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 정체기로 접어든 반면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영화주간지 <씨네21>은 지난 2107년 연말 특집호에 실린 <투자·배급사 책임자로부터 듣는 2018년 한국영화의 경향과 주요 작품 일람>이란 기획 기사의 서두를 이렇게 열었다. 이러한 평가와 전망이 딱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국내 극장산업의 정체기가 몇 년째 확연한 만큼 대형 투자·배급사들의 "라인업 확보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2017년 국내 영화 총 관객 수는 2억1987만 명. 5년 연속 2억 관객 돌파요, 전년보다 284만 명 늘어난 숫자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작년 연말 열린 CJ CGV 미디어포럼에선 "국내 극장 산업의 정체기가 확연하다"는 결론이 강조됐다. 여타 2차 플랫폼 수입이 미국·일본과 비교해 현저히 떨어지는 환경 역시 한국영화 산업의 고질적 문제다.

그런 가운데, 워너브러더스코리아 로컬 프로덕션과 이십세기폭스인터내셔널 프로덕션코리아가 본격적으로 한국영화 제작에 뛰어들면서 2018년 소위 100억 대 이상 영화들의 경쟁은 더울 가열되는 양상이다. 기존 CJ와 롯데, 쇼박스와 NEW라는 4강 체제의 틈바구니에서 이 두 개 직배사와 더불어 중소배급사인 메가박스와 리틀빅빅쳐스 역시 2018년 <범죄도시>와 <아이 캔 스피크> 등 흥행작을 내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수많은 2018년 기대작 중 <마약왕>과 <인랑>, <공작>을 소개하는 이유도 바로 (리틀빅픽쳐스를 제외하고) 이 배급사들의 투자 책임자들이 복수로 꼽은 영화이기 때문이다. 앞서 소개한 <씨네21>의 기사에서 5개 회사의 투자 책임자들과 CJ E&M 영화사업부문의 홍보 책임자들 중 다수가 우상호 감독의 <마약왕>과 김지운 감독의 <인랑>, 윤종빈 감독의 <공작>을 타사의 기대작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제껏 공개된 면면은 고개를 끄덕이기에 충분해 보였다.

<내부자들> 우민호 감독 + <택시운전사> 송강호

 <마약왕> 크랭크업 현장. 좌로부터 우민호 감독, 배우 조정석, 송강호, 배두나.

<마약왕> 크랭크업 현장. 좌로부터 우민호 감독, 배우 조정석, 송강호, 배두나.ⓒ 쇼박스


"아마 한국영화 어떤 장르에서도 볼 수 없었던 신선한 면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타이틀롤인 '마약왕' 이두삼 역의 송강호는 작년 10월 크랭크업 현장에서 이런 소감을 남겼다. <마약왕>은 1970년대 부산을 배경으로 마약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두삼'과 그를 돕고 쫓고 함께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시대극이다. 이두삼과 관계를 맺는 로비스트 김정아 역은 2017년 <비밀의 숲>으로 진가를 입증한 배두나가, 이두삼을 쫓는 검사 김인구는 영화 <형>으로 300만에 육박하는 관객을 끌어 모은 조정석이 맡았다.

사실 '마약'이라는 소재는 한국에서 그리 흔한 소재는 아니다. 최호 감독의 부산을 배경으로 마약상과 그를 쫓는 형사를 내세운 <사생결단>이 벌써 2006년 영화였다. 반면 콜롬비아 마약 카르텔의 이면을 철저히 파헤친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드라마 <나르코스>는 전 세계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며 시즌4 제작에 돌입했다. 실존했던 인물들의 콜라보로 알려진 이두삼의 흥망성쇠를 그릴 것으로 알려진 <마약왕>은 <나르코스>와는 다른 '한국적' 상황에 주목할 것으로 보인다.

"영화를 찍을 때는 몰랐는데, 편집하다 보니 마약왕이 마약왕 같지 않더라. 그가 누리는 게 거의 없었다. 마약왕이 되고도 권력에 굽신대고, 누군가에게 얻어터지고, 가족에게는 멸시를 당한다. 내가 71년생인데, 그때는 내 아버지가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대다. 그들 역시 열심히, 치열하게 살았으니. 무조건 그 시대는 잘못됐다고 극단적으로 판단할 수는 없겠더라."

우민호 감독은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마약왕>이 가리키는 '한국식' 상황은 <나르코스>가 시즌3에서 더욱 더 천착했던 '패밀리 비즈니스'로서의 마약 사업과 독재 정권 하에서 권력에 굽신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의 결합이라 보면 틀리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그러한 '인간적인 면모'를 갖춘 '마약왕'을 다름 아닌 배우 '송강호'가 연기하는 것이다. 언뜻,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가. 

