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내 인생

황금빛 내 인생 ⓒ KBS2


시청률 42.8%.

KBS 2TV 주말 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이 시청률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황금빛 내 인생>이 인기를 끄는 건 그동안 방영됐던 KBS 주말 드라마들보다 '제법 더' 재미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지금까지 KBS2 주말 드라마들은 대다수가 '전통적 가족관'에 충실한 것들이었다. 그런데 소현경 작가가 쓴 <황금빛 내 인생>은 우리 사회에 고착화 돼 있는 '가족주의'라는 패러다임에 도발적인 문제제기를 한다. 그럼에도 대중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그런 소현경 작가의 도발적 문제 제기 중심엔 여주인공 서지안(신혜선 분)이 있다. 지난 연말 특집극으로 대체돼 한 주간 결방이 되었을 때 시청자들이 고대했던 건 '밤낮으로 알바를 한 돈으로 생일상을 차리고 목걸이를 준비한 최도경(박시후 분)의 이벤트 결과가 뭔가'였다.

그동안 대다수 드라마들은 남자 주인공이 물심양면 헌신적 모습을 보이면 십중팔구 여주인공은 감동하고 서로 사랑을 확인하는 수순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새해 첫 방송에서 서지안은 예상 밖의 반응을 보였다.

최도경을 좋아하지만 사귀지는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어머니의 한순간 거짓말로 인해 자신이 재벌그룹 해성가의 딸인 줄 알고 고군분투했던 서지안. 그녀는 짧았던 그 시간 동안, 그리고 자신이 재벌 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난 이후 자살 기도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정도로 혹독한 경험을 했다.

이상적인 삶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서지안

 황금빛 내 인생

황금빛 내 인생 ⓒ KBS2


그 경험은 대기업 직원이 되어 남보란 듯이 살고 싶었던 서지안에게 인생 목표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처음엔 돈만 보고 선뜻 자신의 친부모를 외면했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던 서지안은 동창인 선우혁을 따라 셰어하우스에 살게 되면서 마음의 변화를 맞이한다. 그녀는 그곳에서 고물을 모으고 교사 대신 목수 일을 하는 사람들은 만나고, 혁이 소개해 준 목공방에서 일하면서 자신이 상상한 이상적인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다.

그런 고민의 결과는 '최도경과의 연애 거절'로 나타난다. 서지안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최도경과의 연애를 거절했는지는 지난 7일 방송된 36회 엔딩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날 서지안을 '감히 내 아들을 만나느냐'면서 찾아와 따지는 노명희를 향해 "아드님과 해결하시라", "제가 싫다"란 돌직구를 날렸다.

물론 서지안과 최도경의 사랑은 해피엔딩을 맞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그동안 드라마에 등장했던 '재벌가의 아들과 서민 출신의 여성의 사랑'과는 궤를 달리한다. 이미 서지안을 통해 각성한 최도경이 배경을 버리고 홀로 밑바닥에서부터 자신을 찾는 도전을 하고 있듯, 그들의 사랑에는 배경과 계급 그리고 남보란 듯한 스펙으로 젊은이들의 꿈을 예단하는 우리 사회 고정관념에 상처를 남기는 작가의 도전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그 도전은 사랑하지만 자신과 다른 삶을 살아갈 최도경을 거부하는, 이제 더는 세상이 원하는 그럴 듯한 성공적인 삶에서 기꺼이 스스로를 방출시킨 서지안의 선택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여성이 있다. 도전과 사랑으로 열렬한 지지를 얻고 있는 최도경-서지안 주인공 커플과 달리, 드라마 시작한 뒤로 내내 지지를 얻지 못하는 커플도 있다. 바로 서태수의 큰 아들 서지태(이태성 분)와 그의 아내 이수아(박주희 분)다.

결혼 미루거나 아이 안 낳는 젊은세대 고민이 고스란히

 황금빛 내 인생

황금빛 내 인생 ⓒ KBS2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의 빚에 아직 독립하지 못한 동생들의 학자금까지 떠맡았던 맏아들 지태는 극 초반, 결혼을 거부했다. 심지어 오래도록 연인 관계였던 수아와 헤어어지는 것까지 결심할 정도. 우여곡절 끝에 아버지 서태수의 설득으로 결혼을 한 태수-수아 커플. 결혼 계약서 1항에 아이는 낳지 않는다고 썼지만, 그만 아이가 생겼다. 함께 병원에 가 초음파로 아이를 확인하고, 아이의 심장 소리를 들은 지태는 마음이 달라진다. 기왕에 생긴 아이니 낳자고 한다. 그런데 그런 지태의 변화에 아내 수아는 반발한다. 심지어 그런 충동적인 결정을 하는 지태와 함께 살 수 없다며 이혼을 선언하고 집을 나가 버린다.

전통적 가족 드라마에서 결혼과 아이는 지상 과제다. 그러나 <황금빛 내 인생>에서 유일하게 사랑을 하고 가까스로 결혼까지 한 이 커플 사이에 생긴 아이가 뭔가 다른 '문'을 열였다. 여기에는 결혼과 아이를 미루거나, 포기하는 이 시대 젊은 세대들의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낙태죄' 폐지가 담론이 되고 있다. 이 '낙태죄' 폐지를 앞장서는 사람들은 '출산할 권리보다는 낙태할 권리를'을 주장한다. 바로 이런 일련의 주장, 그 흐름에 수아의 생각이 있다. 수아는 말한다. 캐나다에 이민을 갔다지만 어렵게 가게를 하는 오빠네에 겨우 빌붙어 사는 부모님, 그리고 출판사 무기 계약직으로 앞날을 보장받을 수 없는 자신의 처지, 비록 정직원이라지만 맏아들이라는 부담이 큰 남편. 수아가 살아온 삶은 그녀에게 그저 이 세상에서 자기 한 몸 책임지며 사는 것만도 버거운 것이라 가르친다.

이런 수아의 사고는 '저출산 고령 사회라는 디폴트 안에서 사는 이 시대 젊은이들의 선택적 행복론'과 맞닿아 있다. 아버지의 설득으로 결혼을 하고, 기왕에 생긴 아이니 낳으면 어찌 되지 않겠느냐 라든가, 차라리 아이를 키우기 위해 생활수준을 낮춰 지방으로 내려가자는 지태의 방식은 전통적으로 '아이'를 부부의 중심, 혹은 가족의 중심으로 사고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지태의 생각에 수아는 반발한다. 수아의 사고에는 자신이 책임질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이유가 덧붙여져 있지만, 늘 생활고에 시달렸던 자신의 지난 시간과 자기 자식에게 그런 삶을 또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N포 세대'의 현실적 고민이 담겨있다.

소현경 작가는 어쩌면 이 드라마에서 가장 현실적인 지태 부부가 결혼과 출산 과정에서 겪는 문제를 통해 시대의 화두를 담아내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저 어떻게 '아이가 생겼는데?'라는 세간의 오지랖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시대적 고민이다.

그렇게 <황금빛 내 인생>은 '서태수'의 가족을 중심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의 고민을 현실적으로 담아내고자 애쓴다. 또한 여주인공들의 생각과 행동을 통해 젊은 세대의 새로운 담론을 전 세대에게 제시한다. 시청률을 넘어선 이 드라마의 가치는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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