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도 대한빙상경기연맹의 허술한 행정은 여전했다. 쇼트트랙 심석희 선수가 코치에게 폭행을 당한 것부터 노선영(29·콜핑)의 갑작스러운 평창 출전 좌절까지, 연맹의 안일한 행정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그리고 그 피해는 모두 선수에게 돌아갔다.

10여 년 전부터 빙상연맹의 무능한 행정처리와 논란은 수없이 반복됐다. 하지만 빙산연맹을 그때마다 제대로 된 사과나 개선책을 내놓지 않고 그저 '급한 불 끄기'에 바빴다. 결국 안방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을 앞두고도 연맹은 대형사고를 냈다.

21세기에도 계속되는 선수 폭행 사태, 숨기기 바쁜 연맹

미디어데이 행사에 참석한 심석희 선수 여자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가 지난 1월 10일 오후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G-30 미디어데이’ 행사에 참석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미디어데이 행사에 참석한 심석희 선수 여자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가 지난 1월 10일 오후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G-30 미디어데이’ 행사에 참석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권우성


'쇼트트랙 간판' 심석희가 코치에게 폭행을 당한 사실은 평창을 앞두고 나온 가장 충격적인 뉴스였다. 심석희는 지난 16일 진천선수촌에서 갑작스럽게 이탈했다가 이틀 후인 18일에 복귀했다. 이탈 이유는 여자 쇼트트랙 대표팀의 A코치가 심석희를 폭행했기 때문으로 밝혀졌다. A코치는 심석희가 평창을 앞두고 기량이 올라오지 않아 폭력을 가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에 대표팀 주장을 맡은 심석희는 자존심이 크게 상해 결국 무단이탈을 감행했다고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이 사건은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진천선수촌에 방문하면서 알려졌다. 당시 여자 쇼트트랙 대표선수 중 심석희만 자리에 없었고, 이를 지켜본 심석희 선수의 소속사 관계자가 추적 끝에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런데 더욱 경악스러웠던 점은 연맹이 이 사실을 알고도 숨기기 바빴단 것이다. 연맹은 심석희가 선수촌에서 벗어난 사실을 알고도 하루 이상 방치했고 사건이 발생한 지 이틀이 지나서야 긴급회의에 들어갔다.

또한 지난 21일 <세계일보><이데일리> 보도 등에 따르면, 청와대 측이 문 대통령의 방문을 앞두고 심석희 선수의 참석을 요청했는데 연맹은 "독감에 걸려 나올 수 없다"는 황당한 변명으로 이를 무마하고자 했다. 연맹은 이사회를 긴급소집하고 뒤늦게 사건을 조사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담기엔 너무 늦은 상황이었다.

쇼트트랙은 동계올림픽 효자 종목 명성과 달리 유독 파벌, 성추행, 짬짜미, 불법 도박 등 불미스러운 사태들이 많이 겪었다.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당시엔 안현수(빅토르 안) 선수가 심각한 파벌 다툼의 희생양이 된 것으로 알려졌고 2010년에는 당시 남자 대표팀의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등 출전 엔트리를 놓고 짬짜미와 외압 파문이 일어난 바 있다. 2015년에는 남자 대표팀 선수가 후배 선수를 폭행한 일도 있었는가 하면, 2016년에는 남자 선수 20명 이상이 불법도박에 가담해 경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노선영, 하늘에 간 동생과 약속 지키려 했는데...

평창올림픽 출전 무산된 빙속추월 노선영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 추월에 출전할 예정이었던 노선영(29·콜핑팀)이 올림픽 출전 자격 자체를 획득하지 못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은 지난해 여자 팀 추월 대표팀으로 김보름, 박지우, 노선영을 뽑았으나, 행정착오로 이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다가 올림픽 개막을 약 보름 앞둔 시점에서 팀을 다시 꾸려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열린 제52회 전국남녀 종목별 스피드 선수권대회 여자 1,500m 결승 당시 노선영.

▲ 평창올림픽 출전 무산된 빙속추월 노선영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 추월에 출전할 예정이었던 노선영(29·콜핑팀)이 올림픽 출전 자격 자체를 획득하지 못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은 지난해 여자 팀 추월 대표팀으로 김보름, 박지우, 노선영을 뽑았으나, 행정착오로 이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다가 올림픽 개막을 약 보름 앞둔 시점에서 팀을 다시 꾸려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열린 제52회 전국남녀 종목별 스피드 선수권대회 여자 1,500m 결승 당시 노선영. ⓒ 연합뉴스


