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피의 연대기> 중 한 장면

영화 <피의 연대기> 중 한 장면 ⓒ KT&G 상상마당


"생리대 있어?"

중학교 시절 갑자기 생리가 터졌을 때 친구에게 귓속말로 전한다. 친구는 잽싸게 눈빛으로 '그날이구나?'라는 눈짓을 보내고 끄덕이는 고갯짓에 친구는 조용히 가방 구석 주머니에서 생리대를 꺼내 가방 옆에 바싹 붙은 나의 손 가벽과 이어진 교복 치마 주머니 사이로 0.01초 만에 넣는 '첩보 작전'을 벌인다.

이 첩보작전은 대학, 직장에서도 끝나지 않았다. 한번은 또 갑자기 터진 생리에 첩보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주머니에 넣고 탁 뒤돌아선 순간 주머니 끝자락이 강의실 책상에 걸렸다. 피가 새기 전 생리대를 붙여야 한다는 불안감은 괴력을 발휘하여 주머니와 옷을 분리했다.

(필자의 집에는 남자가 없어서 몰랐는데) 이 첩보작전은 가정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지난해 만난 한 사람은 '26년을 살면서 한 번도 생리대를 본 적 없다'고 증언했다.

'선택권'에 대한 질문의 시작

영화 <피의 연대기> 첫 시퀀스에서 '맨스 주머니(생리대를 넣는 주머니)'를 선물 받고 어디에 쓰는지 모르는 네덜란드 친구의 반응은 생리용품에 대한 궁금증의 계기가 된다. 이 의문을 생리용품 속 역사, 사회, 미시 개인사, 정치, 의학적 관점에서 다양하게 답해나간다. 이 첫 시퀀스는 표면적으로 영화의 질문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철저하게 우리 사회에서 음지에 숨겨져 있던 생리(용품 역시)의 현실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뭔가 이상한 점이 마음에 밟힌다. 인류의 역사 내내 존재해왔고, 이 세계의 반이 경험 하는 일인데 그 어디에서도 생리에 관해 자세히 이야기 할 수 없었다. 생리에 대한 집단적 침묵에서부터 기인한 무지는 단순히 '모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구조 속에 형성된 강요된 무지이다. 그래서 생리라는 '다른' 신체적 현상을 끊임없이 숨기고 같음을 보여야만 했던 것은 여성 자신의 몸을 부정하는 일이었다. 다름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몰라도 괜찮은 영역이었던 생리. 우리의 몸에 대해 열심히 탐구하는 것, 그 자체가 금기를 깨는 행위이다. 

 영화 <피의 연대기> 중 한 장면.

영화 <피의 연대기> 중 한 장면. ⓒ KT&G 상상마당


피의 연대기는 바로 이 금기를 깨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이 금기를 어떻게 깰 것인가. 감독은 '생리용품'을 선택했다.

"이세돌이 알파고에 지네 마네 하는 기술 발전의 시대에 살고, 매 쿼터 새로운 아이폰이 출시 되고, (핸드폰이) 우리 홍채를 인식하고 상상치도 못한 발전이 일어났는데 우리는 아날로그는커녕 이렇게 원시적인 제품을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한 사회가 혹은 시장이 이것을 사용하는 주요 소비자를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문제다. 생리가 굉장히 사적인 영역에서 터부시되어졌고 이것을 공적 담론으로 끌어오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서 생리용품을 '상품'으로 여기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 (영화 <피의 연대기> GV 중 오희정 PD)

우리의 몸은 신성시될 필요도 없고 가려야 할 필요도 없다. 마치 내 몸에 맞는 옷처럼 내 몸에 맞는 생리용품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 그래서 생리용품을 이야기 해야 했다.

금기를 깨고 경험을 이야기하다

영화는 고대부터 현재까지, 한국에서 전 세계까지 생리 이야기를 담아내며 여성의 피를 멈추기 위해 가리기 위해 해낸 많은 투쟁과 경험들이 나열된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논쟁이 된 지하철 하혈 사건. 연령대에 따라 다른 형태로 사용됐던 생리용품, 자신의 첫 생리. 다양한 생리용품을 사용해본 사람의 후기 등.

이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기도 하고, 내 마음 같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대단해 보이는 사람들도 있고, 씁쓸함에 웃지 못할 때도 있다. 이 인터뷰 사이에서 어떤 이는 여전히 자신의 몸에 무언가(생리컵, 탐폰 등)를 넣는 것을 무서워했고, 어떤 이는 한평생 목화솜과 면으로 생리대를 만들었으며, 학교에 가다 생리대 때문에 허벅지 사이가 다 짓무르지기도 했다. 어떤 이(생리컵을 발명한 레오나 차머스)는 자신의 아픔과 싸우며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명을 하기도 하고, 아픔을 무릅쓰고 도전하며 그 도전들을 공유했다.

