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비> 포스터.

<강철비> 포스터. ⓒ 와이웍스엔터테인먼트


정우성·곽도원 주연의 영화 <강철비>는 북한 쿠데타를 가정한 영화다. 인민무력부 정찰총국장 리태한(김갑수 분)의 부하인 엄철우(정우성 분)는 쿠데타 주역을 저격하라는 리태한의 밀명을 받고 개성공단에 들어간다. 한국 기업들이 자리를 비운 개성공단에서 중국 기업들의 입주 기념행사가 열릴 예정이었다. 그 자리에 '북한 1호'가 참석하는 틈을 타 쿠데타가 벌어진다는 것이었다. 

엄철우는 자신이 쿠데타를 진압하는 쪽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방조하는 쪽이었다. 상관 리태한이 개성공단에서 벌어질 쿠데타의 주모자였던 것이다. 리태한은 최정예 킬러 엄철우의 손을 빌려 반대파를 제거하고자 했다. 1392년의 태종 이방원도 아니면서 개성에서 정적을 없애려 한 것이다.

그런 줄 꿈에도 모르는 엄철우는 개성공단에 들어갔다가 '북한 1호'가 사격을 받고 쓰러지는 장면을 목격한다. '장군님'을 살려야 한다는 일념에 엄철우는, 난리를 피해 남한으로 달아나는 중국 기업인들 틈에 섞여 휴전선을 넘는다. 그런 뒤 1호의 무사귀환과 쿠데타 진압을 위해 모험에 나서게 된다.

<강철비>는 북한 쿠데타를 소재로 택해, 현실과 동떨어지기는 하지만 꽤 흥미로운 상상력을 보여주었다. 어느 영화나 다 상상력을 기초로 하지만, 북한 쿠데타를 다루는 영화는 상상력이 더욱 더 필요하다. 왜냐? 이 분야에서는 실화 사극이 나오기 힘들기 때문이다.

남한 쿠데타를 다룬 영화를 만들고자 한다면, 최근 역사에서 얼마든지 소재를 찾을 수 있다. 쿠데타 주역들이 서울 시내에 아직 살아 있다. 그래서 시나리오 집필 과정에서 상상력에 대한 의존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반면, 북한 쿠데타와 관련해서는 사례를 찾기가 쉽지 않다. 1986년 12월과 이듬해 5월 김일성에 대한 군부의 암살 시도가 있었다고 하지만, 사실로 확인되지 않았다. 그래서 북에서는 공식적으로는 쿠데타가 없었다. 이 때문에 북한 쿠데타에 관한 영화를 만들자면 한층 더한 상상력이 요구될 수밖에 없다. 

한·미·일 3국에서는 북한 쿠데타에 대한 전망이 많다. 한국과 미국이 준비한 비상시 매뉴얼 '작전계획(작계) 5029'에는 북한 쿠데타에 대비한 시나리오도 포함돼 있다.

강고해 보이는 북한에서도 급변 사태는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군부 쿠데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가능성이 낮다. 북한 체제의 특성상 그렇다. 공산주의 체제의 특성 속에 군부 쿠데타 가능성을 낮추는 기능이 있다. 북한 정권은 그것의 이점을 누리고 있다. 북한에서 쿠데타가 발생하지 않았거나 성공하지 못한 데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요인은 바로 체제 특성에 있다.

 전두환에 의한 1979년 12·12 쿠데타를 보도한 <뉴스위크>.

전두환에 의한 1979년 12·12 쿠데타를 보도한 <뉴스위크>. ⓒ 김종성


북한에서 쿠데타가 가능할까
인류 역사에서 군부 쿠데타가 자주 발생한 나라들은 '문민 권력과 군부 권력이 분리'(제1조건)되고 군부의 일상적인 정치 개입이 차단(제2조건)된 국가들이었다. 대한민국처럼 서구형 정치 시스템을 도입한 나라들이 아주 전형적인 경우에 해당한다. 현행 대한민국 헌법에 다음 조항들이 있다.

