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라> 포스터.

<아키라> 포스터. ⓒ (주)삼지애니메이션


일본 애니메이션, 일명 '재패니메이션' 하면 <철완 아톰>의 '데즈카 오사무'와 30년 넘게 최고의 영향력 위에서 군림하고 있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떠오를 것이다. 그들 덕분에 재패니메이션은 그 어떤 문화 콘텐츠와도 어깨를 나란히 하는, 아니 그보다 더 위에서 굽어보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하지만 1980~90년대 재패니메이션의 진정한 중심에는 일명 '사이버 펑크' 장르가 있었다. 너무나도 유명한 것도 모자라 전설이 되어버린 영화 <공각기동대> <에반게리온> <인랑>. 이 세 작품만으로도 충분하고도 넘친다. 세 작품은 1990년대 태생이다. 굳이 명명하자면, 일본의 버블경제 시기에 태어난 작품들인 셈이다. 이들이 보여주는 디스토피아는 현재진행형이었던 것이다.

반면, 이들보다 거의 10년 가까이 먼저 태어난 시조격의 작품이 있다. 영화 <아키라>(1988)가 그것이다. 붕괴 조짐은 보였지만, 여전히 사상 최고이자 전 세계 최고의 물질적 토대를 세우고 있던 1980년대 후반 일본에서 만들어졌다. 이 작품이 보여주는 디스토피아는 현재만 아니었을 뿐, 과거와 근 미래와 먼 미래까지도 아울렀다. 재패니메이션의 기준이 되었다는 <아키라>는 어떻게, 무엇으로, 왜 진정한 전설이 되었나.

더할 나위 없는 완벽한 마스터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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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제3차 세계대전으로 도쿄는 무너진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흐른 2019년, 네오도쿄라는 이름으로 재건한 도쿄는 첨단을 달리는 도시가 됐다. 그러나 안으로는 혼돈 그 자체다. 그래서일까, 반정부 시위가 극렬하다. 한편 도시는 폭주족의 세상이기도 하다. 테츠오도 그중 하나인데, 사고를 당하고는 누군가에 의해 어딘가로 끌려간다.

테츠오의 친구이자 폭주족 집단 대장이라 할 수 있는 카네다는 테츠오를 구하고자 하지만 당연히 쉽지 않다. 와중에 반정부 조직 활동에 휩쓸리게 되고 조직원 케이와 함께 테츠오를 구하려는 움직임을 갖는다. 한편 테츠오가 끌려간 곳은 군 직할 연구소로, '아키라'라는 무지막지한 초능력 에너지를 봉인해 놓은 곳이다.

그곳은 시키시마 대령이 관리하는 곳으로, 오오니시 박사로 하여금 아키라를 비롯한 초능력 에너지들을 제대로 관리해 무너지고 있는 도시-사회를 지키고자 한다. 과거 한때 아키라의 폭주로 큰 피해를 본 적이 있기에 그 무시무시한 힘을 잘 알고 있다. 여기에 테츠오가 끌려왔고 그들은 테츠오에게 제2의 아키라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을 발견했다. 하지만 테츠오는 점점 폭주하게 된다. 테츠오와 도쿄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아키라>는 여러 면에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콘텐츠다. 아니, 애니메이션이자 만화였기에 가능한 완벽함이 있는 만큼 콘텐츠보다 애니메이션이라고 지칭하는 게 맞겠다. 이 작품은 일본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아우르는 동시에, 만화와 애니메이션만이 뽐낼 수 있는 모든 걸 보여준다. 그 자체로 마스터피스이면서도, 이전의 걸작들을 계승하고 이후의 걸작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일본을 설명하는 가장 탁월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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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유명한, 하나의 상징이 되어버린 이 작품에 대해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랴 싶다. 그럼에도,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위험을 무릅쓰고(?) 최선의 소개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뭐니뭐니 해도 이 작품에서 가장 충격적인 건 일본의 전과 현과 후를 아우른다는 점이다. 일본을 설명하는 가장 탁월한 작품 중 하나가 아닐까.

20세기 초중 일본은 사실상 전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킨다. 크지 않은 섬나라의 불과한 나라에서 분출되는 넘치는 에너지를 밖으로 뿜어내야 했는지, 나라를 이끄는 고위급들이 일반 사람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서였는지, 다양한 이유로 그러했을 것이다. 하지만 알다시피 결말은 끔찍하다. <아키라>의 시작과 겹치는 부분이다.

이후 시간이 흘러 일본은 전후 재건과 호황을 맞이한다. 1964년 도쿄 올림픽은 그 상징과도 같다. <아키라>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주 무대가 다름 아닌 공사가 한창인 올림픽 경기장이다. 2020년에 올림픽이 치러지는가 보다. 실제로 2020년은 도쿄 올림픽이 예정되어 있다. 30년의 시간차를 둔 소름 끼치는 예언이다. 한편 그와 반대급부의 극렬한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는데, <아키라>에서도 볼 수 있다.

한편, <아키라>가 당시 현재의 시대상을 녹여낸 건 테츠오의 광기와 폭주의 모습이다. 그는 자격지심이 심한데 그 욕망이 잘못 분출되어 폭주하고 마는 것이다. 일본의 과거가 그러했고, 1980년대 후반 당시도 그러했다. <아키라>는 그것이 결국 한낱 거품에 지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그렇다고 반정부 조직에 손을 들어주지도 않는다. 모든 것이 허망함으로 귀결되는, 허무주의의 한 단면이 엿보이기도 한다.

<아키라>의 절대적인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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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는 새발의 피다. <아키라>의 진정한 힘은 위에서 언급한 연출과 이야기보다 작화와 스타일에 있다. 말도 안 되게 세밀한 작화는 1989년부터 연재를 시작한, 장인정신에 빛나는 작화를 자랑하는 <베르세르크>에 비견되지 않을까. 즉,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말이다.

스타일이야말로 <아키라>를 규정짓는 가장 큰 개념이다. 수많은 <아키라> 이후 사람들이 존경하고 팬을 자처하고 오마주하고 패러디한다. 심지어 사이버펑크의 대표주자들, 일반인들에겐 <아키라>보다 훨씬 유명하다고도 할 수 있는 <공각기동대>나 <에반게리온>도 같은 급일 수 없다. 아류라고 할 순 절대 없지만, '제2의 <아키라>'라고 할 순 있겠다. 아니, 그래야만 할 것이다.

<아키라>는 '사이버펑크'라는 반체제, 반문화적인 성격을 갖는 문화 개념의 원류 중 하나이다. 그렇지 않아도 서브컬쳐로 인식되었던 재패니메이션인데, 거기에 서브 중의 서브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파격을 선보인 것이다. 결과는 모두가 다 아는 압도적인 모습의 발현. 콘텐츠 자체가 갖는 힘 앞에선 어떤 성찬의 미사여구나 불안과 걱정 따위는 필요가 없다. <아키라>는 그저 <아키라>일 뿐이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거다.

이런 작품이 또 나오긴 절대적으로 힘들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바라는 건 다름 아닌 '리메이크'다. <아키라>가 상당 부분 오마주했을 거라 생각되는 영화 <매드 맥스> <블레이드 러너>가 최근에 리메이크되지 않았는가. <공각기동대>처럼 실사로 리메이크하는 건 쉽지 않아 보이지만, 어떤 식으로든 다시 보고 싶다. 재개봉이 아닌 형태로.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형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singenv.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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