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23일,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 해롱이 유한양 역 배우 이규형 인터뷰 제공 사진.

배우 이규형은 최근 종영한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마약 중독자인 해롱이 유한양 역을 맡아 큰 사랑을 받았다. ⓒ 엘엔컴퍼니


제혁(박해수 분)은 출소해 다시 마운드에 섰고 지호(정수정 분)와 재회했다. 누명을 썼던 유대위(정해인 분)의 재심 신청이 받아들여졌고, 장기수(최무성 분)는 크리스마스 특별사면 대상자가 되어 사랑하는 딸과 남은 인생을 보내게 됐다. 출소한 법자(김성철 분)도 김제혁의 매니저가 되어 새 삶을 살게 됐고.

모두 나름의 해피엔딩을 맞은 서부교도소 2상6방 식구들. 하지만 많은 시청자들은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해피엔딩을 지켜보면서도 찝찝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을 것이다. 시청자들의 가장 많은 사랑과 응원을 받았던 '해롱이' 유한양(이규형 분)의 충격적 결말 때문이었다.

지난 23일 서울 강남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배우 이규형은 "뽕쟁이 주제에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다"면서,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바람직하고 꼭 필요한 결말이었다"고 말했다.

"해롱이가 출소하자마자 다시 약을 한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 이유나 과정은 몰랐죠. 지원이랑 헤어지나보다, 정도 생각했었는데, '그냥 못 참아서'더라고요. 당황스럽기는 했죠. 하지만 그게 더 현실적인 결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청자분들도 몇 달 동안 정 준 캐릭터에 뒤통수 맞은 기분이라 충격받으셨을 테지만, 진짜 마약 중독자 가족들의 마음은 더하지 않을까요? 마약이 얼마나 무섭고 끔찍한 건지, 이보다 명확하게 알려드릴 순 없었을 것 같아요." 

마약 다시 손 댄 해롱이... "충격적이었지만 꼭 필요했다" 

 2018년 1월 23일,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 해롱이 유한양 역 배우 이규형 인터뷰 제공 사진.

"뽕쟁이 주제에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바람직하고 꼭 필요한 결말이었다고 생각해요." ⓒ 엘엔컴퍼니


애정결핍인 해롱이는 엄마의 무관심과 냉정함에 받은 상처를 여러 번 이야기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가게 문을 닫지 않았던 엄마, 아들을 경찰에 신고한 엄마, 그리고 한 번도 교도소에 면회 오지 않은 엄마. 아들을 경찰에 신고할 수밖에 없었던 엄마의 마음이나, 매일 밤 가슴을 치며 눈물을 삼킨 엄마의 진심을 알지 못했다.

해롱이가 출소하던 날, 엄마는 처음으로 아들을 위해 가게 문을 닫았다. 오랜 시간 쌓인 엄마에 대한 오해를 풀 수 있는 기회였지만, 결국 해롱이는 자신을 기다리던 가족과 연인을 만나지 못한 채 다시 감방으로 돌아가게 됐다. 해롱이가 엄마를 이해할 기회를 잃어버린 게 제일 슬펐다고 하자 "나중에 이해하면 되죠. 전 해롱이가 다시 감옥에 안 갔을 것 같아요"라며 그가 상상한 해롱이의 해피엔딩을 말했다.

"엄마가 해롱이를 빼내기 위해 모든 재력을 동원해 싸우지 않을까요? 말도 안 된다, 어떻게 출소한 지 하루도 안 된 애를 함정 수사해서 다시 감옥에 넣느냐, 하고요. 엄마도 이젠 감방이 답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잖아요. 어떻게든 해롱이를 빼낸 다음에, 제대로 된 치료시설로 보내 사랑도 주면서 치료했을 것 같아요. 지원이는 지원이 대로 곁에 있어 주고, 엄마도 일주일에 한 번은 가게 문 닫고 찾아가고요. 뭐 그런 나름의 해피엔딩이 있을 거라 믿어요. (웃음)" 

인터뷰 내내 낮고,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을 이어가는 이규형의 말투에서 밝고 귀여운 해롱이가 쉽게 연상되지 않았다. 굳이 비교하자면 해롱이 보다는 지난여름 <비밀의 숲>에서 보여준 냉혹하고 차분한 분위기의 윤과장과 더 가까웠을 정도. 이규형은 본 모습과 상반된 이미지의 해롱이를 연기하면서 "내내 재밌었다"고 했다. 특히 해롱이와 카이스트가 청양고추와 물파스를 들고 싸우는 장면은 다시 봐도 너무 재밌었다고. "제혁이 빼고 모든 방 식구들이랑 다 싸운 것 같다"면서, "시청자분들도 맞아도 할 말은 하는 해롱이의 매력을 귀여워 해주셨던 것 같다"며 웃었다.

"<응팔> 보며 '내게도 기회올까' 했는데..." 

 2018년 1월 23일,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 해롱이 유한양 역 배우 이규형 인터뷰 제공 사진.

