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하루를 살았다. 그리고 밤이 되어 잠이 들었다. 내일을 기약하며. 그러나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하루'를 사는 사람들이 늘 있다. 우리의 현재는 누군가가 남긴 삶의 여정이다. 그런 삶은 과거 사람들의 흔적을 잇는 일이다. 우리의 '아침'은 반드시 누군가에게 빚을 지고 시작된다. 그 빚을 우리가 아는 것, 그것은 우리를 성장시킨다.

 영화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일> 중 한 장면.

영화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일> 중 한 장면. ⓒ (주)리틀빅픽쳐스


다큐 영화 <뚜르 : 내 생애 최고의 49일>은 26세 이윤혁의 자전거 여행을 꿈꾸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윤혁은 청춘 26살의 한복판에서 희귀암 판정을 받는다. "하늘이 무너졌다"는 말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는 이윤혁 어머니의 말과 함께 영화는 시작된다. 윤혁은 두 번의 수술, 2년간의 투병 생활 속에서 항암치료 중단을 선언한다. 그리고 자신의 꿈을 말한다. 세계적인 자전거 대회 '뚜르 드 프랑스' 코스로 떠나는 자전거 여행을.

의사는 말할 것도 없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무모한 계획을 반대한다. 그러나 이윤혁의 진정한 꿈, 단 한 번의 꺼져가는 인생을 빛낼 그의 꿈을 위해 후원자들이 모였다. 각자 다른 역할을 맡아 모인 사람은 모두 10명. 프랑스 모나코에서 시작하여 개선문에서 마치는 3500km 거리의 도전, 그것은 정상인도 힘든 과정이다. 그의 결심은 이렇게 시작된다.

"우리는 선택한다. 그 선택이 인생이다."

영화 <뚜르 : 내 생애 최고의 49일>에서 윤혁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선택했다. 그리고 용기 있게 그것을 받아들인다. 그는 자신에게 어떤 질문을 던졌을까. "나는 어떻게 살것인가. 이 남은 시간동안을 "아마 이런 질문이지 않을까.

"암 세포로 죽는 경우보다 세드 팩트로 죽는 경우가 많다. 암세포보다 더 많은 걸 잃고 있다는 생각이다."

2009년 6월 30일 일행은 프랑스행 비행기에 올랐고 7월 4일 모나코에서 180명의 선수와는 번외로 도전은 시작된다. 당시 이윤혁의 손에 들린 책은 "이것은 자전거 이야기가 아닙니다"다. 윤혁의 자전거에는 그의 도전이 암환자에게 용기를 주기 위한 경주임을 새긴다. 그리고 "희망(希望)"이라는 단어도.

멤버들은 이런 바람을 이야기한다.

"노력하는 만큼의 대가가 있으면 좋겠고, 사람 때문에 마음 안 아팠으면 좋겠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바라는 것을 다 이룰 수 있겠는가. 사람과 부대끼면서 살아야 하는 우리 삶이 어떻게 사람 때문에 마음 아프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언제나 우리에게 대가는 노력하는 만큼 정비례로 찾아오지는 않는다. 사람은 늘 상처를 주기도 하고 상처를 받기도 한다. 그런 것을 알지만 우리는 이런 것들이 없기를 바라며 살고 있다. 윤혁은 떠나면서 이렇게 말한다.

"암을 가지고 있는 나도 행복한데, 암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도 행복하길 바란다."

이윤혁은 희망의 메시지를 암환자들에게 남겼다. 그리고 어려운 길을 떠난다.

윤혁과 함께 자전거를 탈 사람, 실질적인 가이드가 된 이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축구 같은 경기에서 골을 넣는 것을 보면, 혼자서 우승한 게 아니라, 앞에서 바람막이 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가능한 것이다."

그는 윤혁이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동안 바람막이(자전거 주자 앞에서 달리며 바람을 막아주는 사람)를 자처한다.

 영화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일> 중 한 장면.

영화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일> 중 한 장면. ⓒ (주)리틀빅픽쳐스


함께 한다는 것은 서로의 불만을 인정하는 것

<뚜르 : 내 생애 최고의 49일> 속 인물들은 좋은 뜻으로 만나 시작한 일이지만, 서로를 잘 모르는 상황이니 서로의 취향은 어긋나고 부딪힌다.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우린 착각한다. '좋은 일로' 만났으니 모든 사람들이 배려할 것이라고. 배려를 받을 것이라고. '내'가 원하는 것을 모두 들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다. 같은 목적을 가지고 만났지만, 서로의 습관과 요구는 갈등 상황으로 대립하게 된다. 누구는 다치고 누구는 마음 상하고, 누구는 이것을 원하고 누군가는 그것을 들어줄 수 없고. 또 다른 누구는 그것이 왜 중요하냐고 따진다. 이런 갈등은 어느 집단에나 있기 마련이다. 산다는 것은 함께 무엇을 한다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조율'이 필요하고 다 들어줄 수 없는 상황을 겪을 수밖에 없다.

"누구나 떠난다. 홀로."

윤혁은 암환자 카페의 글을 보면서 먼저 떠난 고등학생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한다.

"'우성이랑 같이 지금 여길 돌고 있다' 생각하면 덜 힘들어요. 나 역시 마지막 생이 올 때쯤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까?"

그에게 두려움은 '곧 닥칠 죽음'이다. 그것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그것이 어떻게 나에게 올까. 그것은 우리를 어떻게 갈라놓을까. 그런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윤혁은 힘차게 도전한다. 어렵다. 길은 험하고 날씨는 매우 덥다. 천 미터 고지만이 아니라 이천 삼천의 고지가 눈 앞에 펼쳐지고 그 산을 넘어야 개선문에 이를 수 있다. 윤혁의 무모해 보이는 도전은 그 자신과의 약속처럼 보였다.

