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리그의 각 구단들은 일제히 2018 시즌을 준비하는 스프링 캠프에 들어갔다. 하지만 FA 시장에서 아직까지 팀을 찾지 못한 선수가 2명 있었다. 둘 다 롯데 자이언츠 출신으로 외야수 이우민과 지명타자 최준석이 그들이었다.

그 중에서 최준석이 드디어 새로운 팀을 찾았다. 2월 11일 롯데 자이언츠와 NC 다이노스가 각각 최준석의 사인 앤 트레이드 소식을 전해 온 것이다. KBO리그에서 사인 앤 트레이드가 실시된 것은 역대 7번째이며, 이 중 무상 트레이드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일단 롯데가 최준석과 별도 계약금 없이 연봉 5500만원에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을 체결하자마자 최준석은 무상 트레이드를 통해 NC로 이적하게 됐다. 연봉은 롯데에서 부담하며, 최준석의 영입에 대하여 NC가 롯데에 주는 보상금이나 보상선수는 없다.

뛰어난 선구안과 정확도를 지녔던 클러치 히터 최준석

최준석은 1983년 2월 15일 출생으로 대구 북구 출신이었다. 2001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6라운드 지명을 받았는데, 처음에는 포수로 입단했다. 이후 포수보다 지명타자로 출전하는 기회가 조금씩 늘어났고 2006년 5월 트레이드를 통해 두산 베어스로 이적했다.

최준석은 두산에서 기량이 만개했다. 2009년 홍성흔(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코치)이 롯데로 이적하면서 기회가 크게 늘었고, 타율 0.302에 17홈런 94타점(당시 리그 6위) OPS 0.860으로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낸 것이다. 이후 1루수 자리를 굳건히 지키면서 2010년에는 처음으로 골든글러브도 수상했다.

그러나 4년 만에 홍성흔이 두 번째 FA를 통해 고향 팀 두산으로 돌아오면서 최준석의 입지는 더 줄어들었다. 홍성흔도 포수 출신으로 최준석보다 수비 경력이 많았지만, 수비 도중 입은 부상으로 인하여 포수 커리어를 마감하고 지명타자로 전향했던 사례였다.

수비에 제한이 있는 선수들이 있다보니 최준석은 다른 선수들과의 경쟁에서 다소 밀릴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최준석도 자신의 과체중으로 인하여 무릎 수술을 받아 군 면제 판정을 받을 정도로 수비에 제한이 있는 선수였다.

출전에 제한이 있었던 와중에도 최준석은 2013년 포스트 시즌에서 단일 포스트 시즌 최다 홈런 타이 기록(6홈런)을 세웠다. 넥센 히어로즈를 상대로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 선발 출전하여 오재영을 상대로 첫 홈런을 날린 것이 시작이었다. 그리고 5차전에서는 연장 13회(9회말 박병호의 동점 홈런이 나온 그 경기) 선두 타자 대타로 출전하여 결승 홈런을 날려 시리즈 MVP가 되었다.

LG 트윈스를 상대로 했던 플레이오프에서는 3차전에서 깜짝 호수비를 보여주기도 했다. 4차전에서는 8회말 대타로 출전하여 봉중근을 상대로 홈런을 날리면서 한국 시리즈 진출까지 기여했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한국 시리즈에서도 최준석은 5차전에서 홈런 2개, 6차전에서 홈런 1개를 날리면서 분전했다.

그러나 2013년 최준석의 포스트 시즌 분전은 끝내 해피 엔딩으로 끝나지는 못했다. 당시 두산은 준플레이오프부터 5차전 혈투를 펼쳤고, 심지어 5차전은 연장 13회까지 가는 집념의 장기전이었다. 삼성과의 한국 시리즈도 7차전까지 가면서 플레이오프를 제외한 모든 시리즈에서 처절한 혈투를 치렀고, 결국 지친 두산은 한국 시리즈에서 먼저 3승 1패를 거두고도 나머지 3경기에서 3연패를 당했다.