제5조 제2항: 국군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을 사명으로 하며, 그 정치적 중립성은 준수된다.
제86조 제3항: 군인은 현역을 면한 후가 아니면 국무총리로 임명될 수 없다.
제87조 제4항: 군인은 현역을 면한 후가 아니면 국무위원으로 임명될 수 없다.

제86조와 제87조에 따르면, 군인은 총리나 장관이 될 수 없다. 제1조건이 충족된 것이다. 제5조에서는 국군의 정치적 중립성이 준수된다고 했다. 군대는 정치에 간여하지 말라는 우회적 메시지다. 제2조건이 충족된 것이다.

두 조건이 충족된 정치 시스템에서는, 군대가 문민정부보다 실제론 강한 권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평소에는 국정운영에 관여할 수 없다. 정치에 대한 욕구를 한없이 억제해야 한다. 물론 국방 문제에서는 다르지만, 전반적 국정운영에서는 배제된다. 그래서 군부는 힘과 욕구를 억제하고 정치로부터 초연해지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

사실, 60명 정도의 무장병력을 지휘하는 젊은 20대 소대장만 해도, 군사력 측면에서는 웬만한 장차관 이상의 파워를 갖고 있다. 하지만, 문민정부 시스템에서는 젊은 장교 취급을 받아야 한다. 20대 소대장보다 훨씬 막강한 고급 장교들도 자신이 행사할 수 있는 실제 권력보다 낮은 지위와 권한에 만족해야 한다. 그리고 공식적 자리에서는 정치문제를 입에 담아선 안 된다.

하지만, 문민정부가 국민 지지를 받지 못하거나 사회질서를 유지하지 못할 경우에는, 군부 내에서 정치참여 욕구가 팽배해질 가능성이 있다. 조직력과 전투력을 보유한 군부로서는, 문민정부가 무기력한 상황에서 자신들이 가장 강력한 조직이라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때 군인들 사이에서 정치참여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면 쿠데타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런데 공산주의 국가는 사정이 다르다. 위의 두 조건이 명확히 충족되어 있지 않다. 특히 제2조건은 전혀 해당하지 않는다. 공산주의 군대는 일상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민군 병사들.

인민군 병사들. ⓒ 위키백과(퍼블릭 도메인)


북한에서는 집권여당이란 개념이 없다. 정당 개념부터가 다르다. 대한민국 헌법 제8조 제3항에서는 "정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라고 했다. 우리 헌법 하에서 정당은 국가의 보호를 받는 존재다.

하지만, 북한 노동당은 국가의 보호를 받는 존재가 아니라 국가의 상위에 있는 존재다. 2016년에 개정된 북한 헌법 제11조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조선로동당의 령도 밑에 모든 활동을 진행한다"고 했다. 당이 국가를 지도하는 위치에 있는 것이다. 당이 행정부를 지도하는 수준이 아니라 전체 국가를 지도하는 수준이다. 

국가를 영도하는 바로 그 조선노동당에 군대의 참여가 보장돼 있다. 국가의 정치적 의사를 결정하는 노동당에 군부가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노동당 핵심 기구인 정치국과 중앙군사위원회에도 현역 군인들이 진출할 수 있다. 지난 10월부터 행방이 묘연하다는 황병서 인민군 차수도 군복을 입은 채 중앙군사위원회 위원 및 정치국 상무위원 활동을 했다.

인민군 내부의 각급 부대에도 노동당 위원회가 있다. 그래서 현역 군인들이 당원 신분을 갖고 정치적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있다. 군인들이 평시에도 일상적으로 정치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 <강철비>의 상상력

1990년대에 한·미·일 3국에서는 북한 쿠데타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제1차 북미 핵대결 와중에 김일성이 사망한 뒤라, 김정일 체제가 쿠데타로 붕괴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많았다. 그 시기에 민족통일연구원 정영태 연구위원이 기고한 글이 있다. 1996년 평화문제연구소가 발행한 <통일한국> 146권에 게재된 '북한 군부의 정치주도설은 시기상조다'라는 글이다.