"지면 안 돼."

그에게 진다는 것은 자신에게 져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가 이 세상을 가장 멋지게 사는 방법, 그것은 그 자신만을 위한 게 아니었다. 그의 고된 자전거 여행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암환자들을 위한 것이다. 그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어 시작된 일이었고 그 한복판에 암환자 윤혁이의 꿈이 있었던 것이다.

힘들고 지칠 때 그는 하루를 쉬면서 다시 충전한다. 그리고 "아직은 나는 자전거를 탈 수 있잖아요. 암은 나중에 생각하자. 지금은 완주만 생각하자"고 자신에게 외친다.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 것인가

 영화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일> 중 한 장면.

영화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일> 중 한 장면. ⓒ (주)리틀빅픽쳐스


윤혁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프로젝트 매니저는 이렇게 자신을 설명한다.

"윤혁이가 제 어릴 적 모습 같아요. ... 중요한 걸 알아 버렸네. 얘를 더 힘들게 하는 것 같고 이 아이 힘든 걸 지켜보면서 배낭여행도 만족할 수 있었던 건데."

영화 <뚜르 : 내 생애 최고의 49일> 속에서 윤혁이의 삶이 윤혁에게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자전거 여행에 참여한 집단 모두에게 그 여행은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윤혁이를 도우면서 그들 스스로 자신을 도왔던 것이다.

밤길에 자전거를 타는 윤혁은 "별이 보여요. 하늘 보고 있으면 쫙 빨려 드는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윤혁은 암환자들을 위해 그 길에 도전했다. 그들을 생각하며 암이 자신의 몸에 퍼지더라도 자전거여행을 시작한 것이다. 뭐든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준 것이다. 그러나 죽음은 언제가 물러서지 않고 우리 곁에 맴돈다. 밤에 자전거를 타고 달리던 도중 윤혁은 꺼이 꺼이 울음을 운다. 하늘이 무너지도록. 그에게 바람은 단 하나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걸 지켜봤으면 좋겠어요."

죽음의 고지 3천 고지를 넘어서는 순간 톰 심슨 추모비를 만난다. 열정적인 삶을 불태우다 숨진 자전거 라이더의 삶을 목격한다.

"꿈을 꿨어요. 뚜르 드 프랑스로 가야겠다는 꿈. 조그만 눈을 뭉쳤는데 그게 커지듯이. 꿈이 커진 거죠. 암에 걸리지 않았다면 이루어질 수 없었을 거예요. 여행을 하는 과정에서 또 꿈을 좇고 있어요."

2009년 8월 20일, 49일째 드디어 프랑스 개선문에 도착한다. 윤혁에게 묻는다. "파리 멋있어?" 이 말에 윤혁은 이렇게 답한다. "아직 실감 안 나요." 자전거 여행을 마친 윤혁은 한국에 돌아와 병원에서 진단을 받는다. 진단은 "간이 부어있다'는 것이다.

 <뚜르: 내 생에 최고의 49일> 스틸 이미지. 주인공은 고 이윤혁씨이다.

<뚜르: 내 생에 최고의 49일> 스틸 이미지. 주인공은 고 이윤혁씨이다. ⓒ (주)리틀빅픽쳐스


1년이 흐른 뒤 2010년 7월, 윤혁은 야위어 침대에 누워있다. 프랑스에서 만난 태권도장 선생님이 병원에 찾아온다. 그들은 얼싸안고 한참을 운다. 윤혁은 "내가 정신을 차려야겠다"고 말하지만, 마음처럼 몸이 움직여주질 않는다. 둘은 엉겨 붙어 한참을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윤혁은 "정말 죄송해요. 꼭 살아야 하는데"라고 되뇌인다. 우리가 해야 할 말을 그가 대신하고 있었다.

그해 7월 15일, 스물 일곱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윤혁. 2010년까지 뚜르 코스를 완주한 한국인은 윤혁 외엔 없었다고 한다. 영화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대로 넘어지면 어쩔 수 없는 건데요. 그 전까지는 가야 해요."

그는 우리 마음 속에서 영원히 살아 있다. 그의 도전이 좌절하려는 사람들의 마음을 다 잡아 놓고 있을 것이다. 그가 행했던 일들은 우리의 기억 속에 쟁쟁거리며 우리는 확인한다. 우리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우리는 누구를 대신하여 지금 여기를 살고 있는지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영화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일> 포스터

영화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일> 포스터 ⓒ (주)리틀빅픽쳐스


죽음의 의미

교만한 우리를 사람답게 하는 것은 '죽는다는 것'. 누구나 영원하지 않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윤혁의 죽음 앞에 우리는 겸손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 누구의 죽음이든 그 죽음을 생각하며 무엇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한다. 죽음은 인간을 성숙하게 하는 주제다. 죽음을 아는 것, 죽는다는 것을 경험하는 것이 우리 다음 세대들에게 절실하다. 교육에서 죽음을 경악할 사건으로 경험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삶을 마감하는 과정이 죽음이라는 것을 알게 하는 것. 그것이 가장 큰 교육일 것이다.

'맹모삼천지교'에서 맹모가 처음 찾아간 곳은 무덤가였다. 무덤에서 맹자는 사람이 죽는다는 걸 배웠다. 우리는 오늘날, 죽음은 "멀리 두어야 하는 두려움"이 되었다. 성찰의 힘이 죽음에 있다는 걸 우리는 아직 가르치지 못하고 있다.

죽음교육 성찰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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