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26일 방송된 MBC <뉴스데스크> 화면 캡처.

2017년 12월 26일 방송된 MBC <뉴스데스크> 화면 캡처.ⓒ MBC


파업이 끝났다. 어림잡아도 5, 6년 만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뉴스를 기다렸다. 담백한 사과와 반성이 바뀐 뉴스의 머리를 차지했다. 한동안 뉴스에서 사라졌던 익숙한 서울 동료 기자들이 돌아온 것을 바라보며 반가웠다. 그러나 오랜만의 뉴스 모니터는 이내 씁쓸함으로 뒤바뀌어 갔다. 뉴스데스크 후반부를 차지해야 할 제주 뉴스는 여전히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과 다른 지역MBC 대부분은 오랜 겨울을 끝내고 봄을 맞이하고 있다. 김재철-안광한-김장겸 체제의 흔적들을 지우며 저마다 기지개를 켜고 있지만, 국토 최남단 제주MBC는 여전히 겨울이다. 보도와 편성부문 제작 중단이 파업이 시작된 지난해 9월 이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서류상 현재 제주문화방송의 사장은 최재혁씨다. 최 사장은 김재철 체제 이후 아나운서 국장과 사장 특보를 하며 구체제에 부역해왔고, 아나운서국을 파탄 낸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2015년 교양제작국 정책 발표회에서 문지애, 오상진, 허일후 등 파업 참여 아나운서의 프로그램 배제가 최재혁 당시 아나운서 국장의 지시라는 증언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 최재혁씨는 2017년 3월, 제주MBC 사장 자리에 오른다. 지난해 6월 MBC 아나운서 16명이 기명 성명을 통해 그가 사측의 적극적인 하수인 역할을 해 제주MBC 사장 자리를 따냈다고 폭로했다. 제주MBC 사장 자리가 부역의 대가로 제공된 것이다.



MBC아나운서 27명 업무거부 선언 MBC아나운서 27명이 김장겸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과  신동호 아나운서 국장 사퇴를 촉구하며 2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사옥앞에서 ‘방송거부-업무거부 돌입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2012년 파업 이후 발생한 막무가내 부당노동행위, 야만적인 갑질 행태를 구체적 사례를 폭로하기도 했다. 업무거부에 돌입한 아나운서는 변창립, 강재형, 황선숙, 최율미, 김범도, 김상호, 이주연, 신동진, 박경추, 차미연, 한준호, 류수민, 허일후, 손정은, 김나진, 서인, 구은영, 이성배, 이진, 강다솜, 김대호, 김초롱, 이재은, 박창현, 차예린, 임현주, 박연경 이상 27명.

▲ MBC아나운서 27명 업무거부 선언MBC아나운서 27명이 김장겸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과 신동호 아나운서 국장 사퇴를 촉구하며 2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사옥앞에서 ‘방송거부-업무거부 돌입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2012년 파업 이후 발생한 막무가내 부당노동행위, 야만적인 갑질 행태를 구체적 사례를 폭로하기도 했다. 업무거부에 돌입한 아나운서는 변창립, 강재형, 황선숙, 최율미, 김범도, 김상호, 이주연, 신동진, 박경추, 차미연, 한준호, 류수민, 허일후, 손정은, 김나진, 서인, 구은영, 이성배, 이진, 강다솜, 김대호, 김초롱, 이재은, 박창현, 차예린, 임현주, 박연경 이상 27명.ⓒ 권우성


이런 사람이 여전히 서류상 제주문화방송의 사장인 이유는 제주문화방송의 지분 구조에 있다. 대략 서울MBC가 53%, 지역 2대 주주가 47%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데 상법상 대표이사 해임을 위해서는 주주 2/3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주의 2대 주주는 최 사장의 해임에 대해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최 사장은 현재 2대 주주 뒤에 숨어 방송을 인질로 삼아 퇴직위로금을 내놓으라며 시위 중이다. 이미 7명의 보직부장들이 사퇴해 명백하게 경영 능력을 상실했지만, 최재혁 사장은 월급과 퇴직위로금을 내놓으라는 고독한 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 같은 패악질의 역사는 유구하다. 서울서 내리꽂은 낙하산 사장들은 대부분 수학여행이나 신혼여행 이후 처음 제주를 와봤다는 듯 지역에 대한 이해 없이 자리를 지키다 갔다. 

 파업이 끝났지만 제작 거부를 이어가고 있는 제주MBC.

파업이 끝났지만 제작 거부를 이어가고 있는 제주MBC.ⓒ 언론노조 MBC본부


장면 1.

