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라는 스포츠에서 키 작고 패싱력 좋은 정통 1번 포인트가드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팀이 하나가 될수록 더욱 강해지는 특성상 1번의 조율이 잘 돼서 유기적 플레이가 되면 한층 더 시너지가 발휘된다. 이를 입증하듯 대대로 강팀에는 뛰어난 1번이 함께 했다.

하지만, 꼭 그런 스타일의 1번이 무조건적으로 필요한 것만은 아니다. 1번도 결국은 팀이 가장 안정적으로 이기기 위한 시스템에서 나온 포지션별 분배일 뿐이다. 다른 방식으로 이길 수 있다면 1번의 역할을 줄이거나 바꾸어 보는 것도 얼마든지 생각해볼 수 있다. 1번을 위한 농구가 아닌 이기기 위한 농구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1번은 주로 팀내에 게임을 풀어줄 다른 포지션 선수가 부족하거나 패스를 득점으로 잘 받아먹을 수 있는 스코어러가 있을 때 효과가 극대화된다. 하지만 타 포지션에 포인트가드 이상으로 패싱 플레이를 즐기거나 볼 소유욕이 강한 선수가 있으면 상대적으로 시너지가 반감되기도 한다.

과거 'NBA(미프로농구)' 유타 재즈의 존 스탁턴은 포인트가드로서의 역량도 뛰어났으나 이를 살려줄 든든한 동료들도 함께했다. 기복없는 득점원 파워포워드 칼말론과의 픽앤롤 플레이는 알고도 못 막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오랜 시간 동안 환상의 궁합을 선보였다. 슈팅가드 제프 호너섹 역시 공 없는 움직임을 잘 가져가는 플레이를 통해 외곽 시너지에 한몫 단단히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반면 마이클 조던이 이끌던 시카고 불스 왕조는 1번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덜 중요했다. 공수에서 완벽한 밸런스를 자랑하던 조던은 자신이 공을 오래 가지고 있으면서 경기를 풀어나가는 능력이 좋았다. 모두가 인정하는 해결사였던지라 구태여 자신을 조절해줄 동료가 필요 없었다. 리딩 능력을 겸비한 것은 물론 공수에서 뒤를 받쳐줄 3번 스카티 피펜의 존재가 있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때문에 당시 조던의 시카고 왕조는 두 번의 3연패를 이룩하는 동안 1번의 역할이 매우 제한적이었다. 존 팩슨, 스티브 커 같이 오픈찬스에서 정확한 외곽슛을 적중시킬 수 있는 슈터 스타일 혹은 수비에 집중하는 론 하퍼가 팀 퍼즐에 더 잘 맞았다.

팀 사정에 맞는 1번 포지션 운영이 중요하다!

 서울 SK는 김선형을 1번으로 활용함으로서 평균 신장을 높히는 것은 물론 공수에서 더욱 위력적인 팀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서울 SK는 김선형을 1번으로 활용함으로서 평균 신장을 높히는 것은 물론 공수에서 더욱 위력적인 팀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 서울 SK


최근 국내 프로농구 트렌드 역시 이러한 추세로 변해가고 있는 모습이다. 강동희, 이상민, 김승현 등이 득세할 때만 해도 정통파 포인트 가드만이 1번의 상식으로 통하던 시절도 있었으나 꼭 그런 스타일이 아니라 해도 팀을 이기게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주전급 정통파 1번 자원이 점점 줄어드는 영향도 크다. 하지만 그러한 부분을 감안하더라도 다양한 스타일의 1번이 활용되고 있는 모습은 고무적인 상황인 것만은 분명하다.

프로농구 1번 역사에서 양동근(36·181㎝)이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감은 남다르다. 그는 앞서 언급한 정통적 포인트가드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자신만의 스타일을 통해 소속팀 울산 현대모비스에 수차례 우승을 안긴 것을 비롯 본인 역시도 이상민, 김승현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위치에 올라섰다.

양동근은 신장은 크지 않지만 탄탄한 근육질에서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파워와 스피드로 매치업 상대를 압살한다. 그와 몸싸움을 벌이는 대부분 상대 가드들은 월등한 힘을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소속팀에서는 이를 활용해 적극적으로 포스트업을 주문하기도 한다. 여기에 빼어난 슈팅력과 강한 체력까지 갖춰 돌파와 슛을 반복하며 상대를 농락하기 일쑤다.

이는 수비에도 영향을 끼쳐 양동근이 마음먹고 대인마크를 들어가면 어지간한 상대는 평소보다 좋은 움직임을 나타내기 어렵다. 경기 시야가 더 넓고 패싱센스가 좋은 가드라 해도 일단 맞상대에서 밀려 정상적인 플레이가 힘들다.

