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나와 'Lonely'를 부르는 종현

KBS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나와 'Lonely'를 부르는 종현 ⓒ KBS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손가락 터치 한 번으로 오랫동안 위안을 주던 이의 죽음을 소비하고야 말았던 그 순간을. 오만 가지 생각이 드는 와중에도 떨리는 손가락은 위독, 죽음 등 생사를 오가며 1분마다 쏟아져 나오는 기사를 클릭하기에 바빴다.

종현. 반짝이는 재능을 가진 예술가이자 섬세한 위로를 전할 줄 알던 이.

마침내 그의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인 이후에야 종현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었다. 살아 생전 팬임을 자처했으면서도 우습게도 종현이 죽고 나서야 그를 더 잘 알게 되었다. 종현은, 내가 알던 것보다 더 괜찮은 사람이었고 알던 것보다 더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었다.

그는 지친 사람들을 볼 때면 "혹시 짐이 될까, 많이 버거울까"(Lonely) 사려 깊은 고민을 하던 사람이었고, 그가 내미는 손길은 항상 목소리를 내기 힘든 이들을 향해 있었다.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가 활발하게 게시되던 2013년에는 자신의 트위터 프로필을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대자보 사진으로 교체하기도 했다. 대자보를 쓴 성소수자 학생에게 트위터 메시지를 보내 "다름은 틀림이 아님을 똑바로 외치는" 이들을 응원하는 데 기꺼이 힘을 보탤 줄도 알았다.

세월호 희생 학생 중 자신과 생일이 똑같은 학생을 추모하기 위해 팬들에게 안산 합동분향소로 문자를 보내달라고 했던 종현은, 다른 이의 고통을 그냥 지나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남의 아픔에 기꺼이 손을 먼저 내밀면서도 정작 본인의 아픔을 드러내는 데에는 인색했다. 종현이야말로 누군가의 위로가 절실히 필요한 사람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왜 그래야 하는지 수백 번 물어봐도 날 위해서는 아니다. 널 위해서다. 날 위하고 싶었다."

공개된 유서 속 종현은 상처로 가득했다. 이겨낼 수 있는 건 흉터로 남지 않는다던 그의 말처럼, 그의 유서는 온통 그가 세상과 부딪히면서 생겨난 생채기투성이였다. 뛰어난 보컬리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일 뿐만 아니라 "반전은 없고 여전함만 가득한 하루의 힘듦을" 위로할 줄 알던 라디오 DJ 종현은 결국 세상에 부딪히는 것도, 세상에 알려지는 것도 감당하지 못한 채 스러져 버렸다.

27 클럽의 예술가들과 종현

 영화 <아이앰 히스레저>의 한 장면

영화 <아이앰 히스레저>의 한 장면 ⓒ 오드(AUD)


종현의 유서를 읽으면서 종현이 죽기 두 달 전 봤던 영화 <아이엠 히스레저>가 떠올랐던 건 그래서였다. 다크나이트의 광기어린 조커로만 기억되던 히스 레저는, 자신이 직접 카메라로 찍은 영상 속에서 활짝 웃고 있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회고 속 히스 레저는 그가 연기했던 <아임 낫 데어> 7가지 밥 딜런의 자아들처럼 각양각색으로 눈부시게 빛났다.

좋은 친구, 재능 넘치는 배우, 슈퍼스타, 사진작가, 뮤직비디오 감독, 예술가 그리고 좋은 아들의 모습. 평소 시간이 없다고 입버릇처럼 되뇌인 까닭일까. 27살에 죽은 예술가들처럼 되고 싶었다는 그는 27살에 죽었다. 히스 레저의 사인은 수면제 과다복용이었다. 그의 죽음을 두고 자살이 아니냐는 온갖 추측이 난무했지만 영화는 오히려 삶에 대한 에너지로 가득 찼던 그의 삶을 통해 그의 죽음이 자살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종현과 히스 레저는 서로 닮아 있다. 두 사람 모두 방식만 다를 뿐 각자의 삶을 치열하고 온전하게 살아냈고, 그들 삶의 궤적들은 예술이라는 형태로 남아 많은 이들에게 위안을 주고 있다.

향년 27세. 히스 레저도 종현도, 27세에 죽음을 맞이한 예술가들을 일컫는 '27 클럽'의 일원이 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어마어마한 고통을 견딘 후에야 자그마한 행복 하나가 나타나고 힘든 오늘을 견딜 만큼 내일이란 게 가치 있나 싶을 27년을 겨우겨우 버텨낸 나처럼, 그들도 언제까지나 함께 삶을 버텨갔으면 했다.

종현의 죽음을 보면서 오히려 더욱 더 허리를 곧추세우고 삶을 마주할 수 있었던 건 그들의 청춘이 서글프게 져버렸기 때문이리라. 남을 위로하느라 정작 자기 자신은 돌보지 못했던 그들의 삶이 너무나도 아프게 끝나 버렸기 때문에, 끝까지 살아남아서 그들을 기억하고, 그들이 끝내 이루지 못한 "지겨운 통증들을 환희로 바꿔내야"(종현 유서 중) 하기 때문에.

아름답게 슬픈 종현의 유작

종현을 떠나보낸 뒤, 종현을 떠올리는 것이 두려웠다. 이 글을 쓰면서도 고통에 시달렸고, 글을 쓰지 말까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어 괴로웠다. 그럼에도 그를 추모하지 않는 것이 되어버리는 일이 더 싫어서, 끝끝내 버텨 글을 완성했다.

종현과의 이별 후 들려오는 소식들은 조금은, 종현을 떠올리는 것을 편하게 해주었다. 유작 <빛이 나>에서 그는 아름답게 슬펐다. 그동안 종현의 음악을 들을 때는 몰랐던 것들이, 이제는 너무나 선명하게 보였기 때문이리라. '날 더 천천히 알아가줘'라는 그의 바람대로. 목소리를 내기 힘든 이들의 곁에 항상 있겠다고 말하면서도 날 꼭 더 안아달라고 감미롭게 말하는 종현의 모습은 이제껏 몰랐던 모습이었다. 그래서 서글프게 아름다웠다.

그 어떤 무언가가 종현을 힘들게 했을지 아직도 짐작이 가지 않는다. 왜 하필 종현이 떠나고 나서야 '날 더 꼭 안아줘'라는 그의 외침이 선명하게 들려오는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종현을 기억하는 이들은 그의 외침에 응답하고 있다.

<빛이 나>가 수록된 '포에트|아티스트(Poet|Artist)' 앨범 수익금 전액은 종현 모친에게 전달돼 어려운 환경에 처한 이들을 돕는 재단 설립에 보탬이 된다고 한다. 종현의 국외 팬들이 400만 원에 달하는 후원금을 한국 성소수자 인권운동 단체에 기부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종현을 알아갈수록 그가 남긴 흔적들은 더욱 더 환하게 남겨진 이들을 비춰주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시민단체 경실련 소식지 <월간 경실련>에도 게재됐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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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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