김창옥 전 사장 시절, 박근혜 정부가 국정교과서를 추진하고 있던 때였다. 제주가 어떤 섬인가? 해방 공간에서 4.3이라는 저항의 시기를 거쳐 절멸에 가까운 학살을 겪은 섬이다. 당연히 왜곡된 역사가 기록되는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여론이 높았고 교육감이 직접 나서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제주MBC 보도국은 교육감 대담을 뉴스로 내보냈다. 서울에서 내려온 사장은 크게 반발했다. 당장 국정교과서 찬성 대담을 내보내라는 게 사장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제주도지사를 비롯해 누구도 찬성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당시 보직부장은 내게 '새누리당 도당 위원장이라도 섭외하라'는 김 전 사장의 끈질긴 주문을 전하기도 했다. 물론, 2주 가까운 민주방송실천위원회의 저항 끝에 사장의 무지한 시도는 좌절됐다. 상식을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지 우리는 지난 9년 동안 배워왔다.

장면 2.

역시 김창옥 전 사장이 재임 중이던 2016년 9월, 백남기 농민이 사망했다. 왜곡과 조작이 판을 친 MBC 뉴스를 대신해 조합은 작은 추모 현수막을 내걸었다. 회사를 드나들며 현수막을 볼 때마다 먹먹했고 죄송스러웠다. 문제는 회사였다. 사측은 철거하지 않으면 사규에 따라 처리하겠다며 협박을 이어갔다. 노조 역사상 처음으로 강제 철거 공문까지 답지했다. 회사의 강제 철거 예정시간, 30여 명의 조합원이 모였고 막아냈다. 그러나 회사는 며칠 뒤 태풍 중계차 근무로 많은 조합원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추모 현수막을 강제 철거했다. 그리고 다음 날 우리는 두 배 큰 추모 현수막을 다시 달았다.

 파업이 끝났지만 제작 거부를 이어가고 있는 제주MBC.

파업이 끝났지만 제작 거부를 이어가고 있는 제주MBC.ⓒ 언론노조 MBC본부


서울의 거대한 싸움이 부각되면서 지역MBC의 싸움들이 뒤로 밀려났을 수도 있고 주목받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난 9년 지역MBC는 끊임없이 싸워왔다. 우리라도 버티고 버텨서 재건의 토대만이라도 지키고자 하는 몸부림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원칙을 지켰고 작지만 소소한 승리의 기억들을 조금씩 모아왔다. 그리고 감히 말하건대 그 기억들이 지난해 김장겸을 몰아내고 MBC를 되살리는 기틀을 마련했다고 믿는다.

우리는 계속 이어지고 있는 싸움이 힘들지 않다. 정의와 공정,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할 공영방송 노동자로서 응당, 마땅히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과정들이 우리의 DNA에 새겨져 또 다른 역사를 열어가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 서울과 지역의 왜곡된 지배구조, 서울 중심주의와 지역의 내부 식민지화, 무너진 네트워크로 압축되는 지난 시대에 대한 반성도 함께 뒤따라야 할 것이다. 

제주 4·3 70주년, 적폐 청산, 언론 정상화... 할 일 많은데 

 파업이 끝났지만 제작 거부를 이어가고 있는 제주MBC.

파업이 끝났지만 제작 거부를 이어가고 있는 제주MBC.ⓒ 언론노조 MBC본부


올해는 제주 4.3 70주년이자 제주문화방송 창사 50주년이 되는 해다. 1987년 이후 계속되어온 제주MBC의 4.3 다큐멘터리는 계속되어야 하고 지역방송으로서 반백 년을 맞는 기념비적인 해에 우리는 해야 할 일이 많다.

사실, 최재혁 사장에게 인간적으로 미안한 마음도 있다. 낙하산 사장 선임 직후부터 약 한 달간 제주 MBC 구성원들은 사장 출근 반대 투쟁을 벌였다. 대부분 일주일 안에 접었지만, 한 달이나 이어진 곳은 전국MBC 중 제주가 유일했다. 덕분에 취임식도 못 했고, 그간 열심히 부역해 얻은 대가로 제주MBC에 와 위세 좀 부려보려고 했을 텐데, 파업이라 아무것도 못했다. 인간적으로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래도 그간 많이 챙기시지 않았나. 이쯤에서 물러나는 게 좋겠다. 부역자이기는 하지만, 서류상 사장이셨으니 회의실 역대 사장 사진에 자리는 마련해드리겠다. 물론 몇 가지 부연설명은 붙겠지만 말이다.

 제주MBC 권혁태 기자.

제주MBC 권혁태 기자.ⓒ 언론노조 MBC본부 제주지부


* 권혁태 기자는 2005년 제주MBC에 입사해 사회·법조·행정 분야를 취재했고, 2010년부터 5년간 제주 4.3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도 했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제주지부 사무국장을 맡고 있으며, 하루빨리 제작 거부 사태가 마무리되어 다시 제주 4.3과 지역 현안에 대해 제대로 보도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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