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를 배우고 싶어 '미래'(김소희 분)의 연기 워크숍에 찾아온 네 남녀. 그들에게는 연기를 배우고 싶다는 공통된 열망이 있지만 각자 다른 개인사가 있다. 다른 역할을 연기하는 것을 통해 자신과는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던 그들은 자신을 마주해야 하는 과제 앞에서 당황스럽기만 하다. 연기란 대체 뭘까? 어떻게 해야 연기를 잘 할 수 있을까? 이들은 '미래'가 내놓은 몇 가지 과제를 통해 점차 연기의 본질을 마주하게 된다.

'미래'의 연기 워크숍을 듣게 된 네 남녀는 실제 안선경 감독의 '영화연기 워크숍'의 제자들이다. 영화 <나의 연기 워크샵>은 마치 연극인 듯 영화인 듯 다큐멘터리인 듯 그 모호한 경계를 넘나들면서 만들어졌다. 여기에는 연희단거리패의 일원으로 활동했던 안선경 감독의 이력이, 그리고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는 걸 선호하는 감독의 취향이 작용했다.

지난 12월 14일 서울 종로 인디스페이스에서 안선경 감독을 만나 <나의 연기 워크샵>의 좀 더 자세한 제작 과정을 묻고 들었다.

 영화 <나의 연기 워크샵>의 안선경 감독이 14일 오후 서울 돈화문로 인디스페이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나의 연기 워크샵>의 안선경 감독이 14일 오후 서울 돈화문로 인디스페이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영화 연기와 연극 연기는 명확하게 달라"

- 연극을 하다가 영화 연출을 하게 됐다. 배우 중에는 그런 경우가 흔하지만 장진 감독 정도를 제외하고는 연출로는 그런 경우가 많지 않은데 어떻게 하다가 영화 연출을 처음 맡게 됐나?
"연극을 하다가 몸이 안 좋아졌다. 극장 사무실이 지하에 있어서 들어가 일을 하는데 숨이 막히더라. 계속 밖으로 나오게 됐다. 그렇게 좋아했는데. 조금 쉬어야겠다 싶어 한국영상자료원에서 하는 '필름 카메라 워크숍'이 있어 그 강의를 수강하게 됐다. 왜 그 강의를 듣게 됐냐면 주변 연극 배우들이 늘 연극 공연을 하면서도 영화 오디션을 보러 다니고 영화에 관심을 많이 두더라. 그걸 보면서 '왜 연극에 집중하지 않을까' 되게 속상했다.

뭔가를 빼앗기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연극을 잠시 쉬었을 때 '영화를 할 줄 몰라서 연극만 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 워크숍을 듣다가 16mm 필름으로 영화를 만들었는데 정말 너무너무 못 만들었다. 막 화가 나는 거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한 편 더 만들고 더 만들고 하다가 여기까지 오게 됐다. (웃음)"

- 지금은 화가 많이 풀렸나.
"많이 풀렸지만 여전히 속상하긴 하다. 시사회를 열어 내가 만든 영화를 거리를 두고 보다 보면 또 나 자신이 이 정도 밖에 안 되는구나 싶어 화가 난다. 전작인 <파스카>(2015) 때부터 영화에 정을 붙였고 사랑스러운 눈으로 보기 시작했던 것 같다. 버겁고 마음대로 되지 않는 되게 힘든 동거를 하는 관계였다면 <파스카> 때부터 영화를 많이 흡수했다. 지금은 영화를 찍는 게 많이 익숙해졌다."

- 연극과 영화 연출은 어떤 점이 다른가?
"처음 영화를 하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 만났던 감독이 있는데 그분께서 알려주신다고 했던 이야기가 연극은 울타리가 있는 작업이지만 영화는 그냥 길에서 하는 거라고 그랬다. 고생의 문제가 아니라 연극은 극장과 극단이라는 울타리가 있어서 그 안에서 가족처럼 연극 만들어 올리면 된다. 그런데 내가 영화를 찍고 싶다면 길 위를 떠돌면서 구걸을 해야 한다. 공간을 가진 사람한테, 캐스팅을 하고 싶은 사람에게 계속 빌고 부탁하고. 또 이 작업이 늘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오면 눈을 맞아야 하는 것처럼 주변의 환경 변화를 체감하면서 그것에 영향을 받으며 만들어내야 하더라. 반영을 하지 않으면 관객과 소통이 되지 않는다. 연극에서 영화로 매체를 바꾸면서 너무 자연스럽게 내 삶의 방식도 바뀐 것 같다."

