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전 서울 강동구 서울아산병원에서 샤이니 멤버 고 종현의 발인에서 샤이니 멤버 태민, 키, 슈퍼주니어 이특, 은혁, 예성, 동해가 운구를 하고 있다.

21일 오전 서울 강동구 서울아산병원에서 진행된 샤이니 멤버 고 종현의 발인 모습. 샤이니 멤버 태민, 키, 슈퍼주니어 이특, 은혁, 예성, 동해가 운구를 하고 있다. ⓒ 이희훈


21일 오전 샤이니 멤버인 고 종현의 발인이 가족과 동료, 팬들의 슬픔 속에서 진행됐다. 그의 죽음은 필자와 친구들에게 유독 충격으로 다가왔다. 많은 또래 친구들이 학창 시절에 샤이니의 음악을 들었다. 군대에서도 'View'를 들으며 산뜻함을 느꼈고, 노래방에서 솔로곡인 '데자부'를 즐겨 부르기도 했다.

동시대를 살아온 뮤지션의 죽음이었기에, 충격은 배가 되었다. 2008년에 데뷔한 샤이니는 9년을 이어온 장수 아이돌이다. 이들의 퍼포먼스와 라이브 실력은 아이돌 그룹 전체를 놓고 봐도 최상위권이었다. 안타깝게도 샤이니 음악의 중심에 있던 그가 숨을 거뒀다.

안타까웠던 것은, 그의 죽음을 놓고 수많은 언론들이 자극적인 보도를 쏟아냈다는 점이다. 사실 관계를 따지는 차원을 벗어나, 눈을 뜨고 보기 민망한 가십성 기사들도 눈에 띄었다. 조회수 올리기에 혈안이 된 이들을 보면 환멸감마저 느껴졌다. 이 글에서는 고인이 얼마나 좋은 음악인이었는지를 조명하고자 한다. 그것이 뮤지션에 대한 진정한 예의라고 믿기에.

부지런한 예술가, 다채로운 감성

현재, '하루의 끝', 'Lonely', 종현이 작사 작곡한 '한숨'(이하이)이 나란히 주요 음원 차트 상위권에 올라있다. 그를 추모하는 대중들이 안타까운 마음을 달래며 그의 음악들을 찾아 듣고 있는 것이다.

나는 종현을 보면서 늘 '가지고 있는 실력에 비해 저평가된 뮤지션'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종현이 팀의 메인보컬답게 빼어난 노래 솜씨를 갖추고 있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샤이니의 노래에서 난이도가 높은 파트는 주로 그와 온유가 도맡았으며, 가장 많은 파트를 담당하는 보컬이었으니 말이다. 특히 종현이 부른 솔로곡 '혜야'(샤이니 정규 1집 수록)는 노래방 애창곡 순위에 이름을 올리며 사랑받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돌이라는 타이틀이 '뮤지션 종현'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가로막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는 샤이니와 솔로 활동을 통해 증명했듯이, 다양한 빛깔의 감성을 노래할 수 있는 싱어송라이터였다. 특히 최근 몇 년 동안의 그의 행보는 유독 흥미로웠다. 샤이니의 멤버로서도 큰 공헌을 했지만, 그는 솔로 앨범에서 자신의 가치를 오롯이 뽐냈다.

 고 종현은 자신의 첫 정규 앨범에서 절정에 올라 있는 기량을 뽐냈다.

고 종현은 자신의 첫 정규 앨범에서 절정에 올라 있는 기량을 뽐냈다. ⓒ SM 엔터테인먼트


종현은 한 가지 스타일에 자신을 가둬놓지 않고, 다양한 음악을 시도하는 뮤지션이었다. 2015년 1월, 첫 발매한 솔로 앨범 < Base >에는 그의 야심이 담겨 있었다. 펑키한 사운드의 '데자부', 퇴폐미마저 풍기는 'Crazy(Guilty Pleasure)', 윤하와 함께 부른 'Love Belt' 등, 각 수록곡이 서로 다른 리듬을 뽐내고 있어 듣는 재미가 있었다.

2016년에 발매된 첫 정규앨범 < 좋아 - The 1st Album >은 필자가 가장 즐겨 듣는 음반이기도 하다. 이 앨범에서 종현은 자신의 기량이 절정에 올라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알앤비, 네오소울, 트랩, 퓨처베이스 등 다양한 스타일을 한 앨범에 조화롭게 공존시키는 것은 물론, 능수능란하게 창법을 바꿔 가며 영리하게 노래했다. '좋아'(She Is)나 'White T-Shirt', 'Dress Up' 등을 듣고도 그 그루브를 거부하기란 어려웠다.

