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곤조곤'은 책과 영화, 드라마와 노래 속 인상적인 한 마디를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무심코 스치는 구절에서 인상적인 부분을 이야기로 풀거나, 그 말이 전하는 통찰과 질문들을 짚으려 합니다. [편집자말]
고 종현, 영원히 기억될 아티스트 18일 사망한 아이돌그룹 샤이니 멤버 고 종현의 빈소가 19일 서울 풍납동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됐다. 일반인 조문은 같은 병원 장례식장 지하 1층 3호실을 통해 가능하다. 발인은 21일 오전 9시.

▲ 고 종현, 영원히 기억될 아티스트 18일 사망한 아이돌그룹 샤이니 멤버 고 종현의 빈소가 19일 서울 풍납동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됐다. 일반인 조문은 같은 병원 장례식장 지하 1층 3호실을 통해 가능하다. 발인은 21일 오전 9시. ⓒ 사진공동취재단


살아가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경험도 더 많이 하게 돼요. 죽음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은 것이 되었죠. 물론 부고는 언제나 놀라운 소식이지만 어느샌가부터 저는 그것을 담담하게 넘기기 시작했어요. '늘 일어나는 일이야, 사람은 태어나고 또 죽기도 해. 때로는 너무 갑작스럽게 예상치 못한 순간에.' 하지만 이상하게도 당신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 앞에서는 그러지 못했어요. 입이 마르고 이상하게 일에 집중하지 못했어요.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혼자 술을 마시다 가만히 눈물을 흘렸어요. 물론 당신은 호감을 살만한 인물이긴 했지만 전 당신의 팬도 아니었는데 말이에요.

사람들은 흔히 모든 마지막 순간에는 처음을 회상하게 된다고 말해요. 그건 관계도 마찬가지겠죠. 종현, 저는 당신을 처음 본 순간이 떠올랐어요. 그때 제가 중학생이었는지 고등학생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요. 아무튼 당신은 그룹 샤이니로 데뷔해 '누난 너무 예뻐'라는 히트곡으로 가수 생활을 시작했죠. 솔직히 제 주변의 남자 아이들은 별로라는 반응이었어요. 스키니 팬츠를 입고 사근사근하게 '누나'라고 말하는게 남자답지 못하다나. 하지만 저는 같은 이유로 샤이니라는 그룹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호감을 느꼈어요. 쉬는 시간이면 서로를 밀치며 장난치고 땀 냄새가 늘상 풍기던 주변의 교실의 남자들과 당신은 확실히 달랐죠.

변치 않는 선함을 보여주었던 가수

이걸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요. 무해함. 맞아요, 샤이니는 그때 제게 그런 이미지였어요. 보통 남자 아이들은 서로를 공격하거나 무례하게 대하는 방식으로 친근감을 표시하기도 하잖아요. 당신은 그 아이들이 보이는 활기에서 모든 공격성은 빼버린 느낌을 주었죠. 그 당시 제가 즐겨보던 순정만화 속 남자 주인공들 같기도 했어요(여담이지만 그 만화들을 보며 이상형을 형성했던 게 긴 시간 제 연애의 발목을 잡았죠). 과시적이지도 않고 마초성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렇다고 마냥 유약해 보이지 않고 해맑기 그지 없던 모습. 물론 방심하기는 일렀죠. 보통 아이돌들은 시간이 흐르면 '이제는 상남자로 돌아왔다'며 근육질의 몸을 과시하거나 이전의 섬세함은 몽땅 내다버린 행동을 하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오랜 활동 시간 여러 콘셉트를 거치면서도 제가 좋아했던 그 모습만큼은 샤이니에서 사라지지 않았어요. 그리고 종현 역시도 계속해서 그런 사람으로 남아주었죠. 서로를 깎아내리는 것이 재미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이 시대에 당신은 보기 드물게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 배려를 보이는 사람이었어요. 심지어 자신과 전혀 무관한 이들에게조차. 대학가에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가 들불처럼 붙여지던 때, 누군가 성소수자로서 자신이 차별 받는 현실을 이야기한 글을 공유했죠. 당신은 그 자보를 SNS 프로필 사진에 올리고 작성자에게는 응원의 말도 전했어요. 심지어 원치않는 주목과 이슈화로 피해를 입을까 걱정하며 개인 메시지로 그 이야기를 하기까지 했지요.

