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MBC < PD수첩>은 KBS 방송장악 잔혹사를 다뤘다. 함철 KBS 기자는 고대영 사장이 정연주 전 사장을 내쫓으려 했다고 증언했다.

19일 MBC < PD수첩>은 KBS 방송장악 잔혹사를 다뤘다. 함철 KBS 기자는 고대영 사장이 정연주 전 사장을 내쫓으려 했다고 증언했다. ⓒ MBC


MBC 간판 탐사 보도 프로그램 <PD수첩>이 리셋 되더니 거침 없다. 지난 12일 방송에서 'MBC의 몰락, 7년의 기록'을 다룬 데 이어 19일 오후에는 '방송장악 10년, KBS를 지키러 왔습니다?' 편이 방송됐다. 공영방송 KBS의 보수정권 잔혹사를 다룬 내용이다.

이날 방송에서는 이명박·박근혜 정권 하에서 이뤄진 KBS 장악이 심각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특히 고대영 현 KBS 사장을 축으로 한 정치부 기자 50여 명이 회합을 갖고 정연주 전 사장을 몰아내려 했다는 대목은 그야말로 충격적이다. '수요회의'라고 이름을 붙인 모임에 참석했던 함철 KBS 기자는 이렇게 증언했다.

"정연주 사장이 신문(기자) 출신인데 KBS에 대해 너무 모른다. 그러다 보니까 인사를 잘 못한다, 경영을 잘 못한다. 정연주 사장을 빨리 몰아내야 되고, 이제 KBS 출신, 공채 출신 사장이 와야 하는 거 아니냐?"

이제껏 이명박 정권의 KBS 장악은 이명박 대선캠프에서 언론 특보를 맡았던 김인규를 KBS 사장으로 내정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물론 이명박 전 대통령은 KBS를 정부 입맛에 맞게 바꾸려 했을 것이다. 문제는 KBS 구성원들이 정부에 신호를 보냈다는 점이다. 그리고 고대영 사장은 그 정점에 서 있었다.

'공'을 인정받았는지 고대영은 김인규 사장 시절 승승장구 했다. 김 사장 재임 시절 보도본부장을 맡았고, 박근혜 정권에 오면서는 사장 자리까지 꿰찼다. MBC 장악의 '공범자들'이 김재철·김장겸 전 사장이라면 KBS 장악의 '내부자'는 고대영 사장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고 사장이 승승장구하는 사이 시청자들에게 KBS의 신뢰는 급하락 했다. 2009년 '용산 참사' 당시엔 피해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겼고, 국가정보원의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망신주기 공작에도 KBS는 전파를 아끼지 않았다.

<PD수첩>은 고 사장의 비리 외에도 이사회가 사장을 감시하면서 사실상 총독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들었다. 그리고 방송 말미에, 공영방송으로서 KBS가 위상을 되찾기 위해 이뤄져야 할 근본적인 과제를 던졌다.

KBS 정상화? 정상적이었던 시절이 있었나

 성재호 KBS 새노조 위원장은 < PD수첩> 취재진에게 "KBS 파업은 체질을 바꾸는 싸움"이라고 말했다.

성재호 KBS 새노조 위원장은 < PD수첩> 취재진에게 "KBS 파업은 체질을 바꾸는 싸움"이라고 말했다. ⓒ MBC


먼저 KBS를 정상화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는 방송가에서는 물론 시민 사회에서도 줄곧 제기돼 왔다. 그러나 막상 지난 역사를 돌이켜 보면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제 구실을 한 시절은 아주 짧았다. 1995년부터 2013년까지 KBS에 몸담았던 최경영 <뉴스타파> 기자는 자신의 책 <뉴스는 어떻게 조작되는가?>에서 KBS의 역사를 이렇게 적는다.

"KBS는 원래 정부의 한 부처였다. 문화공보부의 일개 국이었다. 나이든 어르신들이 아직도 방송사를 방송사라 하지 않고, 방송국이라고 하는 것은 이런 역사 때문이다. KBS는 문화공보부의 중앙방송국이었다. 정부 정책을 홍보하는 스피커였다. 그곳에서 기자, PD, 아나운서를 했던 사람들도 공무원이었다. 공무원이 정부를 견제하거나 감시할 리는 없다."

결국 KBS는 태생부터 정권의 '애완견' 노릇을 할 수 밖엔 없었던 셈이다. KBS가 '공영방송'이었던 시절은 기껏해야 김대중·노무현 정부였던 10년 남짓이었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고 방송을 장악하려 시도하자 KBS는 무기력하게 정권의 손아귀에 넘어갔다. 2008년 고대영을 비롯한 내부 구성원들이 정연주 당시 사장을 내쫓고 공채 1기 김인규를 사장으로 모시고자 '작당'한 사실이 특히 그렇다. 이런 사실에 비추어 보면, KBS는 태생적 한계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셈이다. 최 기자는 이를 두고 "오래된 습관이 쉽게 지워질 리 없다"고 꼬집었다.

이런 흐름에서 볼 때 방송 말미에 등장한 성재호 KBS 새노조 위원장의 말은 깊은 울림을 던져준다. 성 위원장은 <PD수첩> 제작진에게 이렇게 말했다.

"KBS는 그 태생부터 지금까지 사실 권력에 매우 취약한 그런 어떤 전통, DNA 같은 게 있어요. 여전히 그 DNA는 바뀌지 않았다고 봐요. KBS의 DNA를 바꾸는 그 시작, 그 싸움의 시작은 지금이라고 생각해요. 지금부터 정말 우리는 DNA를 바꾸는 싸움을 하는 거예요."

고통 없이 열매 얻을 순 없다

공영방송 정상화는 이명박·박근혜 보수 정권에 부역했던 공범자들을 내쫓는다고 완성됐다 말할 수는 없다. 더구나 공영방송을 망친 주범들의 저항은 생각 외로 완강하다. 감사원 감사결과 KBS 이사진들이 업무추진비를 동호회 회식비나 유흥주점 경비 등 사적인 용도로 사용했음이 드러났음에도 당사자들은 적반하장이다. 심지어 강규형 이사는 자신의 비리를 제보한 시민에게 협박까지 일삼았다.

그 어느 누구보다 논란의 중심인물인 고 사장은 방송법이 바뀌면 퇴진하겠다면서 버티는 중이다. 이인호 이사장 역시 사퇴 거부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는 상태다. 그럼에도 공영방송 정상화는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 시민들은 이명박·박근혜 보수정권 9년을 거치면서 공영방송이 제대로 서지 않으면 나라가 망할 수 있음을 피부로 느꼈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선 진통쯤은 감수하고서라도 공영방송을 바로 세워야 한다.

가장 먼저 공영방송을 망치는 데 부역했던 공범자들을 척결하고, 필요하다면 사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또 다시는 정권이 공영방송 장악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보다 근본적으로 공영방송 안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태생적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이 과업이 선행되지 않으면, 언제고 공영방송이 어느 순간 국정 홍보방송으로 우리 앞에 와 있는 광경이 펼쳐질 것이다.

체질 자체를 바꾸는 일은 고통이 수반되는 일이다. 성재호 위원장의 표정에서 그 고통이 보인다. 이 아픔이 달디 단 열매를 맺기를 기원한다. 아니, 시청자들이 곧 달디 단 열매를 맛볼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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