영화는 굉장히 자세하게 생리용품과 생리의 역사 등을 파헤쳐간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모두가 봐야 할 생리 '교과서'라고 극찬한다. 그러나 영화의 깊은 고민을 이야기지 않고 단순히 교과서라고 말한다면 자칫 '생리를 가르쳐주는 영화'라는 프레임에 쌓이기 쉽다.

주입식 암기 교육을 떠올려보면, 교과서는 가르치는 자의 앎과 배우는 자의 무지를 권력 관계로 치환해버리고, 일방적인 지식을 강제한다. 이처럼 자기반성과 공적 토론이 부재한 가르침은 쉽게 앎의 폭력으로 다가선다. 영화가 모두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는 건 바로 이 폭력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자기 반성과 깨우침이 결합된 형태로 서술되기 때문이다.

영화는 관객에게 감독의 무지를 깨쳐가는 과정을 3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바라보게 했다. 이를 통해 여성 스스로 몸에 대해 무지했고, 그 무지를 깨트린 이들 역시 몸을 탐구해갔던 과정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즉 "너의 무지를 알라"가 아니라 "나의 무지를 인정하고 알아가자"라는 서술 형식을 취한다. 이 관점으로 무지를 담아냄에 있어서 '여성 자신도 자신의 몸에 대해 모를 수 있다'는 큰 전제를 가지고 영화를 풀어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가 거부감 없이 정보와 입장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그 덕분에 관객은 다양한 면담자마다 몸에 대한 이해도가 극명히 다르지만, 그에 따라 진취적인가, 보수적인가를 편 가르기 하지 않을 수 있다

여성의 무지를 덜어내고 나면 드디어 드러나는 여성의 몸. 그제야 여성은 몸에 대한 주체성을 이야기할 수 있다. 왜 인류의 반이 겪는 보편적인 경험이 억압되고 은닉된 것인가. 남성이 개입하지 않았음에도 여성들 내에 존재하는 억압들은 무엇인가. 여성 스스로 규율하고, 여성의 몸에 대한 주체성의 부재, 그리고 그 종속을 벗어나기 위한 일련의 과정을 그려내는 영화.

그래서 영화 <피의 연대기> 안에서 남성의 무지를 언급하지 않아도 남성의 무지와 의문을 깰 수 있다. 월경하지 않는 자는 자신의 무지가 어떻게 강요됐는지 이해하게 된다. 무지함이 왜 항상 부정적으로 이야기되었는지, 숨겨졌는지, 왜 우리는 호기심으로 드러낼 수 없는 곳에 생리가 있었는지 고민해보게 된다. 그 속에서 남성들은 생리를 이해하고, 생리를 대하는 큰 사회적 구조를 볼 수 있기에 이 영화가 던질 수 있는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남자친구를 데리고 갔다

그래서 이 영화를 다 보자마자 나는 애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말 좋은 영화 GV 하는데 같이 보러 가고 싶어!"

페미니스트인 날 만나기 전까지 '조선 시대 여성상'을 이상형으로 뒀던 애인에게 "너 페미니즘 왜 이렇게 모르니?"라며 '가르쳐'주고 싶지 않았다. 너의 권리를 뺏는 게 페미니즘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페미니즘을 그렇게 부르짖는 이유는 내 삶이 힘들고, 내가 나일 수가 없었던 그 이유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그 삶을 너무 아프게 그려내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우리는 왜 아직 생리에서, 일상 곳곳에서 해방되지 못했는가에 대한 지점을 분명히 던지되, 모두가 함께하기에 그래도 나름 살만하게 견디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 속에서 나름 잘 싸우고, 나 자신을 사랑하며 잘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영화 <피의 연대기> 중 한 장면

영화 <피의 연대기> 중 한 장면 ⓒ 상상마당


영화는 그 온도를 잘 지켜나간다. 억압은 묵직하게, 일상은 유쾌하게, 투쟁은 시원하게. 영화는 굳이 생리통을 이야기함으로써 우리가 얼마나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다만 내 몸속의 대자연을 어떻게 소중히 여길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이 영화의 대부분은 이뤄진다. 감독이 "아 시X, X나 귀찮아"라고 내뱉는 나레이션, 그만큼의 느낌에 우리가 빵 터질 수 있는 그 정도로 우리는 살아가고 있으니까.

