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소비하는 또 다른 방식으로 자리매김한 재개봉 영화가 올해도 관객과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재개봉 영화는 군소 투자·배급사엔 안정적인 수입원이, 영화팬에겐 흘러간 명화를 극장에서 만날 수 있는 매력적인 선택지로 지난 수년간 꾸준히 늘어왔다. 2017년 한 해만 해도 백 편이 넘는 재개봉 영화가 극장에 걸렸고 이들 가운데 열여덟 편이 1만 명 이상의 관객을 모았다.

매년 한 편 이상의 천만 영화가 탄생하는 한국 영화계지만 군소 영화사의 작품이 흥행경쟁에서 살아남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갈수록 판이 커지는 블록버스터 사이에서 안정적인 상영관 수를 확보하기 어렵고 한해 개봉하는 영화가 꾸준히 증가하는 현실 가운데, 관객에게 신작 개봉을 인지시키기란 쉽지 않은 과제기 때문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이미 인지도를 갖고 있는 유명작품을 다시 배급하는 건 영화사 입장에선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다.

관객 입장에서도 재개봉 영화는 눈이 돌아갈 만한 선택이다. 오늘의 트렌드에서 멀어진 옛 영화를 극장에서 다시 만나는 흔치 않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호빗> 시리즈가 막을 내리고 톨킨 세계관이 더는 스크린을 찾지 않은 지난해 <반지의 제왕> 확장판 3부작이 재개봉해 각 3만 명 내외의 관객을 모았다. 마블 코믹스에 기반한 영웅이 전 세계 영화판을 쥐고 흔드는 와중에 DC코믹스를 그리워하는 9만 관객이 <다크나이트> 재개봉관을 찾았다.

유난히 멜로와 로맨틱코미디를 찾기 어려운 최근 극장가 풍경 때문일까. 재개봉 영화판은 올해도 핑크빛으로 물들었다. 2017년 가장 흥행한 재개봉 영화는 영국산 정통 멜로 <이프 온리>로 10만 관객을 돌파했고 <첫 키스만 50번째> <클로저> <라빠르망>도 재개봉 영화 흥행의 기준점으로 불리는 1만 관객선을 여유 있게 넘어섰다.

빈익빈 부익부가 커져만 가는 2018년 한국 영화계에서 재개봉 영화 열풍은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다. 관객이 있고 극장이 있으며 소개할 만한 좋은 영화도 넘쳐난다. 무엇이 문제랴.

아래 2월 재개봉작 4편을 가려 뽑아 소개한다.

[하나] 시간이 흘러도 생명력 여전한 <타이타닉>

타이타닉 재개봉 포스터

▲ 타이타닉재개봉 포스터ⓒ 씨네힐


이 영화가 개봉하던 해 태어난 아이가 벌써 대학교에 가고 술을 마신다. 주연배우 레오나르도 디캐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은 당대 최고의 청춘스타를 넘어 오스카를 소유한 할리우드 대표배우로 자리매김했다. 바다를 사랑한 감독 제임스 캐머런은 이후 십수 년 동안 심해탐사와 해양연구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그사이 어느 누구도 <타이타닉>이 쌓은 업적을 넘어서지 못했다.

전 세계에서 무려 2조4000억 원이 넘는 돈을 벌어들인 <타이타닉>은 역대 영화 흥행순위 2위에 올라있다. 1위는 2009년작 <아바타>로 역시 제임스 캐머런의 연출작이다. < E.T >와 <쥬라기 공원> 등 전 세계적 흥행작을 여럿 감독하며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영화인으로 꼽힌 스티븐 스필버그 이후 가장 성공한 영화인이 바로 제임스 캐머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타이타닉>과 <아바타>는 작품성 측면에서도 호평이 쏟아진 걸작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영화인 동시에 시간이 흘러도 여전한 생명력을 간직한 명작이다. 어느 멜로영화도 쉬이 흉내 내기 어려운 절절한 사랑이야기를 어느 재난영화도 범접하지 못할 완성도로 찍어냈다. 바다와 관련해 가장 유명한 영화고 꽤나 많은 영화팬에겐 사랑에 대해서도 그럴 것이다.

