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환절기> 포스터

ⓒ (주)리틀빅픽처스


필리핀에 머무는 남편 진규(박원상 분)와 떨어져 아들 수현(지윤호 분)과 지내는 미경(배종옥 분). 어느 날 수현은 친구라며 용준(이원근 분)을 집에 데리고 온다. 용준의 어두운 가정사를 들은 미경은 따뜻하게 맞이한다. 몇 년이 흐른 후, 군에서 제대한 수현은 용준과 떠난 여행길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중태에 빠진다. 혼자 멀쩡한 용준이 원망스럽던 미경은 수현의 카메라를 정리하다가 두 사람이 친구 이상의 관계임을 알게 된다. 주위를 맴도는 용준을 피해 미경은 수현을 데리고 자취를 감춘다. 홀로 남겨진 용준은 수현과 미경을 찾아 헤맨다.

'퀴어'는 더는 낯선 용어가 아니다. 사전적으론 '기묘한', '괴상한'이란 뜻을 가진 퀴어(queer)는 1990년대 학계와 저널리즘에서 쓰기 시작하여 성소수자들이 자신들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빗대는 의미로 사용하다가 현재에 이르러선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성전환자를 포괄하는 용어가 되었다. 퀴어 영화도 하나의 장르로 뿌리내렸다.

우리나라에서 동성애를 다룬 최초의 영화는 한형모 감독의 <질투>(1960)로 알려진다. 동성애를 사회의 금기로 여기는 탓에 김수형 감독의 <금욕>(1976) 외에 별다른 퀴어 영화를 볼 수 없었지만 1990년대에 접어들어 <내일로 흐르는 강>(1996)이 나오면서 분위기는 바뀌기 시작했다.

이후 상업 영화로는 <여고괴담-두 번째 이야기>(1999) <번지점프를 하다>(2000) <왕의 남자>(2005)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2008) <쌍화점>(2008) <창피해>(2010) <아가씨>(2016) 등이 나왔고, 독립영화에선 <후회하지 않아>(2006) <야간비행>(2014)를 연출한 이송희일 감독과 <소년, 소년을 만나다>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를 만든 김조광수 감독을 필두로 <로드 무비>(2002) <꿈의 제인>(2017) <연애담>(2017) 등이 선보였다. 동명의 그래픽노블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 <환절기>도 퀴어 장르에 속한다.

아들의 비밀을 알게 된 어머니, 서로를 받아들이기까지

 영화 <환절기>의 한 장면

ⓒ (주)리틀빅픽처스


대부분 퀴어 영화가 당사자의 시각에서 이야기를 풀어갔던 것과 달리, <환절기>는 아들의 비밀을 알게 된 어머니를 극의 중심에 놓는다. 연출을 맡은 이동은 감독은 미경을 주요 화자로 선택한 이유를 "그냥 그게 자연스러웠다"고 이야기한다.

"미경이 두 사람을 바라보고, 용준이 두 사람을 바라보고, 마지막 장면으로 가면 수현이 나머지 두 사람을 바라보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미경의 시점으로 쓰게 된 거다." - 월간 <그래픽노블> 인터뷰 중에서.

아들이 동성애자라는 상황을 접한 미경은 처음엔 받아들이길 거부한다. 그러나 수현과 용준의 마음을 알게 되며 차츰 마음의 문을 연다. "서로를 받아들이는 법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는 이동은 감독의 연출 의도는 인물을 조심스럽게 다루는 손길과 그들의 교감을 섬세하게 관찰하는 태도로 나타난다. <환절기>는 하나의 존재를 온전하게 받아들이는 퀴어 영화이자 어머니가 아들과 그의 친구를 이해하는 과정을 담은 가족 드라마로 다뤄진다.

극중에서 용준은 미경에게 "갈 데가 없어요"라고 고백한다. 미경 역시 "갈 데가 없대. 나도 도망칠 데가 없네"라고 자조 섞인 말을 내뱉는다. 불륜을 저지른 남편, 병상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수현, 모자의 곁을 맴도는 용준에게 미경이 느끼는 원망, 미안함, 불안감, 당혹스러움을 배종옥 배우는 멋지게 소화했다.

이동은 감독은 홍보사가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미경은 일견 평범한 듯 보이지만 기존 작품들에 등장한 40대 중년 여성의 전형성에서 조금 비껴서 있는 인물로 배우 배종옥이 보여준 부드럽지만 강하고, 도회적인 동시에 친근한 매력들이 미경 캐릭터와 꼭 맞았다"고 밝혔다.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여러 캐릭터를 연기한 배종옥 배우는 휘몰아치는 감정의 파고를 용서와 화해로 넘는다.

인생의 환절기를 맞은 가족 그린 영화... 사회 이슈 잘 녹여내는 명필름

 <환절기> 영화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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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절기'는 철이 바뀌는 시기를 일컫는다. 미경, 용준, 수현이 겪는 시간이 계절이 변화하는 환절기와 맞닿았다는 생각이 들어 감독이 붙였다는 제목은 다양한 의미로 다가온다. 환절기에 흔히들 감기에 걸리곤 하는데 미경, 용준, 수현이 감추었던 마음 한편은 환절기의 감기처럼 아프게 느껴진다. 각자의 상처를 이겨낸 성장은 감기를 이기고 맞이하는 새로운 계절과 다름없다. 외로움과 상처를 지닌 이들은 서로를 따뜻하게 감싸준다. 인생의 환절기는 그렇게 지나간다.

오는 22일 개봉 예정인 영화 <환절기>는 2015년 2월 신진 영화인을 육성하기 위해 설립한 '명필름랩'의 두 번째 작품이다. 새로운 영화제작 시스템인 명필름랩은 조재민 감독의 <눈발>(2017)에 이어 <환절기>로 의미 있는 성과를 일구었다. 명필름랩은 이주호 감독의 다큐멘터리 <더 디스코 스타>, 이환 감독의 <박화영>, 유혜민 감독의 < OB들>, 전지희 감독의 <국도극장>을 차례로 선보일 예정이다.

 영화 <환절기>의 한 장면

ⓒ (주)리틀빅픽처스


최근 명필름의 작품엔 사회적인 이슈가 녹아있다. <아이 캔 스피크>는 역사, <환절기>는 성소수자, < 7호실>은 갑에게 시달리는 을을 주목했다. 단연 돋보이는 건 여성이다. <아이 캔 스피크>는 충무로에서 보기 드문 여성 중심의 영화였다. <환절기>는 할머니가 되어서야 영화를 찍을 수 있는 건가 생각했다는 배종옥 배우에게 멋진 캐릭터를 안겨주었다.

여성에 대한 관심은 차기작에서도 계속될 전망이다. 곧 극장가에서 만날 임수정 주연의 <당신의 부탁>은 죽은 남편과 전 부인 사이에서 홀로 남겨진 아들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내용을 담고 있다. 명필름랩의 또 다른 결과물인 <박화영>은 가족 없이 집을 소유한 18살 여고생이 자신의 집을 친구들에게 제공하면서 '엄마'로 불리는 이야기를 그렸다. 명필름은 시대정신과 소명의식을 영화와 제작 시스템으로 보여주고 있다. 왜 명필름이 한국 영화의 명가로 불리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환절기 이동은 배종옥 이원근 지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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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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