유재학 감독 역시 여기에 맞춰 팀 시스템을 구축해서 많은 재미를 봤다. 양동근 한명의 리딩에 의해 팀이 움직이는 것이 아닌 선수단 전체가 유기적인 움직임을 가져가고 다른 포지션에서도 적극적인 패싱게임에 참여하도록 팀컬러를 만들었다. '포인트 포워드'로 불리던 고 크리스 윌리엄스(194cm)나 함지훈(33·198cm)은 양동근과 최고의 '윈윈 파트너'였다.

SK 나이츠 역시 정통 1번을 고집하지 않는 시스템을 통해 팀 전체적 신장을 올리고 공격력까지 끌어올린 케이스다. 익히 잘 알려져 있다시피 SK 주전 1번은 김선형(29·187cm)이다. 김선형은 1번보다는 2번에 더 익숙한 선수다. 빼어난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공수에서 폭발적 에너지를 자랑한다.

하지만 문경은 감독은 김선형을 주전 1번으로 파격 기용했고 결과적으로 대성공이었다. 양동근이 그랬듯 자신의 매치업 상대를 압도하면서 주포겸 경기 리더로 팀을 잘 이끌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패싱능력을 겸비한 전천후 외국인선수 애런 헤인즈(36·199cm)의 존재도 컸다. 김선형이 1번을 보는 SK는 평균 신장에서 한층 올라갈 수밖에 없고 어떤 팀과의 매치업에서도 밀리지 않게 됐다.

이렇듯 현대 농구는 구태여 전형적인 포지션 분배에 집착하지 않고 이기는 트랜드를 철저히 따르는 쪽으로 흐름이 쏠리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여전히 여기에 역행하는 팀이 있으니 다름 아닌 추승균 감독의 전주 KCC다.

KCC 1번진은 다른 어떤 팀보다도 호불호가 뚜렷하다. 전태풍은 나이가 많으며 이현민은 주전으로 나서기에 2%부족하다. 유현준 같은 경우 차세대 주전 1번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으나 아직은 좀 더 성장해야한다. 때문에 이들은 쓰임새에 따라 경기력이 들쭉날쭉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적재적소에서의 활용도가 중요한 이유다.

현재 KCC 가드진이 가장 크게 지적받고 있는 요소는 수비 문제다. 하승진(32·221cm), 찰스 로드(32·200.1cm)로 구성된 KCC 빅맨진은 무늬만 '트윈타워'다. 높이는 분명 위협적이지만 경기력에 기복이 심하고 하승진의 느린 움직임으로 인해 안정감이 떨어진다. 특히 상대팀에서 전략적으로 약점을 공략할 경우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과거 허재 감독 시절에는 강력한 앞선수비를 통해 이같은 약점을 잘 메웠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현재 KCC 1번진은 하나같이 수비가 약하다. 도움수비는 커녕 자신의 마크맨을 제대로 감당하는 것도 쉽지 않다. 아무리 KCC 공격력이 좋다고하나 앞선, 뒷선 수비가 일거에 털리는 경우가 많아 늘 불안한 경기력을 노출한다.

이에 팬들은 "꼭 단신 1번을 필수조건으로 코트에 내세울 필요가 있느냐?"는 반문을 수년전부터 반복하고 있다. 팀 사정상 안드레 에밋(35·191cm)이 볼 소유의 상당 시간을 책임지고 있고 이정현(30·191cm) 또한 패싱센스가 뛰어난지라 항상 1번이 필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수비 하나에 강점이 있는 신명호(34·183cm)를 조커로 활용하거나 최승욱(23·192cm), 김민구(26·191cm) 등을 내세워 평균 신장이라도 높혀 볼 수 있다. 어차피 에밋, 이정현이 있는 상황에서는 1번의 역할이 제한적인지라 충분히 시도해볼 수 있는 변화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는 말이 절실한 최근의 KCC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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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인트가드 활용 1번의 변화 조던의 시카고왕조 팀포지션 배분 추승균감독의 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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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디지털김제시대 취재기자 / 전) 데일리안 객원기자 / 전) 홀로스 객원기자 / 전) 올레 객원기자 / 전) 이코노비 객원기자 / 농구카툰 크블매니아, 야구카툰 야매카툰 스토리 / 점프볼 '김종수의 농구人터뷰' 연재중 / 점프볼 객원기자 / 시사저널 스포츠칼럼니스트 / 직업: 인쇄디자인 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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