<반지의 제왕-왕의 귀환>과 함께 역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가장 많은 11개 부문에서 수상한 영화로 기록돼 있다. 개봉 20주년인 올해 2월 1일 두 번째 재개봉을 앞두고 있다.

[둘] 10대 스칼렛 요한슨 볼 수 있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재개봉 포스터

▲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재개봉 포스터ⓒ 영화사 진진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동명유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소재로 화가와 하녀의 미묘한 관계를 긴장감 있게 그린 2003년작 영국 영화다.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소설을 원작으로 영국 출신 피터 웨버가 감독했다. 당시 십 대였던 스칼렛 요한슨이 하녀 그리트 역으로 출연해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그녀는 같은 해 출연한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와 이 영화로 생애 첫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 후보로 선정됐다.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화가이자 아내가 있는 남성 페르메이르와 그에게 끌리는 그리트, 그리트를 위협하고 탐하는 주변인들의 관계가 표면화되지 않은 긴장감을 영화 내내 지속하게끔 한다. 격렬히 서로를 사랑하지만 그 격렬함을 표출할 길 없는 남녀의 감정을 영화는 정적인 화면 아래 조용히 표현한다.

한국 고전영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와 함께 보면 좋을 듯하다. 2월 1일 재개봉.

[셋] 국내에서도 리메이크 예정된 <지금, 만나러 갑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재개봉 포스터

▲ 지금, 만나러 갑니다재개봉 포스터ⓒ (주)디스테이션


일본 TBS 방송국의 드라마 PD로 유명한 도이 노부히로의 영화 연출작 <지금, 만나러 갑니다>가 개봉 13년 만인 올 2월 8일 재개봉한다. 한국에서 인기 있는 일본 영화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이 영화는 낭만적이면서도 환상적인 분위기와 다케우치 유코의 미모로 개봉 당시 상당한 명성을 얻었다.

시간을 가로질러 자신의 비극적이면서도 동시에 행복한 일생을 알게 되는 미오(다케우치 유코 분)와 그녀를 그리워하는 남편과 아들의 이야기는 보는 이의 눈시울을 촉촉히 적실 것이다. 배우들의 재능을 이끌어낼 줄 아는 도이 노부히로의 장기가 빛을 발해 출연배우 모두의 연기가 상당히 안정됐다는 평가다. 해바라기 가득한 들판에서의 포옹신 등 영화팬 사이에서 오랫동안 회자된 명장면을 스크린을 통해 다시 만날 귀한 기회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소지섭과 손예진을 주연 삼아 한국에서도 리메이크 작업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늦겨울 연인과 함께 볼만한 영화로 강력추천!

[넷] 리메이크작의 흥행 참패, 원작이 나선다 <블레이드 러너>

블레이드 러너 재개봉 포스터

▲ 블레이드 러너재개봉 포스터ⓒ (주)해리슨앤컴퍼니


지난해 개봉한 드니 빌뇌브의 <블레이드 러너 2049>가 원작과는 또 다른 SF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은 가운데 리들리 스콧의 원작이 25년 만에 재개봉을 확정 지었다. <블레이드 러너>는 미래사회에서 점차 인간화되는 복제인간을 인간이 남몰래 제거한다는 설정으로 인류의 어두운 미래를 그려낸 디스토피아 영화의 대표 격으로 불렸다.

개봉 당시 과도한 편집으로 흥행에 참패했으나 마니아층의 열광적인 요청으로 1992년 감독이 직접 편집한 감독판이 출시되며 재평가됐다. 이후 비운의 걸작이란 평가와 함께 <에이리언>과 쌍벽을 이루는 리들리 스콧의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했다. 해리슨 포드, 룻거 하우어, 숀 영, 대릴 한나 등 느낌 있는 배우들이 출연해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은퇴한 블레이드 러너 데커드가 복제인간 로이와의 격투 끝에 그의 최후를 보는 순간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장면으로 기억된다.

리들리 스콧이 내달 초 신작 <올 더 머니>를 들고 돌아오는 것과 발맞춰 2월 중 개봉이 예상된다. SF영화의 팬이라면 어찌 극장을 찾지 않을 수 있겠는가!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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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존엄과 역사의 진보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간직하는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 팟캐스트 '김성호의 블랙리스트' 진행 / 인스타 @blly_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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