박해수, 박호산, 강기둥(송담당 역), 정문성(유대위 형 유정민 역) 등 출연진 대부분이 연극·뮤지컬 공연을 통해 여러 번 호흡을 맞춰 온 동료들. 덕분에 편안한 분위기에서, 즐겁게 연기할 수 있었다. ⓒ 엘엔컴퍼니


신원호 PD는 <슬기로운 감빵생활> 첫 방송을 앞두고 연 기자간담회에서 "아직 기회를 얻지 못한 좋은 배우들이 우리 드라마를 통해 발돋움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힌 바 있다. 그게 제작진이 생각하는 드라마 성패의 마지노선이라면서. 신 PD는 전작 <응답하라> 시리즈를 통해 이시언, 이성균, 손호준, 류혜영, 이동휘, 안재홍 등 개성 있는 연기력으로 현재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종횡무진 누비는 실력파 배우들을 대거 발굴한 바 있다.

요즘 드라마와 영화 편수가 많아지다 보니, 안정적인 연기 실력을 갖춘 배우들을 섭외하기 위해 공연장을 찾는 섭외 관계자들이 많이 늘기는 했다. 하지만 대중적인 인지도가 낮은 배우들에게도 중요한 역할을 맡기고, 또 흥행까지 이뤄내는 신 PD 작품 캐스팅 제안은 남다르지 않았을까? 

"영광이었죠. <응답하라 1988>에도 저랑 잘 아는 친구들이 많이 나왔거든요. 류혜영은 영화 <나의 독재자> 때 함께 했고, (최)성원이나 김성균 형과도 대학로에서 함께 활동했었거든요. 보면서 '아 내게도 저런 기회가 올까' 했는데, 오더라고요. 

요즘 시대가 바뀌어서 저뿐 아니라 무대에서 활동하는 배우들에게 좋은 기회가 많이 올 것 같아요. 여기엔 신 감독님의 역할이 커요. 무명 배우들과 함께해도 크게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셨잖아요. 제작사나 투자사 입장에서는 인지도가 높은 안정적인 배우를 원할 거 아녜요. 그때 그들을 설득할 수 있는, 인지도 없어도 실력만 있으면 잘 될 수 있다는 사례를 보여주신 거죠." 

박해수, 박호산, 강기둥(송담당 역), 정문성(유대위 형 유정민 역) 등 출연진 대부분이 연극·뮤지컬 공연을 통해 여러 번 호흡을 맞춰 온 동료들이었다. 이규형은 "이들 외에도 극 중 특수강간, 유기치사, 소지 모두 친한 동료들이었다"면서, "내게 억지로 약 먹이려던 뽕쟁이도 친한 형이었다"며 웃었다.

"대본을 보니 제가 약쟁이 두 명에게 맞는 장면이 있더라고요. 쉽지 않겠군, 싶었는데 친한 형이 전화해선 '내가 뽕쟁이2야' 하더라고요. '형이었어? 다행이다' 했죠. 제 배를 때리는 역할이었는데 '살살해'라고 이야기도 하고요. 덕분에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어요." 

좋은 배우들이 여럿 등장하다 보니 주고받는 연기를 통해 배우는 것도 많았다. 특히 상대역 송지원 역의 배우 김준한에 대해서는 "눈빛이 너무 좋더라"고 감탄하며, "감정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딱히 연기하지 않아도 눈빛만으로 감정이 전달되는 배우더라고요. 정말 많은 도움이 됐죠. 서로의 감정을 끌어올리기 위해 어떤 표현이나 연기를 억지로 하지 않아도 서로 감정이 잡히고 시너지가 나니까, 보는 분들도 편안하게 보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게이 커플이지만 큰 거부감 없이 전달될 수 있었던 것도 준한이 덕분이에요." 

윤과장과 해롱이? "이건 아무것도 아녜요" 

 2018년 1월 23일,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 해롱이 유한양 역 배우 이규형 인터뷰 제공 사진.

전작 <비밀의 숲>의 윤과장도 그렇고,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해롱이도, 이규형은 늘 작품의 '비밀 병기'였다. ⓒ 엘엔컴퍼니


이미 무대에서는 안정적인 연기력과 매력을 인정받은 배우였지만, TV 시청자들에게는 그야말로 신인. 하지만 전작 <비밀의 숲>의 윤과장도 그렇고,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해롱이도, 이규형이 맡은 역할은 늘 작품의 '비밀 병기'였다.

연달아 극의 가장 큰 반전, 가장 큰 임팩트를 쥔 인물을 연기한 소감을 묻자 이규형은 "열심히 해오다 보니 운이 따랐던 것 같다"며 웃었다. 스스로도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넘쳐나던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다른 탐나는 캐릭터는 없었는지 물으니 단박에 "없었다. 단언컨대 해롱이보다 센 캐릭터는 없었다"고 했을 정도다. "해롱이를 내가 맡게 돼 다행"이라면서 말이다. 

