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클로버필드> 시리즈 포스터

영화 <클로버필드> 시리즈 포스터 ⓒ 넷플릭스


상업적인 성과를 높이기 위해 속편을 선호하는 할리우드는 그간 무수한 프랜차이즈 상품을 생산했다. 기나긴 프랜차이즈의 역사에서 독창성에서 돋보이는 시리즈가 몇 개 있다. 같은 주인공이 등장하나 매 편 다른 감독을 기용하여 개성을 이식한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와 <에이리언> 시리즈가 그랬다. 한 감독이 스스로 재해석하거나 변형을 가한 <이블 데드> 시리즈도 기억난다. <클로버필드> 시리즈 역시 독특함에서 뒤처지지 않는다.

2007년 5월 <트랜스포머> 시사회장은 사전에 어떤 정보도 내놓지 않았던 한 영화의 티저 예고편이 상영되며 술렁거렸다. 제목조차 알려주지 않고 단지 개봉날짜만 적었던 이 영화가 바로 <클로버필드>였다. <클로버필드> 시리즈는 신비주의 마케팅을 기반으로 영화가 진행되곤 했는데, 이는 두 번째 이야기 <클로버필드 10번지>(2016)로 이어졌다. 작업 초기에 <발렌시아>라는 가짜 제목을 붙여 극비리에 진행하다가 나중에서야 클로버필드 세계관의 영화임을 밝혔기 때문이다.

3편 격인 <클로버필드 패러독스>의 공개는 더욱 극적이었다. 2018년 2월 5일(한국 시각) 제52회 미국 슈퍼볼 중계의 광고 시간에 느닷없이 <클로버필드 패러독스>의 예고편이 방송되었고 경기가 끝난 후 극장 대신 넷플릭스에서 감상이 가능(*우리나라에선 심의 문제로 2월 6일부터 서비스를 시작)하다고 홍보하며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클로버필드> 시리즈는 작품별로 장르와 형식이 다르고 인물도 겹치지 않는다. 영화 속 세계관이 서로 연결되었으나 정교하게 맞아떨어지기보단 느슨한 편이다. '떡밥의 제왕'으로 악명 높은 J.J. 에이브럼스가 제작한 영화답게 곳곳엔 미끼가 가득하다. <클로버필드 패러독스>의 개봉을 기념하여 이젠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한 <클로버필드> 시리즈의 이모저모를 가볍게 짚어본다.

 영화 <클로버필드>의 한 장면

영화 <클로버필드>의 한 장면 ⓒ 파라마운트


<클로버필드>(2008, 맷 리브스)

<블레어 윗치>(1999)가 새로이 발견한 '파운드 푸티지(실재 기록이 담긴 영상을 누군가 발견하여 관객에게 보여주는 것으로 가장하는 '페이크 다큐멘터리' 장르의 일종) 장르'를 통해 <클로버필드>는 21세기 문화의 재발견으로 자리매김한다. 정체 모를 괴수의 공격을 받는 뉴욕을 캠코더에 담은 <클로버필드>엔 9·11 테러의 잔상이 겹친다. '공격받고 있다'는 극 중 인물들의 대사나 도심에서 발생하는 폭발, 뜯겨 나뒹구는 '자유의 여신상' 머리도 그랬다. 이를 감안하면 <클로버필드>는 '포스트 9·11'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영화다.

9·11 테러 이후 할리우드는 애국주의로 충만한 <썸 오브 올 피어스>(2002)나 <위 워 솔져스>(2002), <블랙 호크 다운>(2002) 같은 영화들을 내놓았다. 종교계와 우익을 대변하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와 부시 정권과 9·11에 의문을 제기한 <화씨 9/11>(2004)은 2004년 미국 대통령 선거의 대리전 양상을 띠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9.11 이후 공포를 다루었다"고 말한 <우주전쟁>(2005)은 9·11을 겪은 미국의 분위기를 영화를 통해 정면으로 다룬 작품과 다름없다.

허문영 영화평론가는 <우주전쟁>을 비평하며 "우리가 만나는 건 그들을 궁지로 몰아넣는, 이해되지도 않고 극복될 수도 없는 거대하고 잔혹한 힘, 절대 공포다"라고 적었다. <우주전쟁>이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9·11의 공포를 응시했다면 <클로버필드>는 1인칭 시점으로 두려움을 재현한다.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인물들이 느끼는 공포는 주인공이 들고 있는 캠코더를 들여다 보는 형식으로 스크린 또는 모니터를 보는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어떤 영화학자는 1980년대 호러 영화들이 치즈버거를 만드는 것처럼 재생산되어 '공포의 맥도널드화'를 이루었다고 평가했다. <클로버필드>는 더 나아가서 그야말로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재난의 놀이기구화'에 성공한 셈이다. 어쩌면 앞으로는 공포를 대리체험하는 VR(Virtual Reality-가상현실)의 시대에 접어들지도 모른다.

 영화 <클로버필드 10번지>의 한 장면

영화 <클로버필드 10번지>의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클로버필드 10번지>(2016, 댄 트라첸버그)

<클로버필드>가 9·11 테러가 보여준 공포를 시각으로 재현한 영화라면 <클로버필드 10번지>는 9·11 이후 사회의 공기를 '밀실 스릴러'의 형식으로 보여준다. 흔들리던 영상은 이제 정지된 상태이며 좁은 공간 속엔 오로지 3명만이 등장할 뿐이다. 영화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한 후에 알 수 없는 장소에서 깨어난 미셀(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 분)에게 그녀를 구해주었다는 하워드(존 굿맨 분)는 '지구가 오염되었고 이곳만이 유일하게 안전한 공간'이라며 '절대로 문밖에 나가선 안 된다'고 말한다. 영화는 진실과 거짓의 여러 조각을 보여주며 "하워드를 믿을 수 있는가?"를 관객에게 계속 묻는다. 신경질적인 사운드와 어울려 등장인물 간의 진실 게임은 관객의 숨통을 시시각각 조인다.

