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전체관람가>의 공식 포스터.

JTBC <전체관람가>의 공식 포스터. ⓒ JTBC


전제는 이거다. 후발 예술 장르였던 영화는 태생부터 가장 '비싼' 예술이었다. 그래서 영화라는 창작물은 결국 돈과의 싸움이다. 제작비라는 것이 한없이 늘리면 늘릴 수 있는 것이고, 또 줄이자면 초저예산도 가능한 것이다. 줄이겠다고 맘먹으면 가장 먼저 허리띠를 졸라 매게 되는 것이 바로 (스태프들의) 인건비(라 여기고). 24일 종영된 JTBC <전체관람가>에 게스트로 출연한 이해영 감독도 바로 이 점을 언급했다.

"3,000만원으로 단편영화를 만든다, 가능할 수 있는 금액이긴 하죠. 이렇게 스태프들에게 고마운 마음으로, 그들의 노고를 고마움으로(만) 치환해버리면 안 되지 않을까. 만약에 <전체관람가> 시즌2가 만들어진다면, 이 시스템에 대한, 현장에서 뛰는 스태프들의 노동에 정당하게 대가를 줄 것인가에 대한 확실한 시스템을 마련해야 되지 않나, 그게 선행돼야 하지 않는가."

<전체관람가>는 분명 독창적인 예능이었다. 명분과 선의가 도드라진, 창작의 의의와 재미가 공존하는 '영화와 방송의 콜라보'는 확실히 여타 예능과는 차별화를 이룰 수밖에 없는 시도였다. 10명의 감독들이 창작 과정까지를 공개하며 단편영화를 만들고, 이를 일요일 밤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공개하는 형식은 누군가에게는 영화 보기의 즐거움을 일깨우고, 또 누군가에게는 창작의 순간과 고민을 엿보게 해주는 흥미로움 그 자체일 수 있었다.

기성 감독의 10편의 단편영화, <전체관람가>의 가치

 JTBC <전체관람가>에 출연한 양익준 감독.

JTBC <전체관람가>에 출연한 양익준 감독. ⓒ JTBC


비록 '열정페이' 논란이 일었지만, 그 역시도 영화라는 장르가 지닌 태생적인 조건까지도 돌파하려는 제작진의 선의로 받아들일 만한 구석이 없지 않다. 각기 다른 창작의 과정과 작품의 공개를 모두 아우르려는 시도 자체가 잡음을 낼 여지를 안고 있었던 것이다. 단적인 예로, 양익준 감독과 박광현 감독의 예가 그러하다.

3,000만원으로 제한된 제작비의 상당수를 '펀머니'라는 명목으로 신인 배우들과 친해질 시간에 투자했다는 양익준 감독과 사비까지 투자해 물량을 투입했던 박광현 감독의 '과정'은 달라도 한참 다르지만 또 함부로 재단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각자 자신의 색깔과 소재에 맞는 이야기를 꺼내든 감독이 그에 최적화된 화면을 끌어내기 위해 그 목표에 동의한 스태프들과 현장을 이어가려는 노력을 단순히 '열정페이' 문제 하나 만으로 폄훼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해영 감독의 말마따나, 시즌2가 제작된다면 그러한 스태프 인건비 문제 역시 투명하고 확실하게 '시스템화'돼야 하는 것은 재론할 여지가 없다. 현장과 작품, 평가가 종종 분리되기도 하는 영화 창작의 전후를 결합하려고 했던 <전체관람가>가 시즌2를 준비한다면 이러한 제작 시스템을 좀 더 사려 깊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24일 방송에서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식을 스케치하고 프로그램을 통해 발생한 수익금을 독립영화계에 기부하겠다는 애초 취지를 지킨 것과 같은 '선의'에 부합하기 위해선 말이다.

그럼에도, 10편의 단편영화를 공개한 <전체관람가>의 족적은 눈부셨다. 거장의 연출력을 만방에 알린 이명세 감독을 필두로 색다를 색깔을 보여준 정윤철 감독, 자기 인장을 굳건히 한 임필성, 이경미 감독, 특유의 B급 감성을 자랑한 이원석 감독, 안정적인 연출력을 창감독, 비틀어진 수퍼히어로를 선보인 박광현 감독, '19금' 이미지를 떨쳐낸 봉만대, 지극히 '독립영화'스럽고 귀여운 작품을 완성한 양익준 감독, '세월호 참사'란 소재에 부끄러움 없는 작품을 만든 오멸 감독까지.

