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의 가사들이 간직한 심리학적 의미를 찾아갑니다. 감정을 공유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의미까지 생각하는 '공감'을 통해 음악을 보다 풍요롭게 느껴보세요. - 기자 말

10대 때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자신의 꿈을 찾고 나면, '자아정체감'은 완성될까? 결코 그렇지 않다. 첫 번째 '가사 공감'에서 다뤘던 로시의 'Stars'처럼 솔직한 내 모습을 알고, 미래의 꿈을 찾아가는 청소년기의 자아정체감 형성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청소년기가 지난 성인기에도 나를 찾는 여정은 계속된다. 부모와의 분리를 통해 나 자신에게 집중해보는 청소년기의 자아 찾기와 달리, 성인기가 되면 부모가 아닌 또 다른 친밀한 관계가 정체감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신승훈의 신곡 '폴라로이드(Polaroid)'(작곡 신승훈/작사 심현보)는 성인기의 정체감 확장과 이를 통해 체험하는 삶에 대한 긍정을 담고 있다.

기억 속의 나

어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주어진 역할에 맞게 살아가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일터에서의 역할과 가정에서 엄마, 아빠, 아내, 남편, 자식으로서의 역할은 각기 다르다. 어른들은 이런 역할에 따라 정체감을 달리 적용하며 지낸다. 그러다 문득 '진짜 나 자신 누구인지' 궁금해진다. 그럴 때 떠오르는 것이 바로 지난 추억들이다. 해맑았던 어린 시절부터 꿈 많던 사춘기, 열정에 들뜨던 청년기의 내 모습들이 차례대로 지나간다. 그리고 '나'는 그런 기억들 속에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신승훈은 '기억하게 될까 .그 모든 순간들을 웃고 꿈꾸던 너와 나'라고 질문하며 노래를 시작한다.

우리는 정말 삶의 모든 순간들을 다 기억할 수 있을까? 과거를 회상해보면, 뚜렷이 떠오르는 추억들도 있지만, 어렴풋이 '그랬던 것 같은' 느낌으로 남은 부분들도 있고 전혀 기억나지 않는 일들도 많다. 하지만 기억나지 않는 일들은 정말로 우리가 잊은 것일까? 심리학자들은 우리가 인식하고 추억해내지 못하는 경험들도 신체반응이나 정서의 형태로 우리 몸 어딘가에 저장된다고 한다. 특히 잊고 싶은 아픈 경험은 우리의 무의식 깊숙한 곳에 저장돼 인식하기 힘들어진다. 이렇게 무의식에 저장된 기억들도 인식하지 못할 뿐, 후에 비슷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정서나 신체반응의 형태로 나타나곤 한다. 때문에 신승훈이 첫 소절에서 던지는 질문에 대한 답은 'YES'다.


 신승훈 Limited Edition Vol.1 폴라로이드 앨범 커버.

신승훈 Limited Edition Vol.1 폴라로이드 앨범 커버. ⓒ CJ E&M MUSIC


친밀한 관계 속에 비추어지는 나

그런데 이렇게 나를 구성하는 기억들, 특히 내가 무의식으로 밀어낸 기억들을 이끌어 내주는 존재가 바로 성인기에 맺게 되는 친밀한 관계다. 아마도 연인관계가 그 대표적인 것일 것이다. 부모와 분리된 성인들은 독립적인 생활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어머니와 하나였던, 내가 말하지 않아도 나의 욕구를 알아채주었던 조건 없는 부모와의 사랑을 갈망한다. 그리고 이 갈망을 충족해주는 대상을 찾아 헤매고, 한 사람과 배타적이면서도 독점적인 연인관계를 맺게 된다. 때문에 두 연인 사이에는 어릴 적 부모와 맺었던 것과 같은 애착관계가 형성된다. 이 관계를 통해 억압했던 감정들이 풀어지면서 인식하지 못했던 온갖 정서와 기억들이 되살아난다. 친밀한 한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모습들을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이 곡에서 '너와 나' '우리'가 등장하고, 내가 말하고 ('I say') 네가 답하는 ('You say') 형식이 반복되는 것은 이 같은 관계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신승훈이 'You know I know Yes we know'라고 읊조리는 듯, 기억은 너를 통해 되살아나고 이는 나만의 것이 아닌 우리의 것이 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투사라고 부른다. 친밀한 관계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내가 억압하고 있었던 나의 모습이 내가 선택한 한 사람을 통해 표현되고, 반대로 나는 나의 연인의 억압된 모습을 반영해준다. 그런데 이 과정은 내가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기억을 되살아나게 하기 때문에 순탄치 않다. 특히, 내 연인의 어떤 면이 유난히 싫거나 수용하기 힘들다면, 그것은 바로 내가 감추고 싶었던 나의 모습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보기 싫기 때문에 내 연인이 반영하는 비슷한 모습을 더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때문에 연인들은 크게 다투기도 하고 때로는 관계의 파국을 맞이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과정을 잘 극복해내면 나는 더욱 온전해지고 관계는 더욱 풍성해진다.

