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거인 스틸컷

ⓒ 필라멘트 픽쳐스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연일 '이불 밖은 위험해!'를 속으로 곱씹으며 내 삶을 통째로 카피한 것 같은 영화를 한 편 봤다. 화면 속으로 과거의 나와 내가 알았던 이들의 삶이 송두리째 빨려 들어가 버린 것 같은, 그래서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빈껍데기만 남아버릴 것 같은 영화였다. 현실을 너무나 완벽하게 반영한 영화여서일까? 이런 영화를 보고 나면 기분이 유쾌하지 않다. 우울해진다. 그러면서도 한번 영화에 몰입이 되면 엔딩 자막이 올라갈 때까지 나는 채널을 돌리지 못한다.

영화 <거인>(2014)의 주인공인 영재(최우식 분)는 구역질 나는 집을 나와서 보호 시설인 그룹홈에서 자란다. 열일곱 살이 된 영재는 시설에서 예의 바르고 성실하게 생활한다. 하지만 그는 열여덟 살이 되면 시설을 나가야 한다. 그러나 그는 무책임한 아버지가 있는 집으로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가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 방법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신학생이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시설에서 하나뿐인 친구인 범태(신재하 분)가 사고를 쳐서 영재를 위기에 빠뜨리고 설상가상으로 아버지는 동생마저 시설에 넣으려고 한다

이 영화, 슬픔은 어쩔 수 없는 풍경이 된다

 영화 거인 스틸컷

ⓒ 필라멘트 픽쳐스


이 영화에서 보여지는 인물들의 절망과 슬픔은 그들의 삶에서 단순한 배경이 아닌, 어쩔 수 없는 풍경이 된다. 그 풍경은 너무 리얼해서 오히려 판타지 영화 같다.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일갈처럼 "영화 <거인>은 주인공 영재의 성장영화가 아니라 사회적 재난영화"라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는 이유다. 영화는 주인공 영재와 친구, 그리고 동생의 불행(가난)을 미화하거나 형식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이게 진짜 너희들이 살아야 할 현실이야!'라며 그들이 처한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특별히 나쁘다거나 악한 인물은 없다. 단지 각자가 처한 사정과 상황으로 인해 무능하고 무책임할 뿐이다. 그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이다. 영재를 그룹홈에 맡긴 부모도, 애정보다는 의무감뿐인 그룹홈의 원장 부모도, 따뜻해 보이지만 온기가 없는 성당의 신부님도,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영재의 친구까지 모두 그런 인물들이다. 우리는 단지 영화라는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기에 그들의 말과 행동이 낯설게 느껴질 뿐이다. 그리고 다른 상황이었다면 그들은 충분히 다른 꿈을 꾸었을 것이다.

영화를 보면 대개 등장인물, 특히 주인공 한두 명에게 감정이입이 되기 쉽다. 하지만 <거인>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일정 부분 모두에게 감정이입이 된다. 그룹홈의 새아빠(강신철 분)에게선 예전의 내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그때는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했던 말과 행동이 떠오른다. 그것은 자신의 눈이 아닌, 타인의 시선으로 볼 때 깨닫는 뒤늦은 반성문이다.

영재의 동생인 민재(장유상 역)는 가장 순수하다. 그는 가장 나약한 존재다. 화면 속으로 들어가 뼈가 으스러지도록 보듬어 주고 싶을 만큼. 그의 애처로운 눈빛과 어정쩡한 자세와 표정은 몇 해 전 세상을 떠나버린 막내를 연상시킨다. 공원 벤치에 앉아 캔맥주를 마시며, 좋았던 시절을 회상하던 슬픈 기억들. 몇 개 되지 않던 좋은 기억마저 아프게 흘러 버려서 흐릿한 안개처럼 떠오르는 이미지들. 그런 추억이라도 있어서 다행이지만. 형을 위해 자신을 버리라고 말하며 떠나는 민재의 씁쓸한 뒷모습이 막내의 모습과 겹치며 불안한 의식을 복잡하게 스며든다.  

우리의 인생은 완성되지 않은 영화의 '스포일러'다

 영화 '거인' 스틸컷

ⓒ 필라멘트 픽쳐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아이러니한 인물은 주인공 영재다. 관객들에게 보이는 그의 예의 바름과 성실함은 시설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영재가 마지막으로 의지할 곳은 시설뿐이기에 그는 그곳에서 끝까지 살아남아야 한다. 동시에 그는 시설에 후원품으로 들어온 신발을 훔쳐서 학교 친구들에게 파는 이중성을 보이기도 한다.

어떤 이들의 삶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영화의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다. "이 영화 꼭 선생님의 삶을 닮은 것 같아, 한 번 봐!" 올겨울 들어서 가장 춥던 날, 내게 이 영화를 소개해준 지인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녀는 나를 통해 그녀의 느낌이 맞았음을 확인받는다. 돌아보면 영재의 헉헉거림처럼 나의 그 시절도 넘치게 숨이 찼다. 어떤 기준에선 호시절이었으나 또 다른 기준으로는 가장 불행한 시기였다. 나이가 들면서 좋은 점은 헉헉거리는 숨을 조금 깊게 참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햇듯이 이 영화가 '성장영화가 아닌 사회적 재난영화'라는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삶이 있는 곳은 어디든지 그늘과 햇빛은 공존하는 법이다. 영화 속 인물들의 깊은 절망과 슬픔은 그들의 삶에서 단순한 배경이 아닌, 어쩔 수 없는 풍경이 된다. 그럼에도 청소년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가 시종일관 우울함만을 담고 있어야 했을까 하는 점은 아쉽다. 꽤 오랜 기간을 시설(지역아동센터)의 아이들과 지내본 경험상 아이들의 밝은 웃음소리는 모든 시간과 암흑 속에서 촛불 하나를 발견한 것 같은 희망을 주지 않았던가!

기다리던 버스는 정류장에서 멈추지 않는다

 영화 거인 스틸컷

ⓒ 필라멘트 픽쳐스


영재는 새로운 시설로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린다. 그는 아직 자신의 삶을 선택할 힘이 없다. 길은 구불구불하지만 끝없이 이어진다. 버스는 언젠가 정류장에 도착한다. 파란 먼지를 일으키며. 사륜구동의 자가용이 없다면 버스를 기다려야 한다. 자가용이 있어도 버스를 기다려야 한다. 프리츠 오르트만의 <곰스크행> 열차를 기다리는 주인공처럼. 때로는 목적지가 분명해도 도착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언젠가는 올지 모를 버스를 기다려야 하기에. 그리고 기다리던 버스가 온다면 탈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문 앞에 선 자신뿐이다. 버스가 전 정류장을 출발했다는 소식은 아직 들리지 않는다. 아니면 버스는 오래전에 출발했고 잠깐 졸고 있던 사이 이미 지나버린 건지도.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인철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페이스북에도 게재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기사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영화 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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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 뉴스 시민기자입니다. 진보적 문학단체 리얼리스트100회원이며 제14회 전태일 문학상(소설) 수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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