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창작의 산물이다. 이 말은 자기 이야기를 회고하는 글이 아닌 한, '문학은 인류 공동의 창작품'이란 말로 바뀌어야 한다. 그만큼, 개인에 의한 순수 창작이라 볼 수 없는 문학작품이 의외로 많다. '아무개 지음'이라고 저작권이 표시된 작품들도 마찬가지다. 기존에 존재하는 하나 혹은 둘 이상의 이야기를 자기 시대에 맞게 재구성한 경우가 허다하다.

14일 개봉된 영화 <흥부>도 그렇다. 이 영화는 조선 후기 <흥부전>을 21세기 대한민국에 맞게 재구성했다. 이 영화에서는 원래의 <흥부전>에 없는 '나라는 백성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표출됐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헌법 제1조 제2항을 실질화시키려 노력하는 21세기 대한민국 국민들의 정서에 부응하는 측면이라 볼 수 있다.  

 영화 <흥부>.

영화 <흥부>. ⓒ 영화사궁·발렌타인필름


영화와 설화의 다른 점

동요 <흥부와 놀부>의 '맘씨 고운 흥부는 제비 다리 고쳐 주고/ 박씨 하나 얻어서 울 밑에 심었더니'에 묘사된 흥부의 이미지도 영화 <흥부>에선 찾아보기 힘들었다. 영화 속의 흥부는 '19금 소설' 작가였다가 사회비판적 작가로 바뀐 인물이다. 민란의 시대인 19세기에 서민대중을 위해 글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의지를 실천하는 인물이다.

소설 <흥부전>에서는 놀부가 50% 정도의 비중을 갖고 있지만, 이 영화에선 비중이 매우 낮다. 영화 속의 놀부는 '우정 출연자'다. 놀부 역의 배우 진구가 우정 출연으로 등장한다.

영화 속의 놀부는 민란을 이끄는 반체제 활동가다. 미행을 의심하며 다녀야 할 정도다. '심술궂은 놀부는 제비 다리 다쳐 놓고/ 박씨 하나 얻어서 울 밑에 심었더니'에 묘사된 그 놀부가 절대 아니다. 영화 속의 놀부는 흥부 이상으로 괜찮은 사람이다. 흥부보다 훨씬 더, 사회부조리를 뜯어고치려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 

이렇게 영화 <흥부>가 소설 <흥부전>을 우리 시대 분위기에 맞게 각색한 작품이듯이, 소설 <흥부전> 역시 그 이전 이야기들을 조선 후기 상황에 맞게 재구성한 작품이다. 영화 <흥부>가 순수 창작물이 아니듯이, 소설 <흥부전>도 그랬던 것이다. 그 이전 시대와 그 시대의 공동 창작물이었던 것이다.

<흥부전>의 기원과 관련해서는, 여러 민담들이 판소리로 집약되고 이것이 소설로 발전했다는 주장이 일반적이다. 기존 설화들을 종합해서 판소리 가사를 만들고, 다시 이를 토대로 소설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연필로 그린 판소리 공연팀 풍경.

연필로 그린 판소리 공연팀 풍경. ⓒ 김종성


<흥부전>의 소재가 됐다고 알려진 설화는 한둘이 아니다. 설화의 국적도 한둘이 아니다. 한국 전통의 설화뿐 아니라 인도·몽골·일본 설화까지도 <흥부전>에 유입됐다고 알려져 있다. 

일례로, 몽골의 '박 타는 처녀' 설화를 들 수 있다. 순수하게 몽골에서 생긴 설화라고도 하고, 13세기 후반에 몽골로 이주한 고려 여성들에 의해 변형된 설화라고도 하는 '박 타는 처녀'에는 착한 처녀와 못된 처녀가 등장한다.

착한 처녀는 다리가 부러져 자기 집에 떨어진 제비를 정성껏 치료해준다. 그러자 제비는 그 보답으로 이듬해 봄에 박씨를 떨어뜨린다. 박씨는 자라 박이 된다. 처녀가 박을 타자 금은보화가 쏟아져 나와 처녀를 부자로 만들어준다.

소문을 들은 못된 처녀는 멀쩡한 제비를 잡아다 일부러 다리를 부러뜨린 뒤 치료해준다. 그 보복으로 제비는 이듬해 봄에 박씨를 떨어뜨린다. 박씨가 자라 박이 되자, 못된 처녀도 박을 탄다. 그랬더니 독사가 쏟아져 나오고, 못된 처녀는 뱀들의 먹이가 된다.

방귀 장사한 흥부

구조가 유사한 설화들이 한국에도 있었다. 민속학 회장 및 한국신화학회 부회장을 지낸 임동권 전 중앙대 교수의 <한국의 민담>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부모 유산을 독차지한 형과 나무장사로 연명하는 동생에 관한 설화다. 

하루는 동생이 산에 갔다가 꿀통을 발견했다. 동생이 꿀을 실컷 먹자, 그때부터 방귀가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나왔다. 그런데 방귀만 뀌면 주변의 음식이 꿀처럼 달게 바뀌었다. <한국의 민담>의 '단 방귀 장수' 편에 따르면, 이어지는 내용은 이렇다. 

