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링 믹스더블 장혜지(21)-이기정(23·이상 경북체육회)이 꿈의 무대에서 아쉽게 고배를 마셨다. 이들은 속상해하면서도 응원해준 국민들 앞에 고개를 숙였다.

장혜지-이기정은 11일 오전 강원도 강릉시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컬링 믹스더블 예선 7차전 캐나다와의 경기에서 3-8로 패했다. 전날 스위스와 예선 6차전에서 4-6으로 지면서 사실상 4강 진출이 좌절된 한국은 캐나다와 예선 7경기에서 2승 5패로 미국과 공동 6위에 자리하며 이번 올림픽을 마쳤다.

4강에 드는 것을 목표로 했던 장혜지-이기정은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이들은 더 큰 가능성과 미래, 무엇보다 대중들의 뜨거운 관심을 얻는 데 성공했다. 당장 눈물은 앞으로 더 성장해 나갈 밑거름이었다.

끝까지 보여준 투혼... 가능성 확인

 11일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컬링 믹스더블 예선 7차전 대한민국과 캐나다의 경기에서 한국의 이기정과 장혜지가 작전을 짜고 있다.2018.2.11

11일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컬링 믹스더블 예선 7차전 대한민국과 캐나다의 경기에서 한국의 이기정과 장혜지가 작전을 짜고 있다.2018.2.11 ⓒ 연합뉴스


컬링은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처음으로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당시 경기도체육회 선수들이 여자컬링에서 선전하며 '컬스데이'라는 별명이 붙은 후다. 그리고 안방에서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는 신설 종목 믹스더블까지 더해지며 국민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정적인 스포츠라는 편견을 깨고 파워 플레이 등 빠른 경기 진행으로 박진감 넘치는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지난 8일 핀란드와 예선 첫 경기에서 이들은 노련미를 겸비한 핀란드를 상대로 3연속 스틸 득점에 성공하는 등 자신들의 플레이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파워플레이에서도 4득점을 내는 등 완벽한 플레이로 한국 선수단의 첫 승을 안겨줬다.

세계 선수권 동메달리스트인 중국, 세계랭킹 4위인 OAR(러시아 출신 올림픽 선수)과도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두 팀에 비해 장혜지-이기정은 이제 3년 차에 불과했기에 경험과 기량 등 모든 면에서 열세였다. 그러나 두 선수는 경기를 연장전으로까지 몰고 가며 승부를 몰고 갔다. 장혜지는 마지막에 해결사 역할을 해줬고, 이기정은 자신의 주특기인 테이크 아웃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결정적인 순간에 양 팀의 기량 차이가 나오며 승패가 갈렸지만 이들이 보여준 투혼은 분명 박수받기에 충분했다.

물론 보완해야 할 점도 있었다. 이번 경기 대진상 스위스, 캐나다 등 최강 팀이 모두 후반부에 있었는데 예선 초반 90%을 육박하던 샷의 평균 정확도는 후반부로 갈수록 60~70% 수준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평창에서 이들은 가능성을 확인했다. 그 차이는 미세한 수준이었다. 작은 차이였기에 더 많은 경험이 더해진다면 세계 정상에 설 날도 머지않았다.

컬링, '관심'이라는 선물 얻었다

[올림픽] 아! 아쉬워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컬링 믹스더블 예선 7차전 대한민국과 캐나다의 경기에서 한국의 이기정과 장혜지가 경기 도중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2018.2.11

▲ [올림픽] 아! 아쉬워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컬링 믹스더블 예선 7차전 대한민국과 캐나다의 경기에서 한국의 이기정과 장혜지가 경기 도중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2018.2.11 ⓒ 연합뉴스


장혜지-이기정의 활약이 이어지자 강릉 컬링센터에는 관중이 구름처럼 몰렸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관중들의 매너였다. 컬링 경기에서 선수들이 처음 투구를 할 때는 집중력을 발휘해야 하기 때문에 조용히 해줘야 하고, 투구가 시작되고 난 이후 박수와 응원을 해줘야 한다. 한국 관중은 이러한 기본 매너를 모두 잘 지키면서 장혜지-이기정에게 아낌없는 성원을 보냈다.

지난 10일 스위스전에서 패하면서 4강행이 무산되자 두 선수는 결국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11일 캐나다전과 예선 마지막 경기를 치르고 난 후에도 이들의 눈물은 그칠 줄 몰랐다. 장혜지는 "나는 아직 오빠에게 부족한 사람이다. 오빠가 자기 일 하기도 바쁜데 날 챙겨주셨다"며 미안함을 드러냈다. 이기정은 "정말 영광스럽다. 살면서 즐거운 경험을 했고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하다"고 눈물을 훔쳤다.

이들에게 무엇보다 고마웠던 것은 한국 관중들의 응원이었다. 장혜지는 "컬링을 대중들에게 많이 알릴 수 있게 돼 기쁘다. 우리의 성장보다도 컬링이 재밌다고 얘기해 주신 것이 정말 감사하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렇다. 동계스포츠는 우리에게 너무나 멀게만 느껴졌다. 소치 때만 해도 대다수의 사람은 컬링에 대해 물으면 '바닥 청소' 등에 비유하며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들의 투혼 덕에 많은 대중이 컬링에 대해 알게 됐고 컬링에 마지막까지 승부 예측을 할 수 없는 긴장감이 넘치는 매력이 있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이제는 저변 확대에 힘써야만 한다. 아직 국내 컬링 경기장은 강릉을 제외하면 서울 태릉과 경북 의성, 충북 진천 선수촌 등 세 곳에 불과하다. 그만큼 엘리트 선수 육성은 물론 일반인들이 접하기에는 여전히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보다 많은 꿈나무와 체계적인 훈련 시스템이 갖춰져야지만 장혜지-이기정이 흘린 눈물이 헛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이 끝까지 구슬땀을 흘리며 브룸(아이스를 닦는 막대)을 잡고 스위핑을 하던 투혼은 훗날 한국 컬링이 성장할 원동력이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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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동계올림픽 컬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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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스포츠와 스포츠외교 분야를 취재하는 박영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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