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를 원했다면, 토트넘은 손흥민을 교체로 경기에서 빼지 말았어야 했다.

토트넘 홋스퍼가 22일 오전 1시(이하 한국시각) 영국 사우샘프턴 세인트 메리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7·2018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아래 EPL) 24라운드 사우샘프턴과 경기에서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갈 길 바쁜 토트넘은 승점을 1점밖에 획득하지 못하면서 리그 5위를 유지했다. UEFA 챔피언스리그(아래 UCL) 진출 마지노선인 4위 리버풀과 격차를 좁히지는 못했다.

경기 시작 전부터 불길했다. '주포' 해리 케인과 손흥민, 델레 알리가 선발로 나섰지만, '공격의 지휘자'인 미드필더 크리스티안 에릭센이 감기몸살로 인해 명단에서 빠졌다. 에릭센은 이날 전까지 리그 전 경기(23)를 선발로 나섰고, 6골 6도움을 올리고 있었다. 지난 시즌 리그 8골 15도움, 2015·2016시즌 6골 13도움이란 기록이 증명하듯 패스에 탁월한 능력이 있는 에릭센의 결장은 큰 타격이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지휘자가 빠진 토트넘은 답답했다. 전방으로 나아가는 패스가 계속 끊겼고, 투박한 공격만 이어졌다. 강한 압박과 빠른 측면 공격을 선보인 사우샘프턴에 주도권을 내줬고, 전반 15분에는 선제골까지 허용했다. 라이언 버틀란드가 순간적인 오버래핑을 통해 측면을 허물었고, 낮고 빠른 크로스를 올렸다. 토트넘 중앙 수비수 다비손 산체스가 슬라이딩해 걷어내려 했지만, 그의 발을 거친 볼이 골대를 때리며 골문 안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22일 오전 1시(한국시각) 영국 사우스햄튼 세인트 메리즈 스타디움에서 열린 사우스햄튼과의 2017~2018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24라운드 경기에서 해리 케인의 득점에 토트넘 선수들이 자축하고 있다. 왼쪽부터 차례로 토트넘의 손흥민, 무사 시소코, 해리 케인 선수.

22일 오전 1시(한국시각) 영국 사우스햄튼 세인트 메리즈 스타디움에서 열린 사우스햄튼과의 2017~2018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24라운드 경기에서 해리 케인의 득점에 토트넘 선수들이 자축하고 있다. 왼쪽부터 차례로 토트넘의 손흥민, 무사 시소코, 해리 케인 선수. ⓒ EPA/연합뉴스


토트넘이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공격 과정이 투박했지만, 세트피스는 달랐다. 전반 16분, 코너킥 크로스 이후 혼전 상황에서 에릭 다이어가 슈팅을 시도해 골대를 때렸다. 2분 뒤 코너킥에선 동점골이 터졌다. 벤 데이비스가 올린 크로스를 케인이 달려들면서 헤더로 연결해 골망을 갈랐다.

그런데도 에릭센에 대한 그리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토트넘은 세트피스나 기습적인 중거리 슈팅이 아니면, 수비가 중앙에 밀집한 사우샘프턴을 효율적으로 공략하지 못했다.

토트넘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은 후반 시작과 함께 변화를 줬다. 왼쪽 측면에 위치하던 손흥민을 중앙으로 옮기면서 4-4-2 전형을 만들었다. 팀 내 득점 1(케인), 2위(손흥민)를 전방에 배치하면서, 중앙에 밀집한 상대 수비를 공략하겠다는 심산이었다. 효과가 있었다. 전반전에 잠잠하던 손흥민의 침투가 살아나면서 공격이 활기를 띄웠다.

그러나 토트넘이 기대했던 득점은 터지지 않았다. 오히려 사우샘프턴의 빠르고 날카로운 역습에 휘둘리면서 가슴 철렁한 순간을 맞았다. 결국 토트넘은 에릭센의 공백을 메우는 데 실패했고, 지난달 사우샘프턴전 완승(5-2)의 기세를 이어가지 못했다.

포체티노, 손흥민을 꼭 '교체아웃' 해야 했나

손흥민은 70분을 뛰었지만, 인상적인 활약상을 남기지 못했다. 이를 부정하지 않는다. 볼 터치 횟수가 팀 내에서 가장 적었다. 29회였다. 스트라이커 케인(40회), 우측면을 책임진 시소코(59회),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 알리(43회)와 비교하면 더 도드라진다. 물오른 드리블이나 패스, 장기인 슈팅을 시도할 기회 자체가 적었다. 후반 시작과 함께 중앙으로 자리를 옮겨 날렵한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지만, 거기까지였다.

