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 애호가를 지칭하는 '오디오파일(Audiophile)'이란 용어가 있다.

좀 더 좋은 음질을 즐기기 위해 앰프도 파워앰프+프리앰프 조합으로 구성하고 스피커와 CD플레이어 등 각종 장비의 바꿈질(?)에도 열과 성을 다하는 이들을 종종 주변에서 접할 수 있다. 빈번한 기기 교체는 엄두도 못낸 본인과 달리, 내 부친 역시 생전에 이런 생활을 즐겨 하셨던 분 중 한명이었다.

이런 '오디오파일' 성향을 지닌 이들이라면 음반 선택도 상당히 까다롭게 하는 법. 가급적 녹음 상태가 양호하다던지 쾌적한 음질을 보장해줄 수 있는 음반을 고르기 마련이다. 동일한 음반이라도 몇년도에 리마스터링을 했는지, 초판본인지 등 출시 시기 및 상태를 따지는 것도 그 중 하나다.

하지만 스마트폰 + 모바일 시대의 일반적인 음악팬들이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행동하기란 여간 힘겨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월 몇천원 수준의 정액 요금제 스트리밍 서비스가 보편화된 요즘엔 더욱 그렇다.

그렇다고 해서 적은 비용으로 좋은 소리를 접하는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이른바 가성비가 괜찮다는 저렴한 이어폰 + 녹음 및 음질이 보장된 음반/음원을 듣는 것만으로도 소소한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설 연휴를 맞아 유명 오디오 마니아 동호회, 관련 서적 등에서 자주 언급되는 이른바 '소리 때깔' 좋은 음반(음원)들과 여기에 어울릴 법한 가격 저렴한 이어폰들을 소개해본다. (기자주: 여기 언급하는 음반들은 모두 주요 음원 사이트에서 이용 가능하다. 추천 이어폰들은 모두 내가 실제로 구입해본 1~5만원대 수준의 기기들이며 일체의 업체 후원이 전혀 없음을 먼저 밝힌다)

1. 팝 혹은 록 (전천후 용도)


장르적 특성상 가벼운 분위기의 팝, 록, R&B 등이 섞인 음반들이 많다. 이럴 경우 다양한 장르를 소화할 수 있는 전천후 성향의 기기가 가장 잘 어울리지 않을까?

 스틸리 댄의 < Aja >, 토토의 < TOTO IV >. 각각 그래미 베스트 엔지니어링 음반 상을 수상할 만큼 빼어난 녹음을 자랑하는 작품들이다.

스틸리 댄의 < Aja >, 토토의 < TOTO IV >. 각각 그래미 베스트 엔지니어링 음반 상을 수상할 만큼 빼어난 녹음을 자랑하는 작품들이다. ⓒ 유니버설뮤직, 소니뮤직코리아


스틸리 댄 < Aja >

1970년대 이른바 크로스오버 록 사운드로 한 획을 그은 도널드 페이건(보컬 및 건반), 월터 베커(기타 및 베이스)로 구성된 2인조 그룹 스틸리 댄(Steely Dan)의 대표작이다. 공연 대신 음반 활동에만 전념하면서 스튜디오에서의 완벽한 소리를 담기 위해 그 무렵 유명 세션맨을 총동원하고 작은 분량의 녹음도 수십차례 진행할 만큼 완벽을 추구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런 덕분에 이 팀의 주요 작품들은 빼어난 음악성 못잖게 양질의 음질로도 유명세를 얻고 있다. 특히 1977년 발표된 < Aja >는 이듬해 그래미 어워드 베스트 엔지니어링 음반 부문을 수상할 만큼 미국 현지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Josie', 'Peg' 등 출렁이는 펑키 사운드를 만드는데 일조한 래리 칼튼, 리 릿나워 (이상 기타) 등 전설적인 연주인들의 명연은 덤이다.

토토 < Toto IV >   


토토(Toto)는 국내의 올드 팝 음악 팬들에게 친숙한 이름 중 하나다. 토토 하면 지금도 언급되는 명곡 'Rosanna', 'Africa' 등의 명곡이 대부분 수록된게 이들의 통산 4집 < Toto IV > 이다. 이듬해 열린 그래미 어워드에서 '올해의 음반', '올해의 레코드' 등 본상 2개 부문 포함 총 6개의 상을 휩쓸면서 진가를 인정 받았다. 이 음반의 긴가는 멀티 트랙 녹음의 신기원을 세웠다는 점에 있다.