<내부자들>를 통해 "국민은 개·돼지"란 유행어를 만들었던 우민호 감독이 각본까지 담당한 것으로 알려진 <마약왕>은 송강호 외에도 이성민, 김대명, 김소진, 이희준, 조우진 등 연기에 관한한 이견이 없을 배우들이 출연, 무게감을 더하고 있다. 쇼박스의 2018년 여름 '텐트폴' 영화 <마약왕>으로 송강호가 <택시운전사>에 이어 어떤 반향을 일으킬지 주목된다.

김지운의 귀환 + 일본 애니메이션 원작, 그리고 강동원, 한효주, 정우성

 지난 2016년 <밀정> 개봉 당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한 김지운 감독.

지난 2016년 <밀정> 개봉 당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한 김지운 감독.ⓒ 이정민


가장 눈길을 끄는 포인트는 원작이다. 오시이 마모루 원작, 오키우라 히로유키 연출의 일본 애니메이션 <인랑>은 1990년대 영화광 세대의 관객들에게 두고두고 회자됐던 애니메이션 중 한 편이다. 그간 박찬욱 감독이 <올드보이>를,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를 성공적으로 영상화한 가운데, 김지운 감독 역시 만화/애니 원작의 한국영화에 도전하게 된 셈이다.

'근 미래, 남북한이 7년의 준비기간을 거치는 통일을 선포한 가운데, 반통일 무장 테러단체 섹트와 이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경찰조직인 특기대, 그리고 통일정책에 반대하는 강력한 권력기관인 공안부 사이에서 벌어지는 숨막히는 암투와 격돌을 그린다.'

작년 8월 크랭크인 한 <인랑> 제작진이 밝힌 시놉시스다. 원작과 달리 한국의 분단 상황을 녹여낸 설정이 원작과 갈라지는 지점이다. <밀정>에서 일제강점기 남한의 상황을 장르적으로 이식했던 김지운 감독의 연출력을 떠올린다면, 기대를 키울 수밖에 없는 인상적인 각색 포인트다. 

더욱다나 <인랑>의 장르는 SF 액션이다. 김지운 감독은 그간 코믹잔혹극 <조용한 가족>부터, 코미디 <반칙왕>, 호러 <장화, 홍련> 느와르 <달콤한 인생>, 웨스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복수극 <악마를 보았다>에 이어 스파이 영화 <밀정>까지, 본인이 좋아하고 도전하고픈 장르를 안정적으로 완성시킨 '장르 애호가'이자 '장르의 달인'이었다. 더불어 '비주얼리스트'로 불리는 김지운 감독이 한국에서 보기 드문 묵시록적 SF 액션 장르에 도전하는 것만으로 눈길을 끌기에 충분해 보인다.

또한 <인랑> 역시 충무로 대세인 '멀티 캐스팅'에 발맞추는 작품이기도 하다. 강동원은 소녀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하고 갈등하는 최정예 특기대원 임중경을, 한효주는 죽은 섹트 내 소녀의 언니 이윤희를, <놈놈놈>이후 10년 만에 김지운 감독과 재회하는 정우성은 특기대 훈련소장 장진태를 맡았다. 특히나 '강동원 vs. 정우성'의 첫 연기 호흡은 <밀정>의 '공유 vs. 송강호' 만큼이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미장센이 될 듯하다.

이밖에 임중경과 훈련소 동기였지만 현 공안부 소속으로 특기대를 압박하는 한상우를 김무열이, 섹트의 핵심 조직원이자 이윤희의 친구 구미경을 한예리가, 공안부장 이기석을 허준호가, 특기대원 김철진을 '샤이니' 최민호가 연기한다. <밀정>에 이어 현실반영적 요소에 장르적 감각을 덧입힐 김지운 감독이 배우들의 연기를 어떻게 이끌어낼지도 관심사다. <밀정>에 이어 워너브러더스코리아가 배급을 맡은 <인랑>의 개봉일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드라마틱' 흑금성 + <범죄와의 전쟁> 윤종빈, 그리고 황정민

 박채서씨가 '흑금성' 공작원 시절에 평양 5.1경기장을 방문해 안내원과 함께 찍은 사진.