하지만 손흥민의 존재감이 적었던 데는 알리와 시소코의 탓이 상당했다. 이날 알리는 무모했다. 빠른 패스가 필요한 시점에서 무리하게 드리블하며 기회를 날렸다. 손흥민이 뒷공간을 파고들 때, 알리의 패스는 늦거나 오지 않았다. 후반 19분, 아크서클 부근에서 시도한 기습적인 중거리 슈팅 외에 알리의 발에서 위협적인 공격 장면은 나오지 않았다.

시소코는 이날도 '무색무취'였다. 그는 유로 2016에서 조국 프랑스의 준우승을 이끈 핵심 선수로 토트넘에 입단했지만, 기량에 대한 의문이 끊이질 않는다. 지난 시즌 30경기(리그+UCL+UEL)를 뛰면서 단 한 골도 기록하지 못했다. 올 시즌에는 리그 23경기(선발 12)에 나서는 등 많은 기회를 잡았지만, 한 골 넣었다.

'187cm-90kg'의 체격 조건을 앞세운 힘과 스피드만 돋보일 뿐, 장점을 찾기 어렵다. 드리블은 매번 길고, 패스는 늘 부정확하다. 결정력은 더 아쉽다. 이날은 우측 풀백인 서지 오리에와 자리가 겹치는 모습까지 보이면서 아쉬움이 더 컸다. 에릭센의 자리를 대신한 만큼 뒷공간을 노린 침투 패스가 요구됐지만, 그런 장면은 나오지 않았다.  

의문이다. 포체티노 감독은 후반 25분, 첫 교체 카드로 에릭 라멜라를 선택했다. 라멜라는 에릭센 다음으로 패싱력이 뛰어난 자원인 만큼, 당연했다. 문제는 교체로 나오는 선수가 손흥민이었다는 사실이다.

손흥민이 부진한 경기력을 보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올 시즌 팀 내에서 두 번째로 많은 득점(리그 8골/시즌 11골)을 기록 중이다. 손흥민(1465분)은 올 시즌 EPL에서 케인(1958분)과 알리(1931분), 에릭센(1966분)과 비교해 상당히 적은 시간을 뛰면서도 대단한 성과를 내고 있다.

손흥민은 UCL 조별리그 도르트문트전, 전반기 크리스털 팰리스전, 왓포드 원정 등에선 승점을 따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지난 5일 웨스트햄전에선 후반 막판 환상적인 중거리 골로 팀을 패배 위기에서 구해냈다.

치명적인 약점이던 기복도 최근에는 사라졌다. 손흥민은 지난해 10월 리버풀전 이후 3경기 이상 침묵하지 않는다. 득점이든 도움이든 공격 포인트를 꾸준하게 쌓는다. 패스와 드리블이 물올랐고, 슈팅은 더 정교해졌다. 포체티노가 승리를 원했다면, 손흥민을 뺄 것이 아니라 그가 더 많이 볼을 소유할 수 있게끔 했어야 한다.

최근 물오른 감각을 뽐내며 '교체아웃' 되는 일이 줄어들긴 했지만, 손흥민은 팀 내에서 가장 좋은 경기력을 보였음에도 교체로 그라운드를 떠나는 일에 익숙하다. 지난해 9월 홈에서 열린 스완지 시티전(0-0), 지난달 동점골을 기록했던 왓포드전(1-1)이 대표적이다. 승부가 결정된 상황에선 문제가 없지만, 시소게임에선 자주 빠진다. 케인이나 알리, 에릭센은 경기력이 나빠도 풀타임을 뛰는 것이 익숙하지만, 손흥민은 아니다.

손흥민을 교체로 빼내서 딱히 효과를 본 적도 없다. 라멜라는 올 시즌 리그 11경기(선발 2)에서 2도움만 기록 중이다. 시소코는 토트넘 입단 한 시즌 반 동안 1골 넣고 있다. 페르난도 요렌테는 13경기(선발 1)에서 1골 기록 중이다. 이날도 손흥민 대신 투입된 라멜라는 골문 바로 앞에서 결정적인 기회를 날렸다.

포체티노는 '한 방'을 갖춘 손흥민이 아닌 기복이 심한 알리나 결정력이 부족한 시소코를 빼야 하지 않았을까. 손흥민이 케인이나 알리, 에릭센만큼의 신뢰를 얻으려면 얼마나 더 잘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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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 토트넘VS사우샘프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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