1982년만 해도 24트랙 녹음이 최대치였던 상황에서 총 3대의 장비를 동시에 가동, 요즘 녹음 작업에 못잖은 60여개 채널에 소리를 담아내는 집념에 가까운 작업을 단행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역시 그래미 ​베스트 엔지니어링 음반 부문 역시 이 음반의 차지였다. (공동 엔지니어 중 한명은 앞서 소개한 스틸래 댄의 < Aja >를 담당했던 알 슈미트다)

[추천 이어폰] 젠하이저 CX2.00, 삼성 EG920, 애플 EarPod


2000년대만 하더라도 MX 400 등 젠하이저의 저가 제품군은 가성비로 유명세를 얻었던 이어폰 중 하나였다. 2010년 이후 스마트폰 시대를 맞아 소니, 닥터드레 등 다양한 브랜드의 총공세에 밀려 지금은 예전에 비해 국내 중저가형 시장에선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CX 시리즈 역시 괜찮은 성능 대비 국내에서의 인지도는 무척 낮은 편이다.

과거 중저음 위주 성향으로 인기를 얻은데 반해 CX2.00의 경우, 비교적 고른 음역대에서 무난한 소리를 내주는 편이다. 개인적으론 워크맨 혹은 엑스피리아 등 소니 제품군과 사용시 상당히 만족감을 느끼게 해줬다. '클리어 오디오' 같은 소니 특유의 음장 효과를 전혀 적용하지 않아도 각 악기의 소리를 비교적 잘 포착해준다.

각종 스마트폰 구입시 포함되는 번들 이어폰 중에선 상성 갤럭시 S6 제품군에 포함되었고 낱개 포장으로도 판매된 삼성 EG920, 애플 아이폰의 필수품 이어팟(EarPods) 같은 제품군도 비교적 무난한 성능을 내주는 편이다.

2. 포크 + 어쿠스틱 연주

통기타+피아노 등이 중심이 되는 포크, 뉴에이지, 기타 어쿠스틱 팝 성향의 음반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제임스 테일러의 < Greatest Hits Vol.2 > , 조지 윈스턴의 < Linus & Lucy : The Songs Of Vince Guradi >

제임스 테일러의 < Greatest Hits Vol.2 > , 조지 윈스턴의 < Linus & Lucy : The Songs Of Vince Guradi > ⓒ 소니뮤직코리아


제임스 테일러 < Greatest Hits Vol.2 >

50년 넘게 음악 활동을 이어온 원로 포크 가수 제임스 테일러는 가장 미국적인 음악을 들려줬음에도 불구하고 과거 국내 음악팬들에게도 'You've Got A Friend', 'Handy Man' 등의 곡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바 있다. 지난 2000년 발매된 그의 통산 두번째 베스트 음반 < Greatest Hits Vol.2 >는 지난 1977년부터 1997년까지 발표했던 주요 음반의 수록곡들을 직접 선곡한 작품이다.

이른바 핑거스타일 기타리스트들이 선보이는 화려한 기교와는 거리가 먼 담백한 연주만으로도 해외 주요 음악전문지가 선정한 명 기타리스트로 자주 언급될 만큼 제임스 테일러의 곡에선 어쿠스틱 기타가 큰 역할을 담당한다. 올드팝 리메이크 'handy Man'과 'Up On the Roof', 일렉트릭 피아노와 J.D 사우더의 정감어린 백업 보컬이 어우러진 'Her Town Too', 스티비 원더가 하모니카 연주로 힘을 보탠 'Little More Time With You', 요요 마의 첼로 연주로 중후함을 더한 'Enough To Be Own Your Way' 등 모던 포크의 진수를 단 한장에 집대성했다.

조지 윈스턴 < Linus & Lucy : The Songs Of Vince Guradi >


이른바 뉴에이지라는 장르를 우리에게 널리 알린 조지 윈스턴(George Winston)은 1980년대말~90년대 초반 아마추어 피아니스트라면 누구나 연주하다시피 했던 명반 < December > 수록곡 'Thanksgiving'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여타의 컬래버레이션 대신 오로지 피아노 솔로 연주에만 집중했던 그는 포크, 재즈, 블루스에 기반을 둔 서정적인 연주로 자신의 색깔을 분명히 가져갔는데 선배 피아니스트 빈스 과릴디(애니메이션 < 찰리 브라운 > 음악 담당)의 곡을 커버한 < Linus & Lucy : The Songs Of Vince Guradi > 역시 마찬가지였다.

'Linus and Lucy', 'Skating', 'Cast Your Fate To The Wind' 등 대중들의 귀에 익숙한 과랄디의 명곡들을 음반 표지에 어울리듯 도회적인 분위기를 담아 재해석했다. 한편 그의 초기 대표작 < Decmeber >, <Autumn > 등은 몇해전 자신의 레이블 설립으로 인한 판권 종료로 인해 국내에선 음원 서비스가 아쉽게도 중단된 상태이다. 이 작품을 정식으로 감상하려면 중고 CD를 구하거나 해외구매 등의 방법을 이용해야 하는 실정이다.

