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흥식 감독 영화 <종이비행기의 노흥식 감독이 12일 오후 서울 휘경동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노흥식 감독 영화 <종이비행기: 시크릿 리스트>를 연출한 노홍식 감독. ⓒ 이정민


"실제로 지금도 벌어지는 일이고, 업계 사람이라면 다들 알고 있는 이야기다."

영화 <종이비행기: 시크릿 리스트>(아래 <종이비행기>)의 노홍식 감독은 이 부분에 힘을 줘 설명했다. 많은 상업영화들이 저마다 시사회를 열고 다수의 개봉관을 가져가는 와중에  노 감독은 소규모 극장용 영화로 연예계 성상납 문제를 지적하는 작품을 만들었다.

드라마 <쾌걸 춘향>(2005), <하얀 거탑>(2007), <여사부일체>(2008) 등의 피디를 거친 노홍식 감독은 20년 넘게 연예계에 몸 담으며 연예계 데뷔시스템의 민낯을 목격해 온 인물. 특히 배우 장자연과 관련한 몇몇 인물들을 겪고, 간헐적으로 보도되던 성상납 문제를 접한 후 지금과 같은 영화를 구상했다고 한다. <종이비행기>는 걸그룹 데뷔를 꿈꾸던 고등학생들이 사이비 연예기획사에 속아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겪게 되는 이야기를 다뤘다.

 영화 <종이비행기: 시크릿 리스트>의 포스터.

영화 <종이비행기: 시크릿 리스트>의 포스터. ⓒ 노홍식


"후속작도 기획 중"

"실제로 고 장자연씨 회사에서 일했던 후배가 있다. 지금은 한국을 떠났는데 그 친구에게 당시 회사에 문제가 좀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 와중에 또다른 지인이 그 회사와 (배우로) 계약한다고 하기에 말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결국 그 소속사에 들어갔고, 몇 년 뒤 만났는데, 그의 피폐해진 모습을 보고 마음이 많이 아팠다. 정확히 통계를 낼 수는 없지만 상당 수의 기획사가 지금도 성상납과 접대를 강요한다.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여성뿐만이 아니라 남자 지망생 사례도 많다. 돈 많은 사모님, 중국 부자들의 접대를 강요받는 친구들이다."

이 얘길 하면서 노 감독은 서울 모처에 사무실을 차려놓고 지망생들에게 작품 출연을 빌미로 접대를 강요하는 회사들을 언급했다. "<종이비행기>를 찍은 뒤 지망생 몇 명과 함께 그 회사의 대표를 고소하려 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부제에 언급된 '리스트'를 떠올리며, 그에게 2009년 사망한 장자연과 관련한 리스트에 대해 더 물었다.

"직접 눈으로 그 리스트를 보진 못했지만 구두로 암암리에 다들 알고 있는 내용이다. 제 영화엔 매니저가 아이들을 그런 일을 하도록 유도하는 걸로 나오지 않았나. 25년 연예계에서 일하면서 그런 사기꾼들을 많이 만났다. 영화에서 그린 내용과 이들의 수법이 똑같다. 그렇게 상처 주면서도 동시에 입단속을 해서 고소를 못하게 하는 것이지."

이런 이유로 <종이비행기>의 후속편 또한 준비 중이다. 데뷔한 이들이 주축이 된 일종의 복수 스릴러 장르가 될 예정. 노홍식 감독은 "<판도라의 상자>라는 제목인데 연습생들이 데뷔 이후 자신들을 괴롭힌 자들에게 복수하는 설정"이라 설명했다.

노흥식 감독 영화 <종이비행기의 노흥식 감독이 12일 오후 서울 휘경동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25년 연예계에서 일하면서 그런 사기꾼들을 많이 만났다. 영화에서 그린 내용과 이들의 수법이 똑같다. 그렇게 상처 주면서도 입단속을 해서 고소를 못하게 하는 것이지." ⓒ 이정민


"연예계 전체가 매도되지 않길"

앞서 말했듯 <종이비행기>를 일반적인 상업영화와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다. 장편 영화이긴 하지만 출연 배우들은 대부분 신인이며, 스태프 역시 영화를 공부하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꾸려졌다. 제작에 들어간 비용은 천만 원 남짓. 노홍식 감독은 "제작비가 많이 적기에 6일 만에 모든 촬영을 마쳐야 했다"며 "스태프들과 배우들은 영화의 수익이 나면 분배를 받는 식으로 계약했다. 다들 이번 작품에 헌신했다"고 강조했다.

"솔직히 노출 장면이 들어가면 투자를 해주겠다는 곳도 있었다. (같은 장자연 리스트를 소재로 한 영화) <노리개>에서도 노출이 나오기도 하고. 노출 장면이 담긴 영화를 IPTV 용으로 풀면 잘 팔리기 때문이지. 그런데 이런 영화일수록 노출이 담기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너무 고지식해 보일 수 있지만 후속작에서도 노출은 담지 않을 것이다. 

장자연 사건이 잊힐 쯤 이 작품을 구상하고 찍었다. 근데 지금 다시 그 사건이 재조명 될 줄은 몰랐다. 때가 맞은 셈이지. 성인 여성의 성적 대상화도 문제지만 미성년자의 대상화는 더 큰 문제라고 생각했다. 전작이 10대 성매매를 다룬 <모범생>이었는데 다들 너무 무감각해져 있다. 이런 영화들로 뭔가 사회적인 운동을 하고 싶은 마음이다."

노흥식 감독 영화 <종이비행기의 노흥식 감독이 12일 오후 서울 휘경동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명확한 실체가 밝혀지지 않은 장자연 사건에 대해 노 감독은 새삼 안타까움을 표했다. "오디션을 보려는 지망생들에게 혹시나 이상한 기획사가 말도 안 되는 조건으로 유혹하면 일단 경찰서에 같이 가서 계약서를 쓰라는 조언을 하곤 한다"며 그는 "그렇게 판단력이 흐린 사람들을 속이는 사기꾼들이 가장 나쁘다"고 질타했다.

연예계의 어두운 면을 다뤘지만 영화 말미엔 '이런 일로 연예계 전체가 매도당하는 일이 없길 바랍니다'라는 문구가 나온다. 이 문구를 넣은 것에 노홍식 감독은 "정말로 잘 일하는 사람들이 피해를 봐선 안 되기 때문"이라며 "좋지 않은 부분들이 하루빨리 개선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라 덧붙였다.

"이런 작은 영화로 모든 게 바뀔 순 없겠지만 몇 명이라도 이런 문제에 의지를 갖고 임한다면 바뀔 수 있지 않을까. 더불어 힘들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 재능을 다 해준 스태프들과 배우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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