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력> 포스터 앞면.

<염력> 포스터 앞면.ⓒ 레드피터


영화 <염력>은 산에서 약수를 마신 뒤 복통을 느끼다 염력을 갖게 된 신석헌(류승룡 분)이란 남자의 이야기다. 부인과 딸을 두고 가출한 뒤 경비원 생활 등을 하며 어렵게 살아가던 신석헌은 우연히 염력을 갖게 된 즈음 딸과 재회한다. 재회 당시 아내는 죽은 직후였고, 딸은 전통시장에서 치킨집을 하고 있었다.

때마침 신석헌은 딸의 치킨집이 강제 철거될 위기에 놓인 것을 목격한다. 그래서 얼떨결에, 아직 서툰 염력을 활용해 개발업자 및 용역 직원들과 싸운다. 용산 참사를 연상시키는 상황 속에서 그는 전통시장 세입자들의 호위무사가 되어 그들의 일터를 지켜낸다.

오늘날 초능력을 발휘하거나 공부하는 사람들은 <염력> 속의 신석헌처럼 아무래도 서민층일 가능성이 높다. 염력·예언능력·최면술 같은 초능력을 갖고 있거나 수련하는 사람들이 권력층이나 부유층인 경우는 많지 않다.

하지만, 옛날로 가면 갈수록 초능력은 서민층보다는 권력층의 능력이었다. 왕이나 장군, 고위 관료, 지식인 중에 초능력을 직접 보유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고대로 갈수록 종교와 정치가 합치되는 제정일치 사회에 가까워지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초능력자들이 지배층이 되는 일이 많으므로, 그들이 종교적 권위를 바탕으로 정치권력까지 획득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이다.

과거 권력층의 무기였던 염력

선덕여왕도 그런 능력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그는 개구리들의 울음소리를 근거로 '서라벌 서쪽 교외 계곡에 백제 병사들이 잠복해 있다'는 점괘를 얻은 뒤 군대를 급파해 백제군 500명을 격파했다. 실제론 초능력이 없으면서도 왕권을 지킬 목적으로 능력이 있는 것처럼 꾸몄을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적어도 기록상으론 선덕여왕을 포함한 고대 왕들이 그런 능력을 가진 예가 많았던 게 사실이다.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 따르면, 화랑 시절의 김유신도 산에서 수행하던 중에 신비한 노인한테 신선 술법을 배웠다. 이듬해인 열여덟 살에도 산상 수행 중에 하늘로부터 신비한 빛의 세례를 받았다. 실제로 그런 빛을 받았다기보다는, 그런 능력을 갖게 된 순간에 빛의 세례를 받은 것 같은 느낌을 가졌을 수도 있다.

기원전 11세기 강태공의 병법서일 수도 있다고 알려진 <육도>에 따르면, 고대 중국에서는 전투 개시 시점을 결정할 때뿐 아니라 전투 중에 공격 방향을 결정할 때도 점을 쳤다. 그렇기 때문에 장군이나 참모들 중에 예언능력자가 반드시 있어야 했다. 

초능력자들이 왕·장군·신하·지식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고대에는 사회 안에 축적된 정보의 양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경제 전문가들이 텔레비전에 출연해 1년 경제를 예언할 수 있는 것은 경제 정보가 사회 안에 많이 축적되어 있기 때문이다. 축적된 정보가 있기에 그에 기초한 논리적 사고로 미래를 예견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고대에는 그런 정보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초능력으로 미래를 예언하는 사람들이 나라에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또 고대에는 지금처럼 사회통제 시스템이 발달하지 않았다. 오늘날에는 정부 관료들이 책상에 가만히 앉아서도 국민들의 동선을 파악할 수 있다. 그래서 지도자가 신비한 능력을 보여주지 않더라도, 국민들을 국가 체제에 묶어두는 데 별 어려움이 없다.

고대에는 그런 시스템이 취약했기 때문에, 지도자가 끊임없이 신비함을 보여줘야만 백성들을 쉽게 묶어둘 수 있었다. 지도자가 일반인과 다른 신비한 능력자란 걸 보여주지 않으면, 수많은 백성들로부터 충성과 세금을 지속적으로 받아내기 힘들었다. 

 <염력> 포스터 뒷면,

<염력> 포스터 뒷면,ⓒ 레드피터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이집트를 벗어나 약속의 땅 팔레스타인으로 갔다. 그가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는, 신비한 능력을 끊임없이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집트인들의 추격을 물리칠 때, 광야에서 음식과 물을 마련할 때, 그는 그렇게 했다. <출애굽기> 17장 6절은 그 능력이 여호와 하나님의 계시로부터 왔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개역개정판 성경의 번역에 따른 것이다.

