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새 사장에 출마하는 정필모 기자를 지난 7일 서울 목동 인근에서 만났다.

KBS 새 사장에 출마하는 정필모 기자를 지난 7일 서울 목동 인근에서 만났다. ⓒ 유지영


정필모 기자가 KBS 새 사장 출마를 선언했다. 정 기자는 고대영 사장이 지난 2016년 KBS 1TV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 <미디어 인사이드>를 폐지하기 전 3년간 진행자를 맡았다. 또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권 동안 보직을 맡지 않았다. 그는 이에 대해 "소신을 지키며 일하지 못할 바에는 못하겠다고 거절했다"면서 "그간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지조를 지켜왔다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답했다.

또 그는 2011년 민주당 도청 의혹 사건 이후 작년 KBS 내부에서 해당 사건의 진상조사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민주당 도청 의혹 사건'은 2011년 민주당에서 진행했던 KBS 수신료 인상 관련 비공개 회의 다음날 KBS 기자가 한선교 당시 한나라당 의원에게 해당 회의 기록을 건넸다는 의혹이 제기된 일을 말한다.

다음은 KBS 사장 출마를 선언한 정필모 기자와의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국민의 신뢰 없이 수신료 인상은 어렵다

- 최근 사장 출마 하마평에 올랐을 땐 "고민을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마음의 변화가 있었나?
"결심을 하게 된 건 '정말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다. 최근 KBS 총파업을 통해 동료들과 후배들 사이에서 KBS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열망이 분출됐는데 정년을 반년 정도 남겨둔 상태에서 이러한 정상화 요구를 회피하고 나간다는 건 역사적인 책무를 다하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KBS 바로 세우기는 역사적인 요구다. 촛불 시민들이 국정 농단을 심판하고 대통령을 파면에 이르게 했듯이, KBS가 권력의 눈치를 보고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해왔던 걸 이제는 끝내고 바꿔야 한다. 권력에는 당당하고 국민들에게는 헌신하는 그런 방송을 만들어야 한다는 열망을 담아 마지막으로 봉사하자는 심정으로 최종 결심을 하게 됐다."

- 1번 공약이 무엇인가?
"한 마디로 요약하면 공영방송 KBS를 정치 권력의 품 안에서 국민들에게 돌려주자는 것이다. 비단 정치권력만이 아니라 재벌 등 자본 권력을 포함해 우리 사회의 힘 있는 자들이 아닌 일반 국민들에게 헌신하는 방송을 만들겠다는 게 내 경영 계획의 핵심이다. 우선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적 독립을 수호하고 자본과 광고주로부터의 영향력을 차단한 다음 제작의 자율성을 보장해주고 시청자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KBS는 수신료를 받는 공영방송이지 않나. 그러니 상업 언론이 하지 못 하는 것을 KBS가 담아내도록 하겠다."

- 수신료를 인상하겠다는 말처럼 들린다.
"국민들의 신뢰 없이 당장 수신료를 인상하기는 힘들다. 지금 상태에서 수신료 인상하겠다고 나서면 뭐라고 생각하겠나? 지금은 이를 꺼낼 시간이 아니라고 본다. 신뢰를 회복한 후에 공영방송으로서 재탄생하고 나서 유익한 방송을 만들고 그때 요구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우선 아직 발굴되지 않은 수신료 재원 같은 걸 발굴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상업용 건물 같은 곳에 설치된 TV 수상기는 수신료를 내지 않는데 그런 부분들부터 발굴해 재원을 확충하고 스스로 경비 절감 노력을 기울이고 신뢰를 회복한 상태에서 (수신료 인상을) 말해야 한다. 지금까지 KBS가 해온 게 있는데 수신료 인상하자는 이야기 부끄러워서 못한다. 그건 염치가 없는 일이다."

- 양승동 KBS 피디도 출마 선언을 했다. 어떤 이야기가 오갔나?
"선의의 경쟁을 하자고 말했다. KBS가 망가지는 동안 양승동 피디 역시 열심히 싸워오셨다. 또 개혁을 하겠다는 생각에서는 나와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아주 좋은 후보라고 생각한다."