박채서씨가 '흑금성' 공작원 시절에 평양 5.1경기장을 방문해 안내원과 함께 찍은 사진.ⓒ 김당


"박(채서)씨는 육군 3사관학교를 졸업한 77년 소위로 임관해 국군 정보사 공작단 공작관(현역 소령)을 거쳐 국가안전기획부(국정원 전신)의 대북공작원으로 특별 채용되어 대북공작 사상 최고의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98년 3월 정권 교체기에 국정원 지도부가 '북풍 공작' 등 자신의 범죄행위를 은폐하기 위해 각색한 이른바 '이대성 파일'이라는 비밀공작 문건을 공개하는 바람에 흑색공작원 신분이 노출되어 국정원에서 '해고'되었다.

국가정보기관의 수뇌부가 기밀을 유출한, 첩보사에 유례없는 이 사건으로 인해 엄청난 비용을 들여 10년 넘게 지속된 국가공작망이 하루아침에 붕괴되었다. 북한의 대남 공작기관에 위장포섭돼 북한의 반탐 및 체제보위 기구인 '국가안전보위부'에 침투한 '이중공작원'이었던 박씨 또한 하루아침에 신분이 드러난 채 세상 밖으로 버려졌다(중략).

그 자신이 육군 소령이자 국군 정보사 공작관 출신으로 그 누구보다도 국가관이 투철했고, 그래서 첩보공작 유형 중에서 가장 고난도에 속하는 'A급 이중공작원'이었던 그가 과연 북한에 포섭된 '간첩'일까? 아니면 국가정보기관이 '해고' 뒤에도 여전히 대북 비선(秘線)으로 활동한 그를 '정치적 희생양'으로 삼은 것일까?" (2010년 11월 <오마이뉴스>의 <'A급 특수공작원'에서 '간첩'으로 규정된 '흑금성'> 기사 중에서)

'흑금성'이란 공작원의 간단한 이력만 봐도 무척이나 드라마틱하지 않은가. 이 '흑금성'을 소재로 한 '첩보' 드라마 <공작>을 <범죄와의 전쟁>과 <군도>의 윤종빈 감독이 연출했다. 실화 소재의 정치·첩보물로서 기대를 모으는 작품이다. 가히 '윤종빈 사단'이라 할 수 있는 황정민, 이성민, 조진웅 외에 주지훈이 가세했다.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윤종빈 감독은 이렇게 밝혔다.

"1991년부터 1998년까지 7년 동안 벌어진 긴 이야기고, 보통 첩보물이라고 하면 미션이 있어야 하고, 안타고니스트가 명확해야 하는데 이 사건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영화적으로 구성하는 게 쉽지 않았다. 실존 인물이 너무 많아 여러 인물을 압축하고, 합치고, 삭제하는 고민도 만만치 않았다."

'대외용 제목'이 <흑금성>었다던 <공작>은 이렇게 윤 감독의 전작 중 <군도>보다는 <범죄와의 전쟁>의 색깔에 더 가까울 공산이 커 보인다. "북핵 실체를 파헤치던 안기부 스파이가 남북 고위층 사이의 은밀한 거래를 감지하면서 벌어지는 첩보전"이란 시놉시스는 한국사회의 실제 상황과 실화를 경유하는 개인의 흥망성쇠를 그린 드라마를 기대케 한다.

<군도>를 제작했던 사나이픽쳐스와 <검사외전>을 만든 윤종빈 감독의 영화사월광이 의기투합한 <공작>은 역시 사나이픽쳐스와 연이 깊은 '흑금성' 역의 황정민을 필두로 <군도>의 이성민, 조진웅이 가세했고, <아수라>로 사나이픽쳐스와 연을 맺은 주지훈이 가세했다. <범죄와의 전쟁>을 통해 개인의 역사를 한국 현대사와 절묘하게 매치시켰던 윤종빈 감독이 시대극 <군도>에 이어 4년 만에 선보이는 <공작>은 CJ엔터테인먼트가 배급을 맡았다.

이밖에, 6개 배급사의 관계자들이 꼽은 2018 기대작은 이미 2018년 여름 개봉을 확정한 <신과 함께2>를 필두로 <부산행> 연상호 감독의 <염력>, 이창동 감독의 <버닝>,  <차이나타운> 한준희 감독의 신작 <뺑반>, <범죄도시> 마동석의 차기작 <레슬러>, <공조> 김성훈 감독의 신작 <창궐>, <스플릿> 최국희 감독의 신작 <국가부도의 날> 등이다. 이들 기대작들이 2018년 한 해 어떤 반향과 흥행 결과를 낼지도 영화계 관심사다. 이렇게 2018년 역시, 경쟁은 치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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