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영화관람 시장을 90% 이상 독과점하고 있는 멀티플렉스 3사

국내 영화관람 시장을 90% 이상 독과점하고 있는 멀티플렉스 3사 ⓒ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난 영화를 보러 영화관을 찾았지만, 그곳에 내가 볼 영화는 없었다. 내가 보려던 영화는 흔히 '다양성 영화'로 분류된다. 그러나 그 말과는 달리 극장에는 다양성이 보장되지 않고 있었다. 대다수 상영관은 대형 제작사의 투자를 받은 영화들이 차지한다. 소규모 자본의 다양성 영화들도 종종 극장에 걸리지만, 하나의 상영관을 여러 영화가 공유하는'교차상영'의 형태가 대부분이다. 지난 여름 영화 <군함도>는 개봉 첫 날 2027개의 상영관에서 1만174번 상영돼 스크린 독과점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물론 극장의 입장에서는 다수가 좋아할 만한 영화를 중심적으로 상영하는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대형제작사도 많은 자본이 움직이는 만큼 흥행이 보장되는 영화에 투자하는 게 안정적이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하면 안 될 점이 있다. 대다수 관객들이 좋아하는 영화는 고정불변의 상수가 아닌 변수라는 것 말이다.

1990년대, 2000년대 초 한국 영화의 주류는 영화 <조폭마누라>로 대표되는 조폭영화였지만, 지금은 옛말이 됐다. 아무리 흥미로운 요소가 가득하더라도,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채 반복되면 지루해질 수밖에 없다. 무한복제되던 조폭영화들은 관객들에게 외면을 받았다. 몇 년 전만 해도 흥행 보증수표였던 모성애 코드 또한, 늘어나는 관객들의 피로감으로 점차 그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따라서 변화가 필요하며, 그 변화는 새로움을 포함해야 한다. 그리고그 새로움은 주로 다양성 영화로부터 온다. 손익분기점이 높은 대중영화들은 새로운 시도를 하기에는 한계가 많은 게 사실이다. 반면 자본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운 다양성 영화들은 비교적 쉽게 모험을 택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영화에는 다양한 목소리가 담길 수 있으며 때로는 새로운 형식적 미학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 속에서 대중영화 제작자들은 시대의 변화를 느끼며 다수의 관객들에게 호소력 있을 새로운 요소들을 발견해 내고, 이를 그들의 영화에 반영한다. 그렇게 대중영화는 다수로부터의 사랑을 유지해 나간다.

세계 영화산업의 두 축인 미국과 프랑스가 다양성영화 시장 확대를 위해 노력하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그러나 <군함도> 사례에서도 드러났듯이, 우리나라 영화시장의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다. 다양성영화가 대중과 만날 기회는 많지 않고 그로 인해 소규모 영화 제작자들은 생계를 이어가기 힘들다. 이는 결국 다양성영화 제작을 감소시켜 다시 적은 상영관이라는 악순환을 낳는다.

이러한 문제점은 비단 영화뿐 아니라 정치판에서도 드러난다. 거대 정당들은 판을 뒤흔드는 새로운 주장이나 정책을 펼치기가 쉽지 않다. 대중영화처럼 그들도 다수 유권자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그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렇기에 대게 지지자 다수가 동의하는 의견에 수렴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영화와 마찬가지로, 정치판에서의 그 의견 또한 상수가 아닌 변수다.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기존의 의견을 반복 재생하면 유권자로부터 표를 받지 못한다. 따라서 새로움이 필요하며, 그 새로움은 소수 정당들로부터 나온다.

소수지만 다양한 목소리들은 개혁을 요구한다. 그 시점에서 그들의 주장은 대부분 다수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하지만 시대와 가치가 변함에 따라 주장들 중 일부가 다수에게 수용되기 시작한다. 거대 정당들이 이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지위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그 결과 소수 정당의 정책을 반영하거나 더 나아가서는 연정을 꾸리는 형태로까지 변하기도 한다.

 CGV 멀티플렉스 대형 상영관 극장

CGV 멀티플렉스 대형 상영관 극장 ⓒ CGV


10년 전만해도 소수 정당의 선언에 불과했던 '최저임금 1만 원'이 거대 여당의 '2020년까지 1만 원'이 된 건 대표적 사례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소수정당과 다양성 영화의 현 위치가 공통점을 가진다는 것이다. 대형 영화 위주의 상영관 구조속에서 다양성 영화가 소외된 것처럼, 소수 정당은 거대 정당 위주의 소선거구제에서 지지율보다 적은 의석수라는 피해를 받고 있다. 그리고 이는 소수의 목소리를 낮추는 효과로 작용하고, 악순환으로 점점 그 의석도 줄어들고 있다.

사실 영화는 안 보면 그만이다. 영화관에서 못 보는 게 아쉽지만, 금방 VOD로 볼 수 있으며, 얼마 없지만 몇몇 작은 영화관에서 볼 수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정치는 안 보면 그만인 문제가 아니다. 다양성영화의 부재가 재미없는 대중영화의 양산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개인적인 아쉬움으로 머물지 모르지만, 소수정당의 부재로 사회 변화를 담지 못하는 과정은 사회 전체에 피해를 준다.

거대 정당들만 남은 정치판은 변화의 동력이 부족하다. 선택지가 제한된 상태에서 유권자의 표를 얻는 방법이 거대 정당 서로간의 헐뜯기였다는것은 우리와 세계의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피해는 온전히 사회로 전파된다. 서로 반대하는 데에 치중했던 미국의 양당이 세계 제일의 양극화를 초래했고, 이는 트럼프의 당선으로 연결됐다는 결과는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요구할 수밖에 없다. 대형 극장에서 교차상영 없이 영화 <고스트 스토리>를 보기를.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두 문제는 같은 걸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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