[추천 이어폰] 원모어 피스톤 클래식 E1003K


원모어 디자인은 이른바 '대륙의 실수'라고 불리운 중국 샤오미의 저가형 이어폰을 제작한 업체다. 현재는 독자 브랜드로 직접 제품을 전세계로 공급하고 있다. E1003K은 몇해전 '샤오미 피스톤2'라는 이름으로 출시된 제품을 개선해 새롭게 전세계로 공급하기 시작한 이어폰이다. 일반적으로 팝-록 음악에 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어쿠스틱 기타, 피아노와의 조합에서도 예상 밖의 소리를 들려주는 편이다.

3. 퓨전 재즈


다양한 일렉트릭 악기 활용 + 팝, 록 등과의 장르 혼합이 이뤄진 대중적인 재즈 음반

 그로버 워싱턴 주니어의 대표 음반 < Winelight >

그로버 워싱턴 주니어의 대표 음반 < Winelight > ⓒ 워너뮤직코리아


그로버 워싱턴 주니어 < Winelight > (1980년)

케니 G의 등장 이전 색소폰 연주계의 슈퍼스타로 명성을 얻었던 인물이 그로버 워싱턴 주니어(Grover Washington Jr.) 였다. 1970년대 미국 흑인 음악의 산실인 모타운을 통해 데뷔했을때만해도 R&B의 영향이 물씬 담은 음악을 들려줬지만 일렉트라 레이블로 이적한 1980년대부턴 팝적인 요소를 녹인 대중성 강한 소리로 변신을 도모했다.

빌 위더스의 매력적인 중음 보컬이 돋보인 명곡 'Just The Two Of Us'는 지금도 많은 후배 음악인들이 연주할 만큼 한 시대를 풍미한 명곡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밖에 스티브 갯(드럼), 마커스 밀러(베이스), 랄프 맥도날드(퍼커션)등의 안정감 있는 연주로 들려주는 'Take Me There', 'In The Name Of Love' 등에선 주요 악기들 소리가 균형감 있게 자리를 잡고 들려주고 있다.

[추천 이어폰] LG 쿼드비트4

지난해 소리소문 없이 출시된 제품으로 지난 몇년간 '가성비 최고'로 인기를 얻은 기존 LG 쿼드비트 시리즈와 달리, 스마트폰에 번들로 포함되지 않고 단품으로만 발매가 되고 있다. 지난 2015년 출시된 쿼드비트3 처럼 패브릭 재질의 선을 사용하여 단선 가능성을 낮췄고 이전 쿼드비트 제품들과 달리 제법 커진 울림통을 지녀 공간감 확보에도 용이한 편이다.

4. 일렉트로닉


이름 그대로 각종 전자 사운드로 구상된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을 말한다. 일반적인 EDM(Electronic Dance Music)부터 실험적 성향의 고전 전자 음악, 기타 트립 합, 앰비언트, 일렉트로니카 등 범위는 무척 다양하다.

 영국 출신의 2인조 트립합 그룹 매시브 어택의 대표작 < Mezzanine >

영국 출신의 2인조 트립합 그룹 매시브 어택의 대표작 < Mezzanine > ⓒ 유니버설뮤직코리아


매시브 어택 (Massive Attack) < Mezzanine > (1998년)

30년에 가까운 활동 기간에도 불구하고 이들 영국 출신 2인조 그룹이 발표한 정규 음반은 고작 5장에 불과하다. 특히 2000년 이후엔 단 2장에 머물어 아쉬움을 자아내고 있지만 매시브 어택이 남긴 작품들은 일렉트로닉 계열로는 보기 드물게 국내외 주요 녹음 엔지니어들로 부터 호평을 받았고 특히 스피커의 중저음역대 소리를 테스트하기 위한, 이른바 레퍼런스 음반으로 널리 애용되고 있다.

지난 1998년 발표된 3집 < Mezzanine >은 매시브 어택의 음반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으로 그해 영국 싱글 차트 1위에 오른 'Teardrop'을 비롯해서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다양한 음악적 실험의 결정체로 평가되고 있다.  출렁이는 베이스와 단순하게 반복적인 울림을내는 드럼을 기반으로 이른바 '세기말'의 분위기도 물씬 뿜어낸다.

[추천 이어폰] 코원 EM1


2000년대 아이리버와 함께 국내 MP3 플레이어 업계를 양분했던 코원은 역시 스마트폰 시대를 맞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중국 회사로 지분이 넘어간 현재는 고음질 전용 플레이어 출시 등으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원래 중저음으로 유명했던 MP3 플레이어 특성이 코원에서 나오는 이어폰에도 비슷하세 적용되는 편이다.

EM1은 이른바 '칼국수 선'이라고 통용되기도 하는 플랫 형태의 선 구성에 1자형 플러그인 탓에 시장에서 크게 인기를 얻지 못했지만 인지도에 비해 제품의 능력치는 제법 기대 이상이다. 저음 성향의 묵직한 음을 좋아한다면 플레이어의 이퀄라이저 등 설정값을 조절할 경우 더욱 만족스러운 소리를 접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필자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jazzkid 에도 수록되는 글 입니다.
설날 고음질 이어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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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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