남가주대학(USC)의 영화이론학과 교수로 재임중인 토드 보이드 교수는 <씨네21>과 한 인터뷰에서 "포스트 9.11 시대에 가장 악랄하고 기분 나쁜 정책은 '공포의 조작'이었다"라고 말한 바 있다(2006년 9월 13일, <9·11 테러는 할리우드를 어떻게 바꾸어왔나>). 그의 언급은 <클로버필드 10번지>에 나오는 하워드에게 들어맞는다. 하워드는 자신만이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영화는 하워드로 공포 정치를 은유하고 부시 행정부의 테러리즘을 비꼰다. 더불어 다가오는 트럼프 시대의 예언이기도 하다.

<클로버필드 10번지>는 명백히 9·11 이후 미국 사회의 분위기와 인물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여성의 시각으로 해석하면 다른 접근도 가능하다. 미셀이 차를 몰고 가는 오프닝 시퀀스는 마치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싸이코>의 장면을 연상케 한다. 연출을 맡은 댄 트라첸버그 감독은 <클로버필드 10번지>가 히치콕의 스타일을 닮았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싸이코> 속에 드러난 억압과 괴물은 <클로버필드 10번지>에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남성의 폭력과 하워드로 변주된 것처럼 느껴진다. J.J. 에이브럼스가 이후 제작한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에서 페미니즘을 강조해 표현한 사실을 기억한다면 지나친 억측은 아닐 것이다.

 영화 <클로버필드 패러독스>의 한 장면

영화 <클로버필드 패러독스>의 한 장면 ⓒ 넷플릭스


<클로버필드 패러독스>(2018, 줄리어스 오나)

이제 무대는 우주로 옮겨졌다. 장르도 SF 스릴러로 바뀌었다.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주정거장 '클로버필드'에서 무한 에너지를 만들 수 있는 입자 가속 장치 '셰퍼드'를 실험하다가 여러 차원의 세계가 충돌하며 현실 세계가 왜곡되는 사건을 소재로 다룬다. 또한 <클로버필드>에서 괴수가 나타난 이유도 다소 밝혀진다. 그런데 이전 시간대를 다루는 것 같지만, 1편에선 '에너지 위기' 같은 설정이 없었다. 앞뒤가 안 맞는 느낌이다. 시리즈의 연결 고리에 대해 <클로버필드 10번지> 개봉 당시에 J.J. 에이브럼스는 이렇게 말했다.

"<클로버필드>의 세계관을 반영하려 했고, 특정한 공통점을 공유하면서도 단순한 반복에 그치지 않고, 개발, 개선하는 과정을 통해 무언가 독창적이면서도 공포스러운, 동시에 관객이 즐길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자 했다." < 씨네 21 > '제작노트' 중에서

<클로버필드> 시리즈는 J.J. 에이브럼스가 두려움을 포착하는 필터로 보아야 한다. <클로버필드>가 9·11의 파괴 이미지를 투사하고 <클로버필드 10번지>가 9·11 이후 미국 사회에 만연한 공포를 말한다면 <클로버필드 패러독스>는 '핵'에 대한 시각이 나타난다. 핵이야말로 잘 사용하면 이롭지만, 자칫 잘못하면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을 불러오는 '역설적인' 같은 존재가 아닌가.

<클로버필드 패러독스>는 앞선 작품들과 비교하면 완성도에서 아쉬움이 크다. <에이리언>(1979)이나 <이벤트 호라이즌>(1997) 같은 SF 스릴러의 작품들에서 많은 설정과 장면을 가져왔다. 몇몇 장면은 제대로 설명조차 하질 않는다. 극 중에서 다들 영어로 대사를 하는데 톰(장쯔이 분)은 혼자 중국어를 사용하건만 서로 의사소통이 자유롭다. 이런 전개는 무척 당황스럽다.

그러나 '참(옳은 것)이라고 말하거나 거짓(틀린 것)이라고 말하거나 모두 이치에 맞지 않아서 참이라고도 거짓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모순된 문장이나 관계'를 뜻하는 '패러독스'는 영화에서 흥미롭게 드러난다. 지구를 살리려다가 도리어 파국으로 몰고 간다거나 해밀턴(구구 바샤-로 분)과 젠슨(엘리자베스 데비키 분)이 자기가 사는 평행우주 속 지구를 구하려 대립하는 상황은 패러독스의 재미를 안겨준다.

2018년 10월엔 <클로버필드>의 네 번째 작품인 <클로버필드 오버로드>가 개봉 예정이다.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을 삼았다고 한다. 이야기는 어떻게 확장될까? 아예 평행우주로 갈 속셈일까? 아니면 우주에서 한 '셰퍼드' 실험이 과거에 영향을 주었다고 할지도 모른다. J.J. 에이브럼스가 다음엔 어떤 '미스터리 매직 박스'로 돌아올 것인가? 무척 궁금하다. 그는 관객과 팬에게 '떡밥의 제왕'이며 '차세대 스티븐 스필버그'니까.

클로버필드 클로버필드 10번지 클로버필드 패러독스 9·11 J.J. 에이브럼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