"2016년 가을에 신원호 PD님이 제 연극을 보러 오셨어요. 그러다 2017년 1월 <도깨비>에 출연했고, 2월부터는 <비밀의 숲>을 촬영했어요. 그리고 이번 <슬기로운 감빵생활>까지 출연하게 된 거죠. 그 사이에 뮤지컬 <사의 찬미>에도 출연했고요. 정말 알찬 한해였네요.(웃음)" 

무대 위 이규형을 사랑하던 팬들은 TV로 활동 영역을 옮기자마자 빠르게 자리 잡고 있는 그의 활약을 '이제 무대에서는 보기 어려워지겠구나'하는 서운한 마음으로 보고 있을 지 모르겠다. 이규형에게 '나만 알던 동네 맛집이 체인점 내는 걸 보는 기분'이라는 댓글을 봤다고 알려주자, 내내 조용하던 그는 처음으로 소리내어 크게 웃었다. "내 고향은 무대"라던 그의 말처럼, 해롱이를 떠나보낸 그를 만날 수 있는 곳도 뮤지컬 <팬레터>다.

"해롱이로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뽕쟁이가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을 줄 누가 알았겠어요. (웃음) 해롱이와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아쉽기도 하지만, 이미 끝난 캐릭터는 잘 보내주고 또 다음 작품을 준비해야죠. 

<팬레터> 속 제 모습은 윤과장이나 해롱이와는 완전히 다른 캐릭터에요. 저는 늘 새로운 역할에 도전하는 걸 좋아해요. 저라는 사람이 연기하는 거니까 아무래도 비슷한 면이 있을 수 있겠지만, 늘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같은 이미지로 소비되고 싶지 않거든요." 

그래서 이규형에게 지난 2017년은 분명 특별한 한 해였다. 그저 많은 사랑을 받고, 많은 관심을 받아서가 아니라, 앞으로 더 많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발판이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보여드린 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보여드리고 싶은 것도, 보여드릴 수 있는 것도 더 많아요. 탄력받았으니 앞으로 잔뜩 보여드릴 거예요. '어? 이규형은 이런 것도 하네?' 하실 수 있도록이요."

 2016년 촛불집회 당시 '시민과 함께 하는 뮤지컬 배우들' 공연 모습(오른쪽 맨 끝이 배우 이규형)

2016년 촛불집회 당시 '시민과 함께 하는 뮤지컬 배우들' 공연 모습(오른쪽 맨 끝이 배우 이규형) ⓒ 오마이TV


"너는 듣고 있는가 / 분노한 민중의 노래 / 다시는 노예처럼 살 수 없다 외치는 소리
심장 박동 요동쳐 북소리 되어 울리네 / 내일이 열려 밝은 아침이 오리라"

2016년 겨울, 서울 광화문 광장에 뮤지컬 <레 미제라블>의 대표곡 중 하나인 '민중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2012년 대선 당시 개봉한 영화 <레 미제라블>에 등장해 많은 관객을 울린 이 곡은 저항하는 민중의 마음을 담은 가사로도 유명하다. 추운 날씨에도 토요일이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며 몰려든 수백만 시민들과 함께하기에, 그보다 어울리는 노래도 없었다.

"너는 듣고 있는가"라는 가사에 맞춰 일제히 손가락으로 청와대를 가리킨 '시민과 함께하는 뮤지컬 배우들' 40인. 그 속에는 배우 이규형도 있었다.

"세월호 추모 공연이랑 촛불집회... 4~5번 정도 무대에 섰던 것 같아요. 호산이 형(문래동 카이스트 역)과 연극 <도둑맞은 책>을 준비할 때였는데 친한 변정주 연출이 '우리도 뭔가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제안해 함께하게 됐죠.

처음 아이디어는 배우 네다섯 명 정도 모여서 <레 미제라블> 노래 부르자는 거였어요. 그래서 제가 '그건 떼창으로 불러야 멋있어. 못해도 30명은 있어야 해' 했죠. 그때부터 주변에서 하나둘 배우들을 모았고 '시함뮤'가 탄생하게 됐어요."

평소 정치나 사회 이슈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다고 한다. 하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지켜보면서 "국민들이 신경을 안 쓰니까 나라가 이 꼬라지가 되는구나" 실감했다고.

"이제부터라도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뉴스도 많이 보고, 정치 관련 TV 프로그램도 가능하면 챙겨보려고 하고요. 정치인들 SNS도 팔로우해서 무슨 말 하는지도 지켜봐요. 이건 수동적인 노력이죠. '시민과 함께하는 뮤지컬 배우들'은 적극적인 활동이고요. 사실 세월호나 촛불 집회 참여는 정치적인 활동이라기보다 잘못된 걸 바로잡아야 한다는, 기본적인 시민으로서의 첫 행동이었던 것 같아요."

2016년 촛불 집회는 광장에 모였던 시민들에게도, 무대에 올랐던 이들에게도 특별한 추억을 남겼다. 150만 명이 지켜보는 무대에 선다는 건 대체 어떤 기분이었을지 궁금했다.

"100만 명이면 300석 규모 극장에서 10년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공연해야 만날 수 있는 관객이에요. 정말 가늠할 수 없는 숫자죠. 무대 내려와서 저희끼리 '와 이제 우리 공연 그만해도 되겠다' 했어요. 평생 연기해도 못 만날 관객을 한 번에 다 만났다고요. '우리 이제 접자' 했죠. 하하하. 그만큼 저희에게도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슬기로운 감빵생활 해롱이 이규형 유한양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