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 당시 처칠의 활약을 담은 영화 <다키스트 아워>

2차 대전 당시 처칠의 활약을 담은 영화 <다키스트 아워> ⓒ UPI 코리아


2차 대전 당시 영화 영국 총리 처칠의 활약을 담은 영화 <다키스트 아워>가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로 인해 화제가 되고 있다. 홍 대표가 '다키스트 아워(DARKEST HOUR)'라는 표현을 자주 언급하고 있어서다. 홍준표 대표가 최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보면 영화를 연상시키는 표현이 여럿 보인다. 

설날이었던 지난 16일, 홍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계파정치를 하지 않겠다"면서 지방선거에서 계파를 챙기는 공천을 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은 좌파 광풍시대이고 'DARKEST HOUR(가장 어두운 시간)'입니다. 모두 합심해서 지방선거를 돌파합시다"라고 밝혔다.

전날인 15일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판결에 대한 비판 여론이 국민청원으로 이어지는 것이 불편한 듯  "좌파들의 난동과 여론 조작에 굴하지 않고 법치주의를 지킨 서울 고등법원 이재용 재판부에 경의를 표합니다"라고 썼다. 그러면서 "재판마저도 촛불시위로 하겠다는 좌파정권의 횡포는 앞으로 역사적 단죄가 있을 겁니다. 한국은 지금 Darkest Hour"라고 덧붙였다.

앞서 지난 평창올림픽 개막일인 지난 9일에는 "대북정책을 다시 세워야 한다"며 "히틀러에 속아 대독유화정책으로 2차대전의 참화를 초래한 영국 네빌 챔버레인 수상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라고 영화에 나오는 내용을 언급하기도 했다. 1일에는 "한미동맹에 균열이 오는 문 정권의 대북 구걸 정책은 2차 대전 전의 영국 챔벌레인 수상의 대독 유화정책을 연상시킨다"고 했다.

 지난 1월 30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 영화 <다키스트 아워>를 언급했다.

지난 1월 30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 영화 <다키스트 아워>를 언급했다. ⓒ 홍준표 페이스북


홍 대표는 지난 1월 30일에는 영화 <다키스트 아워>를 봤다면서 페이스북에 직접 감상평을 남겼다. 원전 사고를 소재로 한 영화 <판도라>나 1987년 6월 항쟁을 그린 영화 < 1987 >에 대해 불편한 심경도 담겨 있다.

"전시내각을 이끌면서 히틀러의 위장평화 공세에 속아 평화협상을 주장하는 챔버레인과 외상 할리팩스에 맞서 영국을 지키는 처칠의 모습에서 진정한 지도자 상을 보았습니다. 지도자의 냉철한 판단과 결기 그리고 용기가 나치로부터 영국을 지켜내는 것을 보면서 왜 이 영화가 이 시점에서 상영관들로부터 외면을 받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지금의 북핵상황을 대입해 보면 그 답을 알 수 있을 겁니다. 북의 위장 평화 공세에 넘어가 나라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는 대통령이 꼭 보아야 할 영화입니다. 판도라 보고 헛발질 하고 1987 보고 눈물 흘리지 마시고 다키스트 아우어를 보시고 국민이 안심할 수 있도록 북핵 대처를 잘 해주시기 바랍니다."

"영화의 메시지, 국가주의적 색채·전쟁 선호와 분명한 선 긋는다"

 <다키스트 아워>의 한 장면 워룸에서 영국군을 살리기 위해 덩케트르 철수작전을 고심하는 처칠.

<다키스트 아워>의 한 장면 워룸에서 영국군을 살리기 위해 덩케트르 철수작전을 고심하는 처칠. ⓒ UPI 코리아


영화에 대한 느낌은 각자의 몫이지만 홍준표 대표의 '아전인수식' 해석이 평론가의 입장에서는 불편한 모양이다. 홍 대표가 계속 <다키스트 아워>를 자신의 정치에 활용하는 모습을 드러내자 이를 보다 못한 마리끌레르영화제 집행위원장인 오동진 평론가가 나서서 쓴 소리를 던졌다.

지난 5일 오 평론가는 "<다키스트 아워>를 보고 홍준표가 광분을 했다고 한다"라며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를 해줬더니 그게 먹을 건지 알고 날뛰는 격이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혹자는 이 영화가 홍준표 같은 정치인을 흥분시킬 만한 국가주의적 색채가 있다고도 했으나 동의하지 않는다"라면서 "이 영화는 30만의 젊은이들을 살리려 했던 한 정치인의 얘기를 그린다. 죽이려 했던 것이 아니고"라고 적었다.

