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 16 포스터

tvN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 16 포스터 ⓒ tvN


<막돼먹은 영애씨>(아래 막영애)는 한국의 몇 안 되는 시즌제 드라마로 성공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007년 방송을 시작한 이래 현재 방영 중인 16시즌까지 약 10년간 쉼 없이 달려왔다. 이는 단순히 방송국의 의지 차원으로만 이어갈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막영애>를 사랑하고 아끼는 시청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다.

10년 동안 방영된 <막영애> 속 이영애(김현숙 분)의 시간은 시청자와 나란히 세월을 겪었고, 그만큼 영애의 삶은 다른 드라마의 등장하는 캐릭터의 삶보다 훨씬 가깝게 느껴졌다. 특히 한국의 30대 여성 직장인으로 겪는 애환에 대해 직접적으로 다뤘으며, 공기처럼 퍼져 있는 성차별에 대해 영애는 자신의 방식으로 싸워나갔고, 이를 옆에서 쭉 바라본 시청자들은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다른 드라마에서 소거되고 혹은 왜곡되었던 삶이 <막영애>에서는 영애라는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것이다.

 tvN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 16 중 한 장면.

tvN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 16 중 한 장면. ⓒ tvN


2017년부터 방영된 이번 시즌16에서 영애는 임신하게 되는데, 직장에서는 언제라도 경력 단절을 맞이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 속에 임신 사실을 숨겨야 했으며, 병원과 육아용품 등에 경제적인 압박에 허덕여야 했다. 사회는 엉성한 시스템 속에서 임신한 여성을 맞이하고, 출산과 육아의 감당 몫을 온전히 개인 '여성'에게 짊어지는 부당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시즌이 16번째를 맞이했지만, 여전히 세상은 영애의 편이 아니었고, 녹록지 않은 삶은 영애의 앞에 거미줄처럼 놓여 있었다.

그렇지만 어떤 부분은 도무지 작중 의도를 이해하기 힘들고, 영애가 영영 불행하기를 제작진이 바라는 것 같이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 영애의 몸에 대해 묘사하는 데 있어 위험수위를 넘나드는 장면이 종종 등장했고, 지속적으로 영애의 몸에 대해 우스꽝스럽게 처리하는 부분에서 제작진이 의도했던 웃음의 포인트가 고약하기만 했다. 모든 사람의 몸은 각기 다른 모습이고, 자신의 모습 그대로 존중받아야 한다. 제작진은 우리 사회에 깊게 뿌리 박혀 있는 획일화된 미적 기준을 더욱 공고히 하면서 영애를 포함한 모든 개개인이 자신의 몸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기를 바라는 것일까?

유흥업소 출연하는 극 중 남성, 여자 가슴은 'AA건전지'라고?

극에 달했던 것은 지난 2017년 12월 25일 방영된 7화였다. 회사라는 공적 공간에서 동료 직원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성인 웹툰을 보며 서로 시시덕거리는 남자 직원들에 대해 드라마는 별로 문제시 삼지 않았다. 오히려 이들의 행동을 독려했고, 남성 판타지를 충족해야만 하는 것이 본래 남성들의 본능처럼 그렸다. '남자니까 어쩔 수 없다'는 식의 태도는 잘못된 남성성을 부추기고, 성을 이분법적 틀 안에서만 다룰 수밖에 없게 된다.

심지어 극 중 등장인물들은 웹툰을 보고서 자신들의 판타지를 충족하기 위해 산타걸이 등장하는 유흥업소에 거리낌 없이 출입하는데, 이들의 행동에 대해서 드라마는 단지 철이 없어서 행한 일이라고 일단락한다. 어떠한 반성의 여지 없이,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가볍게 처리하는데, 이는 절대로 가벼운 사안이 아니다.

해당 화를 끝까지 지켜보면 이들 남성에 대해서 시종일관 연민의 정서로 외롭고 쓸쓸하게 그리고 있다. 철이 없고 외롭다는 이유로 유부남을 포함한 남성들의 유흥업소 출입을 대놓고 허락해도 괜찮다는 말인가?

 tvN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 16 중 한 장면.

tvN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 16 중 한 장면. ⓒ tvN


또한 12화에서는 규한을 둘러싼 수민과 수현의 경쟁이 본격화된다. 드라마에서 삼각 관계는 극을 진행하기 위해 아주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코드이다. 갈등이 발생하고, 또 그 갈등이 봉합되는 흐름 속에서 로맨스는 진전되고 확장되기 때문에 시간적 추이 속에서 극을 진행해야 하는 드라마의 성격상 아주 유용한 관계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남자가 생각하는 여자'에 대해 지나치게 몰두하게 된다는 점에 있다. 극 중 여성의 가슴 사이즈에 관해 'AA 건전지'라고 희화화하면서 자신이 사랑하는 몸에 대해 회의감을 들게 하고, 머리가 짧고 목소리가 허스키하다는 이유로 여성적이지 못하다고 변화를 촉구한다. 또한 성숙하게 옷을 입고 주체적으로 자신의 말을 하는 여성에 대해서는 '아줌마'라고 꼬리표를 붙이며, 드센 여성은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이니 꼬리를 내려야 한다고 말한다.

'성차별에 싸우던' 영애, 점점 캐릭터 성격을 잃어간다

<막영애>는 자신의 고유한 모습을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 역설하기보다는, 남자가 좋아하는 모습으로 변모해야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것처럼 여성을 교정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정작 남성 캐릭터인 규한(이규한 분)의 모습은 어떤가?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는가? 극 중 규한은 여전히 잘 씻지 않고, 잘못된 발언들을 멈추지 않고 있다. 노력하지 않는 남성 규한의 좌표는 고정점이고, 주체적으로 사랑을 하려는 수민과 수현의 좌표만이 왜 변경해야 하는 것일까?

앞서 얘기했지만, 16시즌까지 <막영애>가 이어질 수 있었던 까닭은 수많은 미디어에서 의도적으로 배제했던 여성의 삶을 주인공으로 삼고, 이에 공분하고 공감했던 수많은 시청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방영되고 있는 <막영애>의 모습은 기존 미디어에서 보여주었던 잘못된 인식을 어떠한 반성이나 풍자 없이 재송출하고 있다. 작가의 집필 의도는 악의적으로 보일 지경이고, 불성실하게 캐릭터들을 그리는 모습은 '시즌이 거듭할수록 오히려 퇴보하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tvN 홈페이지에 게재된 <막영애>의 기획 의도를 다시 한번 들여다본다. "걸크러쉬 사이다 여주인공의 원조!" 대체 어느 곳에서 걸크러쉬와 사이다를 느낄 수 있는가? 시트콤이라는 미명 아래 여성을 희화화하는 것을 기획 의도로 바라볼 수 있을까? '김빠진 사이다' 속에서 <막영애>를 응원했던 수많은 시청자들을 대상화되고 우롱 받는 느낌이 든다는 것은 아는지 모르겠다. 위로의 삶이었던 영애의 삶을 순식간에 비웃음거리로 만든 <막영애> 제작진들의 태도에 대해, 극 중 라미란(라미란 분)의 대사를 빌려 말하고 싶다.

그런 태도 "넣어둬, 넣어둬."

 tvN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 16 캐릭터 설명.

tvN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 16 캐릭터 설명.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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