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기장군에 위치한 부산종합촬영소 부지

부산 기장군에 위치한 부산종합촬영소 부지ⓒ 부산시


지난해 12월 열린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9인위원회. 심의 안건과 관련해 현안을 보고 받던 위원들 대부분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일부 위원들은 지난 영진위의 업무처리에 허탈함까지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소유권도 없는 땅에 660억을 들여 촬영 스튜디오를 짓고 5년마다 사용 계약을 연장한다.'

이날 위원들을 놀라게 한 핵심적인 이유다. 부산촬영소 건립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대외적으로 공개될 경우 영화계 전체가 시끌벅적할 것으로 우려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는 것이 영진위 안팎의 이야기다. 이날 회의에서는 수습에 대한 논의가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부산에 새로 지으려는 부산종합촬영소 계획에 커다란 문제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영화계가 술렁이고 있다. 한국영화가 힘들여 만들어 놨던 남양주촬영소가 매각되면서 부산 이전을 준비 중인데, 소유권도 없는 남의 땅에 수백 억짜리 건물을 지어야 한다는 것에 다들 어리둥절하다는 반응이다.

특히 5년마다 사용 계약을 연장해야 하는 것 역시 수긍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은데, 추진 계획 자체에 심각한 하자가 있다는 비판도 더해지고 있다. 기존계획을 바탕으로 한 추진이 어렵거나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영화계 안팎의 전망이다

제동 걸린 부산촬영소 건립

 2016년 6월 영진위, 문체부, 부산시, 기장군이 체결한 부산촬영소 협약식

2016년 6월 영진위, 문체부, 부산시, 기장군이 체결한 부산촬영소 협약식ⓒ 영진위


부산촬영소 건립 사업은 2016년 매각된 남양주종합촬영소를 대체하는 계획이다. 부산시가 제공하는 부지에 660억 정도의 예산을 들여 건물을 짓는다는 것이 골자다. 문체부와 영진위, 부산시, 기장군은 2016년 6월 협약서를 체결했다.

영화계는 강제적인 이전에 문제는 많지만 부산촬영소도 남양주종합촬영소처럼 기본적으로 영진위가 부지소유권을 이전받아 건물을 짓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제대로 확인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부지 소유권도 없고 5년 단위로 사용 연장 계약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영화인들은 날벼락을 맞은 것 같은 표정이다. 기존 남양주종합촬영소는 영진위가 소유한 땅에 건물을 짓고 활용했다면, 부산촬영소는 5년 기간씩 빌려 쓰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특히 미래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가 크다. 자칫 그 지역에 새로운 개발 수요가 발생할 경우 연장계약이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양측 간 법적 소송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높은 것이다. 촬영장 활용이 원활치 않은 것은 물론 막대한 비용 손실을 떠안게 되는 등 많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영화인들이 수긍할 수 없는 이유다.

부산시 등은 설마 그런 일이 벌어지겠냐며 걱정할 게 없다는 반응이지만 남양주종합촬영소 경우를 봐도 결코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남양주종합촬영소는 영화인들의 오랜 숙원으로 1991년 착공돼 1997년 완공됐다. 당초 영구적 활용을 하려던 곳인데 2020년까지 강제로 옮겨져야 할 운명에 처해있다. 영진위가 땅을 구입해 만들어 놓은 곳도 이렇게 되는 상황에서 소유권도 없는 부지에 건물을 지었다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영화계 일부에서는 부산촬영소 계획이 사실상 부산시(서병수 시장)의 술책에 속은 것 아니냐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자기 땅도 아닌 곳에 수백 억 들여 집 짓고 5년 마다 연장하면서 쓰는 바보가 어딨냐?"는 게 영화계 관계자들의 인식이다. 부산종합촬영소 건립에 제동을 거는 것이 불가피해 보인다.

지난 1월 8일 취임한 오석근 영진위원장도 이런 사실을 확인한 후 당혹감을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영진위는 부산촬영소 설계비용, 교통영향평가 등에 들어가야 하는 비용을 보류시킨 가운데 대책 마련을 고심하는 모습이다. 영진위의 한 관계자는 "위원장 선임 전까지 직무대행이었던 이준동 부위원장이 이 문제 때문에 많이 골치 아파했고, 이를 해결해보기 위해 애쓰고 있던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협약 파기 후 부지매입 선회

