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프로농구 감독 전창진씨는 최근 수년간 자신을 괴롭혀온 범죄 의혹에서 마침내 벗어났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13일 지인들과 수백만원대 판돈을 걸고 도박을 한 혐의로 기소된 전씨에 대하여 "검찰이 제출한 증거로는 공소사실을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전씨는 지난 2015년부터 승부조작과 불법 스포츠베팅 혐의 등으로 수사를 받아왔다. 경찰은 전씨가 후보 선수들을 경기에 투입해 자신의 팀이 패하도록 승부를 조작했다는 의혹으로 수사대상에 올렸다. 전씨는 이로 인하여 당시 지휘봉을 잡고 있던 안양 KGC 인삼공사 감독직에서도 물러나야했다.

KBL은 전씨가 경찰의 수사대상이 되고 언론에 내용이 기정사실인 것처럼 오르내리자, 혐의 여부가 최종적으로 확정되기 전에 전씨에게 '무기한 등록자격 불허'라는 중징계를 내리기도 했다. 사실상의 농구계 퇴출이었다.

전씨는 승부조작 문제에 대해서는 2016년 검찰의 불기소 결정으로 혐의를 벗었지만, 도박 의혹에 대해서는 벌금 200만원에 약속 기소되어 최근까지 공방을 벌여왔다. 그러나 법원의 이번 판결로 전 감독에 남아 있던 마지막 불법 꼬리표마저 떼어낼 수 있게 됐다. 비록 일각에서는 여전히 전씨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도 남아있지만, 어쨌든 '법적'으로는 무죄로 최종결론이 나면서 3년간의 기나긴 공방에 마침표를 찍고 명예회복에 성공했다.

무죄추정의 원칙

농구팬들의 관심은 이제 전씨의 농구계 복귀 여부에 쏠리고 있다. 전씨가 농구계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KBL의 징계 해제가 필요하다. 전씨의 공식적으로 모든 혐의를 벗은 만큼 징계의 근거도 사라진 셈이다. 오히려 당시 KBL이 '무죄추정의 원칙'에도 어긋나는 성급한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이 입증되면서 KBL의 입장이 궁색해지게 됐다.

하지만 KBL은 전씨가 일단 무죄가 확정됐다고 해서 당장 먼저 나서서 징계 해제를 논의할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KBL의 공식 입장은 '전씨의 징계 근거는 법원의 유·무죄 여부와는 별개'라는 것이다.

KBL의 논리는 이렇다. 전씨가 프로농구를 대표하는 사회적 공인으로서 부적절한 처신과 주변 관리(불법 스포츠도박 관련자와 교류-불법 차명 핸드폰 사용), 프로 감독으로 재임하는 동안 수차례 불성실한 경기 운영과 규칙 위반-질서 문란 행위 등으로 개인 최다 벌금을 납부한 점을 고려하여 '전창진이 KBL 구성원으로는 자격이 부적격하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입장이다.

결국 전씨가 농구인으로서의 명에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본인이 직접 KBL에 징계 해제 신청을 하든지, 혹은 전 감독의 영입을 원하는 프로 구단이 나왔을 때 KBL이 자격 검토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전씨는 승부조작 사건에 휘말리기 전까지는 프로농구 최고의 명장으로 평가받았다. 원주 DB-부산 KT의 감독직을 거치며 챔프전 우승 3회를 기록했으며 통산 426승(역대 2위) 306패, 승률 0.582를 기록했다. 탁월한 선수단 장악력과 수비 전술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감독으로서의 '능력'은 이미 충분히 검증된 인물이다. 당장 올 시즌 이후 감독교체를 고려하거나, 검증된 베테랑 지도자를 원하는 팀이라면 전씨에게 관심을 가질 만하다.

