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피겨스케이팅 페어종목을 아는지를 물어본다면 거의 대부분은 '모른다'고 할 경우가 많다. '피겨여왕' 김연아(28)가 탄생한 나라이지만 아직 우리에게 피겨스케이팅은 가까운 듯 멀기만 하게 느껴진다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그런 황무지를 개척해 나가는 '꽃다운 청춘' 한국 유일의 피겨 페어조 김규은(19)-감강찬(23)은 유독 우여곡절이 많은 스케이터다.

기자는 지난 2012년과 2013년경에 이 두 선수가 남녀싱글 선수로 활약했을 당시에 만나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당시만 해도 이들은 풋풋한 중학생으로서 무럭무럭 성장해 나가는 앳된 소년소녀였다. 5~6년 만에 다시 만난 이들은 어느새 20대에 접어들어 한국에 유일한 단 한 팀으로 페어스케이팅을 이끌어 가는 '선구자'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당시 기자가 촬영한 사진이 '흑역사(!)'라며 깔깔 웃는 청춘이었다.

 한국 피겨 페어 국가대표 김규은(왼쪽)-감강찬(오른쪽)이 지난 6일 오후 태릉 실내빙상장에서 기자와 인터뷰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국 피겨 페어 국가대표 김규은(왼쪽)-감강찬(오른쪽)이 지난 6일 오후 태릉 실내빙상장에서 기자와 인터뷰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박영진


싱글에서 페어로 '운명의 만남'

김규은과 김강찬은 모두 국내 피겨계에서 촉망받는 유망주 가운데 하나였다. 김규은은 아름다운 팔 동작을 겸비한 뛰어난 표현력으로 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감강찬은 동생이었던 감강인(현 은퇴)과 함께 몇 안 되는 남자 피겨계의 새별이었다. 그러던 이들이 페어스케이팅으로 만나게 된 것은 지난 2015년 12월. 놀랍게도 감 선수 어머니의 뜻밖의 제안에서부터 시작됐다.

"저는 규은이와 함께 페어를 타기 전부터 먼저 다른 파트너와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팀이 해체되고 난 후 새 파트너를 찾고 있었죠. 싱글선수로 뛰던 도중 발목 부상으로 1년간 쉰 적이 있었는데 싱글종목이 점프가 많아 발목에 무리가 많이 가요. 그 때 동생은 아이스댄스로 전향했고, 동생과 다른 종목을 택해 페어로 전향했죠. 규은이와 팀을 만들게 된 건 때마침 어머니와 동생이 한국에 있을 때 어머니께서 직접 규은이에게 제안을 하셨었어요." (감강찬)

"저는 페어 제의를 처음 받았을 때 생각을 전혀 못 했어요. 그런데 2015년 초에 목동에서 4대륙선수권을 해서 경기를 보러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페어종목을 보고 정말 멋있었어요. 그때 어머니께 슬쩍 '하고 싶다'고 얘기했죠. 당시에 제가 싱글선수로서 지쳐 있을 때이기도 했고 새로운 도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김규은)

팀을 결성하고 난 이후에도 첩첩산중이었다. 국내에는 열악한 링크장 환경은 물론 페어를 전문으로 가르치는 코치도 없다. 결국 캐나다 등을 비롯한 외국으로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현재 이들을 지도하고 있는 브루노 코치도 감강찬이 직접 섭외했으며, 캐나다 생활에 필요한 집과 자동차 등도 모두 자비로 해결했다.

"제가 싱글 선수였을 때 미국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 훈련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페어코치를 처음 봤었어요. 그런데 미국 비자문제로 한국으로 귀국한 후에, 5월 즈음에 (독일) 베를린에서 페어 세미나를 열흘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브루노 코치를 처음 만났어요. 결국 비자문제로 전지 훈련지를 캐나다로 변경했고 이후에 브루노에게 코치를 부탁했어요. 다행히 바로 수락해주셔서 훈련을 할 수 있었죠." (감강찬)

십자인대 파열, 그럼에도 은반 위에 섰다

김연아의 성장과정을 통해 이미 많이 조명됐지만 한국 피겨 환경은 전용링크가 단 한 개도 없을 정도로 여전히 매우 척박하다. 피겨 강국은 캐나다와는 확연히 대조된다. 이동거리 조차 한국은 스케이트장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데 1시간 이상이 걸리지만, 캐나다는 모두 인접한 거리에 위치해 있어 훈련하기에 최상의 환경을 갖추고 있다.

