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빈의 레이스 모습

윤성빈의 레이스 모습 ⓒ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IBSF)


이제는 정말 '괴물', '간판'이라는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릴 듯하다. '혜성'처럼 나타난 20대 청년이 이제는 한국 썰매계의 1인자이자 세계 썰매계의 1인자가 됐다. '스켈레톤 간판' 윤성빈(25·강원도청)을 두고 하는 말이다.
 
윤성빈은 12일 오후 스위스 생모리츠에서 열린 2017-2018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 IBSF 월드컵 7차 대회 남자 스켈레톤 경기에서 1, 2차시기 합계 2분14초77로 우승을 차지했다. 2위 악셀 융크(독일)와는 무려 0.87초 차이로 3년 만에 이 종목에서 가장 큰 격차로 금메달을 목에 건 주인공이 됐다.
 
윤성빈은 불과 4년 전 소치 동계올림픽까지만 해도 이 종목에 새로이 도전하는 선수 정도에 불과했다. 소치에서 16위를 기록했던 그는 이후 평창을 바라보며 매 시즌 급격한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5-2016 시즌 세계선수권에서 사상 첫 은메달을 차지하며 세계 썰매계에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기 시작했다.
 
지난 시즌부터는 '스켈레톤 황제' 마르틴스 두쿠르스(라트비아)와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두쿠르스는 이 종목의 전설과도 같은 인물이다. 그는 2009년 이후 8시즌 연속으로 이 종목 세계랭킹 1위 자리를 내놓지 않았다. 밴쿠버와 소치 올림픽에서 모두 은메달에 그쳐 올림픽 징크스가 있다는 약점도 있지만, 지난해 12월 소치 금메달리스트 알렉산더 트레티아코프가 금지 약물 복용으로 메달을 박탈당했고, 이것이 두쿠르스에게 돌아가게 되면서 결국 꿈에 그리던 메달을 안게 됐다.
 
지난 시즌만 해도 윤성빈과 두쿠르스 대결에서 앞섰던 인물은 두쿠르스다. 두쿠르스는 지난해 3월 평창 알펜시아 슬라이딩 센터에서 열렸던 월드컵 8차 대회에서도 윤성빈은 이기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그런데 올 시즌은 다르다. 윤성빈은 2차 대회부터 4차 대회까지 모두 두쿠르스를 제치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어 2018년 새해를 맞이해 평창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열린 월드컵 6, 7차 대회에서도 윤성빈이 두쿠르스는 두 번 모두 압도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윤성빈이 기존에 자신이 강세를 보였던 북미지역뿐만 아니라 유럽 지역에서도 그를 이긴 것이다.
 
특히 윤성빈이 다소 약하다는 곳으로 꼽혔던 독일의 두 경기장에서 우승한 것이 매우 놀라웠다. 두 경기장은 사실상 두쿠르스의 홈 트랙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그리고 마지막 7차 월드컵에서는 두쿠르스가 윤성빈에 1.1초나 뒤진 채 3위에 그치면서, 두쿠르스의 시대가 끝나고 사실상 '윤성빈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12일 스위스에서 열린 스켈레톤 월드컵 7차 대회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윤성빈(가운데)

12일 스위스에서 열린 스켈레톤 월드컵 7차 대회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윤성빈(가운데) ⓒ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IBSF)


윤성빈은 올 시즌 7차례 월드컵에 출전해 모두 시상대에 섰다. 1, 5차 대회에서만 두쿠르스에 뒤져 은메달을 차지했고, 나머지 5개 대회에서 모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두쿠르스와 대결에서도 5승 2패로 앞섰다. 그는 아시아 선수가 월드컵 대회에서 최초로 3연속 금메달을 따낸 대기록도 냈다. 그야말로 이제는 명실상부 세계 1위라고 해도 문제가 없어 보인다.
 
약점도 완벽히 보완했다. 지난 시즌 후반 몇 차례 월드컵에서 윤성빈은 1차 시기에서 압도하면서 금메달에 가까이 다가갔지만 2차 시기에서 삐끗하면서 결국 순위가 하락하는 좌절을 맛본 바 있다. 그러나 올 시즌 완전히 달라졌다. 이번 경기만 봐도 그러하다. 윤성빈은 1차 시기에서 알렉산더 트레티아코프(러시아)가 스타트 기록과 트랙 레코드를 모두 갈아 치우며 자신을 압박해 왔는데, 오히려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그대로 응수하며 트랙 레코드를 곧바로 자신의 기록으로 바꿔 놨다.
 
메달 결정전인 2차 시기는 더욱 놀라웠다. 악셀 융크가 윤성빈의 1차 시기보다 0.01초를 앞당긴 기록을 내며 또다시 그를 압박해 왔다. 그런데 윤성빈은 이번에는 오히려 앞선 레이스보다 더 빠른 기록을 내며 달렸고 결국 융크와 무려 0.87초 차이의 기록으로 여유롭게 금메달을 확정했다.
 
이처럼 윤성빈은 평창을 앞두고 도저히 빈틈을 보이지 않는 선수로 성장했다. 윤성빈의 최대 강점은 스타트다. 0.01초 차이로도 메달이 갈리는 이 종목에서 스타트는 기록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주요 요소인데 윤성빈은 매 대회마다 가장 빠른 스타트를 보였다. 또한 주행에 있어서도 노련미가 더해져 이제는 어떤 경기장을 만나도 흔들리지 않는 선수가 됐다. 그야말로 '완벽' 외에는 수식어가 떠오르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이제 윤성빈은 독일 쾨닉세에서 열리는 8차 월드컵에는 출전하지 않고 한국으로 곧장 귀국해 남은 기간 평창에서 올림픽 트랙 최종 리허설에 들어간다. 썰매는 홈 이점이 강하게 드러나는 종목인 만큼 누가 얼마만큼 트랙을 잘 알고 실수 없이 공략을 하냐가 메달과 직결된다. 평창에서 윤성빈의 금메달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
 
이제 약 한 달 후면 대한민국 썰매 종목의 새로운 역사가 쓰여진다. 이제껏 동계올림픽에서 그 누구도 썰매종목에서 메달을 딴 한국 선수는 없었다. 그러나 평창에서는 다를 전망이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윤성빈이 확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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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켈레톤 윤성빈 평창동계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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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스포츠와 스포츠외교 분야를 취재하는 박영진입니다.

오마이뉴스 스타팀에서 방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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