"이 소문이 차차 이웃으로 퍼져서, (동생은) 동네를 다니며 방귀장사를 하기로 하였다. 나중에는 장터에 가서도 팔고, 어떤 때는 잔칫집이나 떡집·음식점에서 떡과 음식을 달게 하기 위해 사방에서 동생을 불러갔다."

동생이 방귀 장사로 자기보다 더 부유해진 사실을 알게 된 욕심 많은 형은 행동에 착수한다. 놀부가 그랬던 것처럼 그도 동생을 모방한다. 단시간에 성과를 보겠다는 일념에 빠진 나머지, 그는 각지에서 대규모로 꿀을 공수해 자기 입에 들이부었다. 부족하다 느꼈는지 생콩까지 마구 먹어댔다. 어떻게 해서든 뀌겠다는 일념이었다. 다음 대목은 이렇다.

"하루는 형이 자기도 동생처럼 음식을 달게 할 수 있다고 선전하며 장터에 나갔다가, 음식을 달게 해달라는 어떤 잔칫집 주인의 부탁을 받고 잔칫집으로 갔다. 형은 자신만만하게 떡 반죽 위에다 방귀를 뀌려고 힘을 주니, 쏴하고 똥물이 쏟아져 나와 사람들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그래서 몽둥이로 천치 숙맥이 되도록 때려서 내쫓았다고 한다."

이 대목은 <흥부전>과 유사한 대목하다. 놀부가 탄 박에서는 여러 유형의 사람들이 나와 돈을 빼앗아간다. 시주승이 나와 돈 500량을 받아 가고 왈자패 만여 명이 나와 노잣돈 5000량을 받아가는 식이었다. 그런 일들이 이어지다가 열세 번째 박에서는 똥물이 쏟아져 나와 집안을 가득 채웠다. '단 방귀 장수' 편의 욕심 많은 형은 자기 몸에서 그게 나오는 바람에 몽둥이찜질을 당하고 낭패를 보게 된다.

 <흥부전>.

<흥부전>. ⓒ 장서각 디지털 아카이브


<흥부전>의 주제 중 하나는 권선징악이다. 옛날 동아시아에서 권선징악을 가장 많이 가르친 이들은 불교 스님들이다. 유교에서도 선행을 강조했지만 불교만큼은 아니었다. 승려들은 불경에 나오는 권선징악 스토리를 한국 등 동아시아에 전파했다. 그들이 전파한 스토리의 출처 중에 <경률이상>이나 <잡비유경> 등이 있다. 부처의 가르침을 담은 이 경전들에도 <흥부전>과 유사한 설화가 담겨 있다.

<경률이상>과 <잡비유경>에 착한 사람과 못된 사람이 등장한다. 착한 사람은 다리 저는 도인이 자기 집에 찾아오자 그를 위해 1년간 공양을 한다. 그런 다음에 이별을 했고, 그 뒤에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

"도인이 간 뒤에 주인이 탁상을 발견하고, 거기서 금은보화를 얻어 부자가 되었다."

흥부는 다리 다친 제비를 고쳐주고 복을 받는다. 그에 비해, 이 불교 설화 속의 주인공은 다리 저는 수행자를 도와주고 복을 받는다. <흥부전>과의 유사성이 발견된다.

이 불교 설화 속의 못된 사람도 놀부처럼 벌을 받는다. 그는 일부러 다리 저는 도인을 수소문했다. 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아무 도인이나 잡아서 다리를 부러뜨린 뒤 공양해주고 강제로 내쫓았다. 착한 사람이 했던 일을 기계적으로 모방한 것이다. 도인이 떠난 뒤에 나쁜 사람 집에서도 탁상이 발견됐다. 하지만, 그 탁상에서는 독사와 벌레들이 쏟아져 나왔다.

<흥부전>과 유사한 설화는 꽤 많다. 부분적으로 유사한 설화도 한둘이 아니다. 이것은 <흥부전>이 어느 한 작가의 순수 창작물이 아니며, 그때까지 존재했던 여러 나라의 설화를 수용한 국제적인 공동 창작물임을 보여준다.

조선 후기에는 5일장 같은 장터에서 판소리 공연이 자주 열렸다. 여유 있는 상인들은 공연팀을 초청해 판소리 무대를 열고, 이를 활용해 행인들의 관심을 끌었다. 판소리 작가들이 이런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광고주'와 소비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흥부전>을 판소리에 올린 최초의 작가도 조선에 유입된 각국의 설화를 연구하고 분석했을지 모른다. 그런 설화들을 재조합해 상인과 대중의 기호에 맞는 <흥부전>을 만드는 데 성공했기에, <흥부전>이 판소리 작품으로도 살아남고 나아가 소설 작품으로도 살아남았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각국 설화를 망라하는 국제적 공동 창작물 <흥부전>이 생겨났을 것이다.

흥부 흥부전 박 타는 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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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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