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스키협회의 '안일한 행정'으로 인한 논란이 갈수록 커지는 모양새다. 평창 동계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있던 알파인스키 국가대표 선수 9명 중 5명이 무더기로 출전하지 못하게 된 바 있다. 이어 프리스타일 스키 하프파이프 희망 김광진(23·단국대) 선수도 협회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인해 자력으로 획득했던 평창 동계올림픽 출전 기회를 박탈당해 비판 여론이 더욱 커지고 있다.

김광진 선수는 초등학교 5학년부터 스키의 매력에 푹 빠져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하프파이프 종목은 지난 소치동계올림픽 때 정식으로 채택된 종목이다. 인기 종목은 아니었지만, 김광진 선수는 묵묵히 홀로 하프파이프를 개척해 왔다. 2012년 1호 국가대표가 된 후 소치 동계올림픽 때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이 종목에 출전해 25위를 기록했다. 소치 이후 기량이 급성장한 그는 2015년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열렸던 동계 유니버시아드에서 은메달, 2016년 미국 US레볼루션투어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해 12월 중국 허베이성 장자커우시에서 열렸던 2017-2018 국제스키연맹(FIS) 프리스타일 스키 월드컵에서 70.40점으로 7위에 오르며, 월드컵 첫 톱 10에 올랐다. 하지만 불운도 찾아왔다. 1차 시기에서 4위를 차지했던 그는 2차 시기에서 착지 도중 왼쪽 무릎 전방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큰 부상을 당했다. 최소 두 달가량의 회복기간이 필요했지만 엄청난 회복세를 보이며 자력으로 진출한 평창 동계올림픽에 반드시 나서겠다는 각오였다. 그러나 협회는 김 선수와는 상의 없이 평창 동계올림픽 최종 출전 명단에서 그를 제외했다.

4일 늦은 밤 김광진 선수에게 문자를 보냈고, 5일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전화 인터뷰 내내 담담함을 유지하려던 김광진 선수는 간간이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이는 듯했다.

일방적인 결정, 선수 상태는 한 번도 직접 확인하지 않았다

프리스타일 스키유망주 김광진  지난 2012년 1월 16일,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에서 열리는 제1회 동계유스올림픽에서 남자 프리스타일스키 하프파이프 8위를 차지한 김광진(당시 17세·동화고)

스키 남자 프리스타일 하프파이트 김광진 선수. 지난 2012년 1월 16일,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에서 열리는 제1회 동계유스올림픽에서 하프파이프 8위를 차지한 당시 모습. ⓒ 연합뉴스


사건의 발단은 지난달 26일 김광진 선수에게 온 코치진의 전화 한 통에서 시작됐다. 지난해 12월 국제스키연맹(FIS) 월드컵 주요 포털사이트 등에도 김광진의 이름은 명단에 올라 있었기에, 그는 진천선수촌에서 착실하게 재활운동을 하며 평창만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4년간 노력을 무너뜨리는 연락이 찾아왔다.

"(1월) 26일 금요일에 선수촌에서 재활운동을 준비하던 도중 코치로부터 '(평창 동계올림픽에) 못 나간다'는 연락을 받고서 처음 알게 됐습니다. 너무 화가 나고 어이가 없었습니다. 제게 말 한마디 없이 결정해서 통보한 것이었습니다."

여기까지의 내용은 이미 몇몇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이다. 하지만 더 기막힌 일은 그 다음에 이어졌다.

"제 소식을 들은 아버지께서 화가 나서 협회에 전화하니, 당시 26일에 경기력향상위원회를 열어서 진행하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알고 보니 모두 거짓이었어요. 25일에 마감된 국제스키연맹(FIS)의 평창 동계올림픽 출전선수 명단에 이미 저를 '포기한 선수'로 등록한 거였죠. 협회의 태도는 '이렇게 될 수도 있는데 어떻게 될지를 얘기해 준' 것도 아니라 그저 '이렇게 돼서 못 나간다'라고 못 박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협회의 기막힌 행동인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김 선수와 가족들로부터 수차례 항의를 받은 스키협회는 뒤늦게 선수가 머물고 있던 진천선수촌으로 사무차장, 프리스타일 주무관과 분과위원장, 상임이사 등을 보냈다. 그러나 이 방문마저도 협회는 김 선수 측에 어떠한 통보도 미리 하지 않았다.

"당시 경성현 선수 사태로 협회에 대한 여론이 굉장히 안 좋아지기 시작했던 시점이었는데, 27일 토요일 아침에 선수촌으로 불쑥 협회 직원들이 찾아왔습니다. 평소에는 제 상태가 어떤지 (알아보지도 않고) 한 번도 안 오시던 분들이 항의가 들어오니 그제야 오신 거죠. 협회 분들은 '제가 베이징 동계올림픽(2022년 예정) 때가 더 기대되는 선수다'라는 식으로 '선수 보호' 차원에서 그런 결정을 했다고만 얘기했습니다."