"거의 대부분의 군 고급 장교들은 당원일 뿐만 아니라, 군이 당 중앙에 있어서 일정한 대표권을 행사하고 있기도 하다. 이것은 군부 엘리트가 곧 당의 엘리트라는 것을 의미한다. ······ 북한을 포함한 사회주의 국가에 있어서 군부의 정치적 참여가 보편화되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평소에 군부의 정치참여 욕구가 억제되는 문민국가 경우에는, 정부가 질서유지에 실패하는 위기 상황에서 군부가 정치참여 욕구를 드러낼 가능성이 높다. 장교들 사이에서 '군이 나서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 탱크 행렬이 도심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하지만 북한 같은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군부가 일상적으로 정치에 참여한다. <강철비> 속의 엄철우 같은 군인들이 정치인이나 당원까지 겸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군부의 정치참여 욕구가 억제되어 폭발 수준까지 도달할 일이 별로 없다. 억제됐던 욕구가 쿠데타로 분출될 일이 거의 없는 것이다.

또 평소에 정치에 간여하고 있으니, '위기 상황에서 군이 나서야 한다'는 공감대가 따로 형성될 가능성도 낮아진다. 군인들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는다면, 쿠데타 발생 가능성은 제로가 된다.

그래서 공산주의국가의 군부는 정치위기 상황에서 반역을 시도하기보다는 기존 정권을 지키려고 애쓰게 된다. 왜냐하면, 기존 정권이 자신들의 정치활동으로 유지됐기 때문이다. 한국의 집권여당 구성원들이 반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낮은 것과 마찬가지다. 

그 점은 1980년대 후반 이후의 동구권 사회주의 붕괴 때도 잘 드러났다. 동구권 국가들은 군부 쿠데타가 아닌 민중 봉기로 무너졌다. 1991년 8월 소련에서 쿠데타가 발생하긴 했지만, 그것은 공산당의 기존 권위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나마도 60시간 만에 종결됐다.

1981년 12월 폴란드에서 야루젤스키 장군이 일으킨 쿠데타도 비슷했다. 폴란드 공산당인 통일노동자당의 와해를 막기 위한 쿠데타였다. 반역을 위한 정변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처럼 공산권에서 발생한 몇 안 되는 쿠데타는 기존 정치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위의 <통일한국>에 실린 또 다른 논문이 있다. 한양대학교 중소연구소 김광용 선임연구원이 기고한 '군부 이상징후설은 북한체제 이해부족의 결과다'라는 글이다. 그 글에 이런 대목이 있다.

"제3세계권에서 일반적인 현상으로 관측되던 군부 쿠데타는 사회주의권에서는 성공한 적이 없음은 물론 아예 시도된 적도 없다. 체제붕괴라는 최악의 경우를 맞아서도 그러한 상황은 변함이 없었다. 이는 구(舊)사회주의권 특히 동유럽 국가들의 인민 항거가 별다른 저항 없이 성공할 있었던 배경으로 지적된다."

'아예 시도된 적도 없다'는 표현은 공산권에서 쿠데타가 전혀 없었다는 게 아니라 5·16이나 12·12처럼 정권 탈취를 목적으로 한 쿠데타가 없었다는 의미다.

이렇게 공산권 국가에서는 군부 쿠데타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다. 동구권 사례에서도 나타나듯이 공산주의국가는 쿠데타보다는 민중봉기로 붕괴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그렇기 때문에, 실화에 바탕을 두고 북한 쿠데타를 영화화하는 것은 쉽지 않다. <강철비>처럼 전적으로 상상력에 의존해서 영화를 만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북한 쿠데타 영화는 고도의 상상력이 요구되는 영역이다. 

강철비 북한쿠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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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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