"한국에서는 페어라는 종목을 시작할 수가 없어요. 캐나다에 가 보니 코치진이 5명(메인코치, 안무, 스케이팅 각 1명, 기술코치 2명)으로 세부적으로 나뉘어져 있었어요. 스케이팅 훈련은 주로 오전 7시 반부터 훈련을 시작했어요. 시작하기 약 한 시간 전쯤에 링크장에 와서 몸을 풀면서 일과가 시작되죠. 한 시간 스케이팅 훈련 후 한 시간씩 휴식을 하면서 3시간 스케이팅 훈련을 해요. 오후 1~3시에는 웨이트 훈련을 하고 이후에 지상훈련이나 안무연습을 하죠. 브루노 코치에게 주로 오전에 배웠고요, 또 주니어와 시니어 레벨에 따라 각기 나뉘어져 있어서 체계적으로 연습할 수 있게 돼 있죠."

페어스케이팅은 일반 싱글 종목과 달리 볼거리가 훨씬 더 풍성하다. 특히 남자선수가 여자선수를 던져 수행하는 쓰로우 점프를 비롯해, 트위스트 리프트, 데스 스파이럴 등 보기만 해도 아찔한 기술이 많다. 그만큼 한 번 부상을 입게 되면 예상보다 심각하게 다치는 경우가 많다.

"싱글과는 전혀 다른 기술이라 모든 게 힘들었어요. 사실 캐나다에서 적응하는 것도 많이 어려웠습니다. 처음에는 어렴풋이 흉내를 낼 수는 있는데 결국에는 많이 연습해서 숙련되게 해야만 해요. 쓰로우 점프를 플립까지 연습했는데, 실전을 앞두고는 맞지 않아 루프로 바꾸기도 했고요."

"작년 여름에 가장 힘들었어요. 강찬 오빠는 이글, 저는 스파이럴 연습을 하다가 어이 없게 넘어졌는데 무릎이 꺾여 십자인대가 파열된 거였어요. 다친 직후에는 모르고 그냥 연습을 하다가 계속 조금씩 아프길래 병원을 찾아가니 그제서야 안 거였죠. 병원에서는 한 달간 휴식을 취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때 시합을 나가야만 했었어요. 4대륙선수권에 나가기 위해 최소 기술점을 따야 해서 반드시 점수가 필요했거든요. 어쩔 수 없이 깁스를 풀고 시합에 임했죠." (김규은)

우여곡절을 겪은 후 성장세는 가팔랐다. 평창을 앞둔 올 시즌에는 그 상승세가 더욱 눈부셨다. 지난해 9월에 열린 캐나다 어텀클래식 대회에서 개인 최고기록(쇼트 55.02점 / 프리 94.70점 / 총점 149.72점)을 세우며 가능성을 봤다. 그리고 10월에 열린 프랑스 니스컵에서는 동메달까지 차지했다. 두 선수는 "메달은 기대를 안 했고 5등 정도를 목표로 했는데 잘하는 팀의 실수도 있었고 운이 좋았다"며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로 꼽았다.

페어 경기 펼치는 김규은-감강찬  2017년 7월 30일 서울 목동 아이스링크에서 열린 KB금융 피겨스케이팅 코리아챌린지 대회 2018 평창동계올림픽 대표선수 1차 선발전. 

시니어 페어스케이팅에 출전한 김규은-감강찬 조가 연기를 펼치고 있다.

▲ 페어 경기 펼치는 김규은-감강찬 2017년 7월 30일 서울 목동 아이스링크에서 열린 KB금융 피겨스케이팅 코리아챌린지 대회 2018 평창동계올림픽 대표선수 1차 선발전. 시니어 페어스케이팅에 출전한 김규은-감강찬 조가 연기를 펼치고 있다. ⓒ 연합뉴스


돌고 돌아 맞이한 꿈의 무대 '평창 올림픽'

