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과 골키퍼, 골잡이까지 한국 축구팬들에게 매우 익숙한 외국 팀이 서귀포에 찾아왔다. 바로 윤정환 감독 지휘 아래 김진현 골키퍼, 골잡이 양동현이 뛰고 있는 일본 J리그 세레소 오사카가 그 팀이다. 인천 유나이티드 FC에서 2016년까지 2년 동안 뛰면서 크로아티아 철옹성이라는 별명을 얻은 센터백 마테이 요니치까지 포함하면 분명 보기 드문 팀인 셈이다.

이것도 모자라 최근에는 FC 서울의 멀티 플레이어 오스마르(스페인)까지 임대로 데려갔다. 한 마디로 K리그 팀 성향을 가장 잘 아는 J리그 팀이라고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상대 팀의 색깔을 잘 알고 있기에 승부의 갈림길이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후반전 추가 시간에 어이없는 실수가 골문 바로 앞에서 벌어질 줄은 아무도 몰랐다. 참 알다가도 모를 것이 축구다.

윤정환 감독이 이끌고 있는 세레소 오사카(일본)가 14일 오후 7시 45분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2018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G조 제주 유나이티드(한국)와의 어웨이 경기에서 후반전 추가 시간에 극장골을 터뜨리며 1-0으로 이겼다.

두 감독과 부천의 추억

그라운드에서 직접 부딪치는 선수들도 그렇지만 이 경기를 통해 양팀 감독의 묘한 인연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2017시즌에 다시 1부리그(J1리그)로 올라온 세레소 오사카를 놀라운 팀으로 만든 윤정환 감독이 올해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 제주 유나이티드를 만나는 것부터 기구한 운명이라고 하겠다.

윤정환 감독과 제주 유나이티드의 조성환 감독이 선수 시절 이름을 날렸던 부천 SK가 연고지를 제주로 옮긴 뒤 생긴 팀이 바로 제주 유나이티드이기 때문이다. 2부리그까지 미끄러졌던 팀을 이끌면서 아시아 챔피언스리그까지 올려놓자마자 자신의 선수 시절 친정 팀을 만난 것이니 윤정환 감독 입장에선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비록 그곳이 조성환 감독과 함께 뛰던 연고지 부천이 아니기 때문에 빛바랜 추억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래서 그런지 전반전 내내 선수들끼리 과도한 신경전이 눈에 거슬렸다. 제주 유나이티드의 미드필더 이찬동과 세레소 오사카의 기요타케 히로시가 감정이 실렸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거칠게 충돌했다.

전반전 공 점유율 면에서도 홈팀 제주 유나이티드는 어웨이 팀 세레소 오사카에게 30:70 비율로 밀릴 정도였다. 세레소 오사카가 최근 J1리그 팀 중에서 가장 잘 나가는 팀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흐름이었다. 지난 해 J리그컵 우승에 이어 새해 첫 날 벌어진 일왕배(전일본축구선수권대회) 우승, 지난 해 J1리그 우승 팀 가와사키 후론타레와 붙은 슈퍼 컵 우승에 이르기까지 구단 역사상 최고의 시즌을 시작하고 있는 셈이다.

윤정환 감독, 설날 생일 선물 한꺼번에

양 팀은 후반전 추가 시간이 표시될 때까지 골을 터뜨리지 못했다. 66분에 세레소 오사카의 결정적인 득점 기회가 있었지만 제주 유나이티드 골키퍼 이창근의 슈퍼 세이브를 쳐다보면서 바로 앞에서 오른발 강슛을 터뜨린 기요타케 히로시가 머리를 감싸 쥘 수밖에 없었다.

조성환 감독이 52분에 브라질 출신 새 골잡이 찌아구 대신 진성욱을 들여보내자 윤정환 감독도 76분에 가키타니 요이치로 대신 포항 스틸러스에서 이번에 건너간 골잡이 양동현을 들여보내 맞불을 놓았다.

진성욱은 활발한 공간 침투로 세레소 오사카 골키퍼 김진현을 위협할만한 득점 기회를 여러 차례 만들어냈지만 거센 수비 저항에 마무리까지 매끄럽게 이루어내지는 못했다. 양동현 또한 제주 유나이티드의 노련한 수비수들(김원일, 조용형) 앞에서 제대로 기를 펴지 못했다.

이후 조성환 감독은 이은범(82분)과 류승우(89분)를 추가 교체 선수로 내보냈지만 그들이 실제로 공격에 가담할 시간이나 공간의 여유를 찾지는 못했다. 류승우의 교체 타이밍이 너무 늦었다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추가 시간 4분이 주어진 후 세레소 오사카의 역습이 이루어졌다. 높게 솟구친 공을 제주 유나이티드 수비수들이 제대로 걷어내지 못하고 골문 앞까지 이어질 때 믿기 어려운 실수가 나왔다. 제주 유나이티드 골키퍼 이창근과 윙백 박진포가 서로 눈치만 보다가 공을 뒤로 흘린 것이다. 축구장에서 가끔 볼 수 있는 1+1=0이라는 공식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 덕분에 세레소 오사카 미드필더 미즈누마 고타는 빈 골문에 왼발 슛을 성공시키고 골문 뒤 서포터즈에게 달려가 93분만에 터진 극장골 기쁨을 맘껏 나눴다.

승점 1점씩 나눠가지는 것으로 끝나는 듯 했던 경기가 어웨이 팀의 승점 3점으로 끝나는 순간이니 조성환 감독을 비롯한 제주 유나이티드 팬들은 허탈할 수밖에 없었다. 설날이 생일인 세레소 오사카의 윤정환 감독은 뜻밖의 선물을 미리 받은 듯 기뻐했다.

이 결과로 인해 G조 순위 양상이 혼돈의 늪으로 빠질 가능성이 생겼다. 같은 날 광저우 에버그란데(중국)가 부리람 유나이티드(태국)와의 홈경기에서 1-1로 비겼다. 조편성 결과가 발표되었을 때 부리람 유나이티드를 약팀으로 분류하고는 제주 유나이티드와 세레소 오사카가 2위 싸움을 할 것이라 전망했지만 당연히 1강으로 예상했던 광저우 에버그란데가 시작부터 발목을 잡힌 것이다. 그런 면에서 승점 3점을 챙기고 돌아가는 윤정환 감독의 세레소 오사카가 미소 지을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이제 제주 유나이티드는 오는 21일(수) 오후 8시 태국 부리람에 있는 썬더 캐슬로 들어가 부리람 유나이티드 FC와 어웨이 경기를 펼쳐야 한다. 3월 1일 개막하는 2018 K리그1 첫 경기(vs FC 서울)를 감안하면 험난한 일정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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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2018 AFC 챔피언스리그 G조 결과(14일 오후 7시 45분, 제주월드컵경기장)

★ 제주 유나이티드 0-1 세레소 오사카 [득점 : 미즈누마 고타(90+3분)]

◎ 제주 유나이티드 선수들
FW : 찌아구(52분↔진성욱), 마그노(82분↔이은범)
MF : 김수범, 권순형, 이찬동, 이창민(89분↔류승우), 박진포
DF : 정다훤, 조용형, 김원일
GK : 이창근

◇ G조 현재 순위
1 세레소 오사카 3점 1승 1득점 0실점 +1
2 광저우 에버그란데 1점 1무 1득점 1실점 0
2 부리람 유나이티드 1점 1무 1득점 1실점 0
4 제주 유나이티드 0점 1패 0득점 1실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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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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