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뉴스룸 손석희의 앵커브리핑. 그녀의 꿈은…"장자연은 배우다"

JTBC 뉴스룸 손석희의 앵커브리핑. 그녀의 꿈은…"장자연은 배우다" ⓒ JTBC


얼마 전, 시사 팟캐스트를 진행하는 지인에게 전화가 왔다. 궁금한 것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장자연 사건'에 대해서 얘기해 달라고. 잠시 주춤했다. 그리고 놀랐다. 워낙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사건이었고, 나름 전말을 파악했던 사건이라 생각했는데, 틀렸다.

망각이 그렇게나 무서운 것이다. 막상 사건을 설명하려니,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언급해야 하는지, 핵심은 무엇이었는지, 그 핵심만 간추리기도 쉽지 않았다. 다시금 놀랐다. 9년이란 시간이 흘렀다니. 그 사건이 일어났던 게 2009년이라니. 결국, 간추리고 간추려서 그 지인에게 해 준 얘기의 요지는 이랬다.

'경찰과 검찰이 수사를 제대로 안 했다는 게 핵심일 거다. 검찰이 이번에 이 사건을 다시 들추겠다는 것이 그 증명이고. 유력 일간지 회장을 비롯해 당시 장자연 리스트에 명시됐던 인물들은 지금은 검색만 해도 다 나온다. 하지만 그땐 성상납 등 문제시됐던 혐의에 대해 다 혐의없음으로 풀려났다.

2009년만 해도 언론의 힘이 지금과는 다르게 엄청날 때였다. 언론사 사주에 대해 '밤의 대통령'이란 별명이 붙을 때고. 경찰과 검찰이 그 '권력'에 깨끗이 진 거다. 송아무개라고 한 언론사 논설주간이 기업으로부터 억대 접대를 받았던 걸 떠올려 보라. 사주나 사장은 어떻겠나. 당시엔 소속사 사장과 실장급에 해당하는 매니저만 송사 끝에 집행유예 같은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이후 중견 여성 배우와 그 소속사 사장과 연루된 소송전만 언론들의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그러면서 사건은 세간의 기억에서 멀어져갔다. 경찰과 검찰이 '권력'에 무릎을 꿇은, 너무나도 명백하게 '봐주기 수사'라는 의혹이 일었던, 어이없고도 안타까운 사건이었다.'
 
검찰의 '봐주기 수사' 의혹, 이번엔 해소 될까

지난달 말, 법무부·검찰 개혁위원회 산하 검찰과거사위원회가 고 장자연씨 자살 사건을 재조사 대상에 포함할지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고, 이 소식이 전해진 직후 장자연이란 이름이 다시 수면 위로 떠 올랐다.

'장자연 사건'은 2009년 3월 KBS 드라마 <꽃보다 남자> 등에 출연한 신인 연기자 장자연씨가 전 소속사 대표 등의 강요에 의해 유력인사들의 술자리에 나가고 성상납을 강요받았다는 내용이 담긴 '장자연 리스트' 문건을 남기고 자살하면서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언론에 보도된 문건에는 보수 일간지 사주와 연예기획사 대표, 방송국 PD, 기업인 등 유력인사 20여 명이 포함돼 있어 충격을 더했다. 장자연씨는 이들에게 수차례나 술자리와 성상납을 강요받는 한편 전 소속사 대표와 매니저로부터 폭행과 폭언, 협박을 받았다며 관련 내용을 상세히 기술해 놨다.

하지만 전 소속사 대표와 매니저는 각각 폭행과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 각각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60시간을 선고받았을 뿐이다. 리스트에 거론됐거나 유족이 사자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고소한 유력인사들은 경찰이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사건을 넘겼으나 결국 '혐의없음' 처분을 받았다.

당시 경찰은 술 접대를 강요 등의 혐의로 전 소속사 대표 등 총 7명을 입건해 검찰에 송치했지만, 검찰은 전 소속사 대표의 강요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 '강요죄'가 인정되지 않으면서 애초 문건에 성상납이나 술자리 강요 등으로 언급된 유력인사들에 대해서도'강요방조죄' 혐의가 성사될 수 없었던 것이다. 여러모로 '봐주기 수사' 논란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KBS <뉴스 9>은 2009년 3월 19일 고 장자연씨 문건 파문과 관련해 '장씨 유족, 언론사 대표 등 4명 고발' 등 상세히 보도했다.

KBS <뉴스 9>은 2009년 3월 19일 고 장자연씨 문건 파문과 관련해 '장씨 유족, 언론사 대표 등 4명 고발' 등 상세히 보도했다. ⓒ KBS


특히 리스트에 등장한 일간지 사주에 대한 의혹은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됐음에도 흐지부지 종결돼 버렸다. 당시 국회의원이 공식적으로 의혹을 제기했음에도 그랬다. 그해 4월 현 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의원은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당시 조선일보 방 사장을 술자리에 만들어 모셨고, 그 후로 며칠 뒤에 스포츠조선 방 사장이 방문했습니다'라는 글귀가 있습니다"며 관련 내용을 언급했다.

