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글스는 조원우와 김민재(이상 롯데 자이언츠), 최영필 (kt 위즈) 등 지금은 각 구단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는 선수들이 활약하던 2007년 정규리그 3위에 오른 이후 최근 10년 동안 한 번도 가을야구 무대를 밟지 못했다. 이는 LG 트윈스(2003~2012년)와 함께 KBO리그 역대 최장기간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타이 기록이다. 가을야구 진출 확률이 50%에 달하는 KBO리그에서 10년 연속 가을야구를 경험하지 못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한화가 가을야구에 가기 위한 노력을 소홀히 한 것도 아니다. '괴물' 류현진(LA 다저스)이 팀을 떠난 2013년부터 한화는 김응용, 김성근 감독 등 KBO리그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명장들을 영입했고 FA시장에서는 매년 큰 손임을 자처했다. 나이저 모건과 에스밀 로저스(넥센 히어로즈), 알렉시 오간도 등 빅리그 출신의 거물급 외국인 선수 영입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화는 끝내 가을야구라는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백약이 무효했던 한화는 2017 시즌이 끝난 후 팀의 기조를 바꿨다. 두산 베어스에서 코치로 재직하던 한용덕 감독을 영입했고 대어들이 즐비했던 FA시장에서도 일찌감치 발을 빼며 무리한 경쟁 대신 장기적인 리빌딩을 선택했다. 하지만 팀을 위해 19년 동안 헌신했던 최고령 투수에게는 해가 가기 전에 예우를 갖췄다. 29일 한화와 2년 7억5000만 원의 조건에 FA계약을 체결한 '절대동안' 박정진이 그 주인공이다.

11년의 시련 이기고 30대 중반에 찾아온 제1의 전성기

청주에서 태어나 세광고를 졸업한 박정진은 고교 시절 세광고를 대통령배 4강으로 이끌며 송진우 이후 가장 뛰어난 충북 출신의 좌완 투수로 이름을 날렸다. 고교 졸업 후 연세대로 진학한 박정진은 대학시절에도 시속 150km를 넘나드는 강속구를 던지며 주목 받았고 큰 이변 없이 1999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한화의 1차 지명을 받았다. 당시 한화 팬들은 송진우와 구대성,박정진으로 이어지는 좌완 트로이카를 구성할 수 있게 됐다며 기뻐했다.

실제로 박정진이 입단했던 1999년, 한화는 창단 후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 감격을 누렸다. 하지만 고질적인 제구불안에 시달리던 박정진은 한화의 우승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했다. 2001년엔 4승3패 평균자책점  4.74, 2003년엔 6승7패3세이브11홀드4.31로 선전하기도 했지만 워낙 기복이 심해 마운드 위에서 안정감을 주지 못했다. 이는 공익근무요원으로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후에도 전혀 고쳐지지 않았다.

프로 입단 후 11년 동안 14승, 2005년부터 2009년까지 5년 동안은 단 1승도 올리지 못한 박정진은 한화에서 방출 당할 위기에 놓였다. 하지만 한화의 새 감독으로 부임한 한대화 감독이 좌완 불펜 부재를 이유로 박정진을 잔류시켰고 박정진은 30대 중반이 된 2010년부터 본격적인 전성기가 찾아왔다. 수직으로 내리꽂는 박정진만의 독특한 투구폼이 드디어 자리를 잡은 것이다.

프로 입단 후 11년 동안 21홀드를 기록했던 박정진은 한대화 감독이 이끌었던 3년 동안 34개의 홀드를 기록하며 한화 불펜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물론 한화는 이 기간 동안 두 번이나 최하위에 머물며 본격적인 암흑기에 돌입했지만 박정진은 프로 데뷔 12년 만에 '제1의 전성기'를 달리며 뒤늦은 꽃길을 걸었다. 실제로 2010년과 2011년 한화의 마운드는 '류현진과 박정진,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고 표현해도 큰 과장이 아니었다.

하지만 박정진은 생애 첫 FA를 앞둔 2013년 1승5패1세이브6홀드5.82로 부진했고 30대 후반의 고령이라는 핸디캡이 더해지면서 2년 8억 원이라는 조금 아쉬운 액수에 FA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내야수 한상훈이 4년13억 원, 이대수(SK 와이번스)가 4년 20억 원의 FA계약을 따낸 것을 고려하면 누적 활약에서 결코 뒤지지 않았던 박정진의 계약은 결코 만족하기 힘들었다.

2018 시즌에도 한화 불펜의 핵심으로 활약할 43세의 박정진

박정진은 FA 계약 첫 해였던 2014년 4승4패9세이브7홀드6.02로 부진하며 은퇴가 임박했음을 보여주는 듯했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을 만난 2015년, 불혹의 박정진은 76경기에 등판해 96이닝을 던지며 6승1패1세이브15홀드 3.09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10세이브를 따냈던 2010년을 능가하는 생애 최고의 시즌을 40세의 나이에 작성한 것이다.

박정진은 2016년에도 KBO리그의 '최고령 노예'로 활약했다. 비록 성적은 4승4패6홀드 5.57로 2015년에 비해 다소 떨어졌지만 송창식, 권혁 등 노예생활을 함께 하던 동료들이 하나, 둘 시즌을 조기 마감하는 사이에도 박정진은 시즌 마지막까지 1군 마운드를 지켰다. 실제로 77경기 등판은 2016년 10개 구단 투수 중 최다 등판 기록이었다.

한화는 2017 시즌 김성근 감독이 일찌감치 팀을 떠났지만 박정진은 무릎 통증으로 결장한 한 달을 제외하면 흔들림 없이 마운드에 올랐다. 비록 성적은 3승2패1세이브7홀드로 평범했지만 3.94의 평균자책점과 .222의 피안타율은 어디에 내놔도 밀리지 않았다. 올 시즌에도 여전히 한화 불펜의 핵심으로 활약한 박정진은 29일 한화와 2년 7억5000만원에 FA계약을 체결하면서 오는 2019년, 한국 나이로 44세 시즌까지 현역 생활을 보장 받았다.

박정진은 그저 한화에서 오랜 기간 활약했다가 전성기가 지난 '저물어 가는 레전드'가 아닌 여전히 한화 불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현재진행형 불펜 에이스'다. 2017년 26홀드를 합작한 권혁과 송창식이 나란히 6점대 평균자책점에 그치며 부진한 가운데 박정진은 마무리 정우람을 제외하면 한화 마운드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불펜 자원이다.

2017 시즌을 끝으로 '국민타자' 이승엽을 비롯해 이호준, 최영필, 조인성 등이 대거 현역 생활을 마감했다. 이 때문에 졸지에 박정진은 KBO리그 최고령 선수가 됐다(물론 절대 동안을 유지하는 얼굴 덕분에 최고령 선수의 위엄은 찾을 수 없지만). 그리고 다이내믹한 투구폼으로 상대 타자와 정면승부를 즐기는 '마운드 위의 승부사' 박정진은 내년에도 독수리 군단의 부활을 위해 열심히 마운드에 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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