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에도 많은 한국 영화들이 개봉했다. 하지만, 같은 내용물에 포장만 갈아대는 듯한 '기획형' 영화들에 염증이 났다는 관객이 많은 한 해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상대적으로 굳이 들춰봐야 하는 영화들은 국내 작품들보다는 국외 작품들이 그 수가 더 많지 않았나 싶다. 그중 해외 작품 두 편, 한국 영화 한 편을 선정했다.

[하나] '짐 자무쉬'가 돌아왔다, 영화 <패터슨>

 영화 <패터슨> 관련 스틸 사진

ⓒ 그린나래미디어


짐 자무쉬의 귀환이다. 그는 가장 최근작인 그룹 스투지스(The Stooges)의 다큐멘터리 <김미 데인저>를 거쳐 2016년 발표한 극영화 <패터슨>에서 뉴저지 출신의 시 쓰는 버스 운전사 '패터슨(아담 드라이버 분)'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 제목인 '패터슨'은 사실상 세 가지 의미를 가진다. 주인공의 이름이자, 그가 열광하는 미국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의 시집 제목이며 뉴저지의 한 마을 이름이기도 하다. 영화는 패터슨이라는 인물과 그가 쓰는 시를 통해 같은 이름의 도시 '패터슨'이라는 공간을 그린다.

그는 몰고 다니는 낡은 버스의 운전석에 앉아 패터슨 곳곳을 채우고 있는 건물과 풍광을 눈에 담는다. 운전석 뒤에서는 오고 가는 사람들의 인생사(人生史)가 귓가를 채운다. 그날그날 패터슨의 눈과 귀를 채운 것들은 곧 시로 둔갑하여 도시와 사람의 역사를 머금은 시간의 기록이 된다.

전작인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나 <브로큰 플라워>에서 그러했듯, 자무쉬는 미국에서 가장 멋대가리 없는 동네를 다룬다. 예컨대 망해버린 공장들로 가득한 디트로이트, 지리멸렬한 평지가 끝도 없이 펼쳐지는 오하이오 등의 공간인데, 이 공간에 그가 사랑하는 음악과 문학으로 채워 넣어 일상(日常)이 로맨스가 넘치는 마법적인 공간으로 변환한다.

영화를 보는 데 있어 하나의 '난제'라면, 영화 속에 실제 패터슨 출신의 유명인들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1940년대 코미디언 콤비 에벗 앤 코스텔로, 작가 알렌 긴스버그 등의 문화적 레퍼런스들이 쉴새 없이 인물들의 대화에 등장한다. 그럼에도 <패터슨>은 '체'하는 영화는 아니다. 패터슨이라는 시골 동네를 한 번도 떠나보지 못한 붙박이 인생들의 푸념 섞인 유명인 타령은 짐 자무쉬가 전달하는 가장 위트 있는 조소(嘲笑) 중 하나다.

[둘] 러닝타임 4시간, '기적 같은' 영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영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의 한 장면.

ⓒ (주)리틀빅픽처스


러닝타임 4시간에 육박하는 영화를 만나는 건 일생 동안 흔치 않은 일이다. 더군다나 그 4시간이 눈 깜짝 할 새 지나가 버릴 정도로 생명력 넘치는 영화를 만나는 것은 '판타지'에 가까운 일이 아니겠는가.

1959년 대만에서 일어난 실제 살인사건을 토대로 만든 에드워드 양 감독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앞서 묘사한 '기적 같은' 작품이다. 영화는 1960년대 초를 배경으로 중국 공산당 집권 뒤 탈출한 부모를 따라 대만으로 이민 온 14살 소년 '샤오쓰'의 동네 정착기(定着記)를 다룬 성장 동화다. 성장 동화라지만, 샤오쓰나 그가 같이 몰려다니는 그 친구들 누구도 이 영화 안에서 성장하지 않는다. 그들의 유년은 국가적 폭력과 개인의 폭력으로 참수된, 욕망과 처벌의 역사이자 비극이다.

영화의 과녁으로 보이는 역사적 테일(tale)의 경중을 차치하고라도,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영화의 미학적 광채(光彩)로 가득하다. 마을을 둘러싼 눈부신 초록이 토해 내는 풍광은 쓸려나가지 못한 일제의 잔재들, 예를 들어 일본식 이층집이나 상점들과 함께 역설이 빚어내는 아름다움의 극단을 전시한다. 자연 안에 안겨 있는 식민의 증거들은 폭력의 자장 안에서 성장하고 소실되는 한 소년의 인생처럼 모순되고 애처롭다.

[셋] 백윤식·성동일의 '귀한 프로젝트', 영화 <반드시 잡는다>

 영화 <반드시 잡는다>

ⓒ (주)NEW


소리 소문도 없이 개봉했다가 사라진 <반드시 잡는다>는 주변인 모두에게 꼭 '봐주라'고 추천했던 영화다. 영화의 완성도가 대단히 뛰어나서라기보다는 중년의 배우들의 고군분투가 영화의 동력이 되는, 대단히 '인간적인' 드라마이기 때문이고 이런 영화가 나와주는 것만도 짠한 한국영화 산업의 환경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한 노인(백윤식 분)이 자신이 세 준 아파트에서 일어나는 연쇄살인들을 추적하며 벌어지는 스릴러 코미디다. 백윤식과 은퇴한 경찰로 등장하는 성동일의 콤비가 그들이 거의 동년배로 나오는 억지스러운 설정을 제외한다면 꽤 볼만하다. 약간의 억지를 부린다면, 한국형 <익스펜더블>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싶을 정도로 배우들의 연기가 좋다.

연쇄살인범의 정체를 둘러싼 반전으로 몰아가는 영화 중반의 장치들은 클리셰투성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배우들의 호연이 '작지 않은 단점'들에 눈감고 싶게 만든다. 백윤식, 성동일, 천호진, 배종옥 같은 중견 배우들이 투합하는 스릴러 영화라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고마운 프로젝트인가. 더구나 성동일의 코믹연기는 늘 그렇듯 탁월하다.

이런 점을 두고 보면, <반드시 잡는다>는 적어도 '양심 있는' 영화임은 확실하다. 비슷한 소재와 형식의 '무한 반복'을 미안해하지도 않는, 뻔지르르한 고예산 영화들보다 훨씬 더 재치가 넘치기 때문이다.

올해의영화 리뷰 반드시잡는다 패터슨 고령가소년살인사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