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야 나무야 중앙에 서 있는 나무가 법정스님이 심은 후박나무다.

▲ 나무야 나무야 중앙에 서 있는 나무가 법정스님이 심은 후박나무다. ⓒ KBS


불일암은 <무소유>라는 책으로 유명한 법정스님이 손수 만든 암자다. 전라남도 순천 송광사에서 '무소유길'이라고 이름 붙여진 숲길을 따라 30여 분 걸으면 이를 수 있는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스님은 이곳에서 1975년부터 1992년까지 17년간 수행을 했고, 2010년 입적 후 암자 경내 후박나무 아래 안식했다.

지난 13일 오후 방송된 KBS 1TV 특집 다큐멘터리 <나무야 나무야> '순천 불일암 스승의 나무' 편은, 바로 그 후박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담아냈다. 그 나무를 심은 법정스님과 지금 그 나무를 돌보고 있는 덕조스님의 사연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됐는데, 지금 순천에 살고 있는 배우 박진희가 길잡이로 등장했다.

<나무야 나무야>는 설 연휴를 맞이하여 나무 이야기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위로와 희망, 치유와 회복의 메시지를 전한다는 의도로 기획됐다고 한다. 총 3부작으로 구성됐으며 이날 방송분은 그 첫 번째 이야기였다.

법정스님은 평소 겨울을 가장 좋아했다고 하는데, 이 프로그램은 단풍이 곱게 물든 늦가을부터 월동준비가 얼추 끝난 초겨울까지 불일암의 아름다운 시간들을 포착했다.

이날 방송에서는 아침이면 싸리비로 마당을 쓸고, 산새들의 아침식사를 챙기고, 장작을 패고,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파초가 얼어 죽지 않고 겨울을 나도록 잠자리를 만들어주고, 텃밭에서 키운 배추로 김장을 하는 등 불일암 일상풍경이 담담하게 펼쳐졌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슬로 라이프'라고 명명할 수도 있을 이런 삶의 속도란 아마도 자연이 내재하고 있는 생체 시계의 그것과 가장 가까울 듯하다.

지금 불일암을 지키고 있는 건 덕조스님이다. 그의 은사스님(스승)인 법정스님 유언에 따라 이곳을 지키고 있다. 이날 방송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여전히 그 스승을 사모하고 있는 제자 덕조스님의 한결같은 마음가짐과 그 마음에서 우러나온 행동거지였다.

방송 내용에 따르면, 덕조스님은 아침마다 창문을 열고 후박나무 안부를 살핀다고 한다. 그 나무 보기를 마치 은사스님 보듯 하고 있는 것이다. 하루 두 번 부처님과 돌아간 스승을 위해 예불을 올리는 일도 잊지 않는다. 또 불일암 곳곳이 그에겐 스승의 가르침이 새겨진 도량인지라, 그 뜻과 흔적을 온전히 보전하는 데도 성심을 다하고 있다.

나무야 나무야 암자 건물에 걸려 있는 법정스님 사진.

▲ 나무야 나무야 암자 건물에 걸려 있는 법정스님 사진. ⓒ KBS


이런 모습을 보면서 요즘 같은 시대엔 그야말로 보기 드문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긴 '사모(思慕)'라는 말 자체가 거의 쓰이지 않는 시대다. 그런데 스승을 그리워하고 그 뜻을 기리는 데 온 정성을 다하는 덕조스님의 모습을 접하고 보니 사모라는 두 글자 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살아생전 법정스님은 나무라는 존재를 사모했다고 한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아낌없이 주는 그들처럼 살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다. 이날 방송분 역시 그런 나무의 속성 그리고 이를 닮은 은사스님의 유지를 이어받아 실천하고 있는 덕조스님 이야기를 담아내는 데 집중했다.

이를테면 덕조스님이 마당을 쓸어 모은 낙엽은 해우소로 간다. 그곳에서 낙엽은 거름이 되고 다시 텃밭 흙으로 돌아간다. 죽은 나무로 만든 장작은 또 어떤가. 연료로 쓰는 장작이 없다면 덕조스님은 이 절집에서 생활이 거의 불가능해진다. 그런가 하면 생전 법정스님은 못 생긴 참나무 장작을 골라 불편하고 허름한 의자를 직접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불일암 명물 중 하나인 40년 된 '빠삐용 의자'다.

이날 방송분에서 길잡이 역할을 한 박진희는 말미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나무가 참 해주는 일이 많네요. 엄마 같아요. 내 안의 얘기를 듣게 되는 것 같아서 그게 참 좋았던 것 같아요."

필자 역시 <나무야 나무야> '순천 불일암 스승의 나무' 편을 보면서, 의식 속에 남아 있던 사모라는 말을 새삼 되돌아보게 됐다. 스스로 내면을 들여다보며 주변 인물 그리고 주변 환경 가운데 감히 사모한다고 말할 수 있는 대상이 있는지 살펴봤단 얘기다.

그 결과를 말하자면, 사모 비슷한 것이 감사하는 마음이라고 볼 때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뜻을 우러르고 따른다는 마음가짐이 사모라고 하면, 필자에겐 그런 것이 없었다. 이는 물론 사모할 만한 대상이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누구든 어떤 것이 됐든 기꺼이 사모할 만한 정성과 의지가 부족했다는 의미다.

이처럼 사모한다는 것은 그 대상의 어떤 속성을 기꺼이 따르고 그 뜻을 이어받아 살려는 노력일 것이다. 마치 나무를 닮고 싶었던 법정스님의 삶이 제자인 덕조스님에게 이어지고, 다시 그것이 그의 제자에게 이어지고 있듯 말이다.

이는 결국 불가에서 말하는, 우주만물이 그물처럼 연결돼 있고 서로 돌보는 존재라는 '연기(緣起)'라는 세계관과도 이어진다. 이날 방송분에 나온, "매일 같은 곳에서 매일 다른 하루를 만난다"는 말 역시, 일상에서 만나는 사소한 것들에 감사하면서 삶을 영위하라는 뜻으로 사용됐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사모한다는 마음가짐은 어쩌면 그리 거창한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다만 매일매일 '나'를 둘러싼 환경에서 감사할 만한 것들을 찾고 그 마음을 유지하는 것, 어쩌면 그게 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얻은 깨달음부터 필자가 받은 새해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한 마음을 갖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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