또한 "전술핵 배치인지 뭔지 주장하면서 자칫 수백만 명의 남한 국민을 죽일 수 있는 전쟁을 선호하는 것과 이 영화의 메시지는 분명한 선을 긋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오 평론가는 "지금 처칠이 살아 있다면 평화를 위한 결단을 내릴 것이다. 남북 단일팀 구성도 작은 맥락이지만 평화를 위한 큰 결단에 따른 것이다"고 홍 대표의 해석에 반박했다.

오 평론가는 이 글에 본인이 지난 4일 <중앙일보>에 기고한 리뷰를 첨부했다. 해당 리뷰에서 그는 "덩케르크 전투는 영국이 이긴 싸움이 아니다. 철저하게 패한 전투다. 그럼에도 수많은 젊은이의 목숨을 구해냈다는 점에서 처칠은 전쟁의 전기를 마련했다"라며 "덩케르크의 30만을 살리기 위해 처칠은 그 옆, 칼레에 주둔해 있던 4000명의 군사를 희생시켰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 일로 당 안팎의 정적들은 그에게 백기를 들라고 요구한다. 히틀러와의 화친을 종용한다. 하지만 결국 처칠의 고집이 이긴다"면서 "그는 이 작전으로 파죽지세로 치닫던 독일군의 승기를 꺾은 셈이 됐다"고 평가했다.

'상영관들의 외면을 받는다'는 홍 대표의 지적에 대해서도, 오 평론가는 본인의 리뷰에서 "국내에서 조용히 개봉돼 비교적 외면받고 있음에도 소수나마 일정한 개봉관 수를 유지하고 있는 데는 곧 아카데미 시상식이 있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다키스트 아워>는 주인공인 처칠 역의 게리 올드만이 남우주연상 후보로 올랐고, 작품상 등 총 7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지난 1월에는 '아카데미의 바로미터'라 불리는 골든글러브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오동진 평론가 "지금 처칠이 살아 있다면 평화를 위한 결단 내릴 것"

 영화 <다키스트 아워>의 한 장면. 지하철로 이동하며 국민들의 민심을 청취하는 처칠.

영화 <다키스트 아워>의 한 장면. 지하철로 이동하며 국민들의 민심을 청취하는 처칠. ⓒ UPI 코리아


<다키스트 아워>는 지난해 여름 개봉해 주목받았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덩케르크>의 이전 상황을 담고 있다. 영화는 1940년 독일군에 의해 프랑스에 고립된 영국군이 기적처럼 성공시킨 '덩케르크 철수 작전이 어떻게 준비됐고, 어떤 과정을 거쳐 실행됐는지를 보여준다.

전시 내각의 수장으로 정적들까지 내각에 끌어안은 처칠은 미국의 지원마저 쉽지 않은 현실에서 독일과의 유화 정책을 주장하는 반대파를 묵살한다. 그리고 고집스럽게 무모할 것이라는 철수작전을 관철해 낸다.

1940년대 2차 대전으로 정치적 대립이 심화되던 영국의 현실에서, 정파적인 입장보다는 민심을 따르는 정치 지도자의 모습이 묘사된다. 영화가 그려내는 것은 적당한 타협을 통한 굴복이 아니다. 힘들지만 당당하게 주도적인 목소리를 내며 민심에 호응하는 정치인의 모습이 진중하게 담겨 있다.

홍 대표가 <다키스트 아워>에 '꽂힌' 이유는 아마도 독일과의 협상을 거부하고 끝까지 싸우겠다는 처칠의 모습 때문으로 보인다. 북한의 대화를 위장 평화 공세로 규정하고 '대북정책을 바꿔 끝까지 압박해야 한다'는 논리에 영화가 이용되는 모습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전쟁영화'는 '반전영화'라는 의미를 잊은 듯하다. 남북대화가 한 쪽의 일방적인 굴욕적 협상도 아니고 공존과 공생을 도모한다는 점에서 홍 대표의 해석은 지나친 '아전인수'에 가깝다. 오히려 역으로 북한에서 홍 대표 식으로 영화를 해석한다면 국제사회의 압박에 그들이 대화가 아닌 대결로만 치달을 수 있지 않을까.

홍 대표는 "이 영화가 이 시점에서 상영관들로부터 외면을 받는지 알 수 있었다"며 마치 무슨 압력이나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이런 영화들이 주목받지 못하는 이유 중에는 대기업 독과점으로 인한 상영 기회가 제약이 작용한다. 이의 개선을 위해 관련 법안의 개정안이 제출돼 있지만 이에 소극적인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게 자유한국당이다. 아마도 홍 대표가 관련법 개정에 적극 나선다면 블랙리스트로 인해 상처가 많은 독립예술영화들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다.

<다키스트 아워>는 꽤 잘 만들어진 영화다. <덩케르크>를 감명 깊게 본 관객이라면 <다키스트 아워>의 감흥이 특별할 것이다. 아카데미 시상식을 앞두고 관심이 높아지는 분위기다. 다만 홍 대표의 호평이 영화 흥행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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