 영화 <나의 연기 워크샵>의 안선경 감독이 14일 오후 서울 돈화문로 인디스페이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영화 <나의 연기 워크샵>의 안선경 감독이 14일 오후 서울 돈화문로 인디스페이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 영화 <나의 연기 워크샵> 속에 나오는 '미래'는 연극 배우이기도 하고 연극 무대 장면이 들어가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영향을 받은 건가?
"내 영화가 연극적이라는 인상을 받는다고들 많이 말하더라. 나는 오히려 이건 지극히 영화적이라고 생각했다. 원래 제목도 <나의 영화연기 워크샵>이었다. 영화 속에서 이 친구들이 하는 연기가 거리를 떠돌아다니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연극 무대신이 있는 건 미래의 역할이 연극 배우라 그 배우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에 불과하다."

- 연극 연기가 있고 영화 연기가 따로 있나?
"분명하게 차이가 있다. 연극무대에서 배우는 조명과 미술 등의 최소한의 도구에 기대 극을 설명해야 하기 때문에 연기의 영역이 단지 인물을 구현하는데 그치지 않고 연출의 구상까지 담아낸다. 그렇기에 약속이 중요하다. 이에 비해 영화에서 배우의 연기는 주어진 상황과 공간 안에서 생생하게 존재해야 한다. 대부분의 영화가 실제 삶의 공간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생활성을 느끼게 해야 하는데 이것이 곧 관객에게 신뢰로 이어진다. 즉 믿을 수 있는 연기냐 아니냐가 영화에서는 중요한 잣대가 된다."

장르가 불분명한 영화 <나의 연기 워크샵>

- <나의 연기 워크샵>은 안선경 감독의 연기 워크숍의 학생들이 실제 영화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다큐멘터리적인 성격도 갖는다. 장르가 굉장히 혼재돼있다.
"나는 사실 첫 영화 때부터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내 멋대로 영화를 만들고 나서 서울독립영화제에 영화를 출품하기로 마음먹었는데 '극영화', '실험영화', '다큐멘터리' 이 중에서 영화 분류를 선택하라는 거다. '내 영화는 이 세 가지가 모두 섞여있는데 어떡하지?' 싶었다. 이미 분명하게 장르화된 영화가 많아서 이 안에서 내가 자리 잡기 어렵겠구나 그런 생각도 뒤늦게 하게 됐다. 하지만 <나의 연기 워크샵>은 나는 '극영화'라고 생각한다."

 영화 <나의 연기 워크샵>의 안선경 감독이 14일 오후 서울 돈화문로 인디스페이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 부산영화제에서 뉴커런츠 상을 받은 영화 <파스카>도 40대 여성과 10대 남성의 사랑 이야기였고 이번 영화에서도 연기 그 자체를 다룬 도전적인 작품을 선보였다. 이게 현실인지 연기인지 불분명한 장면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감독이 금기를 다루는 걸 선호한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파스카>의 경우 반려동물이 죽은 이후 그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에 대해 써보자 싶어 만들었는데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연인이 나오다 보니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서 되게 크게 보더라?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면서 '말도 안 되는 설정이다'라든지 '이게 가능하기는 하냐'는 격렬한 반응을 받았다. 알게 모르게 내 안에서 세상이 뭔가 늘 선을 쉽게 긋고, 그 안에 안주하려고 하고, 경계에 있는 사람을 외롭게 만드는 것 같아 그것에 대해 불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굳이 금기에 목적을 두지 않고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그 부분을 항상 건드리게 되는 것 같다. 나는 항상 경계에 관심을 갖기 때문에 '왜 이러면 안 돼?'라고 질문한다."

- 이번 영화는 어떻게 시작됐나?
"배우 이야기를 한 번 해보려고 했다. 그러던 차에 내가 진행하던 연기 워크숍에 (영화에 등장하는) 관헌이가 들어왔고 그의 모습이 흥미로워서 그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면 영화가 좀 구체적으로 나오겠다 싶어 '너를 모델로 하고 싶다'고 말해주었다. 그러다가 다른 배우들도 줄줄이 들어와 하나씩 인연을 차례대로 맺었고 '4인방'이 완성된 다음 '즉흥적으로 가야겠다' 생각했다. 시나리오를 써보려고 했지만 부질없는 짓인 것 같아서. 물론 내 능력도 딸리지만 이 친구들의 변화하는 생생한 모습들을 잡고 싶은데 이제 막 연기를 배우는 애들에게 대본을 주고 연기를 시키려니 막막하더라. '너희가 영화가 되는 영화를 만들어보자', '모험이지만 해보자' 그렇게 우리끼리 소꿉놀이하듯이 시작했다."

- 대사도 대체로 배우들의 '애드립'을 통해 진행된 건가?
"미션을 준다. 그야말로 즉흥극이다. '너는 고백해! 너는 거절하고' 이런 식으로? 구체적으로 지시를 내리면 오히려 준비를 하기 때문에 경직된다. 반 정도는 카메라 돌아가는 순간에 나온 이야기고 30%는 평소에 같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녹취를 하거나 교감했던 이야기 중에 섞어서 대본화된 것이다. 나머지는 내가 대본을 썼다. 배우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관찰을 해보니 어떤 역할이 힘든지 어떤 게 불편한지를 잘 알고 있다. 그게 잘 맞아 떨어졌다."

