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첫 무대에서 성적은 중요하지 않았다. 하나가 돼 함께 태극기를 휘날리며 응원하는 것만으로도 큰 발자취를 남겼다. 한국 피겨의 동계올림픽 사상 첫 단체전 얘기다.

한국 피겨는 지난 9일부터 11일까지 강원도 강릉시 강릉 아이스 아레나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단체전에서 10개국 가운데 9위(포인트 13점)에 자리하며 경기를 마쳤다. 성적만 본다면 실망스러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결코 부끄럽지 않았다.

한국 피겨가 김연아(28)의 영향으로 많은 발전을 했지만 '팀'으로 대회를 나가는 것은 아직 먼 미래처럼 느껴지기만 했다. 그러나 평창에서 우리는 꿈을 불가능을 가능하게 바꿨다. 3일간의 단체전은 그것을 증명해준 시간이었다.

투혼 차준환-믿고보는 최다빈

[올림픽] 멋진 연기하는 차준환 9일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피겨 팀이벤트에서 한국의 차준환이 연기하고 있다.

팀이벤트는 남녀 싱글, 페어, 아이스댄스 4종목의 국가별 쇼트프로그램 총점 상위 5개팀만 프리스케이팅 연기에 나서 메달의 색깔을 결정한다. 한국은 첫 출전이다.

▲ [올림픽] 멋진 연기하는 차준환 9일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피겨 팀이벤트에서 한국의 차준환이 연기하고 있다. 팀이벤트는 남녀 싱글, 페어, 아이스댄스 4종목의 국가별 쇼트프로그램 총점 상위 5개팀만 프리스케이팅 연기에 나서 메달의 색깔을 결정한다. 한국은 첫 출전이다. ⓒ 연합뉴스


[올림픽] 최다빈, 첫 올림픽 무대 성공적 11일 오전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피겨 팀이벤트 여자 싱글 쇼트 프로그램에서 최다빈이 연기를 펼친 뒤 주먹을 불끈쥐고 있다.

최다빈은 65.73으로 시즌베스트를 기록했다.

▲ [올림픽] 최다빈, 첫 올림픽 무대 성공적 11일 오전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피겨 팀이벤트 여자 싱글 쇼트 프로그램에서 최다빈이 연기를 펼친 뒤 주먹을 불끈쥐고 있다. 최다빈은 65.73으로 시즌베스트를 기록했다. ⓒ 연합뉴스


한국이 단체전에서 가장 많은 포인트를 획득했던 종목은 남녀싱글이었다. 이 종목에서 각각 출전했던 차준환(17·휘문고)과 최다빈(18·수리고)은 모두 6위에 올랐다.

차준환은 이번 단체전에서 가장 먼저 연기를 펼쳤다. 첫 경기가 남자 싱글이었는데 그 가운데 가장 먼저 은반 위에 올라선 것이다. 아직 감기몸살이 채 다 낫지 않은 상태였음에도 차준환은 흔들리지 않았다. 세 차례 점프요소를 모두 완벽하게 해내며 클린 연기를 펼쳤다.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탓에 전반적인 스피드와 스텝 연기에서는 조금의 아쉬움은 남았지만 그것은 작은 것에 불과했다.

남자 싱글 경기에서는 10명의 선수 가운데 8명이나 점프에서 넘어지는 실수가 나왔다. 그런 가운데 가장 먼저 나와 대담한 연기를 펼친 차준환은 박수받기에 충분했다. 차준환은 그동안 한국 남자피겨의 역사를 써오며 성장해왔다. 이번 시즌에 시니어로 막 데뷔한 그에게 올림픽은 너무나 큰 대회였지만, 정신적인 압박 속에서도 클린 연기를 해낸 것은 다가온 개인전뿐만 아니라 더 큰 기대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여자 싱글에 나선 최다빈은 '믿고 보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았다. 동계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 등에서 굵직한 성과를 냈지만 그 역시 올림픽은 처음이었기에 좀처럼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러나 올 시즌 최고의 쇼트프로그램 연기를 선보이며 그런 기우를 깨끗이 씻었다. 평소 기복 없고 깨끗한 연기를 해온 최다빈은 올림픽에서도 다르지 않았고 개인 최고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성적보다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이미 알려진 대로 시즌을 준비하던 지난해 6월 갑작스럽게 최다빈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가슴 시린 아픔을 그리는 쇼트프로그램은 최다빈의 상황을 가장 잘 대변했다. 꿈의 무대였던 올림픽을 하늘나라에서 지켜보고 있을 어머니를 위해 은반 위에 수놓은 연기는 보고만 있어도 눈물이 절로 나게 만들었다. 평소 '호랑이 선생님'으로 유명한 신혜숙 코치도 최다빈의 연기 직후 울컥한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하나가 된 '피겨 팀코리아'