연대의 영화

GV에서 오희정 PD님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그제야 애인님이 내가 왜 페미니즘을 이야기해오려고 했는지 잘 와닿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말을 만나오는 내내 했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야 애인님이 그 말을 이해했다. 앎과 실천이 있기에 여성의 삶이, 많은 약자의 삶이 조금씩 나아졌지만, 그 힘을 보지 못한 자에게 오희정PD님의 말은 와닿지 않는다.

영화는 이 말을 차분히 보여준다. 영화의 끝에 깔창으로, 수건으로 흘러나오는 피를 막아내는 여성들의 진정한 선택권을 위해 기본적인 사회적 안전망, 무상 생리대를 이야기한다. 그래서 여성의 문제에 모두가 움직일 수 있고, 현재도 함께 변화하고 있음을 마지막 시퀀스에서 희망을 담아 이야기한다. 남성들이 영화 내내 앎으로 인해 생겨난 무력감이 해소되고 실천적 변화의 가능성과 행동으로 나타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는 이유다. 영화의 끝에 남성들은 생리 해방은 여성 자신의 존중을 의미함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끝에 자신의 실천이 연결되어있음을 보게 되고, 그렇게 남녀의 이분법을 넘어서 연대한다.

영화 곳곳에서 여성 간의 연대는 더욱 구체적으로 이루어진다. 면담자를 만나면서 우연적인 만남이 이어지고, 전세계 변화의 물결을 마주하게 된다. 면 생리대. 탐폰. 생리컵을 쓴 사람들은 나의 몸을 조금 더 사랑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감독은 생리컵 사용 이후 자신의 몸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의 몸에 대한 이해가 바뀌었다고 이야기한다. 문제의 원인이 나 때문은 아니지만, 이 무지 때문에 내가 아플 수 있음을 다른 이가 아플 수 있음을 알게 한다.

단순히 이야기를 담아내는 행위로 세계 곳곳에 흩어졌던 여성의 경험이 통합되고, 그 통합된 경험들은 여성 관객들에게 치유와 해방을 선사하며 다시 연대를 만들어낸다. 그들의 발언과 감독의 탐구 속에서 관객들은 어느새 앎으로 차고 우리에게 선택지가 남는다. 영화 속에서 몇몇 인터뷰이들은 여전히 두려워하고 불편한 마음을 내비치지만 오히려 영화는 이들을 통해 두려운 우리들을 위로하는 듯하다.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름답다고.

드러내도 괜찮다. 영화 <피의 연대기>는 그 모든 경험을 드러내도 괜찮음을, 생각보다 무서운 일이 아니었음을 보여주었다. 생리용품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멘스 주머니에서 생리대를 꺼내야만 했다. 영화 첫 시퀀스에서 멘스 주머니가 필요없음을 전하는 그 순간 엄청난 해방감을 선물 받았다.

 영화 <피의 연대기> 중 한 장면

영화 <피의 연대기> 중 한 장면 ⓒ 상상마당


2017년 10월의 나. "생리대 있어?"라고 당차게 묻는다. 그 말을 들었던 직장 여자 동료와 옆에 있던 남자 동료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머쓱하게 껄껄 웃는다. 그러더니 남자동료가 내게 '너는 그런 말을 감히 크게 한다'라는 뜻을 "너 되게 당돌하다"라는 완곡한 언어로 전했다. 옆에 있던 여자동료도 당황한 눈치였다. 그 뒤로 생리대 이야기를 넣어두었다.

2017년 10월, 그맘때 생리대 발암물질 사건은 시간이 지나면 기업에게는 회복될 수 있는 차원의 문제에서 '인내'되었고(이게 인내 된다는 것이 놀랍다) 생리대 파동은 그냥 저냥 넘어갔다.

많은 이들이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는 여전히 분노했지만 필자는 해외 생리대를 이용하며 멈칫거리고 있었다. 영화를 보며 새삼 과거와 전세계의 여성들과 나의 몸이 이어졌다. 영화를 보고 해외 직구라는 장벽, 사용법을 알아봐야 한다는 귀찮음과 쓰다 남은 해외 생리대에 대한 미련 때문에 주문하지 못했던 생리컵을 마침내 주문했다.

있는 그대로 드러내보고 싶어졌다. 여성에게는 해방을, 남성에게는 자신이라는 가능성을 선물해주는 영화. 아직 몇몇 스크린에 걸려있다. 모두 용기를 내서 애인, 아빠, 친구를 데리고 극장에 가봤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 및 배급사에도 이 글을 송고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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