 부산 기장군에 위치한 부산촬영소 건립 예정지

부산 기장군에 위치한 부산촬영소 건립 예정지ⓒ 부산시


영진위는 문체부, 부산시, 기장군과 맺은 기존 협약을 파기하고 부지 매입을 통해 소유권 확보한 후 촬영소를 짓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거쳐야할 과정들이 많고, 부지 매입비가 추가로 발생할 수밖에 없어 묘수를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는 분위기다. 담보를 통한 은행 차입이나, 건립비용에 문제가 생기면 센텀시티에 있는 영진위 사옥 부지와 종합촬영소를 각각 따로 두지 않고 아예 하나로 지을 수 있는 방안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기존 협약 대상자들의 생각이 조금씩 달라 난제를 푸는 데까지는 걸림돌이 많아 보인다. 부산시 관계자는 "기장 땅값이 500억 원 정도는 할 것"이라며 영진위가 부담하기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만일 매입이 조건이었다면 기획재정부 타당성 조사를 통과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라며  매입 가능성을 낮게 평가했다. 

부산시 관계자는 또한 "5년 임대 연장 계약은 공유재산법에 근거한 것으로 영구적으로 계약이 불가능하다"며 "부지가 좁으면 주변까지 넓혀줄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소유권도 없는 땅에 몇 백 억 건물을 짓고 연장 계약을 하며 쓴다는 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지 않냐는 지적에 대해, "정부차원에서 결단을 내려서 매입이 가능하면 좋지 않겠냐"며 한발짝 물러섰다.

부산 기장군 관계자는 "부지 매각 가능성에 대해 아직 확정적인 답을 할 수 없다"며 "협약서 내용을 따져보고 판단하겠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영진위가 법적 구속력이 없는 협약서를 파기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협약서는 상호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체결한 것"이라면서 부정적 입장을 나타냈다.

문체부 측은 "영화계의 우려는 알고 있으나 원만하게 정리하겠다. (촬영소 공사가)아직 시작도 안 된 사안이라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기장군이 땅을 팔 의사가 있는지 모르겠다"면서 "5년마다 자동 연장이 되는 거라 건물은 영진위가 부지는 기장군이 소유하는 것에, 별 문제없다"는 인식을 나타냈다.

원전 옆에 촬영소 불안

 부산촬영소 건립 예정지(파란색 원) 인근에 위치한 고리 원전(빨간색 원). 직선 거리로 6km가 안 될 만큼 가까이에 있다.

부산촬영소 건립 예정지(파란색 원) 인근에 위치한 고리 원전(빨간색 원). 직선 거리로 6km가 안 될 만큼 가까이에 있다.ⓒ 구글 지도


이전 영진위의 어설픈 행정에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소유권도 없는 땅에 지을 계획이라는 것을 제대로 알리지 않아 새로 구성된 영진위가 폭탄을 떠안았다는 것이다. 한 영화계 인사는 "지난 영진위에서 영진위원들에게 구체적 상황에 대해 보고한 내용이 없었고, 매각에 관계된 일은 전임 위원장과 사무국장이 전적으로 결정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세훈 전 위원장은 "남양주가 팔릴 것으로 전혀 예상치 못했다 갑자기 매각된 것"이라며 "부산시가 부지를 제공한다고 했지 판다는 것은 아니어서 영화인들도 그렇게 이해하고 있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곳에 부지 매입을 고려하기도 했으나 그럴 경우 시간이 길어질 수 있었다"면서 "원자력발전소 때문에 싫었지만 도예촌은 내가 오기 전부터 사전에 오고간 이야기였다"고 덧붙였다.

영화인들은 촬영소 이전 문제가 복잡하게 꼬인 이상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바람을 나타내고 있다. 한 제작자는 "남양주 매각대금을 돌려주고 다시 이전 정책을 재검토해야 맞다"며 "장기적으로 부지매입이 된다고 해도 부산촬영소가 원전과 가까이 있어 불안하다는 생각들이 많다"고 말했다. 물론 이 역시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남양주종합촬영소 건립에 기여했던 한 원로영화인 역시 "촬영소 수요는 수도권에 몰려 있는데, 누가 부산까지 가서 이용하겠냐"며 "원전과 가까이 있어 외국 촬영팀을 유치하려해도 쉽게 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고리원전과 촬영소는 직선거리로 6km에 조금 못미칠 만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다.

제작자들 역시 부산에서 작업을 할 경우 제작비 상승 부담이 있는데다 최근 대전에 스튜디오 큐브가 완성되면서 여기에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부산시도 경제적 지리적 불리함은 인식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영화계의 우려에 대해서는 "서울에서 (촬영소가 부산으로)내려오는 게 싫으니 하는 이야기"라며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조치를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영화인들은 "부지 매입을 통한 소유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부산촬영소 건립을  급하게 진행하면 안 된다"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이다. 따라서 협약 당사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경우 부산촬영소 건립은 표류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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