<전체관람가>는 분명 단편소설, 단막극에 비견되는 단편영화만의 재미와 필요 이유를 증명하는 것을 넘어 그 가치를 미지의 관객들에게 널리 알리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전체관람가>의 시즌2의 편성을 응원하면서, 그 중 다시 감상해도 부족함이 없을,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작품들 몇 편을 되짚어 보고자 한다.

참고로, <전체관람가>의 모든 단편들은 감독판은 '스튜디오 룰루랄라'의 페이스북 페이지유투브 채널에서 다시 볼 수 있다.

이명세 감독의 <그대 없이는 못 살아>

 이명세 감독의 <그대 없는 못 살아>의 한 장면.

이명세 감독의 <그대 없는 못 살아>의 한 장면. ⓒ JTBC


마치 이명세 감독이 1996년에 만든 <지독한 사랑>을 연상시키는 구도와 정서에 훨씬 간결하고 강렬한 이미지들이 결합됐다. 정확히 묘사되진 않는다. 그러나 어느 순간 사랑했고 지금은 이별하고자 하는 듯 한 남녀의 애달프고 처절한 감정이 이명세 감독 특유의 정서적인 편집과 액션, 미학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녀의 눈을 파내고 싶었다"라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속 문장으로 시작해 "사랑은 너에게 어떻게 왔던가"로 시작하는 릴케의 시구절로 마무리 하는 <그대 없이는 못 살아>는 확실히 '이명세 월드'의 정수를 맛볼 수 있는 우리가 그간 접할 수 없었던 독창적인 단편이다. 어서 이명세 감독의 장편영화를 극장에서 만나고 싶다는 욕망을 간절히 불러일으키는.

임필성 감독의 <보금자리>

 단편영화 <보금자리> 속 전도연.

단편영화 <보금자리> 속 전도연. ⓒ JTBC


단편소설 못지않게, 단편영화야말로 감독의 개성과 독창성을 고스란히 간직한 창작물임에 틀림없다. 전도연이 출연만으로 화제를 모은 <보금자리>는 한국에서 '그로테스크'의 세계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임필성 감독의 '정수'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단편이다. 더군다나 <헨젤과 그레텔>에 만족했던 관객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울.

그만큼 현대 한국인의 주요 관심사인 주거 문제를 낯선 아이의 방문과 어른이 빚어낸 욕망과 절묘하게 결합시킨 <보금자리>는 장편의 소재로도 부족함이 없는 이야기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작품이다. 섬세하고 잘 세공된 전도연의 연기 역시 이 간결하지만 강렬한 단편을 지탱하는 지렛대다.

이경미 감독의 <아랫집>과 창감독의 <숲 속의 아이>

 이경미 감독의 <아랫집>의 한 장면.

이경미 감독의 <아랫집>의 한 장면. ⓒ JTBC


잘 할 수 있는 이야기와 하고 싶은 이야기 사이. 기성 감독의 단편 작업은 대부분 이 두 가지 결정과 선택 사이에서 이뤄지는 것 아닐까. '층간소음'이란 소재로 터질 듯 한 긴장과 의외의 비약적인 결말을 선사하는 이경미 감독의 <아랫집>과 한국식 판타지 호러 영화의 프롤로그를 선보인 창감독의 <숲 속의 아이>는 그러한 선택의 중요성을 잘 드러내는 수작들이다.

더불어 두 작품 모두 이영애와 선우선의 예민하고 날선 연기를 통해 '영화 보기의 즐거움 = 배우의 발견'이라는 점을 다시금 재확인시켜준다. 

오멸 감독의 <파미르>

 오멸 감독의 단편 <파미르> 중 한 장면.

오멸 감독의 단편 <파미르> 중 한 장면. ⓒ JTBC


<전체관람가>가 애초 독립영화계의 '히든 카드'로 소개하며 공개를 미뤄왔던 오멸 감독은 세계적인 평가를 받았던 <지슬>의 '제주 4.3 항쟁'에 이어 '세월호 참사'를 소재로 한 단편을 선보였다. 어찌 보면, '세월호 참사'의 후일담을 그린 단편이 방송을 통해 전파를 탔다는 것 자체가 2017년의 '달라진' 한국사회를 반영하는 '의미'있는 수확일 수 있을 것이다. 내적으로도 <파미르>는 거친 듯 정제된 영상을 통해 상처 입은 이들을 잔잔히 다독이는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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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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