협회는 김 선수에게 트레이너를 파견했다고 밝혔지만, 이 부분에서도 김 선수는 '어떠한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트레이너분이 이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선수촌에 두 번 방문했는데, (트레이너는) 제가 어떤 치료를 받았는지 어떤 운동을 했는지 전혀 알지도 못했습니다. 상처 부위가 얼마나 아물었고 회복 속도가 어떤지 등도 당연히 몰랐죠. 그저 식사 몇 끼하는지 리포트 받아가고 다시 돌아가는 등 형식적으로 온 거였어요.

그때 선수촌 팀 닥터분께서 소견서를 주셨습니다. 저 역시 진료실에 같이 들어갔으니 소견서의 내용을 당연히 알고 있었죠. 소견서에는 분명히 제가 '내일이라도 당장 스키 탈 수 있다'고 적혀있었습니다. 트레이너분도 분명히 들었는데, 그분이 돌아가시고 난 후 결과가 이렇게 나온 것이었죠."

주치의도 '의아한 반응' 보인 협회의 결정

 김광진의 부상 직후 재활훈련 과정 모습

김광진의 부상 직후 재활훈련 과정 모습 ⓒ 김광진 SNS


무릎 십자인대 파열은 대개 회복 기간이 6~8주가량 소요된다. 지난해 12월에 부상을 당한 김광진 선수에겐 불과 2달 남짓 남은 상황이었다. 수술 후 회복 기간만 잡아도 평창이 이미 개막하고 난 이후였다. 하지만 김광진 선수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아픈 몸을 이끌고 수많은 병원을 다녔다. 그런 끝에 저명한 주치의로부터 실낱같은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제가 병원을 찾아갔을 때, 대다수 병원들은 수술을 해도 안 해도 (평창에) 못 나간다는 얘기뿐이었습니다. 일반적인 수술 시에 회복기간이 2달가량 걸리기 때문에 그랬던 거죠. 그때 건국대 김진구 교수님을 찾아갔는데 '메달은 힘들어도 완주는 할 수 있다. 하지만 넘어지면 또다시 다칠 수도 있다'는 희망적인 답을 들었죠. 저는 제가 지금껏 평창만을 바라보고 해왔는데 무엇이 무서웠겠어요. 그 날이 12월 27일이었고 곧바로 입원해 29일에 수술을 했습니다. 그리고 1월 2일에 퇴원했습니다."

그의 회복 속도는 무서울 정도로 빨랐다. 아무리 운동능력이 좋은 선수여도 십자인대를 다친 경우에는 수술 직후 2주가량은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김광진 선수는 3일 만에 퇴원해 러닝머신 위에서 걷는 등 엄청난 회복 속도를 보여줬다.

그런데도 김광진 선수의 상태를 본 스키협회의 의무분과위원회는 통계학적인 수치만을 놓고 그를 평창 출전 명단에서 제외했다. 명단 제외 사실을 안 직후 김 선수의 집도의 역시 크게 안타까워하며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불모지였지만 내게는 자랑스러운 종목이었다"

동계스포츠 종목의 경우 국내에선 대부분 비인기종목인 탓에 제대로 된 전용 훈련장조차 갖춰져 있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신설종목인 하프파이프는 국제규격 코스 자체가 없을 정도로 '황무지'라고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선수들에게 해외 전지훈련은 필수다. 막대한 자비가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일. 김광진 선수는 자신은 그나마 협찬을 잘 받은 편에 속한다며 상황을 설명했다.

"소치 이후 협회 도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의아했던 점은 대관료였습니다. 지난 시즌까지는 훈련장 대관료가 지원됐는데, 올 시즌이 되면서 갑자기 선수가 부담을 해야만 했습니다. 2주 정도 기준에서 200~300만 원가량의 자비가 들어갔습니다. 저희는 선택권조차 없었습니다. 만약 스키 훈련을 하지 못한다면 선수촌에서 체력 훈련밖에 할 수 없으니까요. 이외에도 프랑스 전지훈련을 다녀오는 데 800만 원가량 들었던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아직 이름조차 익숙하지 않은 '프리스타일 스키 하프파이프'. 비록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았지만 김광진 선수에는 '자부심'이 있었기에 축구나 야구 못지않은 자랑스러운 종목이고 국가대표였다. 김 선수는 "주변에서 '미래도 없고 밥이나 먹고 살 수 있냐'고 얘기를 들었을 정도로 모두가 반대했다. 하지만 '남들이 반대한다 해서 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 않냐'며 그것을 바꾸고 싶었다"며 자신의 꿈을 얘기했다.