현재에 충실하기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잘해내고 있는 건지 지금의 우리는' 신승훈은 다시 묻는다. 그러자 '너'는 이렇게 답한다. '이대로 충분하다고, 더할 나위 없었다고 잘하고 있다고'. 이는 상대방의 상처와 힘든 기억들까지 모두 가치 있는 것이었음을 인정해주는 수용의 말이다. 어릴 적 아무리 두렵고 힘들었던 기억들이라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수용되고 재조명되면 더 이상 숨기고 싶은 과거가 아닌 안전한 것이 된다. 때문에 '때론 행복했고, 가끔은 두려웠던' '때론 가득 찼고, 가끔은 텅 비었던' 기억들 모두가 소중한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 이렇게 투사의 과정을 잘 극복한 커플은 각자가 상처까지 수용한 보다 온전한 자아를 갖게 된다. 나아가 상대방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우리가 타인을 수용하는 폭 역시 넓어지게 된다.

보다 온전한 사람으로 관계를 지속하는 연인들은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현실에 발을 디딜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지금 여기서의 매 순간이 소중함을 깨닫는다. 그러면 일상은 더 이상 지루하지 않게 된다. '오늘이라는 건 누구에게나 다 처음이라서 매일 낯설지만 그래서 두근거려' '시간이라는 건 가끔씩 마법과도 같아서 내일은 어쩌면 가장 가까운 기적'이라는 노랫말처럼 말이다. 또한 투사의 감정이 걷히면서 내 앞에 있는 연인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게 된다. 때문에 신승훈은 '지금 부는 이 바람과 환하게 웃는 니 얼굴 내 맘에 담을게' '반짝거리는 햇살과 그 보다 빛나는 우리 언제나 기억할게'라고 강조해서 노래한다. 삶에 대한 감사의 마음도 싹튼다. '너에게 말하고 싶어 고마워 함께 해줘서 한 번 더 말하고 싶어 지금의 우릴 사랑해' 라고 노래하는 하이라이트 부분은 관계 속에서 통합되고 보다 풍성해진 너와 나 그리고 삶에 대한 긍정과 환희다.

이제 자기 자신은 물론 상대방, 그리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 커플은 삶의 모든 기억들은 '저만치서 보면 다 아름다운 장면들'임을 깨닫는다. 때문에 지금 또 다시 다투게 되고 힘든 일을 만날지라도 지금 순간의 소중함을 잊지 않고 지낼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아름다운 장면들이 너와 나, 우리만의 유일무이한 경험이라는 점이다. 너와 내가 살아온 삶의 과정, 혹은 우리가 공유한 기억들은 일반 사진처럼 여러 장 현상할 수 없다. 폴라로이드 사진처럼 오직 단 한 장만 찍어낼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런 단 한 장의 사진들이 모여서 결국엔 너와 나, 우리 각자의 고유한 삶이 완성되어 간다. 때문에 신승훈은 이렇게 노래를 마무리 한다. 'Life is Polaroid.'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에도 게재할 예정입니다.
신승훈 POLAROID 폴라로이드 심리학 성인기정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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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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