종현은 어쿠스틱 사운드에 기반을 둔 소품집에도 큰 애착을 보였다. 그의 소품집은 < 이야기 Op 1 >, <이야기 Op 2 >로 나뉘어 발표되었는데, 제목 그대로 자신의 내면을 여과없이 비춘 일기장과 같았다. 그의 죽음 이후 많은 팬들을 울렸던 '하루의 끝', 'Lonely' 역시 소품집들에 수록되어 있었다. 그 외에도 종현은 SM 스테이션 프로젝트를 통해 일렉트로닉 뮤지션 임레이(IMLAY)와 콜라보하는 등, 그는 단 한 순간도 안주하지 않는 뮤지션이었다. 세상은 넓고, 그가 할 수 있는 음악은 많았다.

위로했던 사람, 위로를 갈망했던 사람

3년 동안 심야 라디오 <푸른 밤 종현입니다>를 진행한 종현은 남다른 공감 능력으로 청취자들의 깊은 신뢰를 받았다. 그는 사연에 함께 가슴 아파했고, 때로는 진중한 조언을 보내기도 했다. 사연을 엮어 자작곡을 빚으며 청취자들과 호흡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은 그의 방송을 듣고 큰 위로를 받았다고 고백했다. 푸른 밤을 떠나던 날, 그는 말을 잇지 못할만큼 서럽게 울었다. 그 역시 라디오를 통해 위로를 받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한편, 그는 사회적 발언을 하는 데에 있어 결코 주저하지 않는 캐릭터였다. 대형 기획사의 아이돌 그룹으로서는 흔치 않은 캐릭터였다. 팬들에게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억하자고 외쳤고, 국정 교과서 등 정부의 정책을 직접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성소수자인 대학생 강은하씨의 대자보를 프로필 사진으로 걸어두고, 그에게 연대와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던 일화 역시 유명하다.

종현은 언제나 누군가를 위로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위로받기를 원했고, 행복한 삶을 갈망했다. 그의 소품집을 들어보니, 위로와 결핍은 그의 음악 세계 상당 부분을 지탱하는 정서였다. '한숨'을 부른 이하이는 종현의 부고를 접한 후, '어쩌면 이 노래는 다른 사람들에게 듣고 싶었던 말들을 가사로 적은 곡인가봐요'라는 말로 슬픔을 표했다.

세상에 지친 날 누가 좀 제발 안아줘
눈물에 젖은 날 누가 좀 닦아줘
힘들어하는 날 제발 먼저 눈치채줘
못난 날 알아줘, 제발 날 도와줘
- 놓아줘(Let Me Out) 중

 종현의 첫 솔로 앨범 < BASE >는 야심에 가득 찬 작품이었다.

종현의 첫 솔로 앨범 < BASE >는 야심에 가득 찬 작품이었다. ⓒ SM 엔터테인먼트


작년 가을, SM에서 주최한 '스펙트럼 댄스 뮤직 페스티벌'에서 샤이니의 공연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실제로 본 종현의 모습은 '스웨그' 그 자체였다. 안정적인 라이브 실력은 물론, 몸짓이나 표정 하나 하나에서 아이돌다운 빛이 났기 때문이다. 그 기억이 지금도 또렷하게 남아 있다.

그야말로 허망한 상실이다. 보석같은 뮤지션이 떠났다. 죽음이라는 단어는 아직 젊은 그와 어울리지 않는다. 디어클라우드의 나인이 전한 종현의 유서를 천천히 읽어 보았다. '속에서부터 고장났다'는 대목에서 가늠하기 어려운 무력감이 느껴졌다. 언뜻 커트 코베인이 남긴 유명한 유언('기억해주길 바란다. 때로는 천천히 사라지는 것보다 한번에 불타버리는 것이 낫다는 것을')이 머리를 스쳐가기도 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고통스럽게 했을까. 짐작하는 일마저 조심스럽다.

종현은 무대 위의 가수로서 수만명의 팬들을 춤추게 했으며, 3년 동안 청취자들의 공허한 새벽을 채우기도 했다. 그는 언제나 음악에 있어 진취적이었고 부지런한 예술가였다. 아직 서른이 채 되지 않은 나이. 그의 미래를 궁금해 하는 것은 분명히 가치있는 일이었다. 안타깝게도 그 미래는 영원한 미완으로 남고 말았다. 그러나 그가 혼신의 힘을 쏟아 만들어낸 소리들은 여전히 이 땅에 남아있다. 우리는 그가 이 땅에 남긴 소리들과 함께, 열정적인 뮤지션 종현을 기억할 것이다.

종현 샤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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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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