지난 23일에 또다시 대한빙상연맹의 황당한 실수가 드러났다. 평창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경기에 나설 예정이었던 노선영(29·콜핑)이 대회를 불과 보름 남짓 앞두고 출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사건의 전말은 연맹이 국제빙상연맹(아래 ISU)과 소통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 ISU 스피드 특별규정 209조 제2(Qualification System) 제e항


For the Team Pursuit events the ISU Members/NOCs may select their team (consisting of 3 or 4 Skaters) at their discretion among Skaters who have been entered for the Olympic Winter Games, but it is expected that all members of the team have been entered for the Olympic Winter Games with the intention also to fill an allocated quota place for at least one individual event/distance


위 내용은 국제빙상연맹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올림픽 팀추월 참가 자격 요건이다. 개인종목 출전권이 있어야만 팀추월에 나설 수 있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이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대한빙상연맹은 23일 밤 급하게 해명 보도자료를 냈다. 지난해 9월 시즌 개막을 앞두고 올림픽 팀추월 경기에 나설 자격을 확인하기 위해 ISU에 처음 메일을 보냈고 당시에는 개인종목 출전권이 없어도 기준 기록만 있다면 출전할 수 있다는 답을 ISU로부터 받았다고 한다. 연맹은 이 말만을 믿고 대표팀 선수들을 4차례 월드컵에 출전시켰다.

하지만 대한빙상연맹 지난 10일 ISU로부터 갑작스럽게 개인종목 출전권이 있어야만 팀추월 경기에 나갈 수 있다는 메일을 받았다. 노선영은 팀추월에 집중하기 위해 월드컵에서 개인종목보다 팀추월에 주력했고, 개인종목에서는 1500m 예비순위 2위에 오른 것이 전부였다.

ISU는 19일 발표되는 올림픽 최종 엔트리 개인종목 명단에 노선영이 포함되면 팀추월 출전이 가능하다고 했지만, 노선영은 이날 발표된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연맹의 '허술한 믿음'이 결국 선수의 올림픽 출전을 가로막은 셈이다.

지난 2016년 4월 골육종 암으로 먼저 하늘로 떠난 고 노진규의 누나인 노선영은 동생과 함께 평창에 나가는 것을 마지막 목표로 삼고 훈련에만 매진해왔다. 소치에서 예정됐던 은퇴를 미룬 것도 '못다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 약속은 연맹의 '실수'로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연맹, 구체적인 해결책도 내놓지 못해

가장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일들이 매년 수차례 반복됨에도 연맹이 제대로 된 행정적 개선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빙상계에서는 이번 사건 이외에도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가령 국내 대회의 경우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 대회는 무료 관람이지만 피겨스케이팅의 경우 이번 올림픽 3차례 선발전을 모두 유료로 진행했다. 같은 국내 대회이지만 종목에 따라 다르게 관람료를 적용해 피겨스케이팅 팬들은 강한 불만을 터뜨렸다.

평창 직전 올림픽이었던 소치 당시에는 김연아(28)가 러시아의 편파판정으로 은메달에 머물렀는데 이와 관련한 제소에 빙상연맹이 미온적으로 대처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일부 팬들은 연맹과 체육회 건물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는 등 적극적인 행정 대처를 요구했지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시간이 흐르면서 이 사태는 묻혔다.

 대한빙상연맹

대한빙상연맹 ⓒ 오마이스타


대한빙상연맹의 안일한 행정 문제는 무려 10여 년 전부터 지적된 부분이다. 지난 10년간 여러 사건이 지속해서 벌어지는데도 연맹의 소극적인 태도는 좀처럼 변하지 않고 있다. 10년 전과 지금이나 딱히 달라진 부분은 보이지 않는다. 안방에서 열리는 최초의 동계올림픽을 앞두고도 연맹은 연이은 사고에 대한 구체적인 개선책이나 제대로 된 사과를 내놓지 않고 있다.

이미 기자는 단일팀 논란과 컬링 연맹의 행정 문제 등을 서술하면서 국내 동계스포츠의 현실을 여러 번 꼬집었다.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 가장 행복한 시기를 맞아야 하는 국내 동계 스포츠가 체육계와 정치계에서 계속 일어나는 논란에 상처만 받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육계는 여전히 '금메달 8개·종합순위 4위'라는 허황된 목표만을 내세우고 있다. 제대로 된 행정도 지원도 없는 바닥에서 선수들에게 요구하는 수치가 너무나 가혹해 보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2000년대 초반이었던 10여 년 전과 2020년을 앞둔 지금, 시간은 몇 십 년이 흘렀지만 빙상계와 연맹의 태도는 과거에 멈춰있는 듯하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평창동계올림픽 빙상연맹 심석희 노선영
댓글1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동계스포츠와 스포츠외교 분야를 취재하는 박영진입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