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아래 UCL)의 역사는 깊다. 1955년 모습을 드러낸 유러피언컵이 시초다. 1992년 UCL로 재편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유러피언컵 시절만 해도 대회 2연패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1955-1956시즌부터 1959-1960시즌까지 무려 5연패를 달성한 레알 마드리드(스페인)를 비롯해 아약스(네덜란드)와 바이에른 뮌헨(독일), 리버풀(잉글랜드), AC 밀란(이탈리아) 등이 2연패에 성공했다.

그러나 UCL로 재편된 이래 '꿈의 무대' 2연패에 성공한 팀은 등장하지 않았다. 1988-1989, 1989-1990시즌 2연패를 달성한 AC 밀란이 마지막이었다.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아진 경기 수, 자본력을 앞세운 강호들의 등장, 세계 축구의 평준화, 상대에 대한 정보량의 증가 등에 따른 결과였다.

레알이 위대한 이유다. 레알은 2015-2016, 2016-2017시즌 UCL 2연패에 성공했다. 아르센 벵거의 유일한 업적으로 손꼽히는 2003-2004시즌 아스널, 리오넬 메시와 사비 에르난데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등을 앞세워 세계 축구를 호령했던 바르셀로나, 아르연 로번과 프랑크 리베리, 필립 람 등을 앞세워 꿈의 무대를 제패한 뮌헨 등이 이루지 못했던 것을 해냈다.

클래스 증명한 PSG전

올 시즌, 레알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시즌 절반이 흘렀지만 리그 4위다. 무패를 질주하고 있는 선두 바르셀로나와 승점 차는 무려 17점에 달한다. 사실상 리그 우승은 물 건너갔다. UCL 조별리그에서도 '신흥 강호' 토트넘 홋스퍼에 발목이 잡히며 2위로 밀렸다. 최근에는 UCL 재편 후 처음으로 2연패를 달성한 지네딘 지단 감독의 경질설까지 불거졌다.

그러나 레알이다. 레알이 일시적인 부진에 빠진다고 해서 평범한 팀으로 전락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상황을 막론하고 UCL과 같은 큰 무대에서 확실히 강하다. 반드시 승리가 필요한 경기에서 이기는 법을 알고 있다. 막대한 자본으로 살 수 없는 경험치도 높다. 

레알이 15일 오전 4시 45분(한국시각) 스페인 마드리드에 위치한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열린 2017-2018시즌 UCL 16강 1차전 파리 생제르맹(아래 PSG)과 맞대결에서 3-1로 역전승을 거뒀다. 유일무이한 UCL 2연패 팀의 자존심을 지켰다.

원정팀 PSG는 굉장히 잘 싸웠다. 뮌헨을 따돌리고 조 1위로 16강 진출에 성공한 것이 우연이 아님을 입증했다. 특히, 네이마르는 굉장히 위협적이었다. 후방에서 볼을 잡고 빠르게 드리블해 상대 진영으로 진입했고, 화려한 개인기로 수비를 흔들었다. 이날 네이마르의 드리블 돌파 성공 횟수는 무려 13회였다. 개인이 팀 공격 전술이자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심지어 선제골은 PSG가 넣었다. 전반 32분, 다니엘 알베스가 수비수 2명을 따돌린 뒤 낮고 빠른 크로스를 올렸고, 골문 앞으로 달려든 네이마르가 볼을 뒤로 흘렸다. 이를 아드리앙 라비오가 슈팅으로 연결해 골망을 갈랐다.

하지만 레알은 흔들리지 않았다. 자신들의 실력과 경험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루카 모드리치와 토니 크로스가 중원 장악력을 높였고, 점유율을 늘렸다. 포지션은 좌측 풀백이지만 공격수인지 수비수인지 분간이 안 되는 마르셀로의 존재감도 커졌다. 순식간에 공격에 가담해 수비를 휘젓고, 날카로운 크로스로 슈팅 기회를 만들었다. 수비수 2~3명을 손쉽게 따돌리는 드리블도 여전했다.

레알은 전반 44분 동점골을 뽑았다. 크로스가 박스 안쪽으로 치고 들어오는 과정에서 지오바니 로 셀소의 반칙을 얻어냈다. 페널티킥이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키커로 나섰고, 인간이 막을 수 없는 속도의 슈팅으로 골망을 갈랐다.

레알은 무리하지 않았다. PSG가 볼 점유를 높이고, 날카로운 공격 장면을 연출해도 평정심을 유지했다. 차근차근 공격을 전개했고, 상대가 틈을 보일 순간을 기다렸다.

승부수 띄운 레알

후반 33분, 지단 감독은 교체 카드 2장을 한꺼번에 사용했다. 카세미루와 이스코를 빼고, 루카스 바스케스와 마르코 아센시오를 투입했다. 신의 한 수였다.

후반 37분, 좌측면의 아센시오가 빠르게 뒷공간을 파고든 뒤 낮고 빠른 크로스를 올렸다. 집중력이 떨어진 PSG 수비는 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 아크서클 부근에 있던 모드리치가 볼을 잡았고, 다시 아센시오에게 패스를 연결했다. 아센시오는 재차 크로스를 올렸고 알퐁스 아레올라 골키퍼 손을 거친 볼이 호날두의 무릎에 맞고 골문 안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레알은 PSG가 흔들리는 틈을 놓치지 않았다. 곧바로 추가골을 터뜨렸다. 후반 40분, 아센시오와 마르셀로가 왼쪽 측면에서 간결한 패스를 주고받으며 뒷공간을 허물었다. 아센시오가 크로스를 올렸고, 순식간에 박스 안쪽으로 진입한 마르셀로가 논스톱 슈팅으로 연결해 골망을 갈랐다. 레알이 왜 유럽 최고의 팀인지를 보여준 결정적인 장면이었다.

'3-1', 레알의 완벽한 승리였다. 멀티골을 기록한 호날두, 경기 초반 부상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활약을 보인 마르셀로, 중원을 지배한 모드리치와 크로스 등 누구 하나 빼놓을 수 없을 만큼 대단했다. 네이마르만 돋보인 PSG와는 확연하게 달랐다. 리그에선 부진하지만, 레알은 'UCL 3연패'에 도전하는 팀이었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레알 마드리드VS파리 생제르맹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