고향 팀에서의 4년, 해피 엔딩은 보지 못한 롯데와의 인연

그 해 겨울 FA를 선언한 최준석은 두산과의 우선 협상이 결렬되며 이종욱, 손시헌과 함께 이적 시장에 나왔다. 그리고 최준석은 4년 35억원의 규모로 고향 팀 롯데와 계약하게 됐다. 사실 체중 관리 실패와 무릎 부상으로 인하여 가치가 크진 못했지만 포스트 시즌에서의 분전으로 클러치 히터로서 가치가 컸기 때문에 계약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최준석은 2014년에는 23홈런 90타점, 2015년에는 31홈런 109타점을 기록하며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다. 그러나 2016년 갑자기 타격감이 하락한 최준석은 이후 2년 동안 그저 그런 성적을 기록했다. 주자가 모여있는 득점권에서는 강했으나 주자가 없었을 때 약한 모습이 격차가 너무 컸다.

결국 최준석은 2017년 무려 25개의 병살타를 날리며 종전 기록이었던 김한수(현 삼성 라이온즈 감독)의 23개 기록(2004년)을 경신하는 굴욕을 남겼다. FA 시장에 나오긴 했지만 4년 전에 비해 가치는 더 떨어진 상태였다.

사실 최준석이 그 동안 가치가 있었던 이유는 타점을 낼 수 있다는 클러치 능력 때문이었다. 체중과 무릎 때문에 수비도 할 수 없고 발도 느려서 웬만한 선수들이 2루타를 만들 수 있는 타구에도 불구하고 단타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느린 발 때문에 뒤에서 다른 주자들도 빨리 뛰지 못해 팀 전체 득점 생산에도 문제가 있었다.

NC에서 기회 얻은 최준석, 제 2의 이호준이 될 수 있을까

이 때문에 FA 시장에서 최준석을 찾는 팀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롯데 측에서 사인 앤 트레이드 방식으로 자신들이 부담을 하겠다고 했는데도 반응이 없었을 정도였다. 게다가 다수의 팀들이 팀 평균 연령을 조금씩 낮춰가는 세대 교체를 진행하면서 그를 찾을 가능성도 점점 떨어지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몇몇 팀들은 구심점을 잡아 줄 베테랑 선수들이 이미 있었다. 삼성은 이승엽이, NC는 이호준이 은퇴하면서 그 역할을 대신 해 줘야 할 선수가 필요했음에도 불구하고 최준석을 찾는 팀은 없었다. 심지어 NC는 세대 교체 집중을 선언하며 외부 FA 영입을 하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롯데도 채태인(넥센과 1+1년 10억원 계약)을 트레이드로 데려오면서 최준석은 완전히 자리를 잃었다.

이런 상황에서 NC의 김경문 감독이 손길을 내밀었다. 물론 NC에서는 모창민이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며 지명타자 자리를 굳혀 최준석은 사실상 대타 요원으로 활약해야 한다. NC에서 최준석에게 기대하는 역할은 지난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이호준의 역할이다.

다만 모창민도 고질적 무릎 부상이 있기 때문에 체력 안배 차원에서 최준석이 출전 기회를 얻을 것으로 보인다. 김경문 감독 역시 최준석의 노련한 경기력을 평가하며 쓸 수 있는 카드가 다양해졌음을 칭찬했고, 유영준 단장은 최준석을 만나 야구에 대한 절실함을 느꼈다고 밝혔다.

계약이 11일에 발표되었고, 최준석은 일단 준비를 마친 뒤 NC 선수단에 합류하기로 했다. 현재 NC는 미국 애리조나 주 투산에 있는 캑터스리그 캠프장에서 스프링 캠프를 치르고 있기 때문에 출국 준비에 있어서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절실한 기회를 얻은 최준석이 커리어를 어떻게 더 쌓아 나갈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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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 브랜더/서양사학자/기자/작가/강사/1987.07.24, O/DKU/가톨릭 청년성서모임/지리/교통/야구분석(MLB,KBO)/산업 여러분야/각종 토론회, 전시회/글쓰기/당류/블로거/커피 1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있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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