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원주 DB 프로미의 가드 두경민은 그야말로 롤러코스터 같은 한 시즌을 보내고 있다. 전반기까지만 해도 프로 데뷔 이래 최고의 활약으로 생애 첫 'MVP 후보'로 거론될만큼 승승장구하는 듯했으나 최근에는 경기력 하락과 함께 각종 불화설과 구설수로 인하여 졸지에 '문제아' 취급을 받는 신세로 평가가 급락했다. 같은 선수에 대한 평가가 한 시즌 동안 이렇게 극과 극을 오가는 것도 보기 드문 일이다.

두경민은 최근 국가대표 A매치 소집기간을 앞두고 치러진 2017-18시즌 프로농구 정규리그 경기에서 무려 4경기째 연속으로 결장했다. 단순히 경기만 뛰지 않은 게 아니라 아예 출전선수 명단에서 제외됐다.

경기에 뛸 수 없을 만큼 큰 부상을 당한 것도 아니다. 두경민은 19일 소집된 FIBA 농구얼드컵 아시아예선에 출전할 남자농구대표팀에는 정상적으로 합류했다. 소속팀 원주가 한창 정규리그 1위를 달리며 우승에 근접한 시점에서 특별한 이유도 없이 '토종 에이스'였던 두경민의 갑작스러운 장기 결장은 팬들에게 무성한 소문과 추측을 자아낼 수밖에 없었다.

현재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사유는 코칭스태프 및 팀 동료들과의 '불화설'이다. 두경민은 올시즌 외국인 선수 디온테 버튼과 함께 원주 상승세의 쌍두마차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두 선수 모두 공격 욕심이 강하다 보니 주도권을 놓고 은근한 신경전이 벌어졌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코칭스태프가 '교통정리' 차원에서 두경민에게 좀 더 수비와 궂은 일에 주력해줄 것을 지시했고 두경민이 이에 불만을 표시하면서 갈등이 심화되었다는 것이다.

두경민의 갑작스러운 결장

 12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서울 SK와 원주 DB의 경기. 승리가 결정되자 DB 버튼과 두경민 등이 환호하고 있다.

지난 2017년 12월 12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서울 SK와 원주 DB의 경기. 승리가 결정되자 DB 버튼과 두경민 등이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사실 여기까지만 해도 자존심이 강한 프로구단 구성원들 사이에서 한번씩 일어날 수 있는 해프닝에 가깝다. 그런데 지난 10일 울산 현대모비스전에서 두경민이 전례 없는 부진을 보이며 '태업' 의혹을 자아냈다. 그러면서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두경민은 이날 19분을 뛰며 1점 3어시스트에 그쳤다. 올시즌 41경기에서 평균 16.49점을 기록하며 이날 전까지 두 자릿수 득점에 실패한 경기에 4번밖에 없었을 정도로 꾸준했던 두경민의 올시즌 들어 최악의 경기였다. 당시 팀도 90-106으로 완패했다.

문제는 두경민이 이날 슛 시도가 단 1번밖에 없었을 만큼 공격에서 유난히 적극성이 결여된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3점슛 시도는 아예 한 차례도 없었고 유일한 득점은 자유투로 얻어낸 것이었다. 올시즌 두경민의 활약상을 감안하면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의 모습이었다. 공교롭게도 두경민은 이 경기 이후 한동안 출전명단에서 제외됐다.

팬들은 두경민이 수비 문제를 지적받은 데 불만을 품고 울산전에서 고의로 무성의한 플레이를 펼치며 이상범 감독에게 노골적인 '항명'을 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하고 있다. 이에 이상범 감독도 대노하여 팀 기강 차원에서 두경민을 출전명단에서 제외했다는 것이다. 이상범 감독이 두경민의 결장 사유에 대하여 구체적인 이유는 밝히지 않았지만 '원칙'을 강조한 것도 팀 내 갈등이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설상가상 '결혼 시기' 문제를 둘러싼 논란과 팬들과의 충돌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두경민은 최근 연예인 출신 여자친구와 결혼을 발표했다. 결혼은 개인의 사생활이고 마땅히 축복받아야 할 일이지만 문제가 된 것은 결혼식 날짜가 하필 챔피언결정전 일정과 겹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다.