최근 이들에게는 큰 '해프닝'이 찾아왔다. 사건의 발단은 북한이 지난 1일 신년사를 통해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가하겠다고 밝히면서부터다. 이후 최문순 강원도지사가 "피겨 남북단일팀을 구성해 단체전에 참가하자"고 한 라디오 방송에서 발언했다. 그는 "한국에는 페어종목 선수가 없는데, 북한 렴대옥-김주식 조와 함께 단일팀을 꾸리기 제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최 지사의 가정은 분명 잘못됐다. 이미 우리에게는 김규은-감강찬이라는 유일의 페어팀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타지에서 어렵게 훈련하며 꿈을 키워온 이들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북한 팀과 추억을 기억하며 꼭 평창에서 만나고 싶다고 밝혔다. 이미 언론에 밝혀진 대로 북한 팀이 김규은-감강찬 조에게 김치를 나눠줬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지난해 7~8월에 저희가 캐나다에서 훈련하고 있을 때였어요. 그때 북한 선수들이 전지훈련을 저희 쪽으로 온 거였죠. 저희가 싱글 점프와 안무를 연습하는 링크장이 따로 있는데 거기에 북한 선수들이 왔었어요. 주식이형의 얘기를 들으니 훈련하고 있을 때 김정일이 보러왔었다고 하더라고요. 삿포로 아시안게임이 끝나고 몬트리올 공항으로 돌아갔을 때도 북한 선수들을 만났는데, 그때 그 선수들은 처음 방문하다 보니 익숙하지 않았죠. 그래서 저희가 택시를 잡아줘서 같이 픽업을 해준 적도 있었어요."

이러한 내용 이외에도 일부 언론에서 평창 동계올림픽에 한국 페어 출전권이 없다고 보도한 것 역시 잘못된 정보다. 국제빙상연맹(ISU)은 지난해 9월 평창 올림픽 마지막 쿼터를 배정했던 네벨혼 트로피를 마친 후, 홈페이지를 통해 각 종목별 남은 출전권을 확보한 국가들을 공지하면서 페어 종목에 한국이 페어 개최국 부가 출전권이 부여됐음을 알렸다. 페어를 제외한 나머지 3종목에서 자력으로 올림픽 티켓을 따냈기 때문에 이룰 수 있던 결과였다.

어느덧 평창 동계올림픽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평창에서는 세계적인 선수들과 함께 경쟁해야만 한다. 김규은의 롤모델인 소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 알리오나 사브첸코-브루노 마소(프랑스) 팀과 감강찬의 롤모델인 수이 한-원 징(중국) 등이 유력한 메달 후보로 꼽힌다.

평창을 1년 앞둔 지난해 강릉에서 열렸던 4대륙선수권 대회에서 두 선수는 처음으로 올림픽 링크장을 느껴봤다. 이들은 "당시에는 컨디션이 좋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좋은 경험을 하고 싶다. 쇼트프로그램에서 최고의 연기로 개인 베스트를 내고 싶다. 우리가 최선을 다하면 결과는 따라올 것"이라고 차분하게 목표를 말했다.

싱글선수로서 충분한 끼와 재능을 발휘하며 꿈을 꾸며 출발했다. 부상과 정신적인 슬럼프를 딛고 이들은 페어라는 새로운 종목에 발을 내딛었다. 그 이유는 평창 동계올림픽이라는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참 많이 돌고 돌아 이들은 평창에 왔다. 힘든 시기를 겪고 나니 평창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게 실감나지 않는다며 환하게 웃은 이들은 다시 한 번 하얀 스케이트화를 단단히 동여맸다. '사각사각' 소리가 들리는 은반 위를 제치며 얼마 남지 않은 꿈을 위해. 그리고 그들은 말한다. 프리스케이팅 곡 'The impossible dream'처럼, 불가능한 꿈은 없다.

"싱글은 기술이 점프, 스핀, 스텝 등 세 가지이지만 페어는 기술 종류가 정말 다양해요. 보는 재미가 있죠. 신기하기도 하고요. 항상 피겨스케이팅 경기에 많이 보러와 주시는 팬분들게 너무 감사해요. 생소한 종목임에도 와서 응원해 주셔서 저희는 그 분들 덕에 힘을 얻어요. 정말 감사해요. 피겨와 페어라는 종목이 평창을 통해 더 많이 알려졌으면 합니다. 앞으로도 더 멋진 모습 보여 드리겠습니다." (김규은, 감강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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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스케이팅 평창동계올림픽 북한 피겨 남북단일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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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스포츠와 스포츠외교 분야를 취재하는 박영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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