"내가 호렙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이처럼, 아주 먼 옛날에는 초능력이 서민층보다는 지배층의 능력인 경우가 더 많았다. 서민층에서 그런 능력자가 나오면, 그 사람은 지배층에 편입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초능력은 서민층이 권력층에 도전하는 데보다는 그 반대 용도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았다. <염력>에서 전통시장 세입자들을 돕는 데 초능력이 활용된 것과는 정반대였다.

초능력을 타고나든가 배우든가

그래서 그런 고대 사회에서 출세하려면 초능력을 타고나든가 아니면 배우든가 해야 했다. 단군 이래의 한국 신선교나 중국판 신선교인 도교에서 수행을 통해 선녀나 신선이 되는 방법을 가르친 것도 그것을 배우고자 하는 수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초능력자가 우대받는 사회였으니 당연한 일이다.

타고난 무속인은 고객을 보자마자 미래를 이야기해줄 수 있지만, 책으로 배운 역술가는 뭔가를 뒤져보거나 아니면 생년월일이라도 물어봐야만 미래를 얘기해줄 수 있다. 후자의 유형은, 고대 사회에서 초능력을 타고나지 못한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진로 중 하나였다.

고대 신화나 설화에는 대중 앞에서 신비한 장면을 연출하거나 환자들을 치료하는 초능력자가 등장한다.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최면유도법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일본최면학회 회장을 지낸 후지모토 마사오는 <최면술 입문>에서 그런 초능력자들 중에 최면술사가 많았다고 말한다. 최면술을 통해, 대중이 신비한 영상을 보거나 통증이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을 갖도록 하는 게 가능하다는 것이다.

"고대에 있어서도 최면 현상은 종교나 의술과 결부되어 있었다. 고대인은 최면 상태를 신인합일(神人合一)의 경지라 생각했기 때문에, 최면 상태에서 신탁을 받아 암시에 의해 병 치료를 한 것이다."

후지모토 마사오는 최면술을 활용해 보험업계에서도 일했다. 닛산생명 회장도 지냈다. 그는 보험업계에서도 최면술을 판촉에 활용한다면서, 부하 직원들한테 최면술을 가르친 경험을 소개했다.

"일전에 회사의 젊은 사람들이 우리 집에 찾아와 최면술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어느 정도 공부하면 제 몫을 할 수 있게 될까요?'라는 질문에 나는 '간단한 실험이라면 1, 2시간이면 가능하지 ······'라고 대답했다."

도사한테 배우면 한두 시간 안에도 기본기를 터득할 수 있다는 최면술은, 고대 사회에서 출세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도전하는 분야 중 하나였다. 그런 이들의 노력이 축적되어 있기에, 현대인들이 타고난 능력 없이도 책으로 최면술을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염력.

염력.ⓒ 위키백과(퍼블릭 도메인)


염력 역시 수행을 통해 획득하는 게 가능하다는 주장도 있다. 정재호의 <염력을 일으키는 호흡 기법>에 따르면, 호흡 때마다 척추를 펴는 방법으로 체내에 생체전기를 축적해두면, 몸을 움직일 때 순간적 괴력이 나타날 수 있을 뿐 아니라 실에 매단 핀을 손대지 않고도 움직일 수 있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위와 같은 체험이 이색적 풍경에 속하지만, 고대에는 출세를 위해서 그런 기술을 연마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랬던 초능력이 사회 발전의 결과로, 어느덧 지배층과 무관한 기술로 바뀌었다. 사회통제 시스템이 발달하고 각종 정보가 축적되면서, 초능력 없이 일반 학업능력만으로도 사회나 국가가 요구하는 각종 실력을 쌓는 게 가능해진 결과다.

그래서 오늘날의 지배층은 초능력 없이도 얼마든지 사회를 지배할 수 있다. 물론 초능력자를 개인적으로 고용한 권력층도 없지 않지만, 사회통제 시스템 및 정보체계 수준이 초능력을 능가하다 보니 굳이 그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 이로 인해 염력 같은 초능력이 오늘날에는 서민층의 능력으로 쓰이고 있다. 

<염력>에서 초능력이 서민층을 위해 사용되는 모습이 통쾌감을 주면서도 자연스럽게 비쳐지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만약 영화 속의 개발업자나 용역 직원들이 초능력을 써서 세입자들을 내쫓았다면, 상당히 부자연스럽고 이상한 영화가 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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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역사 추리 조선사, 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 못하나,발해고(4권본,역서),패권 쟁탈의 한국사,신라 왕실의 비밀,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상고사(역서),조선 노비들,왕의 여자,철의 제국 가야,최숙빈,한국사 인물통찰,동아시아 패권전쟁 등. www.kimjongs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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