- 내부인이면 이해 관계 때문에 적폐 청산이 어려울 수 있겠다는 말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동의하지 않는다. KBS는 조직이 무척 복잡하다. 외부에서 오시면 아마 내부 상황을 파악하는 데만 몇 개월이 걸릴 거다. 이번 사장은 누가 되든 11월에 임기가 끝난다. 불과 8개월밖에 되지 않은 상황인데 인적 혹은 제도적 쇄신 등 적폐 청산은 신속하고 단호하게 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내부 상황을 그간 뼈저리게 느끼고 잘 아는 사람이 나왔으면 한다."

눈치 보지 않고 개혁을 이끌어 내겠다

 KBS 새 사장에 출마하는 정필모 기자를 지난 7일 서울 목동 인근에서 만났다.

KBS 새 사장에 출마하는 정필모 기자를 지난 7일 서울 목동 인근에서 만났다. ⓒ 유지영


- 사장이 된다면 8개월 동안 우선적으로 무엇을 해볼 생각인가?
"시급히 해야 할 것은 세 가지다. 먼저 인적 쇄신 및 제도 혁신에서의 적폐 청산이다. 그리고 부당한 외압을 막는 것. 부당한 외압을 막아 제작 자율성을 보장하고 이러한 자율성을 제도적으로 지속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게 필요하다. 화합이라는 건 과거 잘못한 걸 청산하고 반성을 하겠다는 전제로 가능하지, 그게 없다면 화합이 아니라고 본다.

마지막으로 경영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싶다. 그동안 경영의 효율성과 수익성 확보를 위해 공영방송의 존재 의미라 할 수 있는 공적 가치를 훼손해 왔다.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이거 바꿔보겠다. 공적 가치를 우선시한 다음에 수익성도 추구해야지 그걸 거꾸로 하는 방식은 공영방송이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다."

- 정필모 기자만이 가진 경쟁력을 압축적으로 설명해달라.
"나는 실무적 경험과 이론을 겸비한 사람이다. 30여 년 동안 기자 생활을 하면서 저널리즘 현장에서 아픈 경험도 많이 했고 많은 사례를 목격했다. 외압으로부터 진정한 저널리즘을 지켜내는데 필요한 게 어떤 것이 있는지 뼈저리게 체험해왔다. 또 학위 논문을 통해 KBS의 외적 통제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그 조직 문화가 어떤지 연구해왔다. 그리고 정말 좋은 저널리즘이 무엇인지를 체계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부분이 나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그간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지조를 지켜왔다. 단호하게 KBS의 개혁 작업을 추진해나갈 수 있는 사람이다. 흔들리지 않고 10년 동안 보직을 맡지 않았듯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힘 있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으며 개혁을 이끌어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자신한다."

- 그렇다면 KBS 사장 역할을 하는 데 있어 개인적인 약점이 무엇이고 그걸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답해줄 수 있나?
"나는 기자 생활을 해왔고 피디나 제작 파트 쪽에서 근무한 적이 없다. 이론적으로는 알지만 실무적인 경험이 없다. 경영 기술 피디 파트의 바른 생각을 가진 능력 있는 후배들이 많다. 이분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나의 부족한 점을 채워나가려 한다. 사장이 모든 걸 다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결단을 내리기 전에 바른 생각을 가진 전문가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반영할 것이다.

또 나는 한국의 전문직들이 제대로 역할만 했다면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나서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이제는 직업 윤리에 바탕을 두고 전문 지식과 경험을 갖춘 인재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끔 내부 분위기를 확산시켜 나갈 것이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KBS만이 아니라 언론들은 늘 그런 이야기를 한다. 사회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약자들을 존중해야 한다고. 하지만 사실상 KBS를 비롯한 제도권 언론들이 이런 역할을 해오지 못했다. 언론이 그동안 힘 있는 자들 편에서만 함께 해왔지 소외된 입장을 반영하지 못했으니 양극화가 심화된 것 아닌가 싶다.

특히 방송계 내부의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서 사실 아직 거의 개선된 것이 없다. 흔히 이야기하는 비정규직 프리랜서 외주 제작 업체에 대한 차별 대우나 불공평한 계약. 반드시 시정해야 한다. 다른 기업체나 기관에 시정하라고 보도를 하려면 먼저 내부의 불평등을 시정해야 한다. 이들과 상생할 수 있도록 우리의 잘못된 관행들을 타파해나갈 것이다."

정필모 기자 KBS 사장 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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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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