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는 영화 <강철비>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탄핵 이후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지만, 북한은 여전히 핵 개발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김정은 정권은 남북한 주민의 목숨을 볼모 삼고 벼랑 끝 전술로 나서면서 우리나라와 주변 열강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중입니다. 그들의 어리석은 선택이 한반도에 전쟁 위기를 고조시키는 원인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영화 <강철비>는 북한에 예기치 못한 급변 사태가 벌어지는 상황을 가정합니다. 쿠데타가 일어나 강경파가 북한 정권을 접수한다는 가정 아래, 한반도가 초토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목숨을 걸고 나서는 남과 북의 두 남자 이야기를 다룹니다.

흥미진진한 전반부와 아쉬운 후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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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강철비>의 스틸컷. 북한 요원 엄철우(정우성)는 개성 공단에서 일어난 쿠데타 시도에 휘말린다. ⓒ (주)NEW

전직 북한 특수부대 대원 엄철우(정우성)는 쿠데타 음모를 방지하기 위한 작전에 투입됩니다. 하지만, 그의 노력과 상관없이 북한 최고 권력자는 피습을 당합니다. 사경을 헤매는 북한의 일인자를 구하기 위해 엄철우는 어쩔 수 없이 남한으로 내려옵니다.

한편,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곽철우(곽도원)는 이혼한 아내가 엄철우 일행과 엮이면서 북한에 급변 사태가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는 빠른 판단력으로 엄철우와 북한 일인자의 신병을 확보하고, 한반도 전쟁 발발이라는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합니다.

두 명의 '철우'가 서로 엮이게 되는 중반까지는 매우 박진감 넘치고 흥미진진하게 전개됩니다. 북한의 쿠데타가 우리나라의 정권 교체기를 노려 일어난다는 설정이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여러 가지 꼼꼼한 설정이 주는 현실감이 상당합니다. 특히 초반부에 오감을 사로잡는 군사 액션 장면들은 어떤 한국 영화보다도 뛰어나지요.

또한,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폭력은 결국 이름 없는 남북한 민중들의 무고한 목숨을 앗아갈 뿐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보여준 장면들 역시 매우 인상적입니다. 국가 단위의 전쟁에는 가족과 연인, 직장 동료나 친구 같은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이 얽히게 되어 있고, 우리는 그들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 땅의 전쟁이라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영화의 이야기는 중반 이후 급격하게 늘어집니다. 우선 두 남자 주인공이 교감을 나누는 설정이 다소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이어지면서 리듬감을 떨어뜨립니다. 의도가 뻔한 데다,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장면의 내용도 딱히 새롭거나 재미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측 가능한 수준의 전개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전반부가 재미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운신의 폭이 작은 고위 관리가 아닌 일반 시민이 중심 사건에 얽히기 때문입니다. 국가적 위기 앞에서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지 지켜보는 것 자체가 흥미를 더하는 요소였습니다. 그렇지만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이런 장점은 사라지고, 권력 핵심부의 설왕설래와 결정, 그에 맞물린 두 남자의 활약으로 이야기를 스스로 단순화시켜 버립니다.

남북문제를 푸는 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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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강철비>의 스틸컷.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곽철우(곽도원)은 비밀회담 테러 현장에서 엄철우(정우성)가 보인 돌발적인 행동에 분노한다. ⓒ (주)NEW

국제 정치를 논할 때 흔히 저지르기 쉬운 오류는 해당 국가가 추구하는 경제적 이익을 정치적 행동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로부터 국제 관계에서 경제 문제는 대단히 중요했습니다. 제국주의의 발흥도 유럽 각국이 당시 포화 상태에 다다른 내수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유럽 각국이 새로운 시장 개척과 원자재 확보에 나선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현대의 수많은 국가 원수들이 다른 나라를 방문하는 가장 큰 이유 또한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나라의 역대 보수 정권이나 북한의 세습 독재 정권은 남북문제를 국내의 권력 기반 강화에 활용해왔습니다. 남북의 대치 상황이 전쟁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을 국민들에게 끊임없이 상기시키면서 정권의 지지율을 관리했지요. 남한은 북한이 전쟁을 도발할 가능성을 늘 과장했고, 북한은 미국의 침략 위협을 빌미로 핵 개발에 매달렸습니다.

그 결과 남북문제를 순전히 정치 논리로만 파악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태도가 널리 퍼지게 됐습니다. 이런 관점은 대북 경제 지원이나, 개성 공단과 금강산 관광 같은 경제적 유인책이 전쟁 억지에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간과합니다. 그러면서 강대국의 '파워 게임'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식의 비관론을 펼칩니다.

<강철비>의 배경이 되는 북한 내부 강경파의 오판도 이런 논리를 발전시킨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남북 경제협력의 상징인 개성공단을 쿠데타의 무대로 삼는다는 설정은 그래서 의미심장합니다. 우리나라 보수 정치인이나 일부 전문가들이 전술핵 배치를 주장하고 대북 경제 사업을 '퍼주기'로 규정하는 것 역시 이들과 똑같은 논리를 바탕에 깔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과 달리 우리는 이제 한국 전쟁 당시의 가난한 나라가 아닙니다. 세계 10위권 안에 드는 경제 강국으로, 과거보다 세계 경제가 더욱 긴밀하게 연결된 지금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전면전이 벌어지면 세계 경제가 공황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이는 세계 어느 나라도 원치 않는 결과죠. 북한의 도발에 대해 국제 사회가 제재에 흔쾌히 나서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따라서 경제력을 바탕으로 주변 열강들과 협력을 강화하는 것은, 한반도에 대규모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최고의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방문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입니다. 일차적으로 사드로 인해 소원해진 양국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궁극적으로는 전쟁 발발 가능성을 억제하는 효과까지 기대한 것입니다. 그래서 보다 실용적인 태도로 접근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두고 중국이 '홀대'했다느니, '굴욕 외교'였다느니 하는 식으로 프레임을 짜는 대다수 기성 언론의 보도 태도는 완전히 국익에 반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강철비>는 미국과 중국의 대결 구도 안에서만 남북 관계를 이해하거나, 강 대 강으로 맞부딪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경고를 전합니다. 그런 식의 힘의 대결을 강조할수록 민족의 생존권은 우리 손을 떠나 주변 열강들의 결정에 달려 있을 수밖에 없다는 걸 보여주면서요. 중요한 것은 힘의 과시나 이념적 선명성이 아닌, 우리의 삶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