그것은 당신 탓이 아니에요

제가 그 순간에 얼마나 큰 감동을 받았는지 몰라요. 주변 사람들에겐 '당연한 소리를 한걸'이라며 시큰둥하게 말했지만 사실은 이불을 뒤집어 쓰고 환호성을 질렀죠. 그리고 그 일은 한동안 성소수자로서 살아가는게 힘에 부칠 때 위로와 용기가 되어주기도 했고요. 그 때에 제 핸드폰 배경화면 사진은 바로 당신이었어요.(하지만 지금은 다른 사람이에요, 용서해줄 거죠?) 이것뿐일까요. 언젠가 당신이 라디오 방송에서 '여성은 영감을 주는 뮤즈'라는 말을 하고 누군가 그것을 비판했을 때, 당신은 그 말을 무시하거나 혹은 불평하지 않았어요. 대신 그 사람을 찾아가 무엇이 문제였나를 듣고 알고자 했죠. 가만히 있으면 잊혀질 수도 있는 일이지만 당신이 스스로의 말이 올바르지 않거나 그래서 누군가를 차별하기를 원치 않았어요. 그리고 실수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변화하고자 했죠.

당신은 늘 그런 사람이었어요. 정말 기본적이지만 사실은 누구도 실천하기 어렵고 그래서 자주 그 가치가 무시되는 인간적인 예의가 몸에 배인 사람. 그래서 말 한 마디와 행동 하나로 여러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사람. 하지만 우리는 그런 당신의 존재를 충분히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던 걸까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야 말로 사회의 각박함을 가장 예민하게 느끼고 그래서 더 깊이 상처받고 아파할 수 있음을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요. 당신은 유서에서 웃지는 못하더라도 탓하며 보내진 말아달라고 이야기 했죠. 아니에요. 당신 탓이 아니에요. 단지 당신이 우리와 이 공동체에게 분이 넘치는 사람이었을 뿐이예요. 이 곳은 당신히 함께할만큼 충분한 아름다움과 따뜻함을 전하지 못하는 공간이죠. 그래서 미안해요.

수고했어요, 정말 고생 했어요

 '쫑디'  고 종현의 모습.

ⓒ MBC 라디오


2015년 당신은 '하루의 끝(End of a day)'라는 노래를 발표했죠. 가사가 좋아 오랜 시간 퇴근길을 함께했던 곡이에요. 저는 이 노래를 생각할 때면 항상 노랫말을 먼저 떠올리곤 했지만, 오늘 다시 곡을 듣다 뜻하지 못한 부분에서 울컥하는 감정이 들었어요. 당신은 이 노래를 고된 한숨으로 시작했죠. 여러 마디의 말보다 가장 당신의 감정을 깊게 드러내는 소리. 그제야 저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 노래는 당신의 이야기였군요. 아파보았기에 고통을 겪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말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군요. 아니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가 듣길 원하는 말이 남들에게도 요원한 것이라는 생각을 잘 하지 못해요. 그래서 그것을 꺼내고 표현할 줄을 모르죠. 종현, 이 노래는 당신이기에 만들 수 있었던 곡이에요.

가수로서 방송인으로서 라디오 DJ로서, 그리고 한 명의 인간으로서 당신은 사람들을 애정으로 보듬고 부당한 처지에 놓인 이들에게 지지를 보내고 따뜻한 위로를 전했죠. 나는 당신의 선택에 슬픔을 느끼지만 비난도 어떠한 판단도 하지 않고 싶어요. 그저 당신에게 지금껏 스스로가 해오던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시기가 온 것 뿐이죠. 그리고 저는 당신에게 작별 인사를 하지 않을 거예요. 거리를 가늠할 수 없는 생의 너머에서 숨을 고르는 동안, 이제는 우리가 당신이 보였던 관대함과 성찰, 다른 사람들을 향한 애정과 배려를 품고 갈게요. 당신이 하고자 했던 그 일을 계속해서 할게요. 그렇게 우리는 당신의 존재를 이어 나갈 거예요. 당신이 추구한 가치를 실현하는 순간마다 우리는 여전히 함께일 수 있다고 믿어요.

마지막으로 이 편지를 쓴 가장 큰 이유를 말해야겠네요. 더 늦기 전에 언젠가 당신이 불렀던 노랫말 한 구절을 돌려주고 싶었어요. '수고했어요 정말 고생했어요. 그댄 나의 자랑이죠.' 그러니 이제는 편안하길 바라요.

종현 샤이니 하루의 끝 김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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