 (강릉=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11일 오전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피겨 팀이벤트 아이스댄스 경기 시작 전 차준환, 김하늘, 감강찬, 김규은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2018.2.11

11일 오전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피겨 팀이벤트 아이스댄스 경기 시작 전 차준환, 김하늘, 감강찬, 김규은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2018.2.11 ⓒ 연합뉴스


[올림픽] 열혈 응원 (강릉=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 11일 오전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피겨 팀이벤트 아이스댄스 경기에서 브라이언 오서 코치, 차준환, 김하늘, 감강찬, 김규은이 응원을 하고 있다. 2018.2.11

11일 오전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피겨 팀이벤트 아이스댄스 경기에서 브라이언 오서 코치, 차준환, 김하늘, 감강찬, 김규은이 응원을 하고 있다. 2018.2.11 ⓒ 연합뉴스


한국 피겨가 팀으로 대회에 출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불과 몇 년전 '피겨여왕' 김연아(28)가 현역 시절 홀로 뛰었을 때만 하더라도 한국 피겨는 김연아 혼자 대회를 나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김연아가 정상에 오르고 난 후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등에서 한국 쿼터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밴쿠버 대회부터는 김연아와 어린 여자 후배 선수들이 함께 올림픽에 출전했다. 직전 대회였던 소치에서는 김연아와 김해진(21·이화여대), 박소연(21·단국대) 등 3명의 선수가 여자 싱글에 출전했다.

평창에서는 그보다 더 많이 남녀싱글, 페어, 아이스댄스, 그리고 단체전까지 전 종목으로 출전 영역이 넓어졌다. 피겨여왕이 은퇴하고 이렇게 빨리 성과가 나올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국내 인구는 많아졌지만, 인프라는 크게 개선되지 않았고 아직 남자 선수 인구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페어와 아이스댄스의 경우 평창에 나온 김규은(19)-감강찬(23), 민유라(23)-알렉산더 겜린(25)이 유일한 한국 대표다.

단체전에 나선 국가는 모두 피겨 최강국이라고 할 수 있다. 메달을 노리고 있는 캐나다, OAR(러시아 출신 올림픽 선수), 미국을 비롯해 우리의 이웃 국가인 일본, 중국도 모두 피겨에서는 중상위권을 달리고 있는 저력이 있는 나라다. 한국 입장에서는 롤모델이자 훗날 따라 잡아야 하는 상대이기도 하다. 언젠가들 저들과 같이 팀으로 국제대회에 참가할 수 있기만을 바랐는데 안방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그 꿈이 이루어졌다.

한국의 동계올림픽 첫 피겨 단체전은 이렇게 끝났다. 성적은 뒤에서 2등. 실력의 격차도 체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보다 더 큰 결과를 얻었기에 환하게 웃고 기뻐할 수 있었다. 팀 분위기 메이커는 재미교포 민유라가 맡았다. 올림픽 오륜기가 그려진 안경을 쓰고 태극기를 흔들며 춤을 추는 등 익살스러운 모습으로 웃음을 유발했다. 팀으로 나간 첫 대회에서 네 종목의 선수들이 함께 기뻐하고 환호하는 모습은 한국 피겨의 또 하나의 길이 남을 페이지로 장식됐다.

피겨 단체전은 우리에게 성공이 꼭 메달만으로 입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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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최다빈 차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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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스포츠와 스포츠외교 분야를 취재하는 박영진입니다.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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