사적으로 부인해야 한다. 변호사와 상의는 필수다. '대한민국의 법'은 '남성'의 성폭력에 대해 관대하며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입증하기란 여간 쉽지 않다. 이 땅에서 권력깨나, 이름값깨나 날린다는, 성추행이나 성폭력과 어떻게든 관계된 남자들은 이미 모를 리 없는 '진실'이다. 조민기의 대응은 이러한 '메뉴얼'에서 한 치도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어제(20일)와 오늘(21일)사이 달라진 소속사의 대응이 이를 입증한다. 앞으로의 대응을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조민기의 소속사 윌엔터테인먼트의 '확' 바뀐 입장문을 보면 명징해진다. 기분 나쁜 예감은 틀린 법이 없다.

안일하고 무례한, 조민기 소속사의 '사과문'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배우 조민기에 대한 성추행 관련 증언들에 대해 소속사는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이에 소속사 차원에서 이뤄지는 확인을 넘어 더욱 명확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판단, 배우 조민기는 앞으로 진행될 경찰조사에 성실히 임할 예정입니다. 또한, 드라마 <작은 신의 아이들>은 하차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불미스러운 일로 많은 분들에게 불편함을 드린 점 사과드립니다."

21일 오전 조민기의 소속사가 공개한 '사과문'이다. 근래들어, 이런 글은 '사과문'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저 간단한 '입장문'일 뿐이다. 안일하고 무례하다. 적어도,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사과 주체는 누구인지, 앞으로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지는 그저 '기본' 사항일 뿐이다.

본인이 출연한 드라마의 하차 문제, 즉 '밥그릇' 문제는 '사과'와는 별개의 문제다. 조민기는 '공인'이 아니고 대중의 선택과 티켓값으로 먹고 사는 '연기자'일 뿐이다. 그보다 꼼꼼하게 챙겨 봐야 할 대목은 바로 어제 내놓은 소속사의 입장문이다.

불과 하루만 해도 조민기측은 성폭력 사건에 대해 "명백한 루머"이자 "교수직 박탈 및 성추행으로 인한 중징계 역시 사실이 아닙니다"라고 했고, "위법행위에 대하여는 엄중하고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며 엄포를 놨다. 그러면서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 근거한 추측성 보도는 자제해주시길 부탁" 드린다고 했다. 더군다나 "한 가족의 가장에게, 또한 한 가정"을 운운했다.

"이미 스스로 반성하고 자숙하고자 책임을 지고 강단에서 내려온 조민기에게 연예인이라는 점을 악용, 의도적인 악성 루머를 각종 커뮤니티를 통해 양산한다면 한 가족의 가장에게, 또한 한 가정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힌 위법행위에 대하여는 엄중하고 단호하게 대처를 하고자 합니다."

왜 이렇게 입장이 확 돌변했을까. 불과 하루 전만해도 조민기는 성폭력 사건과 관련한 제보나 학교 측의 중징계에 대해 "확인 안 된 구설"로 일축했고, "불특정 세력으로부터 언론에 알리겠다는 협박"을 받았다고 호소했으며, "결백을 밝히기 위해 법적 조치 진행 여부도 생각하였으나, 가장 먼저 이로 인해 상처를 입을 가족들을 지키고 싶었던 마음과 상대방이 학생이라는 점을 고민하여 최대한 대학 측에서 진상규명을 해주기"를 요청했다고 했다.

사직서 역시 "수업 중 사용한 언행이 수업과 맞지 않는다는 대학의 자체 조사 결과에 따라 '3개월 정직'의 징계를 받은 조민기는 도의적 책임감을 가지고 스스로 사표를 제출한 것"일 뿐, "보도된 학교측의 성추행으로 인한 중징계" 역시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동시에 대학 선배로서, 또 교수로서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추문에 휩싸인 것 자체에 회의감과 자책감을 느껴 바로 사표를 제출하였으나, 대학 측에서 진상규명 후에 수리가 가능하다고 보류하다 이후로도 신문고 내용의 피해자와 제보자가 나타나지 않는 상황이 이어져 현재는 사표가 수리된 상황입니다."

단순한 '추문'이고, 자책감으로 인해 먼저 사출을 제출했다는 대목도 눈여겨 볼 만하다. 이러한 어제 입장문을 세세히 뜯어 본 이유는 자명하다. 하루 만에 말이 바뀐 연유 말이다. 자신을 충주대학교 출신이라 밝힌 연극배우 S씨는 20일 밤 자신의 페이스북에 조민기의 성폭력과 관련한 내용을 상세하게 기술했다. 조민기가 하루 전에 밝힌 입장과는 천지 차이의 내용이었다.

이윤택 사건과 조민기 사건, 그 배경은 '권력'

 어느 연극배우가 페이스북 '대학로X포럼' 페이지에 남긴 글. "조민기 교수가 억울하다며 내놓은 공식입장을 듣고 분노를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라고 썼다.

