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하고 나서 < 1987 >의 '완성품'을 처음으로 본 배우들은 끝내 울고 말았다. 그 울던 배우들 중에는 김태리도 있었다. 연기를 했던 배우들마저 울 수밖에 없었던 특별한 이유가 < 1987 >에 있었을까. 지난 19일에 서울 삼청동 인근에서 만난 배우 김태리는 "나는 안 울었다"며 시치미를 뚝 떼다가 '와하하' 웃더니 금세 진지하게 말을 이어갔다.

"'우리가 '열사'라고 하지만 고작 21살밖에 안 된 청년들이었다'고 감독님께서 말씀하시는데 와닿는 부분이 있었다. 87학번 신입생 연희를 연기하면서 이한열 열사의 죽음을 알리는 신문을 발견하는 장면을 촬영할 때 그런 생각을 했다. '참 이 사람도 평범한 삶을 살 수도 있었고 좋은 대학에 와서 빛나는 미래를 쟁취할 수 있었던 청년인데 얼마나 무서웠을까' 싶더라. 이 선택들이. 우리가 하루하루 시위에 나가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지 않나. 그날의 선택이 얼마나 무서웠을까. 두려웠을까."



"내게 가장 치열했던 건 연기"

처음으로 < 1987 >을 본 날 김태리는 함께 호흡을 맞춘 유해진이 나온 장면부터 '곧 내가 나오겠구나'라고 생각하며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다고 했다. 김태리가 맡은 '연희'는 영화 후반부를 주요하게 이끌고 가는 역할이다. 영화를 보고 난 사람들의 평이 너무 좋아 '이렇게 좋아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고.

"제 또래들이 많이 무관심하게 사는 것 같다. 관심을 밖으로 돌리기에는 내부에 닥친 상황들이 어렵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지만. 더 살기 팍팍해졌으니까. 그런데 무관심은 사회가 순기능을 하기에는 좋지 않은 부분인 것 같다. 비록 < 1987 >은 30년 전 이야기지만 2017년과 맞닿는 부분이 있다. 어두운 이야기라고 눈 돌리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자신의 성향이랄까 정치색이랄까 그런 것들 때문에 이 영화를 멀리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특히 부모님이 아이들에게 보여주면 참 좋지 않을까?"



치열했던 1987년 6월 광장은 1990년생 김태리가 미처 경험해보지 못한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축이었다. 만일 김태리가 1987년 살아있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그는 "이런 질문을 받으면 '잘 모르겠다'고 대답한다"라고 했다.

"연희가 자신도 모르게 이끌려서 광장으로 나가게 된 데에는 너무 많은 요인이 있었다. 그래서 그 상황에 놓인다는 걸 상상하지 못하겠더라. <아가씨>의 숙희를 맡았을 때도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숙희도 알아서 잘 살겠죠'라고 대답했다. 상상하기 어렵다. 글쓰기에 소질이 없는 건지. (웃음) 나는 끝나고 나면 탁 털어버린다."

대신 김태리가 가장 치열하게 했던 건 '연기'라고 했다. "그 무엇보다 가장 많이 고민하는 것 같고 그것 때문에 괴로운 것 같고. 그러니까 꿈을 (연기로) 정한 것 같다."

"< 1987 >을 하면서 매 순간 고민을 했다. 감정신을 촬영할 때나 쉽사리 '진짜'에 도달하지 못할 때 고통스럽고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지 나에 대해 의구심이 많이 생긴다. '나는 왜 이렇게 생겨 먹었지? 이건 왜 안 될까?' 생각을 계속한다. 감독님과 오디션을 봤을 때부터 대화를 많이 했다. 그나마 이렇게 많은 선배님들 사이에서 조금은 괜찮게 나온 게 아닐까 싶다."

'충무로의 신데렐라'라는 수식어에 "별생각 없어"


김태리, 1987년 그대로 영화 <1987>의 배우 김태리가 19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김태리, 1987년 그대로 영화 <1987>의 배우 김태리가 19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박찬욱 감독의 작품 <아가씨>로 그해 신인연기자상을 휩쓸며 단숨에 주목을 받은 김태리는 < 1987 >에서 걸출한 선배 연기자들과 함께 호흡을 쌓았다. 그러더니 김은숙 작가의 신작 <미스터 선샤인>이라는 드라마에 캐스팅돼 최근 '충무로의 신데렐라'라는 수식어를 달게 됐다.

그 '인기 요인'에 대해 그는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따뜻한 목소리와 달리 답변은 무척 냉정했다. "그냥 지금은 좀 신선해서 그런 게 아닐까? 못 보던 사람이고 못 보던 연기를 하니까. 모자란 부분을 신선함이 커버하는 것 같다."

"'충무로의 신데렐라'라는 수식어에 대해서는 별생각이 없다. 나는 가식적이거나 내 생각이 아닌 것 그리고 내가 동하지 않은 감정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게 많이 불편하다. 실제로 감정이 동하지 않으면 내가 말을 뱉는 순간부터 '이건 가짜'라는 걸 안다. 그렇게 행동하고 돌아온 날에는 계속 내 행동이 생각나 불편하더라. 최대한 내가 편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비쳐야 하니까 이렇게 행동해야지'라는 건 내가 불편해서 안 하려 한다.

<아가씨>로 칸에 갔다가 돌아와서 홍보 활동하고 그럴 때 주변에 많은 분들이 걱정과 우려를 해주셨다. 하지만 딱히 뭔가가 달라지거나 그러진 않았다고 느낀다. 요즘 들어선 문득문득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지금보다 조금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리면 훨씬 더 못난 모습도 보일 거다. 내가 그런 질책과 비난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다. 예전에는 '그런 거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다. 조금 더 단련을 해야 할 것 같다."



김태리는 곧 작업에 돌입할 김은숙 작가의 신작 <미스터 선샤인>과 관련된 질문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특히 상대 배우 이병헌과의 '나이 차'에 대해서 김태리는 "관계가 어떤 식일지는 아직 모르겠다. 대본 진행이 많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냥 마냥 사랑만은 아닐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어 "사실 내가 걱정스러운 건 병헌 선배님이 또 얼마나 연기를 잘 하시나. 주연으로 또 두 사람이 얼마나 많이 붙겠나. 내가 거기서 많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겠지 하는 기대감도 있지만 부족할 테니 걱정도 많이 된다"고 털어놓았다.

김태리가 가장 호흡을 맞추고 싶어 하는 배우는 '윤여정'이라고 한다. 김태리는 "옆에서 한번 뵙고 싶고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를 좋아하는데 거기 나온 모든 배우분들을 다 만나 뵙고 싶다"고 말하며 다시 '헤헤' 웃었다.



김태리 1987 강동원 미스터선샤인 이병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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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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