결국 그의 도전은 대한민국 '1호' 프리스타일 스키 하프파이프 국가대표가 탄생하게 된 원동력이 됐다. 하지만 6년 후 안방에서 돌아온 동계올림픽을 앞두고는 '배신'과 '허탈감'만이 남을 뿐이었다.

"2012년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에서 있었던 동계 유스올림픽에 나갔습니다. 당시 국가대표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제가 대표는 아니었지만 올림픽에 나갈 수 있는 조건이 주어져서 출전했습니다, 협회에서는 만약 제가 좋은 성적을 내면 국가대표를 만들어 주겠다고 했고 저는 8등을 기록해서 그때 처음으로 한국에도 하프파이프 종목 국가대표가 생겼습니다.

하프파이프 종목 특성상 선수 생명이 길지 않기 때문에 평창이 거의 마지막으로 올림픽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소치 때 완벽하게 마치지 못해 후회가 많이 남았거든요. 만약 다른 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이었다면 이렇게 간절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셔서 한국에서 꼭 후회 없는 경기를 하겠다는 것이 다치기 전 제 목표였습니다. 이미 다치고 나니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포기도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이고 거기에 한국 국가대표인데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는 없었어요.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저는 재활 치료를 성공적으로 끝내서 꼭 평창에서 완주하겠다는 새로운 목표를 세웠었습니다."


김광진 선수는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후 지난 한 달여간 고통으로 매일 3시간가량밖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고 털어놨다. 매일 밤은 그에게 악몽과 눈물 투성이였다. 마약성 진통제와 수액주사까지 투여해가며 없었던 힘까지 만들어내 버텨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이런 고통과 부상도 평창을 앞둔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굳게 믿었다. 선수촌에는 코치진조차 없어 텅 빈 공간에서 혼자 있던 시간도 많았다. 공황장애까지 찾아와 그를 괴롭혔다. 주변에서 모두 '괜찮냐'고 물었지만 그는 항상 '괜찮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선수 '두 번' 죽인 협회... 소모품으로 전락한 선수들

 스키협회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평창 동계올림픽 출전이 좌절된 김광진 선수의 SNS 모습

스키협회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평창 동계올림픽 출전이 좌절된 김광진 선수의 SNS 모습 ⓒ 김광진 SNS


지난 4일 <노컷뉴스> 보도에 따르면, 스키협회 관계자가 "올림픽은 선수 욕심을 채우는 대회가 아니다"라는 충격적인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김광진 선수의 출전 명단 제외에 관련해 '선수에게 직접 얘기를 들어봤냐'고 묻자 "우리의 입장에서는 선수가 아닌 코치진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는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광진 선수에게 해당 보도에 관해 묻자 "봤다"면서 더욱 놀라운 뒷얘기를 공개했다.

"기자분들께서 인터뷰하신 협회 관계자의 답변을 봤는데 너무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답을 한 관계자가 저랑 친분이 있던 분이셨거든요. 형, 동생하면서 지낸 분인데 그 발언을 보고는 협회에 바로 전화하려 했습니다. '대체 올림픽이 선수 개인권리를 충족시키는 대회가 아니라면 당신들이 생각하는 올림픽은 뭐냐'고 묻고 싶네요. 정상회담을 하는 것도 아니고 공무원끼리 출전해서 이런저런 얘기하는 자리도 아니고요.

그럼 대체 저는 왜 있어야 하나요. 혼자 하면 되는거지... 저는 코치진들을 믿고 협회사람들을 믿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선수가 있어야 코치가 있고 협회가 있는 건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일할 수 있나요?"


그는 인터뷰 말미에 선수들에 대한 협회의 태도에 다시 한 번 분노하면서, "자신들(협회)의 이미지만을 위해 선수들을 어떤 방향으로든 결국 이용하고 있는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전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세계 4대 메이저 스포츠 대회(동·하계올림픽, 월드컵, 세계육상선수권)를 모두 개최한 대한민국. 하지만 체육계는 탁상행정으로 인한 문제를 수차례 드러냈다.

"이번 일로 선수들이 '소모품'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성적이 잘 나오면 상품화해서 이슈화하고 협회 이미지도 좋게 만들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깎아내리고... 결국 선수는 모든 측면에서 소모품이고 이용하는 것밖에는 안 됩니다.

지금까지 6년 가까이 국가대표를 했습니다. 소치 때 첫 정식종목이었고 거기에 제가 올림픽 첫 선수로 출전했었기 때문에 행복했습니다. 스키를 해 온 기간 동안 지금이 가장 많이 힘들어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고요. 협회와 6년 가까이 시간을 보내면서 많이 믿었고 함께 해왔는데 결론적으로 돌아 온 건 '(출전 불가) 통보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선수를 위해서 협회가 있는 건지, 본인들을 위해 협회가 있는 건지... 대체 무엇을 위해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두 번 죽는 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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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스포츠와 스포츠외교 분야를 취재하는 박영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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