원주는 올시즌 정규리그 1위를 달리며 챔프전에 진출할 가능성이 유력하다. 그런데 결혼식이 플레이오프 기간에 열린다면 온전히 경기에만 전념해도 모자랄 선수의 집중력에도 어쨌든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개인의 사정도 물론 중요하지만 일단 프로로서 팀 분위기에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동은 피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여기에 일부 팬들은 SNS상에서 두경민의 여자친구에 대하여 악성 댓글을 퍼붓는 사태가 벌어지며 온라인에서 설전이 벌어졌고 고소 여부까지 오르내릴 정도로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여론은 대체로 두경민에게 불리하다. 두경민 입장에서 보면 과장되거나 억울한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프로선수로서 바람직하지 못한 처신으로 본인이 먼저 논란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이상범 감독은 올시즌 리빌딩팀으로 평가받았던 원주를 부임 첫해만에 리그 우승권으로 끌어올린 지도력을 인정받아 팬들의 지지도 두텁다. 두경민의 입장에서도 그동안 스타와 유망주의 애매한 경계선에 놓여있던 자신을 중용하며 '에이스'급 선수로 각성시킨 은인에 가깝다. 두경민의 처신이 팬들의 공감대를 얻기 어려운 이유다.

원주는 정작 두경민이 빠진 이후에도 원주는 버튼을 중심으로 승승장구하며 정규리그 우승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급기야 이제는 '두경민이 아예 없어도 상관없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다.

여론이 악화되면서 두경민도 결국 한발 물러섰다. 19일 국가대표 소집에 모습을 드러낸 두경민은 '모든 게 자신의 잘못'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이상범 감독과 원주 선수단에게도 별도로 사과의 의사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쏟아지는 추측성 소문에 대해서는 "과도한 루머가 너무 많다. 여자친구 때문에 심리적으로 문제가 생겼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여자친구의 얼굴사진을 칼로 찢어서 보내는 등 과한 부분이 있어서 가족들이 상처를 받았다"며 답답한 감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원주와 두경민에게 중요한 전환점이 될 올해

스포츠 스타들은 저마다 개성이 뚜렷하고 자존심도 무척 강하다. 그렇게 강렬한 '자아'가 운동선수로서 치열한 경쟁을 극복하고 성공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농구 같은 팀스포츠일수록 자신의 욕심과 감정을 상황에 맞게 절제할 수 있는 현명함도 필요하다. 원주는 두경민만의 팀이 아니며 팀이 한 선수의 기분과 입장에 맞춰서 돌아갈 수는 없다. 설사 그렇게 된다고 해도 그 팀이 '콩가루'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원주와 두경민에게 모두 올해는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다. 원주는 올해 2007-2008시즌 이후 무려 10년 만의 통합우승을 꿈꾸고 있으며, 구단의 간판스타이자 한국농구의 레전드인 대선배 김주성의 마지막 은퇴 시즌이기도 하다. 두경민 개인적으로도 군 입대를 앞두고 올해 MVP 후보로 거론될 만큼 기량이 만개한 데다, 결혼이라는 중대사까지 앞두는 등 여러모로 기념비적인 시즌이 될수도 있었다.

그런데 두경민은 한번의 잘못된 처신으로 자칫하다간 공들인 한시즌 농사를 모조리 망칠 수도 있는 위기에 놓였다. 만일 원주가 올시즌 자칫 우승에 실패하기라도 한다면 그 책임의 상당 지분은 팀 분위기를 흐린 두경민에게 돌아갈 수도 있다. 두경민도 '문제아' 이미지만 남긴 채 올시즌이 끝나고 내쫓기듯 입대하는 모양새는 원하지 않을 것이다. 올바른 결자해지는 두경민 스스로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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