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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우성, 곽도원 주연의 <강철비>는 남북 분단을 다룬 작품 중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과감한 작품이다.

정우성, 곽도원 주연의 <강철비>는 남북 분단을 다룬 작품 중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과감한 작품이다. ⓒ (주)NEW


'북한이 선전포고하면 어떡하지?'

양우석 감독의 <강철비>는 이 무서운 가정을 스크린으로 과감하게 옮긴 정치 스릴러다. 원작인 웹툰 <스틸레인>과 스토리는 조금 다르지만, 거침없는 상상력만큼은 그대로 이어받았다. 분단국가의 특수성과 '이념을 초월한 우정'은 지금까지 꽤 많이 다뤄졌던 소재다. 소재만 보면 언뜻 뻔한 한국 영화겠거니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가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은 조금 다르다.

<강철비>는 한반도가 처해 있는 상황을 다각도에서 조명한다. 특히 북한에 대한 폭격을 두고 현직 대통령(김의성)과 차기 대통령(이경영)이 나누는 논쟁 장면이 꽤 인상적이다. 이 장면은 한국 정치를 양분하는 두 진영의 대리전으로 비추어진다. (실제로 극 중 이경영의 방에는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글귀가 걸려 있다. 이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긴 명언이다)

지난 대선 당시 더불어민주당 진영을 지지했던 양우석 감독(그는 당시 안희정 충남지사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이지만, 그는 이 장면에서만큼은 철저히 중립을 지킨다. 어느 진영도 특별한 악인으로 묘사되지 않으며, 나름의 책임 윤리와 선의 안에서 움직이는 인간들이다. 차기 대통령이 대통령에게 '역사의식이 없는 사람'이며 일갈을 놓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논쟁의 일환이다. 홍세화 선생의 표현을 빌리자면, '의견과 의견이 부딪히되 사람과 사람이 부딪히지 않는다'(<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 중에서)고 해야 할까.

현실에 던지는 질문들

 북핵 문제는 엄연한 현실이다. <강철비>는 현실의 힘을 빌려 설득력을 획득하는 영화다.

북핵 문제는 엄연한 현실이다. <강철비>는 현실의 힘을 빌려 설득력을 획득하는 영화다. ⓒ (주)NEW


그 외에도 <강철비>는 의미 있는 질문을 여럿 던진다. '미국이 한·일 중 어느 우방에게 더 무게를 두고 있는가?' (이른바 '코리아 패싱') '북한을 잃고 싶지 않은 중국은 어떤 제스쳐를 취할 것인가?' 이것들은 실제로 대한민국이 대면하는 문제들인 만큼, 극 중 긴장감은 더욱 강하게 조성된다. 극 중에서 계엄령이 선포된 이후에도, 서울 시민들은 카페에서 여유롭게 커피를 마신다. 안일한 안보 의식을 문제 삼는 장면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북한의 위협에 시달려왔는지를 매끈하게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메시지는 물론 영화적 재미 역시 충분했다. 양우석 감독의 속도감 있는 연출은 한반도 핵전쟁의 분위기를 실감 나게 조성한다. <아수라> <더 킹> 등, 작품에 따라 편차가 심했던 정우성은 <강철비>에서 최고의 몫을 해냈다. 독재 정권에 충실하지만 선한 인물 '북쪽 철우'는 그에게 최적화된 캐릭터다. 희생을 주저하지 않으며, 쉽게 고개를 굽히지 않지만, 사람다운 빈틈도 있어 흥미롭다. 2011년 드라마 <빠담빠담> 이후 그에게 가장 잘 맞는 역할 아니었을까.

다시 한번 양우석과 합을 맞춘 곽도원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라는 무게감 있는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이 영화의 무거움을 중화시키는 임무도 해낸다. (계엄령이 터진 마당에 '삐딱하게'를 신나게 부르는 남쪽 철우!) <터미네이터>의 T-1000처럼 잔혹한 특수요원을 연기하는 조우진, 김갑수 등의 조연들은 극한의 긴장을 연출하는 데에 공헌한다. 카체이싱이나 군 병원 시퀀스 등, 액션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 극 후반부 관객의 눈물을 자아내는 장면이 있긴 하지만, <공조>처럼 엉성한 방식의 신파는 아니다. 오히려 극의 흐름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후, 설득력 있게 눈물을 끌어내는 방식이다. <강철비>는 <공동경비구역 JSA> 이후 남북 관계를 다룬 영화 중 가장 힘 있는 작품이다.

많은 관객이 공통으로 명대사로 뽑는 대사가 있다. "분단국가의 국민은 분단 자체보다 그걸 이용하는 권력자들 때문에 고통받는다"는 곽도원의 대사다. 바로 이 대사에 양 감독의 지향점이 담겨 있다. 통일이 민족의 선결 과제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다만, 분단국가가 잉태하는 피해자들이 더는 없어야 한다는 것에 모두가 동의해야 하지 않겠는가. 올해 초, 한 정치 행사에서 양우석 감독이 필자의 앞자리에 앉았던 기억이 난다. 첫 작품 <변호인> 이후의 행보가 몹시 궁금했는데, 그는 이렇게 멋진 작품을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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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음악과 공연,영화, 책을 좋아하는 사람, 스물 아홉.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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