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등극 차원이 달랐다. 압도적인 레이스로 더 이상의 적수가 없음을 세계만방에 알리며 성대한 대관식을 치렀다.

'스켈레톤 간판' 윤성빈(24·강원도청)은 16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슬라이딩 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남자 스켈레톤 경기에서 1~4차 시기 3분20초55로 우승을 차지했다. 1차시기부터 마지막 4차시기까지 트랙 레코드를 무려 세 번이나 갈아치우며 올림픽 스켈레톤 종목 금메달을 차지한 것은 그가 처음이다. 또한 스켈레톤 종목에서 아시아 최초, 세계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이었다. 경쟁자들을 뿌리치고 일찌감치 앞서나간 윤성빈은 단 한 번도 추격을 허용하지 않으며 명실상부 세계 1인자였다.

입문 3년만에 월드컵 첫 '금'

 스켈레톤 윤성빈 선수가 15일 오전 강원도 강릉 올림픽 슬라이딩 센터에서 열린 2차 주행 경기를 마치고 경기장을 나가며 관중에게 인사하고 있다.

스켈레톤 윤성빈 선수가 15일 오전 강원도 강릉 올림픽 슬라이딩 센터에서 열린 2차 주행 경기를 마치고 경기장을 나가며 관중에게 인사하고 있다. ⓒ 이희훈


윤성빈이 스켈레톤에 입문한 것은 평창이 유치되고 1년이 지난 2012년이다. 한국 썰매의 개척자 강광배 교수의 권유로 우연히 스켈레톤 대표 선발전에 참가했고 입문한지 3개월여만에 국가대표가 됐다. 당시만 해도 윤성빈은 시속 130km을 기록하는 스켈레톤의 속도 때문에 썰매를 타는 것조차 무서워하던 고등학생이었다.

그러나 소치 동계올림픽을 거치면서 그는 스켈레톤에 푹빠지기 시작했고 성적 또한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세계에 자신의 이름을 알린 것은 2015-2016 시즌이다. 윤성빈은 스위스 생모리츠에서 열렸던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IBSF) 월드컵 7차대회에서 아시아 선수 최초로 우승을 차지했다. 이어 출전한 세계선수권 대회에서도 아시아 최초의 은메달을 거머쥐며 유럽이 제패하던 스켈레톤계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이 모든 일은 입문한지 불과 3년여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두쿠르스와 경합.... 그리고 전설이 되다

 스켈레톤 윤성빈 선수가 16일 오전 강원도 평창 올림픽 슬라이딩 센터에서 3차 주행 출발을 하고 있다.

스켈레톤 윤성빈 선수가 16일 오전 강원도 평창 올림픽 슬라이딩 센터에서 3차 주행 출발을 하고 있다. ⓒ 이희훈


2016-2017 시즌에 들어 이 종목의 절대강자 마르틴스 두쿠르스(라트비아)와 경쟁이 시작됐다. 두쿠르스는 월드컵 8시즌 연속 종합 우승, 세계랭킹 1위를 차지한 전설 같은 존재다. 그러나 올림픽만큼은 불운이 따랐다. 2010 밴쿠버와 2014 소치에서 모두 은메달에 머물렀고, 평창에서는 반드시 금메달을 따겠다는 각오로 올림픽 3수에 도전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앞에 윤성빈이 나타났다. 윤성빈은 두쿠르스와 대등한 경기력을 펼쳤지만 10년 이상 이 종목을 책임지고 있던 두쿠르스에 노련미에서 밀리며 열세를 면치 못했다. 지난해 3월 평창 테스트이벤트였던 월드컵 8차 대회에서도 윤성빈은 두쿠르스를 넘지 못하고 2위에 자리했다.

그리고 평창 올림픽이 있는 2017-2018 시즌 윤성빈은 달라졌다. 윤성빈은 시즌 첫 대회였던 1차 월드컵에서는 두쿠르스에 뒤졌지만, 2~4차까지 세 개 대회 연속으로 두쿠르스를 제압하고 금메달 릴레이를 펼쳤다. 아시아 선수가 스켈레톤 월드컵에서 세 대회 연속으로 제패한 것은 윤성빈이 최초였다. 그는 6~7차 대회에서도 두쿠르스를 제치며 월드컵 랭킹 1위, 세계 랭킹 1위로 월드컵 시리즈를 화려하게 마무리했다.

윤성빈은 한국으로 귀국한 후 비밀훈련을 하며 평창 금메달 프로젝트 마지막 단계에 돌입했다. 1월 말까지 평창에서 훈련한 후 2월에는 진천 선수촌에서 체력과 몸 관리에만 집중했다. 세계 선수들은 윤성빈이 평창에서 훈련하는 모습을 촬영할 준비를 했지만 그가 나타나지 않으면서 허탕을 쳤다. 이미 외국 선수들이 들어오기 전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였기에 윤성빈은 공식연습도 한 차례만 참가하고 곧바로 실전에 들어갔다.

자신감이 충만했던 윤성빈은 기록으로 그것을 입증해 보였다. 1차시기부터 트랙 레코드를 기록한 윤성빈은 2차시기에서도 다시 한 번 갈아치웠고, 가장 긴장감이 컸던 마지막 4차시기에서는 오히려 2차시기를 뛰어넘는 0.06초 앞서는 50초02로 여유있게 우승을 확정했다.

최적의 몸 만들기 위해 견뎠던 고통

 스켈레톤 윤성빈 선수가 16일 오전 강원도 평창 올림픽 슬라이딩 센터에서 3차 주행 출발을 하고 있다.

스켈레톤 윤성빈 선수가 16일 오전 강원도 평창 올림픽 슬라이딩 센터에서 3차 주행 출발을 하고 있다. ⓒ 이희훈


윤성빈은 현재 87kg을 유지하고 있다. 자신이 처음에 스켈레톤에 입문 했을 당시 70kg 초반대였던 것을 비교해 보면 15kg 가량 증가한 수치다. 남자 스켈레톤 허용 중량은 115kg 가량인데, 이 중 썰매 허용 무게인 33~43kg를 뺀 약 80~90kg이 선수 몸무게로 채워진다. 윤성빈은 이 구간 내에서 최적의 몸무게를 맞추기 위해 상당한 시간을 투자했다.

허벅지는 무려 63cm로 24인치에 해당해 마른 여자의 허리와 맞먹는 수치다. 이 몸을 만들기 위해 윤성빈은 하루 8끼를 먹는 폭식을 감행해야 했고 250kg 가량의 스쿼드 훈련 등을 병행하며 근육량 조절에도 힘써왔다.

썰매 사상 첫 금메달을 향한 길은 외롭고 고통스러웠다. 전용 훈련장이 없어 맨 땅과 아스팔트 위에서 훈련을 해야만 했고 최적의 몸상태를 만들기 위한 감내해야 했던 아픔은 상상을 초월했다. 10년 이상의 베테랑을 상대하는 것은 신예로서 겁 없는 도전일수도 있었지만, 세계 정상을 지켜내야 한다는 부담감도 상당했다.

이러한 모든 것을 딛고 해낸 윤성빈은 이제 완벽히 자신의 시대를 열었다. 불모지에서 아픔을 딛고 일어난 윤성빈은 유럽의 전유물이었던 스켈레톤을 아시아로 가져왔고 자신의 이름을 정 중앙에 새겨 넣으며 위대한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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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동계올림픽 스켈레톤 윤성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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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스포츠와 스포츠외교 분야를 취재하는 박영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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