 영화 <나의 연기 워크샵>의 안선경 감독이 14일 오후 서울 돈화문로 인디스페이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 <파스카>에서 함께 연기했던 김소희와 성호준 배우와도 이번 작품을 또 함께했다.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씩이나 함께한 이유가 있나?
"어떤 영화를 만들지 모르기 때문에 역할에 맞지 않으면 같이 못 할 수도 있는데 너무 다행이었다. 어떻게든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어서. 이 두 사람은 단순히 배우로서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영화 만들기의 힘겨운 과정들을 지탱해주고 도와줬던 무척 귀한 사람들이다. 당연히 어떤 작품을 만들고자 할 때든 같이 가고 싶다. 또 내 작업 방식이나 이야기 자체를 믿을 수 있어야 같이 갈 수 있다. 비슷한 곳을 바라봐야 하고."

-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 정해진 상태에서 영화를 만든 건가?
"처음 영화를 구상할 때 방향을 만들어 놓고도 작업에 들어가면 잊어버리는 스타일이다. 그건 언제든 깨질 수 있는 거다. 몇 번이나 그 생각이 깨지고 나서 남는 생각이 중요한 것이라 보기 때문에 일차적으로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할 때 스스로 결말을 짓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삶 역시 그렇다. 모든 삶의 방향이 다르고 알 수 없는데 매듭을 짓는 순간 닫힌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작업을 하면서 최선의 결말을 추구하고 작업의 끝의 끝으로 가서 결말을 낸다. 단지 '아 이런 이야기는, 이 질문은 던질 가치가 있겠다' 싶은 것만 갖고서 시작한다."

- 그게 어떤 질문인가?
"이번 작품 같은 경우 연기에 대한 기존의 생각에 불만이 있어서 시작을 하게 된 거다. (웃음) 연기 워크숍을 진행하다 보면 계속 그런 친구들을 만난다. '연기니까 나 말고 더 멋있는 걸 할 수 있겠지', '더 강한 척 예쁜 척 너그러운 척 할 수 있겠지'라는. 지금 자기를 감당하기 어렵고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게 불편하니까 그러고 싶진 않고 행복해지기 위해 그 수단으로 연기를 꿈꾸는 친구들. 연기를 하면 가면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에게 거울을 반대로 돌려 자기 자신을 보게 하는 과정을 겪게 한다.

영화 속에서 '미래'가 계속 이야기한다. 너를 드러내지 않고는 연기를 할 수 없다고. 결국 자기 마음의 거울이 투명해야 어떤 인물이든 받아들일 때 온전히 편견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데 세상의 상처를 받다 보면 그 거울이 일그러져 있단 말이다. 그러면 연기를 할 때도 과장되고 공허하다. 속을 들여다보지 않고 겉으로만 표현할 방법을 찾으니까. 그러니까 자기 시각이나 역량에 따라 수만 가지 인물을 만들어낼 수 있고 각자 다른 길로 그 결론에 도달하고 싶었다. 다들 막 근육 기르고 발성하고 피부 관리하고 물론 연예인들은 그렇게 예뻐야 자기 입지를 굳히니까 그런 걸로 경쟁할지 모르겠지만 배우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영화 <나의 연기 워크샵>의 안선경 감독이 14일 오후 서울 돈화문로 인디스페이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 앞으로 어떤 화두를 갖고 영화 작업을 이어나갈 계획인가?
"다음 영화는 자폐아를 둔 부부의 이야기를 써보려고 한다. 설정이 바뀔 수도 있지만. (웃음) 연기 워크숍에서 만난 많은 친구들이 자기 내면의 것을 풀어내면 좋을 텐데 풀어내지 못하고 가둬놓는다. 그렇게는 소통을 할 수가 없다. 그런데 거기에 자꾸 애정을 갖게 되는 것 같다. 그렇게 자기 자신에게만 지속적으로 보이는 게 있는 것 같다. 자꾸 사람들이 마음의 문을 닫고 혼자 괴로워하고 다른 곳으로 분출이 되는 것 같다. 극단적으로는 더 약한 존재를 학대하기도 하고 강박적인 행동을 하기도 하고.

그런 것들이 불행하게 보여서 그런지 관심을 갖게 된다. 사실 즐거운 영화를 만들면 좋은데 나에게는 그게 잘 안 보인다. 처음 한국영화아카데미 들어갔을 때 재밌는 영화를 만들어 사랑을 많이 받았고 사람들이 거기에 대해 기대를 많이 하는데... (웃음) 아직은 잘 모르겠다."


나의연기워크샵 안선경감독 파스카 김소희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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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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