어느 연극배우가 페이스북 '대학로X포럼' 페이지에 남긴 글. "조민기 교수가 억울하다며 내놓은 공식입장을 듣고 분노를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라고 썼다.ⓒ 페이스북 갈무리


"잊고 지내려 애썼지만 조민기 교수가 억울하다며 내놓은 공식입장을 듣고 분노를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저와 저의 친구들, 그리고 수많은 학교 선후배들이 지난 수년간 겪어내야만 했던 모든 일들은 '피해자 없이 떠도는 루머'가 아니며 '불특정 세력의 음모로 조작된 일'도 아닙니다.

저는 격려와 추행도 구분하지 못하는 바보가 아닙니다. 저와 제 친구들, 그리고 선후배들이 당했던 일은 명백한 성추행이었습니다. 나서기 너무 두려웠고 지금 이 순간에도 두렵지만 이 논란이 잠잠해지면 어디에선가 또 제 2, 제 3의 피해자가 저처럼 두려워하며 지낼 거라는 생각에 용기를 내서 글을 적어보려고 합니다."

자신을 "청주대학교 연극학과를 졸업하고 이제 막 대학로에 데뷔한 신인 배우"라고 소개한 S씨가 적은 장문의 글은 충격 그 자체였다. 자신의 오피스텔로 여성 학생들을 불러 했다는 행위들은 선생으로서, 한 가족의 가장으로서 당당하게 할 만한 행동이 아니었다. 노래방에서든, 학교 내에서든 그가 한 모든 언행의 배경은 역시나 '권력'이었다.

"예술대학에서 배우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조민기 교수는 절대적인 권력이었고 큰 벽이었기에 그 누구도 항의하거나 고발하지 못했습니다. 연예인이자 성공한 배우인 그 사람은 예술대 캠퍼스의 왕이었으니까요."

개인적으로, 이윤택 사건과 비교해 조민기의 성추행 사건은 지속 시간이나 피해자 숫자에 차이가 있을 뿐 본질은 같다고 볼 수밖에 없다. 자신의 누리는 절대적인 지위와 권력을 이용, 절대 약자인 여성 학생들에게 물리적, 심리적 성폭력을 가했다는 점에서,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 이후 은폐에 급급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지속적으로 터져 나오는 '미투' 운동 분위기 속에서 또 어떤 가해자들이 가려졌던 속내를 드러낼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혹자는 최근의 확대되고 심화 중인 '미투' 운동을 혁명에 비하고 있다. 1987년 이래 근 30년이 걸린 2018년의 미투 운동이야말로 한국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혁시킬 저력을 지녔다는 평가에 동의하는 바다.

권력과 위계로 얼룩진, 그리하여 성폭력을 비롯한 각종 폭력에 둔감했고, 또 '공범'처럼 살아왔던 이들에게도 이번 미투 운동은 각성과 자성의 기회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 그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가해자들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와 법과 사회적인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

사석에서 만난 한 여성 배우는 일련의 '미투'에 거센 반향이 일어나는 이유 중 하나가 업계 당사자들의 자식들이 성장해서 바로 그 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것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업계의 (남성)'어른'들이 자신의 아들, 딸이 성폭력을 포함한 그런 '폭력'에 노출되는 것을 막거나 피하게 하고 싶어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 말에 공감한다. 조민기의 성폭력을 폭로한 S씨의 마지막 일성은 그래서 더 유효하다. 학교는 물론이요 어느 분야에서든 지금 막 일을 시작한 20대들을 더 이상 '괴물'과 대면하게 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꿈을 키우고 실력을 갈고 닦을 터전이 되어야 할 학교에서 교수가 제자에게 가한 이 성폭력은 절대로 용서받지 못할 잘못입니다. 그런 일을 당했음에도, 그 이후에도 그런 일이 있을 것임을 알고도 나서서 행동하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나의 선배들이 나에게 해주었듯이, 나도 나의 후배들에게 '조심하라'는 말 밖에 해주지 못해서 정말로 미안합니다. 부디 다시는 어떤 학교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학교는 학생들의 순수한 열정을 더러운 욕망을 채우는 데 이용하는 괴물이 발도 붙일 수 없는 곳이어야 합니다.

끝으로 이 일과 관련해 많은 언론사에서 저에게 직접적으로 연락을 해 왔습니다. 제가 피해자라는 사실은 잊었는지 계속해서 더 자극적인 증언만을 이끌어 내려는 기자분들의 태도가 저를 더욱 힘들게 했습니다. 무엇을 위한 취재이고 누구를 위한 언론인지요. 언론 또한 피해자를 또 다시 숨게 만드는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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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영화 기자, 오늘은 프리랜서 글쟁이. 살다보니 시나리오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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