이정희 전 민주노동당 의원 역시 방송 토론프로그램에 출연해 이종걸 의원이 의혹 제기를 재차 언급했다. 이와 관련, <조선일보>는 두 의원을 상대로 10억 원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지만 항소심 끝에 결국 모두 패소했다.

이 밖에도 2011년 위작 논란을 부른 '장자연 편지' 사건 역시 논란과 추측만 부추겼을 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진상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고, 억울한 죽음만 남았다. 그리고, 9년이 지난 지금 '봐주기 수사' 의혹을 받았던 그 검찰에 의해 재수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는 것이다.

장자연의 죽음은 '사회적 타살'

"취재진이 입수한 검찰 불기소결정서에 따르면 장씨가 문건에 남긴 '술접대 강요'라는 문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였습니다. 또한 장씨처럼 술자리에 불려간 신인배우 윤모씨가 '김씨 폭행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고, 계약을 어기면 지불해야 할 위약금 1억 원도 부담됐다'고 밝힌 진술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술자리 참석자들의 강요 방조죄는 김씨 강요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줄줄이 무혐의 처리됐습니다. 하지만 경찰 수사기록 곳곳에는 장씨가 억지로 술자리에 불려갔던 정황이 나타납니다. 2008년 10월, 서울 청담동 한 유흥주점에서 열린 술자리, 이 날은 장씨 어머니 기일이었습니다. 전 매니저 김모씨 진술에 의하면 장씨는 제사에 참석하지 못하고 술접대 자리에 불려나가 서러운 마음에 차 안에서 눈물을 보이며 신세를 한탄했습니다."

지난 8일, JTBC <뉴스룸>은 2009년 당시 '장자연 사건'의 수사기록을 입수해 보도했다. 수사 기록 곳곳에 술접대 강요와 폭행 등의 정황이 뚜렷했고, 무엇보다 성추행 강요, 강요 방조죄에 대한 장자연씨 본인과 동료들의 진술과 정황들이 분명했음에도 검찰이 이를 인정하지 않고 무혐의 처리했다는 것이 보도의 요지였다. 

당시 사건을 재조명하는 차원의 보도였지만, 분명한 것은 당시 검찰의 수사 의지가 부족했던 것은 물론이요, 또 사건을 덮으려던 정황마저 엿보인다는 것이리라. 최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한 이종걸 의원은 최근 장자연 사건이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는 것과 관련해 경청할 만한 말들을 쏟아냈다. 

"다시 이 미완의 사건을 조사한다면, 가장 중요한 당사자는 죽은 장자연씨의 몸부림."
"장자연씨는 자신의 주변에 처해있는 부당한 진실에 대해 그냥 수용하지 않고, 뭔가 움직였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고 기록(장자연 문건 또는 장자연 리스트)으로 끝나면서 본인이 산화해버린 것."

"그것을 국민의 관점에서 제대로 조사해서 진실을 밝혀야 하는 수사기관은 검찰과 경찰."

장자연 사건은 기실 한국사회에 여러 고질적 병폐와 치부들을 세상에 드러낸 사건이기도 했다. 일부 매니지먼트 업계의 근절되지 않는 갑을 관계의 밑바닥을 드러낸 것은 물론 연예인과 여성의 인권 문제를 환기시키기도 했다. 더불어 수사기관과 '보이지 않는' 권력과의 유착에 대한 의심을 품게 하는 한편 유력 일간지가 지닌 '파워'를 세상에 드러나게 해줬다. 

이와 관련, 지난 10일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검찰은 부실수사 반성과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해 재조사에 즉각 착수하길 바란다"며 "당시 거론된 유력인사들이 권력과 재력을 이용해 법망을 피했다면 절대 용납 못할 적폐의 또 다른 형태"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추 대표는 고 장자연의 죽음이 '사회적 타살'임을 분명히 했다. 그 사회적 타살을 만드는데 일조한 것이 바로 부실수사 의혹을 남긴 검찰인 것이다.

지난달 12일 발족한 검찰과거사위원회는 독립성과 중립성의 기치를 내걸었다. 위원회가 조사 대상에 삼는 사건은 ▲ 재심 등 법원의 판결로 무죄가 확정된 사건 가운데 검찰권 남용 의혹이 제기된 사건 ▲ 검찰권 행사 과정에서 검찰권 남용 의혹이 제기된 사건 ▲ 국가기관에 의한 인권 침해 의혹이 상당함에도 검찰이 수사 및 기소를 거부하거나 현저히 지연시킨 사건 등이다. 장자연 사건은 세 번째에 해당될 수 있을 것이다.

부디, 억울함을 호소하고 산화해버린 한 여성 연예인의 억울함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그 안타까움을 기억하는 많은 국민들을 위해서라도 검찰과거사위원회가 장자연 사건을 재조사할 것을 당부하는 바다. 이미 명분과 국민적 관심은 충분하다. 심지어, 정치검찰, 권력 유착과 같은 이미지를 벗는데 일조할 수 있는 사안이기도 하지 않은가.

장자연 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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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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