하지만 전씨는 전성기에도 팬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엇갈리는 지도자로도 꼽혔다. 다혈질적인 성격 때문에 심판-선수-동료감독에게까지 가리지 않고 과격하고 무례한 언행을 남발하여 숱한 구설수에 오른바 있다. 결국 승부조작 의혹까지 받는 빌미가 된 불성실한 경기운영(점수 차가 벌어지면 경기 포기-작전타임 방치 등)으로 '전토토'라는 조롱 섞인 별명을 얻는 등 도마에 오른 것도 여러 차례였다. 전씨는 KBL 감독중 개인 최다벌금을 납부한 기록을 세운 인물이기도 하다.

과거의 성과와는 별개로 전씨가 가지고 있는 '트러블메이커'로서의 이미지나 권위적이고 올드한 지도방식 때문에 싫어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앞으로 전씨의 농구계 복귀가 본격적으로 논의될 경우 여론의 반응이 갈릴 수 있는 대목이다.

신원 회복 여부가 중요해 

최근 KBL도 감독계의 '세대교체'가 많이 이루어지며 40대 젊은 감독들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전씨와 동기인 유재학 울산 현대모비스 감독, 추일승 고양 오리온 감독이 벌써 현역 사령탑 중 최고령이 되었을 정도다. 경찰수사와 법정공방, KBL 퇴출 등으로 2년 7개월 가까이 현장과 단절되어 사실상 농구계를 완전히 떠나있었다는 것은, 달라진 현대농구의 흐름이나 현장 감각 면에서 큰 약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프로농구 감독직 복귀' 여부는 어디까지나 나중의 이야기이고, 그와 별개로 KBL의 '무기한 등록자격 불허' 징계에 대한 적절성과 전씨의 신원 회복 여부는 지금 시점에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할 사안임에 틀림없다.

물론 전씨의 과거 프로 감독 시절 숱한 구설수를 감안하면 KBL이 지적한대로 징계를 받아야할만한 근거는 충분했다. 승부조작 의혹은 무죄를 선고받았다고 해도 KBL에서 그간 보여준 행보에 대해서는 전씨가 마냥 피해자라고 볼 수만은 없는 이유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 급하게 '퇴출'까지 시켜야 했을 만큼의 큰 잘못을 지질렀는지, 얼마나 공정하고 올바른 '절차'에 의하여 내려진 결정이었는지 논란의 소지가 있다.

KBL이 아무리 궁색한 논리로 부정한다고 해도 당시 전씨에게 내려진 징계가 승부조작 의혹과 그에 따른 '여론몰이'에 쫓겨 무리하게 내려진 결정이었다는 사실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당시 KBL은 전씨에게 충분한 소명의 기회도 주지 않았고 각종 혐의가 결론이 나기도 전에 농구계에서 퇴출시키며 죄인이라는 낙인을 찍어버렸다. 징계는 멋대로 줬다가 해제는 본인이나 프로 구단이 요청해야만 겨우 검토해 볼 수 있다는 것은 책임 회피다.

지금은 어쨌든 당사자가 법정에서 무죄가 나온 상황에서도 KBL이 수동적으로 기존의 입장만을 고수한다면, 이는 결국 KBL이라는 조직이 자신들의 권위를 지키기 위하여 한 개인의 명예와 권리를 일방적으로 짓밟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 또한 이 징계 자체가 처음부터 절차를 무시하고 자의적인 잣대로 이루어진 '괘씸죄'에 가까웠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나 다름없다.

전창진이라는 인물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갈릴 수 있다. 분명한 사실은 누구나 공정한 법과 원칙에 따라 동등하게 보호를 받아야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3년에 걸친 긴 공방 끝에 전씨는 일단 법적으로 '죄인'이라는 멍에는 벗는데 성공했지만 아직 농구인으로서 명예 회복은 끝나지 않았다. KBL이 과연 자신들의 과거 잘못된 결정을 인정하고 뒤집을수 있는 용기가 있는지, 과연 농구팬들은 전창진이라는 '문제적 인물'의 농구계 복귀 시도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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